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부작용을 겪고 있는 환자는 지금 정확히 어떤 상황입니까?”
“죄송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
“생명이 위독한 상황인가요? 지금 그 환자는 어느 병원에 있나요?”
“상황은 때가 되면 공식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수많은 카메라의 프레쉬 불빛이 삼에스 생명 공학의 조세윤 사장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불빛에 눈이 부신 그는 눈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정문을 통과했다.
“아우. 들어오기 힘드네.”
조세윤 사장은 연구소 정문을 힘겹게 통과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연구소 출입구가 기자들로 둘러싸여 도저히 오고 갈 상황이 아니었다.
마치 미식축구를 하듯 기자무리를 겨우 뚫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왔고, 사장은 혀를 쯧쯧 거리며 기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저것들 경찰을 부를 수도 없고 어떻게 할까요. 안 그래도 신오중 씨 부작용 건 때문에 저희를 잡아먹을 기세던데요.”
옆에 있던 기술이사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내일부터 정문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오고 갈 수 있게 길 좀 만들어 놔. 잘못하다가 내가 먼저 기자들한테 치여 죽겠어.”
“안 그래도, 경비팀에서 후문에 철조망을 정리하고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조용히 들어오실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조치 취하겠습니다.”
기술이사는 사장의 말 한마디에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조세윤 사장은 미간을 잔뜩 모은 채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이동했다. 몇 발자국이나 갔을까, 기자들에 대한 화가 안 풀렸는지 다시 짜증을 내며 목소리를 냈다.
“아니, 아직 임상 시험이 다 끝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결과를 봐야지. 결과를! 원래 부작용이야 있을 수도 있는 거야. 소(小)를 보기보다는 대(大)를 볼 줄 알아야지.”
“사장님 말이 맞습니다. 근데 언론은 결국 자극적인 부분만 쫓아가지 않습니까? 괜히 사람들이 오해를 할 까 걱정입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이 기술이 상용화가 되기만 해봐. 지금 욕하는 사람들 입 싹 닫고 칭찬하기 바쁠걸? 원래 언론은 흐름 따라 움직이는 거야. 우리를 한 번 쯤 깔 때가 됐지.”
“그러긴 하겠죠. 결국 시간문제인 것 같네요.”
사장의 의견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기술이사였다.
“아! 그리고 아직 환자는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거지? 신오중 씨 말이야.”
엘리베이터를 안에서 기술이사와 사장의 단둘만의 공간이 만들어지자, 조용히 입을 벌리며 또 다른 대화 주제로 넘어갔다.
“네, 수술 후 중환자실에 있다고 합니다. 병원 의료 관계자 외 출입이 금지라 저희 연구원들도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데 말이야.”
“아직 의식이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의식이 돌아오면 그때 말해드리겠습니다.”
“그래, 설상 죽기라도 하면 정말 일이 커지니까, 무조건 깨어나도록 해야 해.”
“네! 의료팀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시하겠습니다.”
그들은 이번 임상 시험에 이슈로 떠오르는 신오중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임상 시험 부작용으로 세상이 한창 시끄러웠고, 도롱뇽 프로젝트에 대해 우려가 깊었다.
태범과 더불어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인 조세윤 사장 역시 고민이 깊어질 때였다.
“연구소 확장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네,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정부에서도 협조적인 분위기이긴 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임상 시험에 따라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임상 시험은 무조건 성공해야 해. 혹여나 실패라도 해봐. 우린 모두 죽음이야. 죽음. 사람들이 얼마나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 기대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짐이 크다고.”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 하는 거야. 잘 알겠지?”
조세윤 사장은 삼에스 생명 공학의 미래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그리고 있었다.
그저 대한민국 내 이름 없는 생명공학 기업에 불과했지만 단시간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생긴 삼에스 생명 공학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태범에 대한 무한한 존경이 있었고, 앞으로의 성공만을 기대할 뿐이다.
* * *
하늘 병원 임상 시험실.
“으아! 내 다리.”
“왜 그러세요?”
“다리가…… 다리가 불타는 것 같아!”
천국에서 지옥으로 변하는 건 정말 눈 깜빡할 사이였다. 임상 시험을 받고 있던 안효진 환자의 울부짖음이 병실 전체를 울렸다.
비상이었다. 병원 내 담당 의사와 간호사들은 일제히 안효진 환자에게 모였다.
그녀는 다리를 붙잡으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어디가 아프신 거죠?”
“무…… 무릎 밑이요.”
안효진은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가 절단된 환자였다.
고속도로에서 추돌 사고가 있었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가 뒤에서 달려드는 차량을 보지 못하고 앞차와 뒤차 사이에 짓눌려 사고를 당했다.
절단된 발을 이식 시도를 했지만 결국 괴사를 하는 바람에 다리를 잃은 케이스였다.
“환상통 아닙니까?”
“으…… 그런 것 같아요.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아파요.”
환상통은 몸 일부가 없음에도 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느끼는 통증이었다. 대부분의 절단환자가 겪는 문제이긴 하나, 안효진 같은 경우는 시간이 흐르면서 증상이 약화된 케이스였다.
하지만 이번 임상 시험을 진행하며 다시 통증을 호소하니, 의사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까지 통증은 없으셨죠?”
“네, 이제 환상통은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이거 부작용 아닌가요? 으…… 살려주세요.”
“조금만 참으세요. 진통제 놔드리겠습니다.”
환자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의료진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임시방편으로 진통제를 투여하고 환자의 통증을 감소시켰다. 하지만 근본적인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는 상황에 자세한 검사가 필요했다.
그렇게 안효진 환자는 검사를 위해 어디론가 이동되기 시작했다.
* * *
사람의 인기척 하나 없는 병실 복도 끝, 태범은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태범의 얼굴이 곧 신분증임에도 불구하고, 신원을 확인하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병실 안에 들어갔을 때는 거대한 의료용 침대가 하나 놓여있었다.
침대에는 남자가 누워있었고, 그 옆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정성껏 병간호를 하고 있었다.
둘은 과일 깎아 먹으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태범의 등장에 그들의 시선이 옮겨졌다.
“어! 대표님.”
“반갑습니다. 신오중 씨.”
병실 침대에 앉아있던 사람은 태범을 기다리던 신오중이었다.
만남을 약속했던 아주머니의 아들, 그가 환한 미소로 태범을 반기고 있었다.
“결국 와주셨네요.”
“제가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얼굴 또 볼 날이 있다고.”
약속을 지킨 태범에 아주머니는 감동을 한 모습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태범의 손을 붙잡고는 감사함을 연신 전하는 아주머니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신오중 씨, 건강은 어때요? 괜찮으세요?”
아주머니의 감사함에 미소로 답한 태범은 신오중에게 다가가 물었다.
“태범 대표님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요즘 호흡도 너무 편하고, 식욕도 돌아오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밖에 나가서 놀고 싶을 정도예요.”
“건강해 보이시니 좋네요. 얼른 완쾌하셨으면 좋겠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힘없이 잠만 자던 신오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상인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쌩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저 병실 침대 위에 있을 뿐, 겉모습은 완전히 건강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기적을 선사해주는 것도 모자라 이런 좋은 곳에 대접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또 다시 고마움을 전했다.
태범만 보면 고마움을 입에 달고 살 지경이었으니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어떠한지 태범이 직접 느낄 정도였다.
“아닙니다. 저를 도와주시는데 이 정도 대접은 해드려야죠.”
태범이 현재 있는 곳은 샘성 병원의 VVIP실 이었다.
일반인들의 접근이 통제되는 병실로 소수의 의료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공간이다. 보통 재벌 회장님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인데, 이곳에 평범한 서민인 신오중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루에 드는 돈만 500만 원, 월세로 치면 2억에 가까운 금액이다. 모든 비용은 태범의 주머니에서 나왔고 보안 유지는 특별히 샘성 측에서 도맡아 주었다.
샘성 그룹 이재호 부회장이 개입된 결과였다.
태범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이곤, 이 중대한 비밀을 지켜주기로 한 채 모든 작업이 진행됐다.
“앞으로 완전히 나으셔서, 사람들 앞에 서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네요. 지금 신오중 씨를 건강 회복을 기대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아마 그 사람들이 신오중 씨의 모습을 본다면 놀라서 기절할 겁니다. 하하.”
태범은 신오중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태범의 손길이 닿자 신오중의 눈은 눈물로 잠기기 시작했다. 울먹거리는 모습이 곧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울지 마시고. 저는 이만 다른 병실로 가보겠습니다.”
괜히 사람을 울리는 건 아닐까 싶어, 태범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범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아주머니를 뒤로 한 채, 신오중의 옆방에 있는 다른 병실로 이동했다.
“안효진 씨 경과 상태는 어떻죠?”
그 병실에는 침대에 누워있던 다리절단 환자 안효진이 있었다. 마침 담당 의사도 같이 있었기에 태범은 현재 치료 경과에 대해 물었다.
“뼈, 지방, 근육 세포가 계속 증식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어떠한 결함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실제로 보니 놀랍네요. 다행이기도 하고요.”
“저도 의사지만 환자 상태를 보면 매일이 놀랍습니다. 손상된 다리가 매일 자라는데 눈으로 봐도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DNA나 세포질 분열에서 결함이 보이면 자칫 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서포의 분열과정을 상시 관찰하며, 다리의 재생 경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지금까지는 정상적으로 치료가 이뤄지고 있었다.
VVIP실의 담당 의사도 놀랄 정도였다. 안효진의 다리는 마치 따뜻한 봄날 땅속에서 자라나는 새싹을 보는 것 같았다.
“안효진 씨 어디 불편한 건 없어요?”
태범은 침대에 누워있는 안효진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환한 미소와 지으며 대답했다.
“조금 간지럽긴 한데, 괜찮아요. 오히려 살이 돋아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은 데요!”
“간지럽다고요?”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세포가 재생되면서 생기는 간지러움이라는데요?”
“하하. 맞아요. 감각이 돌아오는 거죠.”
그녀는 환자라고 하기에는 표정이 너무 밝았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그녀가 얼마나 기대를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저 하나 여쭤 봐도 될까요?”
입꼬리가 귀에 걸린 채 태범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뭐죠?”
“굳이 부작용을 겪는 척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뭘 얻으시려는 건지 궁금해서요. 아! 물론 답변은 안 해주셔도 돼요. 제가 원래 좀 호기심이 많거든요. 헤헤.”
안효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그것만 딱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 도롱뇽 프로젝트를 방해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그들을 막기 위해서 하는 하나의 눈속임이니깐, 불편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불편은 무슨. 오히려 대표님 덕분에 이렇게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데요.”
안효진이 절단된 다리 부분을 손으로 받쳐 들어 태범에게 넘치는 힘을 자랑했다.
“어어! 그러지 마세요. 가만히 있으세요. 가만히. 괜히 덧날라.”
“헤헤. 어때요. 제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