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75화 (175/188)

# 175

“자! 이거 한번 보시죠.”

데론 머스크가 컨트롤 타워에 있는 직원에서 손짓하자, 거대한 중앙 모니터의 화면이 바뀌었다.

하늘부터 시작해 땅까지 모든 게 붉게 물들어 있는 사막이었다.

언뜻 봐도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한 땅의 사진, 곧이어 사진이 움직이며 영상으로 바뀌었다.

“아! 여기는…….”

영상이 돌고서야 태범은 깨달았다.

이곳은 지구의 사막이 아닌 바로 화성이었다.

흙과 먼지만 보이는 척박한 땅, 이곳을 무인용 로봇이 이동하며 찍은 화면이었다.

지구가 멸망하면 저런 모습은 아닐까 상상이 들 정도로 보잘것없어 보이는 땅이다.

데론 머스크가 이 화면을 왜 보여주는 건지 의도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목적은 있어 보였다. 그게 아니면 이 지루한 화면을 보여줄 일이 없다.

“이걸 저한테 왜 보여주는지?”

“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까?”

태범의 물음에 데론 머스크는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되물었다.

“지구의 바로 바깥 행성이자, 마지막 지구형 행성 아닙니까? 자전 시간은 약 24시간 39분, 공전시간은 지구의 약 두 배, 중력은 지구의 37.6% 대기에는 이산화탄소와 소량의 질소, 아르곤, 산소가 있고요. 화성이 저렇게 붉게 보이는 건, 산화철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죠.”

태범은 기억 속 화성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읊었다. 완벽한 암기력을 가졌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잘 알고 계시네요. 대단합니다.”

데론 머스크는 살짝 놀란 듯 고개를 움찔했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건넸다.

“스페이스Z의 현재 최종 목표가 뭔지 알고 계시죠?”

“화성 유인탐사와 정착 아닙니까? 최근 재활용 우주선 성공한 이후 언론에서 많이 거론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데론 머스크의 질문마다 태범은 족족히 모두 대답했다.

전혀 망설임 없이 대답을 이어가니, 질문을 건넨 데론 머스크가 민망할 정도였다.

데론 머스크는 잔뜩 분위기를 잡고 질문을 건넨 본인이 어이가 없는지,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참, 모르는 게 없으시네. 정말. 굳이 질문할 필요가 없는 것 같네요. 그럼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도록 하죠.”

결국 질문은 여기서 끝났다.

간 보기는 여기서 끝나고, 바로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화성에 정착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항공우주역학이죠. 결국 물리 에너지를 우주 활동과 함께 얼마나 정교하게 잘 다루냐가 핵심인데, 이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태범 씨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같이 일을 하자고 제안하시는 겁니까?”

“태범 씨의 능력이면 저희에게 엄청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흠……. 우주라…….”

“이번에 세포재생기술을 성공시켰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그건 생물학 범주이기 때문에 항공우주 분야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크게 보자면 같은 물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엄청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우주 분야에서도 큰일을 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데론 머스크의 제안을 바로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태범은 눈을 치켜세운 채 잠시 고민에 빠졌다.

태범이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만큼, 가져야 할 책임감도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결정하게 되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부담감이 꽤 컸다. 게다가 우주 분야는 감당하기에 스케일이 너무 크다.

“연구센터에 위치한 광활한 대지를 보시고 감탄하지 않으셨습니까? 인간은 본래 광활함에 감동하게 되죠. 끊임없는 공간에 경외감을 느끼고, 미지의 것을 밝혀내는 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하나의 모습입니다. 우주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광활함에 끝인 우주를 밝혀내는 것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민하는 태범의 모습에 데론 머스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태범을 얻기 위해 애를 쓰고 썼다.

태범도 그런 그가 틀린 말은 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우주를 정복한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임은 분명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정복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 스캐너의 능력이면 부족할 건 없긴 하지.’

태범이 스캐너를 통해 능력을 사용하는 데 있어 처음 목적은 돈이었다. 하지만 목표가 충족되고 가면 갈수록 목적은 달라졌다. 이제는 돈보다는 능력을 통한 깨달음을 추구하고 있던 것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갖게 된 태범으로서 ‘뭔가를 사고 싶다‘, ‘가지고 싶다’라는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소비로 얻는 행복은 더 이상 태범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이제 남은 건 능력을 활용하고 이를 충족하면서 나오는 새로움만이 만족감을 가져다줬다.

새롭게 발견하고, 얻고, 알아내고, 깨닫고, 그 자체가 좋아졌다.

“지금 답변을 바로 내릴 수는 없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도 이 분야에 호기심이 있는 건 맞지만,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서요.”

“정말입니까?”

“네. 저도 예전부터 데론 머스크 씨와 함께 일하면 어떨까 생각 많이 해봤습니다. 머스크 씨의 활동이 저와 많이 유사했고, 혁신과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감을 받았거든요. 제안은 좋게 받아들이고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역시 태범 씨는 저랑 통하는 게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데론 머스크가 악수를 권했다.

아직 정확한 답은 내리지 않았지만, 암묵적인 계약체결을 요구하는 손길이었다.

태범은 그의 악수요청을 받아들였다.

“제가 재밌는 거 구경시켜드린다고 했으니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따라오시죠.”

데론 머스크의 제안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자, 그는 태범의 팔을 끌어당기고는 또다시 어디론가 이끌었다.

점점 으슥한 곳으로 이동한다.

일반 사람이라면 왔던 길을 헤맬 정도로 미로처럼 복잡한 길을 통과했다.

여러 문을 통과하고, 보안 구역을 거치고 나서야 도착한 이곳.

연구실로 보이는 조그마한 방이었다.

방 가운데는 사각의 투명한 유리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의문에 물체가 들어 있었다.

언뜻 보면 그저 돌이었다. 불에 그을린 것처럼 검고 매끈해 보이는 주먹만 한 돌, 하지만 그저 돌을 저기에 놨을 일은 없다.

그렇다면 설마…….

“운석입니다.”

태범이 추측을 하고 있자, 데론 머스크는 의문에 돌에 대한 정체를 밝혔다.

“운석이요?”

“네. 아주 특별한 돌이죠.”

그렇다. 운석은 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진 암석을 말하는데, 보통은 지상에 도달하지 않고 대기에서 모두 타버려 형체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대기를 견디고 떨어졌다는 건 희귀한 돌이었다.

게다가 지구가 아닌 저 멀리 우주 외부에서 왔다는 건 중요한 연구 사료가 될 수 있어 값어치가 높았다.

이 돌도 마찬가지, 이렇게 은밀한 공간에 신줏단지 모시든 숨겨둔 걸 보니 보통의 운석은 아닌 듯 보였다.

“이 운석은 제게 있어서 보물 1호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우주에 대한 꿈을 꾼 것도 모두 이것 덕분이죠.”

데론 머스크가 운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뭔가 사연이 있으신가 보죠?”

“제가 대학 시절 때였으니까 20년도 넘었죠. 그때는 미국에 유학을 와 평범하게 대학생활을 하던 때였습니다. 방학을 맞이해 미국을 여행하던 중, 미국 북서부에 있는 아이다호주에 잠시 머물 때가 있었습니다. 산과 강이 아름답게 펼쳐진 곳이죠.”

“의외로 여행을 좋아하셨나 보네요?”

“제가 지금은 첨단과학 분야에 있는 사람으로 자연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며칠 동안 숲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잠을 청하기 위해 누워 있었을 때였는데, 어디선가 펑!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처음에는 누가 총이라도 쏜 줄 알았습니다.”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듯 입으로 효과음까지 넣으며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밖을 나가봤죠. 하지만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보이는 건 붉게 달아오른 이 운석뿐이었습니다. 바로 제 텐트 옆에 떨어져 있더군요. 하마터면 세상 골로 갈 뻔한 거 아니겠습니다? 하하.”

데론 머스크의 말에 태범도 덩달아 피식 웃었다.

“그날 이후로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을 발견하고 그걸 손에 쥐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쫙 오르더군요. 마치 신의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말이죠. 그저 플라시보 효과인지, 아니면 정말 물리적으로 이 운석이 제가 변화를 준건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전 이렇게 변화했다는 겁니다.”

데론 머스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한 의도가 파악되지 않았다.

운석을 줍고 갑자기 인생이 바뀌었다니, 게다가 전율은 왜?

그저 우주의 신비함에 놀라웠다는 의미인가?

그의 말에 곰곰이 생각을 하던 태범은 번뜩하고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내가 가지고 있는 스캐너 같은 건가?’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는 없으나, 태범도 마법과 같은 스캐너를 얻고 나서 인생이 바뀌었다.

데론 머스크라고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 그가 말하는 말들의 의미를 종합해 보면 대충 태범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였다.

단지 논리와 객관적으로 설명을 하지 못할 뿐이었다.

“어떤 식으로 인생을 바꿨다는 겁니까? 혹시 능력이 나타나거나, 아니면 예상치도 못한 경험을 한다든가…….”

태범은 운석에 관심을 크게 가지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데론 머스크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뭔가 에너지가 치솟는 느낌이랄까, 무슨 일을 하든 활기가 돌고 강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제가 일을 할 수 있도록 추진력을 가져다줬죠. 근데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가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고요.”

“연구 성과는?”

“안타깝게도 아직 없습니다. 그저 콘트라이트 성분의 돌일 뿐이었죠.”

데론 머스크의 말대로 태범은 재미난 구경을 했다.

물론 그의 말이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으나, 태범의 호기심을 일으켰으니 말이다.

태범은 데론 머스크에게 못다 한 이야기를 모두 듣고, 일반적으로 알 수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들었다.

데론 머스크는 태범을 신뢰하며 모든 걸 내 던진 것이다.

태범도 그런 데론 머스크의 화답이라도 하듯, 좋은 결과를 기대하라고 말하고는 또다시 만나자고 약속과 함께 그와의 만남을 끝냈다.

* * *

TB 금융 투자 본사.

“대표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 펀드 관련 회의를 위해 모인 직원들 사이로 윤희성 이사가 가장 먼저 태범에게 인사를 올렸다.

“재미있었습니다. 나름 색다른 경험이었고요.”

“저도 인터넷 라이브로 봤습니다. 반응이 엄청나던데요. 투자 고객들도 스낵피쳐에 거는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 이번에 대표님 안 계실 때, 백 여사님을 한번 뵈었는데 무지하게 기뻐하시더라고요.”

“그러던가요? 하긴 그분도 이제 재벌 다 되셨으니…….”

스낵피쳐의 기업공개(IPO)로 큰 수혜를 입은 사람을 꼽자면 백 여사라고 할 수 있었다.

태범에게 첫 거액의 돈을 투자했던 인물, 그녀는 태범의 투자 파트너가 되어 연이은 사모펀드까지 투자했었다. 그리고 그 돈은 다시 스낵피쳐에 흘러갔으니, 지금 상황에 와서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이름 가는 재벌이 돼 있었다.

선시티, 스낵피쳐를 중심으로 투자한 기업들마다 모두 성공을 이뤄낸 결과였다.

이래서 초창기 선점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태범이 초창기 투자자가 없어 투자자를 구하러 다닐 때, 백 여사는 사람을 알아보고 투자를 했다.

지금이야 태범이 유능한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태범을 믿기 위해서는 오로지 주관적인 판단만 필요했기에 그녀는 나름 선구적인 눈을 가졌다고 할 수 있었다.

“아! 대표님, 이것 보셨습니까?”

“네?”

윤희성이 테이블 밑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잡지였다. 그것도 표지 태범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힌 잡지.

“뭡니까? 그게.”

“미국에서 발간하는 사이언스지입니다. 이번에 대표님의 도롱뇽 프로젝트를 크게 다뤘더라고요.”

“아! 그래요?”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이걸 보시죠.”

윤희성은 잡지를 몇 장 넘기더니, 앞쪽 세포재생을 다룬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한 문구에 손가락을 집더니 태범 앞에 보여줬다.

“여기 보세요.”

[강태범 대표, 노벨상 수상가능성 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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