# 177
이희현 회장을 도롱뇽 프로젝트 임상시험이 있었던 하늘병원으로 급하게 이송시켰다.
세포재생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장비들이 이곳에 있었고, 임상시험이 이뤄진 곳이기도 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이희현 명예회장에게 세포재생 기술을 사용할 줄은 몰랐다.
이희현이 세포재생에 대해 말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저희 아버지 정말 괜찮으실까요?”
이희현 명예회장의 첫째 아들, 현 배영그룹의 회장인 이주원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태범에게 물었다.
그는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등산복 차림으로 헐레벌떡 병원으로 왔었다.
물론 자식이라면 크게 걱정하는 게 도리인지만, 다른 가족들과는 다르게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며 상황을 계속 물을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정이 대단해 보였다.
“일단 긴급한 상황은 지나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지켜봐야 알겠지만, 새 혈관을 성공적으로 재생시키게 된다면 건강은 되찾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지금 바로 가능한 겁니까?”
“네. 가능합니다. 이희현 명예회장님이 수술을 받는다면, 기술 상용화 후 첫 번째 환자가 될 겁니다.”
“첫 번째라면……. 사실상 검증이 안 된 수술을 받는 것 아닙니까?”
이주원은 첫 번째라는 단어라 신경 쓰였는지, 미간을 좁히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세포재생기술이 획기적이고 엄청난 기술임은 분명하지만, 큰 변화를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태범은 그런 그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설명을 이어갔다.
“정식적으로는 첫 번째 환자이지만, 사실상 이미 임상시험으로 많은 환자들의 회복을 일어낸 수술입니다. 단지 수술에 걸린 타이틀의 차이일 뿐이죠. 그러니 이 기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거둬주셨으면 합니다. 단지 혹시 모를 변수의 문제일 뿐이죠.”
“수술에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건 모르는 일이죠. 명예회장님이 나이도 있으신 만큼 젊은 사람과 비교하자면, 실제 부작용과 같은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하지만 치료든 100% 성공이라는 건 없습니다. 모두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건 사실이죠.”
태범의 말에 이주원은 고개를 푹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정신 사납게 뚜벅뚜벅 좌우를 왔다 갔다 거리더니, 잠시 후 다시 말을 열었다.
“그럼 태범 대표님만 믿겠습니다.”
“그럼 수술하시는 걸로?”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평소 아버지가 태범 대표 말을 많이 했거든요. 항상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죠. 제가 아니라 아버지 역시 같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좋은 선택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세포재생 수술을 지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좋은 결과가 있길 기도하겠습니다.”
보호자인 이주원의 선택을 확인하고, 태범은 바로 의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신체 내부에 있는 심장의 혈관을 다루는 만큼 피부를 여는 수술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미 임상시험에서 많은 수술 경험을 가졌고,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낸 만큼 의사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태범이 이제 할 일은 의사들의 손을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 * *
집에 돌아온 태범은 한동안 이희현의 안위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태범을 믿고 친절히 따라와 준 어르신이었고, 흔쾌히 투자까지 부탁한 분이니 말이다.
게다가 도롱뇽 프로젝트, 세포재생기술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고 기대가 많이 있었다.
태범 또한 그런 기대를 실망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이희현 명예회장이 제정신을 차렸을 때, 본인이 세포재생기술을 통해 새 삶을 얻었다 하면 얼마나 좋아할까?
새 삶은 얻은 이희현의 침대 위 모습이 상상됐다.
태범은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한번 웃고는 방공호로 향했다.
“후…….”
역시 방공호로 들어오니 마음이 안정된다.
보통은 산이나 바다 풀숲처럼 자연 속에 들어갈 때 마음이 평온해진다 하는데, 이상하게도 꽉 막힌 금속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스캐너를 실행시켰다.
[경영기술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35%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36% 진행되었습니다.]
‘역시 대단해!’
세계 1위 제약회사 회장답게 마크 필립스의 정보는 거의 꿀단지 수준이었다.
그의 경영기술이 가져다주는 지식과 정보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극비 수준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었던 기억처럼 새 정보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본인의 기억은 아니었지만, 직접 겪은 것처럼 생생한 기억이다.
태범은 눈을 감고 양쪽 관자놀이에 손을 댄 채 새로 들어온 기억을 머릿속으로 되짚기 시작했다.
‘이놈도 쉽지 않은 인생이었군.’
마크 필립스는 경영자 집안에서 태어나, 기업 후계자로 지명을 받고 회장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 그 이상인 다이아 수저쯤 되는 인물이었다.
그가 다이아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는 하나, 인생을 편하게만 살아온 건 아니었다.
기업을 운영하는 집안답게 교육열과 경쟁심이 엄청났고 이를 혹독하게 견뎌내며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이었다.
물론 그 방법에는 꺼림칙한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어쨌든 간에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은 확실했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나?’
꺼림칙함 속에 가장 지저분한 방법은 생명을 죽이는 행위였다.
그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으로, 최후의 수단으로 살인을 이용하기도 했다.
누가 생각이나 할까?
생명을 살리기 위한 약을 만드는 제약회사의 회장이 사람을 죽였다니 말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분명 태범에게 스캔이 된 마크 필립스의 기억 속에는 살인에 대한 추억이 담겨 있었다.
터트리면 가장 여파가 큰 건 러시아 생물학자 이고르의 암살사건이다.
이고르는 차세대 항생물질인 테익소박틴을 통해 새 항생제 대량 생산을 이끌던 생물학자였다.
토양 박테리아에서 얻어낸 물질을 통해 결핵균이나 슈퍼박테리아에 효과적인 약물을 얻어냈고, 실제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고 발표까지 냈던 학자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러시아 국립 생명연구소에서 일하던 도중 갑작스러운 마비증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저 지병으로 돌연사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오늘 스캔으로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는 마크 필립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정말 몹쓸 놈들이었다.
본인들의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 남의 목숨을 벌레 취급하는 녀석들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차마 할 수 없는 짓이겠지만, 그는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목적을 위해 달리는 성격이었다.
‘조심해야겠어. 이러다 내가 당하게 생겼군.’
기억 속에 생명이 오고 가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크 필립스가 오늘이라도 당장 태범을 죽인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태범은 안전에 더 신경 쓰기로 하며, 경호 인력을 늘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
한 달이 지났다.
세포재생기술은 여러 병원으로 보급이 되며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이 시점으로 의료의 새 역사가 쓰이고 있었다.
뇌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을 재생산할 수 있는 만큼,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복구할 수 없었던 장기가 필요하면 남의 장기를 이식하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오로지 자신의 DNA에서 나온 100% 본인의 장기로 교체할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면역 거부반응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절단 환자나 눈에 장애를 가진 환자 등 신체 일부분의 손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는 사람에게는 잃었던 신체를 다시 되찾는 꿈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WHO 인간 평균수명 120세로 상승조정.]
[자연 한계를 이겨낸 인간 수명.]
[평균수명 연장으로 보험료 큰 폭 인하 예정.]
[제약사 주식 연이은 폭락, 수많은 약의 가치가 휴지 조각으로.]
[국회 장애 등급 판정 기준 개정안 입법예고.]
[노인 인구 증가에 따른 대책이 필요하다.]
태범의 손에서 시작한 변화는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단지 의료적인 부분만 아니라, 나비효과로 간접적인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특히 수명연장은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부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할 정도였다.
“노벨! 노벨! 노벨! 노벨!”
태범을 보는 사람들은 외쳤다.
마치 유행어처럼 그들을 태범의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인류 보건에 킨 도움이 됐기에, 태범에게 노벨상 수상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 * *
하늘병원.
“병원 밥도 이제 질리네.”
“아버지, 아직 완전히 나으신 게 아니니까 좀만 참으세요.”
“그래! 그래야지. 이곳이 내게 새 생명을 가져다줬는데, 그까짓 것 못 참겠나?”
침대 위에서 펄펄 날뛰는 이희현 명예회장이었다.
벌써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이 지났고, 세포재생 수술을 받으며 회복 중에 있었다.
매일 증가하는 아버지의 활기에 첫째 아들인 이주원은 색다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과거 이희현 명예회장은 숨만 겨우 붙어 있는 노인이었지만, 어찌 된 게 수술을 받고 나서 없었던 기운까지 차리고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아버지의 건강에 이주원은 경외심을 느낄 정도였다.
의학기술이 이 정도까지 발전한 것인가!
말로 듣는 거랑 실제로 눈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전성기 시절 사업장을 호령하고 다니던 아버지의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니, 이주원으로서는 감회가 새로운 정도였다.
“아버지, 노벨상 때문에 대한민국이 떠들썩한 거 아십니까?”
“암! 알고 말고, 이렇게 신문에 매일 나타나는데 내가 모르겠냐?”
태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만 격하게 반응하는 이희현 명예회장이었다.
태범의 기술로 새 삶을 살게 된 덕인가, 그의 몸은 태범이라는 이름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할 정도였다.
“지금 노벨상이 문제야? 앞으로는 노벨상으로도 부족할 일을 해낼 거니까 지켜보라고. 그러니까 항상 일을 하려거든 강태범 대표의 움직임을 잘 지켜보고 해.”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희현은 태범 전도사가 따로 없었다.
자기 아들뿐만 아니라, 회진을 도는 의사들 그리고 간호사까지 본인을 만나러 오는 사람마다 족족 태범의 위대함을 설파했다.
언뜻 보면 교주와 신도 사이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아들을 상대로 태범 이야기를 꺼내던 중이었다.
“회장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이희현은 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강태범 대표!”
이희현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강태범이었다.
손에는 커다란 과일바구니가 들려있었고,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많이 건강해지신 것 같네요.”
“이게 다 강태범 대표 때문이죠. 아! 서 있지 말고, 여기 앉아요. 앉아.”
태범은 이희현의 우렁찬 목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었다.
성대의 강직함이 느껴지는 것이 몸은 이전 상태를 넘어 더욱 건강해진 것 같았다.
아들 이주원은 허리를 살짝 굽히고는 한 발짝 물러나며 태범에게 자리를 내줬다.
평소 아버지가 태범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내 이 병실을 나가자마자 찾아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렇게 와주니 너무 고맙네요.”
“아닙니다. 당연히 와봐야죠.”
“나를 심폐소생술 한 것도 강태범 대표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수술까지……. 이제 내 생명의 은인은 강태범 대표요.”
태범의 손을 붙잡은 이희현은 감격에 찬 표정을 지었다.
거의 눈물을 흘리기 직전이었다.
“내가 이걸 어떻게 보답할지 생각을 해봤소.”
“무슨 보답입니까, 괜찮습니다. 그냥 건강히 퇴원만 하시면 그걸로 보답하신 겁니다.”
태범은 이희현의 호의를 거절했지만, 그는 꿋꿋하게 본인 할 말을 이어갔다.
“내가 가진 재산 모두를 강태범 대표에게 드리겠습니다. 목숨에 대한 보답이니 받아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