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능력을 주는 스캐너 #
이곳 누구도 태범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세계적인 인물로 허구한 날 TV나 인터넷의 헤드라인에 얼굴이 걸리니 말이다.
때문에 태범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단상 위에 선 것은 이곳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다들 기대하는 눈치이다.
세기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태범에게 기대를 거는 건 당연했다.
조금의 실수라도 했다가는 이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줄 것만 같은 분위기이다.
사람이 완벽해지다 보니 태범은 어떤 일을 하거든,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기게 됐다.
지금 이 노래도 마찬가지, 태범은 집에서 그저 흥얼거릴 때보다 더욱 집중을 하고는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소리를 더했다.
“We don't talk anymore~”
“We don't talk anymore~”
태범이 첫 소절을 내뱉는 순간, 관중들은 오! 하며 입술이 오므라졌다.
노래를 잘하는지는 첫 소절만 들어봐도 안다고, 전혀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흘러나오는 첫 음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I just want to talk about you.”
단조로운 목소리가 아닌 각기 각색의 채색이 입혀지고 있었다.
태범의 노래는 귀로만 들리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공감감적 심상을 느낄 수 있도록 했고, 노래에는 마치 색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태범의 노래를 들은 스낵피쳐의 임직원들은 세상 놀란 표정이다.
너무 놀라서 박수조차 안 나올 때가 있다. 딱 그런 모습이었다. 다들 얼음이 된 채 동태눈처럼 눈만 동그랗게 뜨고는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oh~~ ah~~”
고음의 날카로운 소리가 전혀 끊임없이 이어졌다.
과장하자면 소리에 살이 베일 정도로 표현할 만큼이나, 귀에 강하게 박하는 소리다.
팔에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전율을 일으켰다.
“와…….”
“미쳤다. 미쳤어. 노래까지 잘 부르다니.”
“뭐야? 저 사람 가수 아니야?”
클라이맥스에서 가슴을 울리는 엄청난 감동과 여운을 남겼고, 사람들은 잠시 침묵을 하며 말을 잃었다.
잠깐의 고요함이 파티장을 뒤덮다가,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손을 높게 들어 흔들며 앵콜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앵콜! 앵콜! 앵콜!”
기업공개 축하의 장에서 금세 태범의 콘서트장으로 바뀌었다.
한 곡만 하고 내려가려던 태범은 차마 발길은 옮길 수 없었다. 이대로 내려갔다가는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것 같은 분위기다.
태범이 잠깐 망설이자 앵콜 소리는 점점 커졌다. 결국 태범은 음악을 요청하며,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에는 가장 자신 있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였다.
무대 위에서 마이클 잭슨 노래를 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댄스와 무대 퍼포먼스가 가미되어야만 제힘을 발휘하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 될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함부로 시도하지 않는 것이 마이클 잭슨의 노래였다.
하지만 태범은 달랐다. 태범 안에는 마이클 잭슨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전혀 두려울 것 없었다.
뚜. 뚜. 뚜. 뚜.
“와!!!”
마이클 잭슨 노래의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무대 밑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손을 번쩍 들며 열광했다.
미국인들에게 마이클 잭슨은 영웅이자 한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인 가수였기 때문에, 몸이 저절로 반응하고 있었다.
태범은 멜로디에 맞춰 절도 있는 춤사위를 뽐냈다.
뼈가 부러질 것처럼 툭툭 끊기는 절도있는 군무와 출렁거리는 파도의 자연스러운 파동이 뒤섞였다. 태범의 춤 선은 딱딱함과 유연함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었다.
“oh! ah!”
게다가 안정된 노래까지. 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건 호흡에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태범에게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태범은 마이클 잭슨에 빙의가 된 것처럼 노래와 춤을 모두 소화했다.
노래가 끝나자 파티장은 다시 한번 함성과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휘파람을 부는 사람부터 흥분해서 방방 뛰는 사람까지, 사람들은 본인이 낼 수 있는 흥분감을 최대한 표현하며 감동을 나타냈다.
몇몇 사람들 입에서 앵콜이 또다시 들려오긴 했으나, 태범은 무대를 내려왔다.
‘와, 가수들이 이런 맛으로 하는구나.’
확실히 집에서 혼자 흥얼거릴 때와는 전혀 달랐다.
가수는 노래로 관중을 감동시킨다면, 가수는 관중의 환호성에 감동을 받는 것이었다.
“어땠어?”
무대에서 내려와 테이블로 돌아온 태범은 재무이사 효준에게 물었다.
“와. 대표님 원래 이렇게 노래 잘 부르셨어요?”
효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눈을 하고는 태범을 바라봤다. 그는 태범의 노래 실력에 감탄하다 못해 의아해할 정도였다.
같이 회계법인을 다닐 시절, 회식으로 노래방을 다닌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태범도 마이크를 잡곤 했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놀라게 할 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마이클 잭슨의 능력을 스캔하기 전이었고, 오로지 태범 본인의 실력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약간의 박치 끼가 있었던 태범이라서, 노래를 못 부를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360도,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으니 효준은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평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아! 정말요?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을지는 상상도 못 했는데…….”
“하하. 뭘 이것 가지고 놀라고그래.”
의아해하고 있는 효준 앞에서 태범은 애써 태연한 척했다. 하지만 효준의 머리가 갸웃거리는 걸 보니, 갑작스러운 노래 실력에 의아한 건 여전한가 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굳이 이해시켜 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결과적으로 태범의 향상된 능력이 눈앞에 보이니, 어떤 의구심을 가진다 한들 현실이었고, 알아서 스스로 합리화하며 이 상황을 이해할 테니 말이다.
그저 머리가 좀 복잡할 뿐이지, 설마 마법처럼 능력을 가져다주는 스캐너를 상상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태범 씨, 진짜 멋지다. 무대 위에서 부르니까 진짜 가수 같았어.”
캐서린이 태범의 테이블 쪽으로 다가와 칭찬을 건넸다. 태범은 어깨가 잔뜩 으쓱해졌다.
“그래. 좀 멋있었어?”
“좀이 아니라, 아주 많이!”
캐서린은 두 손으로 원을 크게 그렸다.
들떠있는 말투와 과장된 표현을 보니, 여전히 노래에 여운이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저기……. 대표님 사인 좀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사원증을 목에 맨 젊은 흑인 여성 한 명이 쭈뼛쭈뼛 태범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놈의 인기가 여기에서까지.
태범이 그녀와 사진을 찍어주자, 이 광경을 본 다른 사람도 이에 탄력을 입어 사진을 요청했다.
이제는 콘서트에 이어 이제는 팬 미팅 현장이 돼버렸다.
찰칵-
찰칵-
* * *
호텔 방에 들어온 태범은 침대 위에 철퍼덕 누웠다.
파티장에서 한마디도 쉬지 않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사진도 찍어주고, 노래까지 불렀다.
이게 바로 스타의 고단함인가.
어딜 가든 사람들이 쫓아다니고 말을 걸어왔다. 예전에는 인맥을 넓히기 위해서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는 셈이었다.
띠리링-
좀 쉬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태범은 힘겹게 손을 뻗어 침대 스탠드 옆에 놓인 스마트폰을 잡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비서인 강은미였다.
“무슨 일이죠?”
“대표님, 급하게 말씀드릴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네. 뭔데요.”
“테들라에 데론 머스크 대표한테 연락이 왔는데, 한번 만나 뵙고 싶다고 합니다. 대표님이 미국에 방문한 김에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업적으로 논의할 말이 있다고 말이죠.”
“그래요? 그럼 머스크 씨한테 제 직통 번호 알려주세요. 직접 대화 나눌게요.”
“네. 알겠습니다.”
샘성 스마트폰 10시리즈 공개행사에서 만났던 데론 머스크였다. 그때 당시 스페인에 있었는데 전화한 걸 보아하니 미국에 있는 모양이다.
띠리링-
비서에게 지시를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데론 머스크에게 연락이 왔다.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다.
“반갑습니다, 머스크 씨.”
“아하! 오랜만이군요. 태범 씨. 요즘 많이 바쁘시죠?”
“최근까지 좀 바빴는데, 지금은 그냥 그렇습니다. 큰일이 지나갔거든요.”
“아! 잘 알고 있습니다. 도롱뇽 프로젝트.”
데론 머스크는 태범의 소식을 잘 알고 있었다. 안부를 물어보는 건 그저 인사치레일 뿐, 이미 알건 다 아는 모양이었다.
“근데 무슨 일로 이렇게 전화를 주셨습니까?”
“지금 미국에 와 있다고 들었습니다. 스낵피쳐 기업공개 행사 때문에 말이죠. 아직 미국에 계시죠?”
“네. 맞아요. 지금 미국 뉴욕 호텔에 있습니다. 제 소식을 잘 아시네요?”
“알다마다요. 요즘 눈을 감아도 들리는 게 태범 씨 소식 아닙니까? 참 대단하십니다. 하하.”
“하긴 그러겠네요. 요즘 제 이름 가지고 하도 떠들어대니.”
“그게 얼마나 좋습니까? 사람들의 관심이 곧 기회이지 않습니까? 저도 겪어봐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겠네요. 머스크 씨도 한 인기 하시니.”
태범만큼이나 데론 머스크도 천재로서 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유명 SF영화의 천재 주인공이 데론 머스크를 모티브 할 정도로 그의 위상을 높았다. 그러니 충분히 태범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지 말고, 미국에 오신 김에 저랑 만나시는 건 어떠신가요?”
“네? 언제 말이죠?”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상관없고요. 스페이스Z 우주연구센터로 오시죠. 제가 구경시켜드리겠습니다.”
데론 머스크의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물론 연락을 했을 땐 이미 만남을 요청할 건 예상하긴 했지만, 스페이스Z라니? 그건 예상 밖이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셔서 그런 건지?”
“만나서 천천히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한번 뵙죠.”
“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 * *
데론 머스크의 초대로 스페이스Z(SPACE-Z)의 우주연구센터로 이동했다.
스페이스Z는 데론 머스크 설립한 미국의 민간 우주 기업이었고, 인공위성이나 국제우주정거장의 상용을 업무로 했다.
데론 머스크가 운영하고 있는 기업 중 미래 가치가 가장 뛰어난 기업이었다.
얼마 전 스페이스Z는 우주선을 재활용하는 신기술을 성공시켜 세상을 놀라게 했었다.
지금까지 우주선은 일회용으로 한번 발사하면 소모되는 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했는데, 그 문제를 줄이게 된 것이다.
이로써 민간 우주기업치고는 성공을 이뤄내고 있었다.
사실 우주산업은 국가적인 사업으로 진행한다 해도 힘든 과정이지만, 민간에서 성과를 이뤄냈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와. 스케일이 무지막지하네.”
우주연구센터에 도착한 태범은 입을 동그랗게 모으며 감탄을 내뱉었다.
역시 우주라는 큰 스케일의 업무를 맡다 보니, 우주연구센터 또한 엄청난 규모였다. 미국 서부의 드넓은 광야에 자리 잡은 연구센터는 거대한 우주선 발사대를 중심으로 연구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TV에서나 보던 장면들을 실제로 보니 감회가 새로울 정도, 잠들어있던 호기심이 또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태범 씨.”
센터 출입 게이트로 들어가자 데론 머스크가 반갑게 맞이해줬다.
“이런 멋진 곳에 절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오히려 제가 영광이죠. 이런 천재를 또다시 모실 수 있다니 말이죠.”
저번 만남과 다르게 태범을 부르는 호칭의 지위가 상승해 있었다.
물론 그때는 약간의 오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는 분위기가 달랐던 것도 있다.
오늘만큼은 데론 머스크의 공손하고 친절한 말투가 태범을 귀한 신줏단지를 모시듯 했다.
“이런 곳에 한번 와보고 싶었습니다. 제 어릴 적 꿈이 우주비행사였거든요.”
“우주비행사요? 역시 능력자답게 꿈도 광대하셨네요.”
“아니요. 그때는 그냥 멋있어 보여서 그랬던 거죠. 어릴 적 한 번쯤 그런 생각하잖아요? 만화 같은데 보면 로봇에 타서 우주로 날아가는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아하! 잘 알고 있습니다. 한창 어릴 땐 로봇을 좋아하긴 하죠.”
우주 이야기면 밤을 새울 수 있을 정도로 할 말이 많았다.
상상이 가미되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주였으니 말이다.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신나게 나불거리던 태범의 모습에 데론 머스크가 제안을 하나 했다.
“네? 무슨…….”
“따라오시면 아실 겁니다.”
데론 머스크는 태범을 이끌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올라간 뒤, 기다란 복도를 거닐며 몇 가지 보안 절차를 통과해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와…….”
태범의 입이 쩍 벌어졌다.
데론 머스크를 따라 도착한 곳은 스페이스Z의 우주선을 통제하는 컨트롤 타워였다.
대형모니터가 우주선에 대한 각종 상황을 전달하고 있었고, 우주에 대한 각종 정보를 취급하고 있었다.
“여기 보안구역 아닙니까? 저를 왜 여기에?”
감탄을 뒤로하고 데론 머스크가 왜 이곳까지 태범을 초대했는지 궁금해졌다.
그저 견학으로 보기에는 깊은 곳까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