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기분이 이상해요. 몸이 가벼우면서도 부드럽고 마치 하늘 위를 걷는 것 같아요.”
“몇 년 동안 없던 다리가 갑자기 생겼으니 그럴 만도 하지.”
절단 환자였던 안효진은 친인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축하를 받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역경을 이겨내며 새롭게 태어난 인생 승리에 대해 축하를 하고, 세계인이 주목하는 기자회견에 등장함으로써 스타로 등극한 안효진을 보기 위한 자리였다.
안효진이 지금의 기분을 온갖 미사여구로 표현하자, 친척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효진이 이제 완전 스타라니까. 길에 나가면 사람들 다 알아봐.”
“에이, 아빠도 참. 그런 이야기를 왜 해.”
“맞잖아. 세상에 그 기자회견 안 본 사람이 어딨어. 나중에라도 다 봤지.”
안효진의 아버지는 친척들 앞에서 딸 자랑을 늘어놓았다.
효진은 직접 한 게 없기 때문에 이런 관심을 어색해했지만, 아버지는 그저 딸의 유명함에 즐거워했다.
“우리 강아지가 복덩어리야. 그러니까 하늘에서 그런 귀인을 내려 보내주신 거 아니겠나?”
할머니는 안효진의 새 다리를 어루만지며 감격하고 있었다.
안효진이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었을 때, 부모만큼이나 가슴이 아팠던 건 할머니, 할아버지였으니 말이다.
차라리 다 늙은 본인을 대신 데려가라고 말할 만큼 손자 사랑은 애틋했다. 그러니 이번 임상시험을 성공시킨 태범에 대한 감사함은 당사자인 안효진만큼이나 컸다.
“할머니도 허리 아프시다면서, 조금만 기다리면 우리 대표님이 치료해 주실 거야.”
“벌써 강태범 대표가 우리 대표님이 된 거니?”
옆에 있던 큰아버지가 껄껄거렸다.
“당연히 우리 대표님이죠. 이 다리도 몸만 나한테 달려 있는 거지, 사실은 대표님의 다리인걸요?”
“허허. 나중에는 강태범 대표랑 결혼하자는 소리까지 나오겠네.”
“에이. 아쉽지만 대표님은 이미 여자 친구 있어요.”
“오호. 말하는 거 보니까, 여자 친구 없었으면 효진이가 확 낚아챘을 것 같은데?”
큰아버지는 장난스레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안효진에게는 농담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지 효진의 얼굴이 붉어졌고, 고개를 숙이고는 쑥스러워했다.
* * *
“기자회견 잘 봤어. 내 주변에서도 태범 씨 많이 물어보더라고. 어떻게 내가 여자 친구인 건 다 알았는지 신기하다니까.”
태범과 전화통화 내내 캐서린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캐서린 역시 기자회견에서 밝혀진 사실에 꽤나 충격 좀 받은 모양이었다.
그녀 역시 임상시험 부작용으로 남자 친구가 고생하고 있다고만 알고 있었기에, 전혀 몰랐던 반전의 사건은 놀랄 만도 했다.
“그래? 영국에서도 내가 좀 먹혔나 봐?”
“영국뿐만 이겠어? 전 세계에 모든 사람이 태범 씨가 만든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겠지. 그렇잖아, 누구나 건강에 관심 있는 건 당연하니까. 태범 씨 노벨상 수상 미리 축하해!”
태범은 모르는 척한 것일 뿐, 세계적인 본인의 인기를 피부로 직접 실감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어느 나라든 신문만 펼치면 ‘강태범’ 이름 찾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인터넷은 세포재생기술, 도롱뇽 프로젝트로 도배수준이었고, 여기저기서 도롱뇽 인간의 탄생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심지어 영웅들이 치고받고 하는 유명 영화가 제작 중인데, 그곳에서 천재 박사 역할로 카메오 출연이 들어오기까지 했다.
이렇게 치솟는 인기에 최고 정점을 찍는 건 ‘노벨상 수상’이었다.
태범은 노벨상과 관련해 아무런 연락을 받지 않았지만, 언론과 여론은 벌써부터 대한민국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로 확정을 하고 있었다.
살짝 김칫국을 마시는 건 아닌가 싶으면서도, 태범 역시 내심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스낵피쳐 이야기한 거 잘 들었지?”
칭찬도 은근 중독성이 있었다. 한번 들은 칭찬 두 번, 세 번 더 듣고 싶었다. 태범은 기자회견 때 이야기했던 스낵피쳐 이야기를 꺼내 들며 다시 한번 칭찬을 노렸다.
“아! 맞다. 맞아! 태범 씨 고마워. 우리 회사까지 신경 써주고, 덕분에 곧 있을 기업공개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 같아.”
계획대로 캐서린은 다시 한번 태범에게 고마움과 칭찬을 표시했다. 전화를 들고 있는 태범의 입꼬리가 씩 하고 올라갔다.
“기업공개행사 날 분위기 기대되는데? 제2의 비시지북이 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앞으로 기대되는 SNS 기업이라 하면 스낵피쳐만 한 게 없었다.
영국의 젊은 층을 시작으로 인기를 떨치던 스낵피쳐는 태범의 능력이 더해져 세계적인 기업으로 완성이 된 상태였다.
딥멀티를 통해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기능을 개발하고 있었고, 기술적으로도 압도적인 SNS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또한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스낵피쳐를 다시 한번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며, 스낵피쳐는 파죽지세로 가치가 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태범이 이뤄낸 투자의 정점을 찍는 것이 바로 이 스낵피쳐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마 기업공개행사 때 태범 씨 보려고 많은 사람이 참가할 거야, 이미 각국 정치권에서는 태범 씨 만나려고 안달인걸?”
“오…… 많이 알고 있네?”
“요즘은 태범 씨가 내 주변에 항상 있는 기분이야. 굳이 생각을 안 해도 주변에서 태범 씨 이름을 불러대니까.”
“그거 고마운데? 내 인기가 날 대신해서 캐서린 외롭지 않게 해줬나 봐.”
“아니, 그래도 오빠 얼굴 보고 싶어. 화면 속 얼굴 말고 진짜 얼굴!”
캐서린을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그녀의 모습이었다. 평소 털털하고 상여자 같은 느낌의 캐서린이었지만, 지금은 부드럽고 얇은 목소리로 귀를 간질거리게 했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좋았다.
팔등의 솜털이 바짝 서며 살짝 소름 돋긴 했어도, 나름 색다른 그녀의 모습에 귀여워 깨물어 주고 싶었다.
“일주일만 참아. 그때 가면 내 얼굴 질리도록 보여줄 테니.”
일주일 후면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날이 찾아온다.
바로 스낵피쳐의 기업공개(IPO) 행사 때문이다.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온 것이다.
경영자는 아니지만 태범 역시 스낵피쳐에 막대한 애정이 있었고, 초창기부터 지켜왔기 때문에 기대감이 컸다.
지금은 스낵피쳐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투자자의 입장으로서 수익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도 했다.
“태범 씨, 전화 끊기 전에 노래 한 곡만 불러줘. 태범 씨 노래라도 들어야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알았어. 잘 들어봐.”
캐서린의 요청에 태범은 망설임 없이 바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주크박스가 따로 없는 태범으로서 신청만 하면 입에서 노래가 자동으로 흘러나올 정도였다.
“Just stop your crying~ Well let's dance.”
완벽한 영국식 영어 발음으로 팝송을 뽑아냈다.
고음과 저음을 손쉽게 마음껏 오가며, 음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사랑 노래가 전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캐서린도 집중해서 듣는지 옅은 숨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태범은 본인이 가진 사랑에 대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불렀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부분이 남았다.
‘어?!’
순간 뒤통수가 싸해지더니, 전화 속에서 의문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캐서린, 혹시 누구랑 같이 있어?”
태범은 그대로 노래를 멈추고, 캐서린에게 물었다. 캐서린은 도중에 멈춘 노래가 아쉬운지 아~ 하며 앙탈을 부리곤 답했다.
“아니, 나 혼자인데. 왜 그래?”
“어? 아무것도 아니야. 미안 내가 잘못 들었나 보다.”
“에이. 뭐야.”
“아쉽지만 여기서 끝! 마지막 부분은 내가 직접 가서 불러줄게. 일주일 뒤에 미국에서 보자.”
“아쉽다. 알았어. 태범 씨, 빨리 보고 싶어!”
캐서린과 전화를 마친 태범은 잠시 그대로 침대에 누워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낄낄거리며 잠시 침대 위를 뒹굴던 태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에 있는 커다란 책장 앞에 섰다. 손을 간신히 뻗어야 닿을 높이의 책 하나를 꺼냈다.
책을 꺼내자 책장 벽 부분에 조그마한 지문 인식 버튼 하나가 있었다. 그 부분에 집게손가락을 가져대는 순간 책장이 웅~ 하며 옆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마법사가 사는 집이라도 되는 듯, 책장이 옆으로 열리고는 숨겨진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은 건물지하통로 입구가 있는 공간이었다. 지하에는 태범이 특별히 설계한 방공호가 있다.
원래는 카펫으로 입구를 가렸지만, 그보다 더 강한 보안을 위해 추가적으로 집을 개조하며 입구가 있는 공간 전체를 가렸다.
태범은 은밀히 지하통로를 통해 집에 숨겨진 방공호로 향해 걸었다.
방공호 출입문에서 딥멀티 기반 지문, 동공, 코드 입력을 모두 마치고 나서야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방공호의 외벽은 강철로 둘러싸여 시각적으로는 좀 갑갑한 면은 있긴 하나, 이보다 안정감 느껴지는 공간은 없었다.
핵이 떨어져도 안전한 공간이 아닌가! 물론 그런 의미에서 안정감은 아니다. 어차피 핵이 이 나라에 떨어진다면 죽는 것만 못 할 테니 말이다.
태범이 느끼는 안정감은 인기척과 관련한 문제를 말했다.
최근 느껴지는 의문의 인기척이 점점 심해졌고, 이제는 스캐너를 사용할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인기척을 자주 느끼곤 했었다.
희한하게도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다. 정말 투명인간이 뒤를 밟기라도 하는 건지 이상한 기분이 수시로 들었다.
하지만 금속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만큼은 그런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머니의 뱃속에라도 들어 온 듯, 좁고 갑갑하지만 안정감이 느껴졌다.
태범은 스캐너 옆에 놓인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작업을 시작했다.
‘자! 이제 내 공격을 받아보시지.’
컴퓨터 앞에 앉은 태범은 SNS인 스낵피쳐에 접속해 파일을 업로드 시켰다.
예고한 대로 스낵피쳐를 통해 태범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하나씩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업로드 시킨 것은 임상시험 조작을 지시한 마크 필립스 음성이 담긴 파일이다.
그는 사람들이 태범을 사기꾼으로 몰아넣게 한 주범이다. 그 외 이권세력의 유지를 위해 어떠한 짓도 마다치 않는 놈이었다.
태범은 지금껏 많은 사람이 입었던 피해를 더해 한 번에 되돌려 주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두 배, 세 배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게 하고 싶지만, 그러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미 사람들의 피해에 대한 합만 해도 할 수 있는 복수의 최고선을 넘어섰기 때문에, 남은 대가를 다 지불하기 위해서는 지옥에서나 가야 가능할 정도였다.
태범은 혀를 쯧쯧거리며 그들의 행한 죄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동정심 따위는 전혀 들지 않았고, 태범은 계획대로 일을 진행했다.
* * *
TB 금융 투자 대표실.
“난리도 아니네요. 다들 대표님 만나보겠다고 얼마나 애를 쓰던지.”
“그러게요. 저도 저희 회사가 증권회사인지 의료제약회사인지 헷갈릴 정도네요. 인사팀한테 말해서 빨리 비서 팀 인원 충원하라고 하세요.”
태범은 비서인 강은미 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뭐니 해도 희대의 관심사인 도롱뇽 프로젝트였다.
성공적인 임상시험이 이뤄지고, 각기 각층에서 태범에 대한 지지가 쏟아졌다.
남녀노소 직업, 인종, 나이 상관없이 건강에 신경을 쓰는 건, 생존 욕구를 지닌 생명이라면 누구나 당연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보니 몸이 좀 불편하다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태범과의 접촉을 시도하려 했다.
이름만 들어도 입이 쩍! 하고 벌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 회장부터 영화배우, 스포츠 스타, 정치인까지. 앞으로 세포재생기술을 이용할 잠재적 고객들에게 줄지어 연락이 왔다.
몸이 백 개라도 있었으면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되다 보니 태범을 대신해 직원들 선에서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모레 있을 미국 출장 준비는 마무리됐죠?”
“네. 수행과 경호 준비는 모두 마쳤습니다. 혹시 몰라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해봤고요. 안전하게 갔다 오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