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65화 (165/188)

# 165

“대박이야…… 대박!”

“왜? 자기야. 무슨 일인데?”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한 남자는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의자 위에서 들썩이는 남편의 엉덩이를 보고는 부인이 다가와 물었다.

“여보!!”

“아우! 왜 그래.”

갑작스런 남자의 포옹에 부인은 닭살이 돋는다며 몸을 흔들며 저항을 하지만 이내 남편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남편의 표정이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한 모습이었다. 남편이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흔치 않았는데 오랜만에 미소를 보니 부인도 덩달아 기뻤다.

“우리 이제 행복하게만 살면 될 것 같아!”

“무슨 일인데?”

“미치겠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남자는 감격과 함께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저 감탄만 내뱉을 뿐이었다. 옆에 있는 부인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남자는 포옹을 풀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모니터에 나타난 인터넷 창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봐봐.”

“뭐가?”

모니터에 나타난 건 삼에스 생명 공학의 주식 창이었다. 빨간색 선이 오른쪽 위를 향해 쭉 뻗어 올라가고 있다.

“설마…… 오빠, 이 주식 아직도 가지고 있어? 그때 나한테 팔았다고 했잖아.”

“헤헤. 비상금!”

“뭐? 오빠, 나 몰래 비상금 숨겨놨었어?”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거 보면 모르겠어?”

“한 주당 80만 원? 오빠 얼마 가지고 있는데?”

주식 그래프를 보고 있으나 주식의 ‘주’자도 모르는 부인은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300주!”

“300주?”

남편의 말에 부인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암산을 시작했다.

80만 원 곱하기 300.

2억 4천. 간단한 암산임에도 믿을 수 없는 금액이 나오자, 몇 차례 더 계산했다. 심지어 손가락을 펼치며 말이다.

“자기야. 진짜야? 오빠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야?”

그제야 상황 판단이 된 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니, 진짜야. 내가 말했잖아. 우리 대박 났다고!”

“우아!”

징그럽다며 포옹을 피하던 부인이 이제는 먼저 남편을 안았다.

“봐. 주식 가지고 있길 잘했지? 내가 말했잖아. 우리 회사가 앞으로 더 잘된다고.”

“정말 팔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거 이번에 오빠네 회사 프로젝트 성공해서 오른 거야?”

“그렇지. 진짜 완전 대박 아니야? 아마 가지고 있으면 계속 오를 걸? 도롱뇽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분명히 오를 거야.”

그렇다.

남자는 삼에스 생명 공학의 연구원이었다. 과거 스톡옵션으로 매수했던 주식이 지금은 급등해서 큰 수익을 얻게 된 것이다.

삼에스 생명 공학의 주식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주가가 끊임없이 치솟고 있었다. 그냥 가지고만 있으면 돈이 되는 셈이었다.

주식은 없어서 못 파는 정도, 모두가 보유하고 있으려고 하다 보니 매매 시장에 주식이 나오질 않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른 제약이나 의료와 관련된 다른 기업들은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세포 재생 기술은 수많은 의학 기술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기에 이전에 있던 기술은 점점 도태가 되었다.

결국 기존 이권 세력이 우려한 상황이 온 것이었다. 제로섬 게임에서 그들은 결국 몫을 뺏기고 말았다. 바로 이 남자와 같은 사람에게 말이다.

“여보, 그럼 주식 팔고 우리 아파트로 이사 가자.”

“아파트? 그게 문제야? 조금만 기다려. 좀만 더 기다리면 여기가 아니라 내가 강남으로 이사 보내줄 테니까.”

“정말이야? 우아!”

“여보, 그런 기념으로 오늘 준이 동생 만드는 날?”

부인은 너무도 기쁜 마음에 남편의 품에 더욱 힘껏 안겼다. 돈은 식었던 사랑도 불타오르게 하고, 가정의 평화도 가져다줬다.

이 모든 게 도롱뇽 프로젝트의 성공 덕이었다.

* * *

한국 대학교 대강당.

“솔직히 말하자면 좋은 대학교를 나오신 것도 아니고 특별한 교육 기관에 다니신 것도 아닌데 어떻게 지금과 같은 성과를 이뤄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답게 한국대 학생들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객석에서 마이크를 든 학생의 눈빛에는 마치 레이저라도 나갈 듯 강렬했다. 역시 날고 긴다는 대한민국 수재들이 모인 자리다웠다.

“요즘 세상처럼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역사는 없었을 겁니다. 과거 학교 선생님이 그 정보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인터넷, TV, 신문 등 수많은 선생님이 존재하죠. 전 이 선생님들로부터 학습하고, 이를 사용했습니다.”

태범은 질문에 수월하게 답변했다.

최근 많은 강연이나 강의를 하면서 질문에 대한 면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람의 얼굴만 보면 어떤 질문을 할지 대충 감이 올 정도였다.

답변과 함께 마이크는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조금 무례한 질문일지도 모르니 일단 사과 먼저 하겠습니다.”

마이크는 돌고 돌아 키 작은 한 학생에게로 돌아갔다.

금색 뿔테안경을 딱 올려 쓰는 것이 심상치 않은 포스였다.

무슨 심각한 질문을 하려는 건지 사과를 하며 밑밥을 먼저 깔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까지는 없었는데 태범도 살짝 긴장했다.

“네, 질문하세요.”

하지만 얼굴은 애써 태연한 척 손짓을 하며 질문을 권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 지금 모든 성과를 대표님이 이루신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결과로만 본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생물학적,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으시고 있습니다. 전 도저히 이걸 믿을 수가 없더라고요. 정말 혼자서 이걸 다 해내신 건지 아니면 혹시 숨기시는 게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질문이 태범의 허를 찔렀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질문다운 질문이었다. 지금까지 질문이라 해봤자 어떻게 똑똑해졌고, 앞으로 뭐할 건지 같은 뻔한 질문들이었으니 말이다.

“그게 궁금했군요. 저희 능력에 대해서요.”

“네, 맞습니다. 이는 도저히 노력이나 운으로 설명되지 않는 성과잖아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것 같으니 전 도저히 머리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은 전 초능력자입니다.”

“네?”

태범의 발언에 객석이 술렁거렸다. 몇몇은 농담을 알아차리고는 웃음을 내뱉었다.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설마 그걸 믿지 않으셨겠죠?”

“하하하하.”

객석의 사람들 웃음소리가 강당을 울렸다.

태범은 웃음이 진정될 때를 기다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제 능력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그런 게 아닙니다. 자! 보세요. 누가 봐도 사람인 제가 이렇게 하고 잘 해내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 한계를 규정하지 마세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의 씨앗은 무궁무진합니다. 스스로를 믿고 할 수 있다는 감정하에 행동을 옮기세요. 그러면 누구나 저처럼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태범은 톤을 잔뜩 높인 격양된 어투와 함께 강한 손짓을 하며 말했다.

언뜻 보면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의 연설과도 같았다. 대중을 사로잡기 위한 기법인 셈이었다.

이미 객석의 사람들은 태범이라는 소용돌이에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물리적인 한계조차 말이죠?”

하지만 질문자 단 한사람. 이 학생만큼은 답변의 꼬리를 끝까지 늘어뜨렸다. 의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물리적인 한계야 있겠죠. 사람이 새처럼 날 수 없고,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숨을 못 쉬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너무 쉽게 규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과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보세요. 그 수많은 일들을 해내지 않았습니까? 사람의 한계는 상상 이상으로 높이 있다고 생각하네요.”

태범의 답변에 질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답변에 아쉬움이 좀 남았는지 표정이 살짝 굳어있었다.

사실 ‘능력을 주는 스캐너’를 공개하면 다 해결될 질문들이지만 이는 태범의 마음속에만 간직할 뿐이었다.

입술이 마르는 질문에 침을 꼴깍 삼키고는 다시 마이크를 돌렸다.

그의 질문은 이렇게 끝나고 마이크는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객석 앞에 앉은 교수에게 갔다.

“미래에는 어떤 형태의 인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현재든, 미래든 본인이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깨닫고 이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곧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인재라고 해서 대단한 게 아니라, 정말 사소한 능력 하나 조차 본인이 세상에 적용할 수 있다면 전 그런 사람이 세상을 바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태범의 답변에 교수는 고개를 과할 정도로 끄덕였다. 답변이 만족스러운 것 같다.

이렇게 질문 시간이 끝나고 태범은 마무리 발언과 함께 강연을 끝냈다.

“앞으로의 미래는 저와 함께 여러분들이 같이 이끌어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틀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수많은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강당을 채웠다.

태범은 객석의 사람들을 한 번씩 눈으로 훑으며 미소를 날렸다.

“와!!!”

태범의 살인미소에 푹 빠지기라도 한 건지, 박수가 점점 커졌다. 마치 아이돌 가수를 보러온 팬처럼 말이다.

이렇게 오늘도 강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태범은 요즘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인물들을 스캔하면서 느꼈지만 사람에게는 누구나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를 깨닫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사기적인 스캐너의 능력 덕분에 큰 노력 없이 이 자리에 온 건 스스로도 인정했다.

스캐너가 아니더라도 일반 사람들 역시 잠재된 재능과 능력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태범은 단지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교육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려던 것이었다.

* * *

한국대 강연를 마치고 차를 타고 본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비서 강은미와 아까 전 질문에 대해 껄껄거리며 대화를 나누던 중, 개인 번호로 된 핸드폰에 벨소리가 울렸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네? 또 무슨 일인데요.”

삼에스 생명 공학의 홍동하 팀장에게 걸려온 다급한 전화였다. 도롱뇽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한동안은 그의 밝은 목소리만 들었는데 다시 듣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 태범도 덩달아 긴장이 됐다.

“아…… 그게 말이죠.”

“뜸 들이지 말고 말해보세요.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얼마나 큰일이기에 뜸을 들일 정도일까, 태범은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임상 시험을 받던 환자 한명이 지금 쓰러져서 다급히 수술대에 올랐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그게 누군데요.”

“신오중이라고 신부전을 앓고 있는 28살 남성이라고 합니다.”

“신오중이요? 하필이면 그 사람이 왜.”

신오중이라 하면 심부전에 걸린 그 남자였다. 태범에게 뛰어들었던 그 아주머니의 아들, 다시 얼굴을 보자고 약속까지 했던 사람이다.

“아니, 증세는 어떤가요?”

“마비 증세와 함께 갑작스러운 심장 발작이 있었습니다. 호흡 곤란으로 긴급히 수술실로 이동했습니다.”

“역시…….”

“네? 대표님. 무슨 걸리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일단 들어오는 소식은 유심히 듣고 계세요.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 하지 마시고요. 상황만 잘 파악하고 계세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인터넷 기사를 검색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미세하게 세어난 통화 목소리에 앞자리에 앉아있던 강은미가 물었다.

“잠시 문제가 생긴 것 같네요. 저 잠시 일 좀 하겠습니다.”

강은미의 질문을 잠시 끊고, 태범은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임상 시험에 참여하던 심장병 환자 중태에 빠져]

└ 헐. 설마 도롱뇽 프로젝트 이렇게 실패하는 건가요? 엄청 기대했는데.

└ 역시 기술이 완벽히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설레발치면 안 됩니다. 벌써 잊었습니까? 줄기 세포 사기극을요!

└ 한 명입니다. 한 명. 많은 표본 수 중 단 하나인데, 너무 큰 문제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겁니다.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의약품도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죠.

└ 안 돼요! 제발 이러면 안 됩니다. 전 이것만 믿고 있습니다. 제발 큰 탈 없이 진행되길…….

연락을 받은 게 불과 몇 분 전이었는데 인터넷 기사가 벌써 떴다.

참 웃긴 건 그 기사를 가장 빨리 올린 곳은 와이TV 인터넷뉴스였다.

‘아니, 이 조그마한 언론사가 어떻게 가장 빨리 정보를 획득하는 거지?’

태범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의심가득한 눈초리로 스마트 폰 액정 속 기사를 바라봤다.

‘허허. 재미없게 떡밥을 이리 쉽게 무나?’

스마트 폰을 보고 있던 태범의 한쪽 입꼬리가 쓱 하고 올라갔다. 비웃는 듯한 표정이었다.

룸미러로 태범의 모습을 보던 강은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웃으시지?’

* * *

오늘 하루 전화가 폭발하는 줄 알았다.

임상 시험에서 생긴 부작용 소식으로 언론사는 물론 주변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집에 들어온 태범은 결국 핸드폰을 꺼놓을 지경이었다.

태범은 방공호에 들어가 조용히 12시를 기다리며 스캔을 준비했다.

[협상 기술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39%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40% 진행되었습니다.]

“하하하. 재밌어. 정말.”

스캔과 동시에 새로운 지식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태범은 힘껏 웃음을 내뱉었다.

이러면 안 되지만 남의 생각을 염탐하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물론 남이 아닌 적이었지만 말이다.

태범은 마크 필립스의 생각보다 한 수 앞을 먼저 바라볼 수 있었다. 그가 1을 생각한다면 태범의 생각은 벌써 2에 가 있는 꼴이다.

그렇게 이권 세력의 ‘분란 조장 작전’의 내용은 고스란히 태범의 머릿속에 지식으로 들어왔다.

앞으로 태범이 할 일은 이들의 지식, 즉 정보를 이용해 역으로 공격하는 일이다.

물론 작업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고 그들은 쥐덫 밭에 들어온 줄도 모르고 날뛰는 도둑 쥐랑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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