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양동건 박사의 등장은 두 번째 반전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연이은 전개에 기자들은 더 이상 놀랄 힘도 없을 정도였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그리고 기자 여러분들. 양동건 박사입니다. 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많이들 놀라셨을 겁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건 과거 잘못된 오류를 고치기 위함입니다.”
중요한 것이 또 얼마나 남은 걸까, 끝없이 나오는 폭탄선언에 기자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발표를 지켜봤다.
“10여 년 전, 저로 인해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들 아실 겁니다. 배아줄기세포 논문 조작사건. 사실 여기에는 여러분들이 몰랐던 비밀이 숨겨져 있었고, 전 오늘 이 자리에서 모든 걸 털어놓을 생각입니다.”
“오!”
결국 기자들 입에서 탄식이 나오고 말았다.
한때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에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니 엄청난 특종이었다. 연이은 폭로는 기자들에게 특종으로 차려진 뷔페랑 다름이 없었다.
“다들 저의 논문이 조작됐다고 아시고 있을 테죠. 하지만 그 사건은 모두 조작된 것입니다. 사실 실제 논문은 완성됐고, 배아줄기세포 배양도 성공적으로 이뤄졌었습니다.”
“뭐, 뭐라고?”
“저게 무슨 말이야. 논문이 조작된 게 아니라고?”
놀란 기자들은 웅성거렸다.
“하지만 저의 성공은 특정세력에 의해 조작되어 감춰지고, 저를 사기꾼으로 매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힘은 학계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에까지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저는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배아줄기세포 조작사건이 일어난 근본적 이유였죠.”
“강태범 대표님이 그렇고, 도대체 말씀하시는 그 세력이라는 게 어디입니까?”
“맞습니다. 저희는 그 세력을 알고 싶습니다.”
“일단 말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시는 건 마지막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태범은 손바닥을 휘저으며 질문을 자제시켰다. 기자회견장이 다시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양동건 박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전 여러분께 백 번 천 번 사죄해도 모자랄 만큼의 죄송한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굴복하지 않고 저희 의지를 이어갔다면, 오늘날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크게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양동건 박사를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사실 사과를 받아야 할 입장은 양동건 박사였다. 거짓된 정보에 홀려 양동건 박사를 공격한 건 대중들이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보통이 아닌, 사회에서 생매장을 당한 수준이었으니, 양동건 박사는 그동안 힘든 세월을 보냈었다.
화를 내도 모자랄 판에 양동건 박사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 먼저 사과를 건넸다. 그는 대중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때 저의 기술은 굴러들어온 돌의 입장이었고, 동시에 저를 가로막는 박힌 돌이 쳐내야 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오래된 건 새로운 것에 의해 사라지게 마련이죠. 하지만 제힘으로는 도저히 기존의 이권세력을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패배하고 만 것이죠.”
사과에 이어 어쩔 수 없었던 처지를 하소연하며 설명했다. 기자들은 근질거리는 입이 겨우 참아낸 채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말씀드릴 건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 자세한 이야기는 강태범 대표님이 해주실 겁니다.”
터질 듯 말 듯 이야기가 이어가던 중, 마이크는 다시 태범에게로 돌아왔다.
마이크를 쥔 태범은 기자들을 쓱 한번 쳐다봤다. 다들 궁금해 미칠 지경의 표정이었다. 놀라지 않고는 못 배길 이야기였으니 당연했다. 태범은 흡족해하며 말을 이어갔다.
“양동건 박사님의 말을 잘 이해하셨을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의 의혹을 해명하는 것과 더불어 또 다른 적에 대한 설명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궁금한 게 많이 있을 겁니다. 어쩌면 기자회견을 하기 전보다 머릿속은 궁금증으로 가득하겠죠.”
태범의 말에 기자들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동의한다는 의미였다.
“앞으로 제 개인 SNS를 통해 정보를 하나씩 흘려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말했던 이야기의 근거가 정보 속에 담겨 있을 겁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천천히 저를 믿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NS는 어떤 걸 말하시는 거죠?”
“스낵피쳐라고 다들 아실 겁니다. 그 SNS 계정을 통해 앞으로 전하고 싶은 말들을 업로드하도록 하겠습니다.”
태범은 이 자리를 이용해 스낵피쳐를 홍보했다. 일거양득, 세계가 주목하는 자리를 이용하려는 나름 계산적인 계획이었다.
“오늘 제가 드릴 말은 모두 끝났습니다. 기자회견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더더욱 잘 부탁드립니다.”
태범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마무리 인사를 건넸다.
“세력의 정체는 언제 밝혀주실 건가요?”
“그럼 앞으로 임상시험은 어떻게 진행되는 겁니까?”
“대표님! 질문 한 개만 더 부탁드립니다.”
순간 기자회견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세력에 대한 결정적인 말은 결국 없었고, 기자들은 호기심이 폭발하여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기자들은 태범에게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태범은 경호를 받으며 힘겹게 기자들을 뚫고 나서야 다시 대기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들 놀란 표정으로 태범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조세윤 사장이 다가왔다.
“대표님, 어떻게 그런 중요한 사실을 숨기실 수가 있으셨습니까?”
기자회견을 본 조세윤 사장은 지금껏 속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간은 잔뜩 찌푸리고 있지만, 입은 놀라움에 벌어져 있다.
“미안합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언질이라도 주시지. 정말 임상시험 환자들 나왔을 때는 놀라서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조세윤 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감탄을 내뱉었다.
도롱뇽 프로젝트를 직접 관리하고 있는 삼에스 생명 공학의 사장까지 속였으니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의 놀라움이었다.
“어쨌든 제가 말씀드린 대로 결과는 성공 아닙니까?”
태범은 약속을 지킨 것이다.
걱정하던 조세윤 사장에게 도롱뇽 프로젝트 성공을 장담했었고, 정말 눈앞에서 성공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정말 임상시험에 참가한 환자들이 맞는 거죠?”
“네. 사실은 제가 비밀리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아까 말했던 것 때문이고요.”
“참 당황스럽네요. 아! 물론 대표님을 나쁘게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리가 좀 복잡합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시면 됩니다.”
혼란스러워하는 조세윤 사장을 안심시켜주는 태범이었다.
조세윤 사장은 항상 느꼈지만, 태범의 손길이 몸에 닿았을 때 이상하게도 기분이 안정됐다.
태범의 성과에서 나오는 신뢰감 때문도 있었지만, 뭔지 모르겠지만 온몸에서 느껴지는 묘한 여유로움 때문이기도 했다.
태범은 마치 세상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 * *
강남 고속터미널.
“어머! 어머! 저거 진짜야?”
“말도 안 돼. 저 사람이 원래 사지 절단 환자였다고?”
“거짓말 아니야? 부작용 때문에 수술까지 받았다면서!”
터미널 안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태범의 기자회견을 보던 시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면이 TV 화면 속에서 나타나니,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장면을 의심할 정도였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반전까지, 기자회견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주고 있었다. 버스 시간이 돼도 TV 앞을 떠나지 않던 사람들도 꽤 있었다. 조금이라도 놓치기에는 아쉬운 장면들이 있었고, 역사의 한 면을 놓치기 싫었으니 말이다.
“도대체 그 세력이라는 게 누구야?”
“이권세력이라잖아. 기존의 사람들 등쳐먹던 기업들이겠지.”
도롱뇽 프로젝트와 더불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태범이 지칭한 세력의 정체였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난 희귀한 소재에 관심을 갖는 법이다. 암흑의 세력, 추리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의문의 세력이 세상 밖으로 거론되자 사람들의 호기심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특히나 인터넷 세상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이권세력, 도대체 어떤 곳을 의미하는 것일까?]
[충격적인 폭로에 네티즌 패닉 상태에 빠져.]
[세계의 환자들 이번 발표에 환호하다.]
[강태범 대표 노벨상 수상 가능한가?]
어제까지만 해도 태범에게 등을 돌릴 것 같던 여론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냄비근성의 대표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중들은 정보에 쉽게 휩쓸렸고, 이번에는 태범이 꺼내든 카드에 손을 들었다.
* * *
“뭐야! 도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거야? 저 사람이 왜 저기에 나오는 건데!”
“어? 뭐, 뭐지.”
“뭐긴 뭐야! 보면 몰라? 환자가 지금 두 다리 멀쩡하게 완치돼서 걸어 다니고 있잖아.”
“분명히 작업했고, 저희 쪽에서도 확인이 끝난 것이었습니다. 강태범 측에서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부작용 환자가 생겼다고.”
“그걸 말이라고 해? 결과를 보란 말이야! 결과를!”
마틴의 회장인 데이비드 버니는 태범의 기자회견을 보고는 분노를 쏟아냈다.
회장실은 그야말로 분에 찬 데이비드 버니의 폭주에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도롱뇽 프로젝트를 저지하기 위해 방해 작전에 개입했던 직원들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행동대장 역할을 했던 마크 필립스가 애써 변명을 해보지만, 이미 일어난 결과에 데이비드 버니의 분을 삭이기는 어려워 보였다.
“아무래도 저희가 당한 것 같습니다.”
변명을 이어가던 마크 필립스는 결국 한숨을 쉬며 포기하는 듯한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들은 데이비드 버디 회장은 이마를 손으로 감싼 채 고뇌에 잠겼다.
“우리가 그놈의 손에 놀아났다는 이야기가 되겠네?”
“죄송합니다. 어떠한 말도 변명이 될 것 같습니다.”
“결국 강태범 그놈이 우리 계획을 알았다는 거 아니야? 그리고 오히려 그걸 역으로 이용해서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고!”
이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
본인들이 이기고 있었다고 생각은 그저 착각이었을 뿐, 오히려 당하는 건 반대였다는 걸.
“안 되겠다. 이 바닥은 어차피 죽기 아니면 살기야! 이왕 이렇게 된 것 끝까지 가야겠어.”
데이비드 버니는 도박가 기질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그는 모든 걸 배팅하고 승부를 보려 했다.
시장의 세계는 냉정했고, 더욱이 업계 1위 자리를 지키는 건 어려움이 따랐다. 그만큼 조금이라도 뒤로 물러서는 순간 지는 거다.
마틴은 지금까지 강한 힘과 자본으로 승부를 걸어 지금의 업계 1위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마지막 배팅이다.”
나지막하게 뱉은 데이비드 버니의 말에 줄지어 서 있는 직원들은 잔뜩 상기되어 겁을 먹고 있었다. 그가 의미하는 마지막 배팅은 곧 죽기 아니면 살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 * *
[경영기술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20%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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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이 21% 진행되었습니다.]
태범은 마크 필립스에 이어 그의 상위 인물인 데이비드 버니 회장의 지식을 스캔하고 있었다.
적에 대한 모든 걸 꿰뚫어 보겠다는 태범의 의지였다.
곧이어 지식과 함께 마크 필립스의 기억정보가 태범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엄청나다. 정말.”
기억을 받아들인 태범은 감탄과 함께 탄식이 내뱉어졌다.
기억의 바탕에는 마크 필립스의 잔인성과 경쟁심이 담겨 있었다. 그에게 배울 만한 정보도 있었지만 차마 실화인가 하는 끔찍한 것들도 존재했다.
과연 마크 필립스가 괜히 세계 1위의 제약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보통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