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프랑스 시골 마을 리옹 라포헤에 있는 조그마한 성당.
그저 이 성당에 방문하는 사람이라곤 마을 주민 몇 명뿐이었다. 건설된 지 100년이 넘은 오래된 성당이다. 별로 눈길이 가지 않는 회색의 벽돌로 이뤄져 그저 시골에 하나쯤 있을 법한 성당이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름하고 공기가 탁할 것 같은 성당 지하실에 엄청난 공간이 있을지 말이다.
기둥과 바닥은 고급 대리석으로 이뤄져 있고 천장은 크리스털 샹드리에가 반짝거리고 있다.
종교의 색채가 전혀 담겨있지 않고, 부를 과시라도 하듯 휘황찬란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렇게 5명이 모이는 건 참 오랜만이군요. 다들 반갑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다들 너무 바빠서 말이죠.”
“좋게 모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모였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곳에는 5명의 남자가 원탁 테이블에 둘러앉아 와인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명을 제외한 4명 모두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고, 모두가 몸에 착 맞는 깔끔한 슈트를 차려입고 있었다. 마치 세련된 노신사들의 모임을 보는듯했다.
세계 1, 2, 3위의 제약기업 대표가 이 자리에 있었고, 그 외에 의료 관련 국제기구의 수장 그리고 의료기업의 대표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제약, 의료 관련 기업과 단체의 수장들로서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전 세계 의약과 의료산업을 책임져온 대표들이었다.
마치 마피아 조직을 구성하듯 그들은 은밀하게 서로 힘을 뭉치며 카르텔을 이루고 있었다.
의약 시장의 독점만큼 강한 힘은 없다.
아무리 돈이든 명예든 무엇이 됐든 간에 목숨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법이다.
살기 위해서는 전 재산을 내놓을 사람은 수두룩하다. 자신의 목숨 앞에서는 그 무엇도 무의미해지기에 가장 중요한 자산은 바로 건강이었다.
그러다 보니 목숨을 이용한 공포 마케팅은 엄청난 부를 쓸어 담았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목숨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것이랑 마찬가지.
‘살고 싶으면 가진 것 다 내놔.’
이들의 행동은 칼을 목에 들이대고, 금품을 갈취하는 강도랑 다름이 없었다.
단지 명분과 규모만 다를 뿐이다. 결국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한다는 점에서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역시 일 처리 하나는 최고이십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제가 저런 놈들은 어떻게 죽이는지 잘 알고 있지요.”
칭찬의 주인공은 데이비드 버니였다.
세계 1위 제약회사인 마틴의 회장직인 그는 계획을 설계, 주도하는 인물로 카르텔의 수장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데이비드 버니는 아버지의 힘을 등에 업고 젊은 나이 때부터 경영에 참여했다. 마틴을 세계 1위 제약회사로 성장시킨 주된 인물이었고, 그의 경영능력은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특히나 추진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막강했다. 그런 그의 행동력으로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까지 그들의 뿌리가 깊게 박힐 수 있었다.
대중들은 데이비드 버니라는 이름이 익숙지 않겠지만, 보이지 않는 은밀한 지하 세계에서만큼은 그의 이름은 할리우드 스타만큼이나 유명했다.
그가 여태껏 죽였던 기술만 해도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실제로 제약, 의료산업을 뒤엎을 획기적인 기술들이 여러 번 나올 뻔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건선, 콜린성 알레르기 같은 피부 불치병부터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성인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들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나와 빛을 보기도 전에, 거대한 압력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압력의 중심에는 데이비드 버니가 있었고, 그는 야생의 호랑이처럼 약해 보이는 모두를 잡아먹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데이비드 버니가 기세등등할 수 있던 것이다.
“일은 언제쯤 마무리될까요?”
세계의료협회의 총장이 손깍지를 낀 채 데이비드 버니를 보며 말했다.
“그놈들이 얼마나 버티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죠. 앞으로 좀 더 양념을 치다가, 녹다운이 될 때쯤 급소를 가격해 주면 됩니다.”
“일은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것 맞죠?”
“작업자들은 잘 관리되고 있으니,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확실히 입단속 시켰습니다. 설령 입이라도 뻥끗했다가 저세상 가는 건 본인이 잘 알 겁니다.”
“이번 계획은 그 어느 때보다 치밀하고 은밀히 이뤄져야 합니다. 모두가 지켜보고 기대하는 판이라 잘못 말려들었다가는 우리 모두 끝장이에요.”
대화는 비유로 이뤄졌다.
직접적으로 말하기에는 너무도 노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들의 행위에는 잔인하고 물불 가리지 않는 무서움이 담겨 있었다.
“녹다운이 아니라 완전 제거를 해야 합니다. 강태범 그 사람 보통이 아니에요. 그 젊은 나이에 세포재생 기술을 완벽히 구현할 정도면, 나중에도 우리를 또 막아서게 될 겁니다. 아예 그 싹을 잘라 버려야죠.”
“저도 같은 생각이긴 하나, 일단 눈앞에 문제부터 처리하고 생각하죠. 어차피 제 신경을 건든 이상, 제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데이비드 버니의 확신에 찬 말투에서 자신감이 보였다.
“한국 정치권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요?”
세계 2위 제약회사 로샤의 켈리젠슨 회장이 물었다.
“한국 정치권을 다루는 건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저희 쪽과 네트워크가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들을 포섭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단지 문제는 대중의 반응이죠.”
“대중의 반응?”
“핵심은 여론 문제에 달렸습니다. 아무리 저희가 압박과 포섭을 해도, 정치권에서는 민심을 무시하기는 어려우니 말이죠. 그러니 일단은 지금처럼 세포재생기술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여론이 어느 정도 한계치에 도달했을 때 펑! 하고 터뜨리는 것이죠.”
* * *
[도롱뇽 재생세포기술 임상시험 부작용 또 나타나다.]
[절단환자 통증 부작용으로 임상시험이 중단돼.]
[환자연합회 재생세포기술에 대한 자세한 진상조사 규명을 요구.]
연이은 부작용 발생에 언론과 여론은 더욱 크게 술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 법. 아직 환자들은 도롱뇽 프로젝트에 기대를 놓지 않고 있었지만, 일반 대중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았던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좋지 않은 여론이 슬슬 형성되고 있었다.
[세포재생 기술의 진실에 대한 의혹.]
[도롱뇽 프로젝트는 투자 유치를 위한 세계적인 사기?]
[강태범 대표 정부 차원에서 검증을 해봐야.]
“이것들 깡그리 고소해야 해!”
인터넷 글을 확인한 삼에스 생명 공학의 홍동하 팀장은 책상이 부서질 정도로 주먹을 내리쳤다.
불끈 쥔 주먹에는 분노가 담겨있었다.
“뭐 우리가 사기꾼이라고? 아니! 우리가 세상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고 있는데!”
팀장은 기어코 눈이 돌아갔다.
있지도 않은 이야기로 본인의 프로젝트를 공격하니 분이 터질 수밖에.
성공이 코앞에 보여 손으로 쥐었지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기대감이 큰 만큼 상실도 큰 법, 사실 홍동하 팀장이 가장 분노를 느낀 건 이런 구질구질한 글들이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도롱뇽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번 부작용 발생은 홍동하 팀장의 가슴을 뭉개버린 것이었다.
이 사태를 아무것도 모르는 홍동하는 오로지 문제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팀장님, 허위사실은 법적으로 처리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괜히 여론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법무팀에 말을 해놓는 게 어떠신지.”
“그래, 맞아. 말로 해서는 안 되겠고 법적으로 처리해야겠어.”
* * *
TB 금융 투자 대표실.
“여론이 너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임상시험 결과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이번 시험을 중단하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 부장으로 진급한 기술사업팀의 백석규가 태범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그의 주된 보고내용은 여론과 정치권의 동태파악이었다.
TB 금융 투자 내에서 삼에스 생명 공학의 투자를 직접 관리하던 그였기 때문에, 최근 불거진 임상시험 부작용 사태로 그의 손이 더욱 바빠지고 있던 상황이다.
“중단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요.”
“물론 말이 안 되죠. 그런데 실제로 이런 소리가 은근히 자주 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도롱뇽 프로젝트에 극찬하던 정치권도 지금 눈치 보기 바쁜 것 같습니다.”
백석규 부장은 입술을 앙다물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황이 많이 안 좋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삼에스 생명 공학에서 허위사실유포에 대한 법적인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합니다.”
“음……. 허위사실유포라……. 지금 이 상황에 느껴지시는 게 없나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못 느끼셨나요? 우리를 누르는 인위적인 힘을요.”
태범의 말에 백석규 과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누군가 이 사태를 이용해 여론이라도 움직인다는 말씀이신가요?”
“역시 똑똑하시네요. 맞아요. 생각해 보세요. 이 사태에 누가 가장 싱글벙글 웃고 있을지 말이에요.”
“혹시 저번에 말씀하신 그 이권세력들 말씀이십니까?”
백석규 과장의 대답에 태범은 말이 아닌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그러자 백석규 과장은 입을 벌리며 한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군요. 이제는 하다못해 없는 이야기까지 하더라고요. 어떤 놈들을 우리를 사기꾼이라 하는 거 있죠. 참나, 어이가 없어서 글 보기가 무서울 정도입니다.”
“숨어 있던 벌레들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당장은 조금 고통스러울지 모르겠지만 벌레들이 밖으로 모두 나왔을 때 한방에 제거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좀 참으셔야 할 겁니다.”
이 다급한 상황에 태범은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보고를 하고 있는 백석규 부장의 눈에는 태범의 여유로움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말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마치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 * *
하늘병원.
“오셨습니까.”
“시험은 잘 진행되고 있죠?”
“결과가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세포증식이 정상적인 반응을 이루고 있습니다.”
태범과 이번 임상시험을 맡은 의사 강용식과 은밀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평범한 대화로 포장한 채 주변을 의식하며 나누는 대화였다.
“그래요, 그쪽에서 들어온 소식은 없습니까?”
“또 다른 환자를 작업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아휴……. 도대체 몇 명을 희생시키려고 했던 건지.”
“죄송합니다.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인명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해칠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만으로 죄책감을 느끼셨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일반적인 의사가 아니었다.
이중 스파이.
그에게 칭호를 붙이자면 이렇다.
그는 현재 이권세력인 의료, 제약 카르텔에게 매수당한 자로서 앞잡이 역할을 하려던 자였다. 그리고 그에게 맡겨진 임무.
임상시험을 실패로 만들 것.
실제로 환자들에게 부작용을 일으키기 위해 계획을 세우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행동에 옮기기 직전 태범에게 딱 걸린 것이다.
태범은 스캐너로 마크 필립스의 지식을 습득하면서 얻어낸 정보로 한 발짝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려온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게 뭐죠?”
의사는 잔뜩 굳은 표정과 함께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