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73화 (173/188)

# 173

태범은 스낵피쳐 기업공개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많은 수행원과 경호원들을 대동하며 떠나는 해외 출장길이었다.

홀로 움직이는 것은 물론,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동 루트와 경호를 완벽히 갖춰야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태범의 위상을 높아졌기 때문이다.

반나절을 걸쳐 뉴욕에 도착했다.

“헉! 저게 도대체 뭡니까?”

비행기에서 내린 태범은 출국장으로 나오는 도중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와!!”

거대한 함성이 공항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케이팝(K-POP)스타가 공항에 입국하는 줄 알았다. 유명 아이돌이 지나갈 때마다 따라다니는 극성팬들, 여기는 미국이니 혹시나 유명 팝스타라도 온 건가 싶었다.

하지만 곧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다양한 피켓을 흔들며 단 한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강태범! 강태범!”

피켓에는 태범의 얼굴이 오려 붙여져 있는가 하면, 태범의 캐릭터 그리고 각종 환영 구호들이 적혀있었다.

그들은 태범의 이름을 외쳤다. 순간 출국장 밖을 나서려던 태범의 발이 멈췄다. 경호원들과 수행원들도 마찬가지, 생각보다 많은 인파에 다들 놀란 눈치이다.

“사람이 왜 저리 많이 모인 거지?”

대한민국에서 이러면 모를까, 먼 땅 미국에서 이렇게 환영을 받다니 얼떨떨할 정도였다.

발길을 앞으로 내디딜수록 환호성이 더욱 크게 들려왔다. 난감하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이렇게 자리해 주다니 감사하기도 했다.

“다들 대표님이 일궈낸 성과에 열광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세계가 놀라고 있지 않습니까?”

수행원으로 동반한 재무이사 이효준이 환하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도 수많은 인파의 환영에 전율을 느끼고 감동을 받은 상태였다.

“이 정도 일지는 몰랐네.”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겁니다. 세포재생 기술이 상용화되는 날에는 위인이 되실 겁니다.”

“하하. 위인이라니…….”

지금까지 칭찬에 대한 내성이 생긴 줄 알았는데, 위인이라는 단어에 태범은 머쓱해졌다.

위인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어릴 적 위인전에서 본 세종대왕, 이순신, 안중근 이런 사람이 떠오르는데 그 옆에 나란히 본인의 이름이 걸릴 걸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진 것이다.

“대표님, 아무래도 다른 출입문을 이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항 측에서 경호상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예상 인원보다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공항 출입구를 향해 발길을 옮기던 중, 무전을 받은 경호원 임창순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이동하던 태범의 행렬이 모두 멈춰 섰다.

“좀 위험하긴 하겠네요.”

태범도 임창순의 말에 수긍하며 답했다.

어쩔 수 없이 극성스러운 팬(?)들을 뒤로하고 공항의 다른 출입구를 찾아 급하게 발을 돌렸다. 태범의 행렬이 갑자기 방향을 틀자, 팬들도 아쉬운지 아! 하며 탄성을 내뱉었다.

그렇게 태범은 한류스타 입국 느낌을 몸소 느끼며 공항 밖을 빠져나오게 됐다.

차는 곧장 태범이 묵을 호텔로 이동했다.

스낵피쳐에서 준비해 준 차량과 더불어, TB 금융 투자에서 준비해 간 차량까지 총 4대의 차량이 태범을 경호했다.

차량이 멈춰선 곳은 뉴욕 미드타운 웨스트에 위치한 고급 호텔이었다.

초호화 호텔로써 스낵피쳐 측에서는 태범의 이번 모든 일정에 극진히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며칠 동안 묵을 호텔 방으로 이동했다.

호텔 방이 있는 복도를 거니는데, 익숙한 실루엣의 여자가 저 멀리 보인다.

“태범 씨!”

목소리를 듣자마자 태범은 단박에 알아챘다.

캐서린이다.

캐서린은 내일 있을 기업공개행사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태범을 만나기 위해 미리 호텔에 와 있었다.

그녀는 태범을 보자마자 반갑게 품속에 안겼다.

화상통화를 통해서는 많이 봤지만, 실제로 품이 안는 것은 달랐다.

직접 피부를 맞대고 있을 때야말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온몸 가득 느껴졌다.

“캐서린, 오늘 예쁘네?”

포옹을 풀고 그녀가 한걸음 뒤로 물러섰을 때, 태범의 시선이 그녀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움직였다.

역시 특별한 날답게 의상도 특별했다.

평소 없었던 애교를 부리는 것도 더불어, 의상까지도 평소 입지 않던 드레스 형태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몸매가 제대로 드러나는 원피스.

마치 때가 되어 번데기의 허물을 벗고 날아오르는 나비를 보는 것만 같았다.

“중요한 날인데, 당연히 예쁘게 하고 와야지.”

“어? 중, 중요한 날?”

캐서린은 태범의 팔을 잡고 호텔 방으로 이끌었다. 역시 운동하는 여자라 힘도 강했다. 태범은 캐서린의 힘에 블랙홀에 빨려가듯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

‘설마 대낮부터?‘

캐서린이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한 마리의 양을 멀리서 노려보는 늑대의 눈빛이다.

* * *

수많은 취재진들과 스낵피쳐의 임직원들이 스낵피쳐 아메리카 본사에 모였다.

오늘은 스낵피쳐의 기업공개 행사가 있는 날로, 나스닥(NASDAQ) 시장에 스낵피쳐가 상장되어 거래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나스닥은 미국의 장외 주식시장으로 뉴욕거래소보다는 상장요건이 덜하고, 벤처기업들이 자금조달을 하기 위한 시장이었다.

그렇다고 나스닥이 조그마한 시장이라는 건 아니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세계적 IT기업들이 이곳에 포진되어 있고, 주식매매량은 뉴욕증권거래소를 능가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스낵피쳐에게는 충분히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후…… 이렇게 직접 보니 사람들 정말 많네.”

캐서린과 행사장을 거닐며 주변을 살피던 태범이 감탄했다.

학교에서 빌려준 코딱지만 한 사무실에서 3명의 직원이 오순도순 한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그때와는 다르게 모든 게 변해있었다.

“태범 씨, 이 사람들이 이제 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우리 가족이야.”

“그래. 암 그렇고말고. 가족 맞지. 나도 회사를 운영하면서 느끼지만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직원들의 손과 발이 있어야만 기업이 성장할 수 있더라도. 내가 아무리 천재라고 한들 직원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난 이 자리에 없었을걸?”

“태범 씨 말이 맞아. 잘 새겨들을 게. 앞으로 이 사람들이랑 열심히 스낵피쳐를 이끌어 나가야지!”

캐서린은 회사의 CEO답게 주인의식이 강했다.

흔히 본인 회사는 가족 같은 기업이라 하면서 가족의 ‘족’ 자의 ‘ㄱ’ 받침이 ‘ㅅ’ 받침으로 변질되는 회사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캐서린만큼은 태범이 장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정말 회사를 사랑하고 그만큼 직원들을 아껴주는 사람이었다. 투자를 위해 회사를 보는 눈만큼이나 사람 보는 눈 역시 발달된 태범이었다.

“제가 비록 CEO는 아니고 투자자이지만, 지금 이 상황! 매우 감격스럽네요.”

캐서린과 더불어 공동 창업자인 마크 하인버그와 앤드류가 태범과 캐서린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태범은 둘에게 팔을 활짝 벌리고는 이 순간의 감정을 표현했다.

“감사합니다. 태범 씨. 오늘날의 이 성과의 일부분은 태범 씨에게 있습니다. 충분히 오늘의 감동을 즐기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마크 하인버그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저 공부만 할 것 같이 생긴 두 사람은 이제 번듯한 CEO가 다 돼 있었다. 오늘은 의상에도 신경을 썼는지 정장을 곱게 차려입고는 이 자리를 빛내고 있었다.

감회가 새롭다.

부모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릴 적부터 봐오던 옆집 꼬마가 잘 자라서 성공한 모습을 보는 것처럼 괜히 마음이 뿌듯해졌다. 태범에게 스낵피쳐는 옆집 꼬마와 같은 입장이었다.

태범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자동으로 지어졌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전 처음에 두 분 얼굴만 봤는데도 삘을 느꼈거든요.”

“그런가요? 저희 얼굴에 뭐 특별함이라도?”

마크 하인버그가 본인의 턱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우리나라에는 사람의 운명을 첫인상과 관상으로 보기도 하거든요. 제가 전문적인 관상학자는 아니지만,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제 안에 있는 많은 인물이 당신을 좋게 봤나 봅니다.”

“네? 많은 인물이요?”

“아! 제가 말실수했네요. 제 안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인물들이 여기 스낵피쳐의 CEO들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겁니다.”

“아하! 감사합니다.”

말실수를 했다.

분위기에 취해 너무 흥분한 나머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비밀까지 꺼낼 뻔했다.

태범은 재빨리 말을 바꾸며 말실수를 대처했다.

“곧 기업공개 시간이 다가옵니다. 준비하셔야 합니다.”

나스닥 관계자가 시간을 알리자, 스낵피쳐의 CEO들을 일제히 한 곳을 향해 이동했다.

나스닥이라고 적혀있는 투명한 테이블 상판 앞에 선 세 명 CEO들이 섰다. 그리고 주위에는 태범을 포함한 임직원과 관계자들이 둘러쌓다.

수많은 카메라가 이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고, 지금 장면은 인터넷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중계가 되고 있었다.

“후…… 긴장된다.”

캐서린은 입술이 마르는지 혀로 마른 입술을 한번 훑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드디어 주식공개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CEO를 둘러싼 임직원들과 관계자들 모두 떨리는 심장을 애써 안정시키며, 전광판에 뜬 숫자를 외쳤다.

태범도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렀다.

3!

2!

1!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3명의 창업자는 손을 맞대며 주식거래 시작을 알리는 버튼을 눌렀다.

땡…… 땡…… 땡…….

펑 소리와 함께 종이 꽃가루가 하늘로 뿌려지며, 나스닥의 오프닝 벨이 울렸다.

기업이 나스닥 시장에 상장할 때 관습적으로 울리는 벨이었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며 성공적인 기업공개를 축하했다.

드디어 고대하던 스낵피쳐의 주식시장 상장이 이뤄진 것이다.

이로써 스낵피쳐의 100억 달러, 한국 돈 10조 정도의 주식이 시장으로 흘러갔다.

기존에 상장주간사에서 예견했던 60억 달러보다 자그마치 40억 달러나 증가한 금액이었다.

생각보다 사용자들의 반응이 좋았고, 딥멀티 기술과 연계를 하며 새로운 가치를 획득한 결과였다. 게다가 태범의 회사인 TB 금융 투자가 주주로 있는 기업이니 미래가치는 엄청났다.

투자자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주식이 바로 스낵피쳐였다.

이 순간 스낵피쳐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부자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0.1%만 가지고 있어도 수백억이다. 게다가 태범이 스낵피쳐 초창기 취약점을 수정하기 위해 며칠 동안 끄적거리며 받았던 주식만 0.2%였다.

그렇다. 태범의 선구안적인 능력이 보이는 순간이다.

태범은 아주 조그마한 구멍가게 기업에서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미래를 봤던 것이다.

캐서린이 CEO의 대표로 나스닥과 체결하는 사인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와!!”

다시 한번 환호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울렸다. 기업공개행사는 그렇게 성황리에 끝났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행사에 이어 지금까지 노력해 준 임직원들과 관계자들을 위한 축하 뒤풀이가 있었다.

오늘만큼은 모두가 춤과 노래 그리고 음식에 빠져 신나게 노는 자리였다.

축제는 스낵피쳐 아메리카 본사의 강당에서 이뤄졌다.

지금 오늘만큼 이곳은 일터가 아닌 그야말로 축제의 현장 그 자체였다.

다들 손에 든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들 하나같이 표정이 밝았다. 정말 직원들이 회사를 본인의 것처럼 생각하는구나를 느끼도록 해줬다.

“스낵피쳐 임직원 여러분, 오늘 같은 날이 오길 얼마나 기다렸습니까. 여러분들의 고생이 하나 모여 오늘날의 결실을 이뤄냈습니다. 이번 성공적인 기업공개는 모두 우리 임직원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들의 고생과 열의에 감사드립니다.”

캐서린이 마이크를 잡고 단상 위에 올라가 직원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이어서 장기자랑이라도 하듯 대표부터 시작해 임원들 그리고 직원들까지 자유자재로 단상 위에 올라가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sky and blue~ oh~”

쉽게 볼 수 없는 캐서린이 노래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직원들의 요청에 전혀 거리낌 없이 노래를 불렀다. 테이블 한쪽에 자리 잡은 태범은 흡족한 미소로 그녀를 바라봤다.

“coom again please~”

클라이맥스와 함께 캐서린의 노래가 끝나자, 박수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잘 부른 노래는 아니었지만, 이곳 모두를 위한 정성이 담겨 있었기에 직원들은 감동을 느꼈다.

노래를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온 캐서린은 태범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그러고는 마이크를 태범에게 바톤 터치하듯 건넸다.

“태범 씨, 우리를 위해 한 곡 불러주면 어때? 당신 노래는 나만 듣기에는 너무 아까운 노래야.”

“내가?”

“응. 한 번만. 부탁이야.”

“그래. 뭐 힘든 건 아니지.”

태범은 캐서린의 부탁에 마이크를 잡고 단상 위에 올라갔다. 그러자 밑에 있던 직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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