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69화 (169/188)

# 169

“생각이요?”

“저 또한 지금 이 사건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말이죠?”

조세윤 사장은 낙담하고 있던 감정이 분노로 번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태범이 기대가 담긴 언질을 주자 굳었던 표정이 조금이나마 풀어졌다.

“아직은 모두 말씀드리긴 어렵고, 단지 이것만 알아두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생각을 하고 있고 앞으로의 계획이 있습니다. 제가 손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그건 절대 아닙니다. 제 머릿속은 언제든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 상황을 보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전 잘 모르겠습니다. 대표님이 앞으로 뭘 하실지 짐작도 안 가고…… 조금만 말씀해 주시면 안 됩니까?”

“그래요. 그럼 단 한 가지 확신만 드리죠. 도롱뇽 프로젝트, 무조건 성공합니다.”

걱정에 빠져 있는 조세윤 사장에게 태범은 확신을 내려줬다.

다른 사람이면 허풍으로 치부될지 몰라도 태범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신빙성 있어 보였다. 조세윤 사장은 더 이상 태범에게 질문을 건네지 않았다. 단지 태범을 한 번 더 믿으며 따를 생각이었다.

* * *

‘뭐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갔다.

스캔을 하기 전 12시를 기다리며 손목시계를 바라보는데 태범은 깜짝 놀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11시였는데, 잠깐 생각을 했다고 벌써 시간이 12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다.

해야 할 일과 생각할 것들이 많아지니 24시간이라는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햇살을 바라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두운 밤하늘이 뒤덮이는 것 같았다.

시간도 스캔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태범은 아쉬웠다.

능력이 이렇게 넘쳐나는데, 이 짧은 인생은 너무도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게을러터져 놀기 좋아했던 과거의 태범 같은 경우는 시간이 거북이걸음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다 보니, 알고 싶고, 보고 싶은 세상이 너무도 많아진 것이다. 그 때문에 이를 만족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이라는 소중한 자원이 필요했다.

[협상기술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93%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94% 진행되었습니다.]

‘이럴 수가 양동건 박사의 줄기세포가 진짜였다니.’

스캔을 마치고 들어온 지식 정보로 태범은 놀라워했다. 너무도 놀라운 사실이었고, 고개가 저절로 절레절레 저어지며, 이권세력의 악질적인 행동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모두를 속였군!’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에는 큰 사건이 있었었다.

인간 체세포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양동건 박사의 발표였다.

배아줄기세포는 수정이 일어나 정자와 난자가 합쳐진 접합체가 세포 분열을 하기 전인 배아 상태에서 얻어내는 줄기세포를 말했다.

배아줄기세포는 전능세포 혹은 만능세포로 불리기도 했다.

어떠한 조직으로도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혈액, 뼈, 피부, 장기 등 인체의 모든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야말로 생명의 씨앗이었다.

이걸 체세포를 통해 배양에 성공했다는 건 그야말로 혁명과도 가까운 엄청난 일이었다.

인간의 고장 난 부분을 고칠 수 있는 부품을 마음껏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렇게 된다면 인간의 수명은 무궁무진하게 늘어 날 테고, 의료와 제약계의 혁신을 가져올 만큼 커다란 일이었다.

당시 양동건 박사의 발표는 세계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였으니, 국내는 어떠했을까. 온 국민이 기대에 가득 차 있던 시기였다.

마치 지금 태범이 하고 있는 도롱뇽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렇게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던 때에, 결국 양동건 박사의 발표는 거짓으로 밝혀졌다. 논문은 허위로 작성된 것이었고, 연구비와 후원금을 지원받기 위해 거짓을 꾸몄다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 사람들의 배신감은 어땠을까?

기대감으로 가득 찬 마음을 한순간에 터뜨리는 격이었다.

내일 아이들과 놀이동산에 놀러 가기로 해놓고, 당일 날 바쁘다는 핑계로 약속을 미뤘을 때 아이들의 가슴 아픈 심정이랄까

곧 나을 수 있을 거라 미래를 기대하던 환자들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에서 이런 대단한 기술이 나왔다는 것만으로 앞으로 의료산업에 큰 발전이 될 거라고 기대했던 국민들까지 모두 분노와 허탈감을 느꼈었다.

심지어 조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지지세력이 존재했다. 그만큼 양동건 박사가 발표한 기술은 버릴 수 없는 기술이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큰 사건이 되었던 양동건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하지만 지금 태범의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는 기존의 사실을 뒤바꿔놓았다.

‘이렇게 역사가 바뀌었다니.’

그 당시 정말 배아줄기세포 배양이 실제로 이뤄졌다면, 지금 의료와 제약 산업은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상상하기 어려운 기술까지 개발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제약회사 마틴을 필두로 이권세력들이 뒤엎어버렸다.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다.

이 중요한 사건에는 제약 이권세력들이 개입하고 있던 것이다.

아직 태범에게 들어온 건 단편적인 정보이지만, 마크 필립스가 양동건 박사와 만남을 가졌고, 보이지 않는 협상이 이뤄졌던 걸로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짜인 각본 아래 새로운 작전을 시작했다.

‘양동건 박사 죽이기.’

물론 진짜 양동건 박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뤄낸 성과를 죽인다는 의미였다.

이권세력의 압박에 양동건 박사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걸로 보인다.

엄청난 반전의 사건이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속인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태범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팔에는 닭살이 오돌토돌 올라왔고, 전율이 발부터 머리끝까지 찌릿하고 전해졌다.

‘양동건 박사를 만나봐야겠어.’

진실을 알았으니, 자세한 내막을 파헤쳐야만 했다.

같은 적이라는 하나의 줄기에서 시작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과거 배아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이 태범의 현 상황과 매우 유사했으니 말이다.

* * *

“저를 찾아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어릴 적 TV로 봤을 때 참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뭐 물론 그때야 저는 놀이터에서 놀기 바쁜 어린애였지만 말이죠. 그래도 아직 제 머릿속에 그때 그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네요.”

“그런가요? 내가 뉴스에 많이 나오긴 했죠. 허허허.”

양동건 박사를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교수에서 기업인으로 변모해 현재는 생물학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줄기세포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생물학적인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물론 과거 사건으로 배아줄기세포를 대한민국에서 연구하는 건 어려워졌다. 인간 생명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를 근거로 배아를 이용한 연구를 금지됐기 때문이다.

대신 역분화줄기세포라고 배아세포가 아닌 성체세포를 역으로 돌려 사용하는 연구로 대신하고 있었다.

태범은 도롱뇽 프로젝트를 연구하면서 줄기세포와 관련된 지식도 많이 습득한 상태라, 현 양동건 박사의 연구물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지금 태범 대표님의 성과, 아주 놀랍습니다. 어떻게 ERK유전자를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던 건지, 전 상상도 못 한 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양동건 박사는 태범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그 역시 태범의 프로젝트를 모를 일은 없었다. 게다가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태범의 연구물에 관심이 아주 컸다.

기술의 핵심은 다르지만, 세포를 분화시켜 치료목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같았으니 말이다.

잠시 근황과 함께 기술과 관련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양동건 박사의 질문을 시작으로 대화를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근데 나 같이 한물간 사람한테, 무슨 볼일이 있어서 오신 건지?”

“박사님 줄기세포에 대해 사실대로 말씀해 주시죠. 전 알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실을 숨기고 있지 않으십니까? 숨겨진 진실이요.”

밝게 미소를 띠고 있던 양동건 박사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진실은 다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 제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요. 그걸 지금 와서 또 이야기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어디 가고, 양동건 박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태범을 노려봤다.

태범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박사님이 왜 사기꾼이라는 건 진실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제약회사 마틴이라고 들어보셨죠?”

태범에 ‘마틴’이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양동건 박사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놀란 눈치다. 입술을 만지작거리더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 그거야. 잘 알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약회사 아닙니까?”

“단지 그것뿐입니까?”

“아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네요.”

양동건 박사는 끝까지 진실을 부인하려 했다. 하지만 이어서 태범의 입에서 나온 말로 인해 모든 진실은 수면 밖으로 드러났다.

* * *

삼에스 생명 공학의 본사 기자회견장.

오늘은 태범이 주최한 기자회견이 있는 날이었다.

기자회견장이 열리는 삼에스 생명 공학의 본사의 건물 입구부터 수많은 기자가 진을 치고 있었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언론사들끼리 자리싸움을 할 정도였고, 어쩔 수 없이 제비뽑기를 통해 자리를 지정했다.

이곳에는 국내 언론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거의 절반은 외국에서 온 언론사들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을 대변했다.

도롱뇽 프로젝트의 세포재생기술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적, 인종 관계없이 누구나 관심 있게 바라보던 사안이었다.

누구나 건강하고 오래 살고 싶은 염원은 같았으니 말이다.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태범은 조심스럽게 기자회견장인 삼에스 생명 공학의 본사로 이동했다.

기자들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극성팬 수준으로 취재 열기가 대단했다.

초미의 관심사인 태범을 취재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기자들의 행동에 어쩔 수 없이 입구를 바꿔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북적거리는 정문과 다르게 오른쪽 담 벽에 있는 조그마한 통로는 한산했다. 태범은 기자들의 눈을 피해 이곳으로 입장할 계획이었다.

차량도 평소 타고 다니던 고급세단이 아닌, 평범한 국산 차를 타고 최소한의 인원만 움직이며, 기자들의 눈을 속일 생각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지금 이 주변에 기자들이 쫙 깔렸습니다. 통제를 하곤 있지만, 거의 대표님 찍기에 안달이 난 사람들이라 뭔 짓을 할지도 모르거든요.”

“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경호원에게 동선 설명을 간단하게 듣고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자회견장 대기실로 바로 발걸음을 이동했다.

“어! 대표님. 오셨습니까?”

“네. 미리 와 계셨군요. 밖에 장난이 아니던데요?”

“난리도 아닙니다. 별의별 일을 다 겪어봤지만 이렇게 많은 기자가 모인 건 처음 보네요. 혹시 오시는 데 문제는 없었습니까?”

“다행히 별일은 없었네요. 조용히 옆문으로 들어왔거든요.”

조세윤 사장은 미리 기자회견장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태범의 도착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반겨줬다.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의 눈빛으로 태범을 바라보며, 질문 하나를 건넸다.

“대표님, 오늘 어떤 이야기를 하실지 저한테 살짝만 예고해 주시면 안 될까요? 궁금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지금 말하면 재미없습니다. 그러면 스포일러를 듣고 영화를 보는 것과 같죠. 어차피 곧 알게 될 텐데, 그냥 기대하시고 기자회견을 봐주세요. 깜짝 놀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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