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병원 휴게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TV 앞에 모여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 팔에 링거를 꽂고 있는 사람, 목발을 짚고 있는 사람 등 환자복을 입고 있는 환자들부터 손님들까지 모두가 TV를 주시하고 있다.
다들 긴장과 함께 들떠있는 모습이 언뜻 보면 2002 월드컵 경기라도 보는 것과 같은 분위기이다.
“내가 애 셋을 낳아도 아무렇지 않게 건강히 잘 살던 사람이었어. 근데 이게 뭐람? 하늘도 무심하시지 교통사고로 이 꼴이 되어버렸지. 뭐야.”
“참. 그렇게 보면 인생이라는 게 기구하지.”
“에휴. 그렇긴 해. 영민이 엄마도 참 안타까워. 어쩌다가 그 착한 아이가 그런 병에 걸렸을까.”
“뭐, 이미 일어난 일인데 어쩌겠어. 이제 앞일만 생각해야지.”
방송 시작 전, 두 아주머니는 본인들의 인생과 운명에 대해 잡담을 나눴다.
두 아주머니는 병이 선과 악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운명처럼 찾아올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거기! 아주머니들 조용히 TV 좀 봅시다. 거 시끄러워서 소리가 안 들려요.”
TV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아저씨 한 명이 소음에 가까운 잡담에 못 이겨 한 소리를 내뱉었다.
아저씨는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TV에 집중하고 있던 터였다.
“우리가 얼마나 시끄럽게 했다고.”
“그러게 아직 시작도 안 했구만.”
아저씨의 호통에 아주머니들은 구시렁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한다, 한다!”
그렇게 잠깐의 소란이 있었을 때였다. 사람들이 기다리던 방송이 TV 화면에 나타나고,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TV에 나온 남자의 등장에 다들 숨죽이며 TV를 바라봤다.
“안녕하십니까, TB 금융 투자의 강태범 대표입니다.”
TV에 나타난 건 강태범이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건 도롱뇽 프로젝트 관련 강태범의 인터뷰였다.
환자들은 그 누구보다 세포재생에 관심이 많았고, 도롱뇽 프로젝트는 큰 희망이었다. 아무리 부정적인 이야기가 돌아도, 절대 놓을 수 없는 희망의 끈.
그만큼 환자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 * *
“안녕하십니까. TB 금융 투자의 강태범 대표입니다.”
메인 카메라와 더불어 수많은 기자의 시선이 태범에게로 집중됐다.
엄청난 시선에 중압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태범은 여유롭게 말을 이어나갔다.
“많은 분이 이번 임상시험에서 발생한 부작용 건 때문에 걱정이 많으셨을 겁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을 테니 말이죠.”
어쩌면 인류 생명에 큰 혁명을 가져올 기술. 이번 임상시험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쉬움을 가져왔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관심이 큰 만큼 사건에 대한 각종 이야기가 세상을 떠돌았습니다. 물론 그중에 진실도 있지만, 다수의 거짓이 섞여 또 다른 의혹을 만들어내고 저를 깎아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의혹들을 해명하고, 도롱뇽 프로젝트에 대한 정확한 진실을 이야기해드리고자 합니다.”
이 기자회견의 명분은 의혹 해명이었다.
최근 많은 거짓 정보들이 태범과 도롱뇽 프로젝트를 공격해 왔었고,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와 명예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이권세력의 영향이 있던 걸로 보였다.
오늘 태범은 이 모든 의혹과 결단을 내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지금까지 칼날이 태범에게 향해있었다면, 이제는 그 칼날을 거꾸로 돌릴 차례였다.
“일단은 가장 많은 의혹인 도롱뇽 프로젝트의 거짓 설부터 해명하겠습니다.”
임상시험 부작용으로 인해 몇 사람들은 태범을 사기꾼으로 몰아가며, 프로젝트 자체를 부인하기도 했다. 이러한 의심들이 물타기가 되어 많은 사람의 생각을 바꿔놓았던 건 사실이다.
태범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서류를 세워 들며 말했다.
“실제로 검증된 이론과 동물은 이용한 전임상시험의 결과물입니다. 실제로 보건당국의 입증도 받았고요. 이렇게 객관적인 자료가 있음에도 의심을 하시더군요.”
태범의 말에 기자들은 고객을 끄덕였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이 종아 쪼가리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진실을 보여드리자,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 진실을 보여드릴 겁니다.”
태범의 강단 있는 어조에 기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태범에게 확신이 느껴지고 있었다. 뭔가 대단한 말을 꺼낼 것 같은 분위기였고, 기자들은 긴장과 더불어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태범을 지켜봤다.
“자. 그럼 소개하겠습니다. 임상시험 참여자 들어오세요!”
태범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기자회견장 뒤편 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기자들은 태범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뭐, 뭐라고?”
“뭐야. 뭐야.”
“임상시험 참여자라고?”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기자들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고, 설마 임상시험 참여자들이 아 자리에 나올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조용했던 기자회견장이 금세 시장통이 돼버린 상황이다.
모두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문이 열리고,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 총 세 명이 문을 통해 걸어 들어왔다. 그들은 기자들의 옆을 지나 태범이 서 있는 단상 위 테이블 옆으로 올라왔다.
“소개하겠습니다. 이 세분은 이번 도롱뇽 프로젝트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그분들이죠.”
기자들의 표정이 가관이다.
귀신을 보더라도 이 정도 표정은 안 지었을 것이다. 부작용을 겪어 다 죽어가던 것처럼 이야기했던 사람이 이렇게 두 발로 기자회견장을 걸어 들어왔으니 말이다.
“정말. 이 사람들이 임상시험 참여 환자들이 맞습니까? 분명 부작용에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라고 들었는데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해 앞자리 앉아 있던 기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을 건넸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 사람들 맞습니다. 안효진 씨 직접 말씀해 주시죠.”
태범은 쥐고 있던 마이크를 안효진 환자에게 건넸다. 마이크를 받아든 안효진은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하지 절단 환자로 임상시험에 참여한 안효진이라고 합니다.”
“안효진?”
다시 한번 기자회견장은 크게 웅성거렸다.
절단 환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다리, 긴 치마에 가려 의족을 찬 건지는 잘 보이지 않았으나, 걷는 폼이며, 서 있는 자세가 모두 정상인과 같았다.
다들 설마 하는 눈치이지만, 차마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세포재생이 어떤 기술인지는 기자들 역시 잘 알고 있기는 하나, 눈앞에서 실제로 본다는 건 아직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으로 아무리 떠들어도 실제로 보는 건 달랐다. 기자들은 긴장과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안효진의 다리를 주시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환자가 맞습니까? 극한의 환상통으로 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그 사람 말이에요.”
기자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건넸다.
모두가 가지고 있던 공통된 궁금증이다.
‘그럴 일 없어’라고 생각하며 내심 기대를 하는 것이 이곳 모두의 생각이었다.
“네. 맞아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던 환상통 그 환자가 맞습니다.”
안효진은 말을 한 뒤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 그러자 오! 하는 감탄사가 기자회견장을 가득 메웠다.
분명 사람의 다리다.
나무, 금속으로 된 의족이 아니라 진짜 사람의 피부를 가진 사람의 다리 말이다.
속임수 따위는 아니었다. 이리저리 봐도 진짜 사람이 분명했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안효진의 다리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자. 이분은 저희 세포재생기술을 통해 재생된 다리를 얻으신 환자분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놀라움에 잠시 정적이 돌 자, 태범이 입을 열며 설명에 나섰다.
안효진의 두 다리는 도롱뇽 프로젝트의 성공을 알리는 큰 메시지였다. 정말 도롱뇽의 잘린 다리가 재생이라도 된 듯 사람인 안효진의 다리가 나타났으니 말이다.
태범과 연구원들은 도룡뇽의 ERK 유전자를 완벽히 해석해 냈고, 이를 화학적 변형을 통해 인간에 맞춤 적용이 가능해졌다.
이 혁신적인 기술을 직접 눈으로 보여주자니 태범도 흥분되는 상황이었다.
“정말. 저 사람이 그 환자가 맞습니까? 저희가 알기로는 부작용으로 큰 수술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기자는 누구나 궁금했을 질문을 건넸다.
임상시험 부작용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장본인인데, 그런 그 사람이 두 다리로 서서 환하게 웃고 있으니 어리둥절하기는 당연했다.
“제 옆에 있는 이 세 분 모두, 여러분들이 알고 있던 그 부작용을 겪던 환자가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모든 건강을 회복한 채 여러분들 앞에 섰습니다. 여러분들의 궁금증은 이거겠죠.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 사람들이 모두 건강을 되찾았을까? 그 물음에 대해 사실대로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중요한 이야기였다.
기자회견의 명분이 아닌, 진짜 속내가 나타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태범이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기자들은 숨을 죽이며 지켜봤다.
“사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던 부작용과 관련한 일들은 진짜가 아니었습니다. 연막을 위한 하나의 작전에 불과했죠. 거짓말을 했던 점에서는 사과를 드립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저를 방해하는 이권세력을 이겨내기 위해서 말이죠.”
폭탄 발언이었다.
지금까지의 임상시험에서 발생한 부작용이 거짓이었다는 사실. 그저 부작용에 대한 변명쯤이나 예상하고 왔던 기자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태범은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저를 추락시키기 위해 몰아가는 세력이 존재합니다. 지금 딱 지칭해 말해드릴 수는 없지만, 아마 제 방송을 보고 있다면 뜨끔할 조직이 있을 겁니다. 이들은 저희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역으로 상황이 불리해질 사람들이죠.”
“이권세력이라고?”
“저게 무슨 말이야? 누가 방해를 해.”
“도대체 그게 누굽니까?”
기자들의 반응이 폭발 직전이었다.
태범의 폭탄선언은 기자들로 하여금 질문을 쏟아내게 했다. 기자회견이라기보다는 청문회와 가까운 분위기가 되어, 기자들은 태범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역으로 피해를 볼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기자 여러분들도 조금만 생각하면 머릿속으로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기자 모두의 질문을 답변하기에는 어려웠고, 그렇다고 반대세력을 지칭하기에는 아직 성급함이 있었다. 대신 기자들의 상상을 자극하며 그들 스스로 답변을 내리도록 했다.
기자는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보도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어떤 직업보다 상상력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사실도 기자들은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니 말이다.
“피해를 볼 사람? 그게 누구지.”
“조직? 이권세력?”
“기존의 제약이나 의료기업을 말하는 거 아닙니까?”
“맞네. 맞아! 피해를 볼 사람들이라면 그쪽밖에 없지.”
“정치적인 압박이라도 받으신 겁니까?”
태범의 생각대로 기자들은 상상을 시작했다. 기자들은 추측하기 시작했고, 자기 입맛에 밖에 결과를 내놓고 있었다.
굳이 대상을 지목해 줄 필요는 없었다. 단지 방향만 알려준다면 기자들은 알아서 앞만 보고 달려들어 물어뜯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범은 기자들의 특성을 몸소 경험해 본 장본인이었다.
어쨌든 기자회견장은 태범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태범은 속으로 만족을 느끼며 다음 비장의 카드를 준비했다.
“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잘 아실 분일 겁니다.”
환자에 이어 또 다른 인물의 등장에 기자회견장은 다시 한번 들썩였다.
태범의 말과 함께 곧이어 문이 열리고, 중년의 남자 한 명이 입장했다.
“어! 저 사람 양동건 박사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