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이거 드세요.”
“네, 잘 마시겠습니다.”
태범은 아주머니가 건넨 비타민 음료를 한 모금 들이마시곤 간이 침대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안 그래도 대표님을 만나려고 회사에 찾아가려 했어요. 근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러셨나요? 저도 이번 동물 실험에 성공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어머님이었거든요. 그때 차 안에서 간절하게 이야기하시는 데…… 그때 기억을 잊을 수 없어서요.”
“저뿐만 아니라 자식을 가진 세상 모든 어머니라면 다 그렇게 했을 거예요. 자식이 아픈데 가만히 발 뻗고 누워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아주머니는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아들의 발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분이 어머님께서 말한 그 아들 분이시죠?”
“네, 누워있는 게 생활이 됐다 보니 틈만 나면 이렇게 자네요.”
남자는 침대에 편하게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언뜻 보면 겉모습은 정상인처럼 보이지만 그의 속은 모두 고장이 나있었다. 인체의 중심인 심장이 고장이 나고 각종 장기들도 부작용을 겪고 있다고 한다.
남자는 태범과 비슷한 20대 또래였다. 비슷한 나이라 그런지 태범은 그에게 더욱 공감되며 동정심을 느끼게 됐다.
한창 사회에 나와 세상을 경험할 나이에 침대에만 누워있어야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오중아. 일어나봐. 강태범 대표님 오셨어. 네가 그렇게 기다렸잖아.”
아주머니는 아들의 발을 톡 건드리며 깨우려 했다. 그러자 태범은 손을 저으며 아주머니의 행동을 말렸다.
“아닙니다. 됐습니다. 자게 내버려 두세요.”
“우리 아들이 대표님을 그렇게 기다렸거든요. 제가 대표님 칭찬을 그렇게 하니까, 대표님을 꼭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오늘만 보고 안 볼 거 아니지 않습니까? 또 볼 수 있으니 지금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두세요.”
“정말 또 볼 수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우리 아들한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에이! 그런 생각 하지 마시죠.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 온 거 아니겠습니까?”
“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제 인생에 불운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행운도 있네요.”
“제가 어머님이 생각하신 데로 행운이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희망을 내려놓았었다는 듯한 아주머니의 말, 아마도 오랫동안 아픈 자식을 보살피면서 생긴 비관적은 성격일 것이다. 하지만 태범이 나타남으로써 달라졌다.
아주머니의 미소에는 조그마한 기대와 함께 희망이 보이고 있었다.
“대표님, 기사는 핸드폰으로 꼭 챙겨보고 있었어요. 이번에 쥐 다리 세포를 증식하는데 성공하셨다고 들었거든요. 이제는 임상 시험 단계라고 하시던데. 맞죠?”
“어머님도 많이 공부하셨나 봐요?”
“공부라기보다는 이것저것 보다 보니 알게 되더라고요.”
아들에 대한 사랑은 중년의 아주머니도 공부하게 만들었다.
깊은 지식은 아니더라도 같은 나잇대에 아주머니들보다는 생명 공학과 관련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알고 계시는 것처럼 저희가 이번에 임상 시험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희 개발한 신약 물질이 안전한지 테스트하는 과정이고, 이게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의료 기술에 적용할 수 있거든요.”
“그럼…… 위험한 건가요?”
“뭐, 원래 임상시험은 100% 안전하다고 말씀은 드릴 수가 없어요. 애초에 안전성을 검사를 하는 것이잖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큰 문제는 안 생길 거라 생각합니다. 정말 특이한 사항이 아니라면 말이죠.”
태범의 말에 아주머니는 잠시 눈동자를 위로 올리며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다시 태범을 마주보고는 말했다.
“아…… 네! 전 대표님을 믿어요. 대표님 같은 사람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확실하겠죠.”
“그러면 아들 분은 임상 시험에 허락하신다는 말씀이시죠?”
“물론요. 제가 먼저 부탁한 건데, 당연히 그래야죠.”
“그럼 나중에 아들 분 깨어나시면 본인한테 물어봐 주세요. 참여 의사가 있는지 말이죠. 제가 개인 번호를 알려드릴 테니 이쪽으로 전화하시면 될 겁니다.”
태범은 아주머니의 스마트 폰을 건네받아 개인 번호를 찍어줬다. 번호를 받은 아주머니는 얼굴이 붉어져 감격에 찬 표정이었다. 태범도 괜히 머쓱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이. 거기 학생. 자네 혹시 TV에서 나오는 사람이야?”
태범이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앞 침대에 누워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마치 쇠 긁는 소리처럼 걸걸한 목소리로 태범을 불렀다.
태범은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맞구만! 맞아! 그 사람이야. 강 뭐 시기인데.”
“강태범입니다.”
“그래! 맞아. 대한민국의 천재 강태범 아니여?”
할아버지는 태범의 얼굴을 정면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손뼉을 치며 반가워했다.
“네, 맞습니다. 강태범.”
“그 유명한 사람이 여기는 무슨 일이여? 아는 사람이 아픈 겨?”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볼일이 있어서요.”
“그래? 내가 자네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뭐 심장을 다시 만든다고 하는게 사실이여?”
할아버지는 태범과 아주머니의 대화에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할아버님, 뉴스 안 보셨어요? 요즘 도롱뇽 프로젝트라고 유명하잖아요!”
할아버지의 질문에 태범 대신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도롱뇽?”
“네! 도롱뇽이 꼬리가 잘리면 다시 자라나잖아요. 그런 것처럼 사람의 신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죠.”
“뭐? 세상에 그런 것도 있어?”
“아우! 그러니까 이분이 그만큼 대단하신 거죠.”
태범에 대한 아주머니의 극찬에 할아버지는 태범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태범에게 툭 한마디를 던졌다.
“그럼 내 폐도 치료해줄 수 있는 겨?”
할아버지는 코에 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거친 숨을 쉬며, 걸걸한 소리를 내는 걸 보아 할아버지 말대로 폐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럼요. 계획대로만 이뤄져서 임상시험까지 마치면 폐 역시 치료가 가능하죠.”
“그려? 그럼 나도 좀 같이 치료해줘. 숨 쉬는 게 답답해서 미치겠어.”
“할아버님, 조금만 참으시면 앞으로 좋은 날이 올 겁니다. 힘들더라도 그때까지 꼭 건강 지키세요.”
태범의 말에 할아버지, 아주머니 그리고 병실에서 대화를 엿듣던 모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소 속에는 희망이 담긴 것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병실에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 생존 욕구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건강한 삶을 열망하고 희망할 것이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스케줄 잡히면 저희 쪽에서 따로 연락이 갈 겁니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와의 대화도 끝나고 태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문밖을 나섰다. 아주머니는 ‘감사하다.’ 라는 말을 입에 계속 달고는 병원 밖까지 배웅해주려는 했다.
태범은 손짓으로 아주머니의 친절을 극구 말리고 나서야 병원 밖을 나설 수 있었다.
* * *
임상 시험 계획서가 의료 당국에 전달되고 본격적인 임상 시험이 시작됐다.
시험의 대상은 사지 절단, 신경 손상, 내부 장기 손상 환자 등, 신체적인 손상을 지닌 환자였다.
사실상 세포 재생은 새로운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다양한 치료에 적용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환자의 폭도 다양했다.
“아이고, 저 아저씨 또 왔네.”
운전을 하고 있는 경호원 김문성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네? 누구요?”
“저기요. 저 사람.”
김문성이 턱으로 가리킨 건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는 주차장 진입구로 들어가는 태범의 차량 뒤로 뛰어오더니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대표님! 대표님!”
차가 들어가는 주차장 진입구에 서 있는 건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입구를 지키던 경비원이 이 장면을 보고는 황급히 나와 남자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고생이 좀 하더라도, 좋게 말해서 보내라고 하세요. 저들도 얼마나 절박하면 저러겠습니까.”
태범은 경비원에 의해 끌려 나가는 남성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김문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그래도 경비팀에서 좋게 보내려 한다고 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대표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 간다고 하던데요.”
“그래요?”
“게다가 저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랍니다. 물론 대표님 말씀대로 안타까운 것도 있긴 하지만 저렇게 끌고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임상 시험이 시작되자 많은 사람들이 TB 금융 투자 본사에 찾아오고 있었다.
대부분이 건강상 문제를 지닌 사람들로 건강한 삶을 위해 간절함을 가지고 있었다.
경비원이 끌고 나가는 것도 여러 번이었다.
“결국 임상 시험을 빨리 진행시켜서 모두가 밖에는 없네요.”
마음 같아서는 기술 이용을 원하는 사람 모두를 불러놓고 치료를 해주고 싶지만 나라에는 절차와 법이라는 게 있고 이를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태범은 씁쓸한 마음을 가지고 대표실로 들어갔다.
따르릉.
태범이 대표실에 들어오자마자 핸드폰 벨이 울렸다. 영국에 있는 임호진 팀장이다.
스낵피쳐와 태범의 가교 역할을 하며 딥 멀티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 개발에 한창이었다.
태범은 소파에 앉아 전화를 받았다.
“예, 호진 씨. 프로그램 기획은 모두 마쳤나요?”
“네, 몇 가지 제안된 프로그램에 대해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요즘 하고 있는 건?”
“지금은 딥 멀티를 통한 개인 맞춤형 광고 시스템을 설계할 예정입니다. 광고주의 만족도가 올라가면 수익도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음…… 맞춤형 광고라…….”
“마음에 안 드십니까? 런던대 측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나쁘지는 않습니다. SNS 기업은 광고가 주 수입원이니 말이죠. 근데 사용자 측면보다는 기업 측면에서 딥 멀티를 이용했다는 게 좀 아쉽긴 하네요.”
“다른 프로그램도 많이 기획 중에 있습니다. 근데 곧 있을 기업공개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수익적 측면에서 고려할 수밖에 없어서 말이죠.”
“아. 알겠습니다. 저도 틈이 나는 대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개발에 참여할 테니, 거기서 열심히 일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도롱뇽 프로젝트 성공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요즘 난리도 아니던데요?”
“아직 임상 시험이 남았잖아요. 그때까지는 성공한 게 아니죠.”
“이미 성공한 분위기인데요 뭐. 대표님. 이러다가 노벨상 타는 거 아닙니까?”
“하하. 노벨상이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심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게 태범이었다.
‘노벨상.’
명예의 끝은 이 상에 있었다. 인류 문명의 발달에 공헌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상으로 노벨상 수상자는 곧 인류의 커다란 인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최고가 되고 싶다는 태범의 꿈. 노벨상은 이 꿈의 퍼즐을 완성시키는데 큰 조각임은 분명했다.
* * *
[스캔할 능력을 선택해주세요]
[마크 필립스 능력]
-행동 추진력(0%)
-언변(0%)
-자신감(0%)
[지식 능력]
-심리학(0%)
-생명공학(0%)
-협상 기술(0%)
오늘은 새로운 인물을 스캔하는 날이었다.
존 라쉬가 말했던 비밀에 싸인 그 인물. 마크 필립스
지금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라고는 세계 1위 제약 회사인 마틴에서 홍보 실장으로 일한다는 것과
존 라쉬의 말대로 마크 필립스는 로비스트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의 능력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사람을 이용하는 힘이 대부분이었다.
‘그의 정보가 가장 많이 담겨 있을 만한 곳이…….’
이번 스캔의 목적은 능력의 흡수가 아닌 정보의 획득이었다.
이 남자의 능력이라 해봤자, 수많은 천재들에 비하면 많이 덜떨어진 수준이었으니 탐낼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정보라 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결국 협상 과정에서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오갔겠지.’
태범은 정보가 가장 많이 담겨있을 것 같은 협상 기술을 선택했다.
[협상 기술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0%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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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이 10% 진행되었습니다.]
마크 필립스가 가진 협상과 관련한 지식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협상은 곧 사람을 본인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행동을 말했다.
상대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무슨 직업인지 그리고 약자인지 강자인지 까지 모든 요소가 협상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했다.
다른 천재적 인물보다는 정교한 지식은 아니었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보자면 ‘유능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만큼의 지식은 보유한 것 같았다.
그렇게 스캔 과정과 함께 그의 협상기술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분란 조장 작전?’
누군가의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짓 누르기위해 여론의 분란 조장하겠다는 기억이 태범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도대체 그 상대가 누구지? 그리고 여론의 분란을 조장하다니?’
아직 스캔이 덜 진행돼있기 때문에 명확한 기억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누군가를 억압하기 위해 협상을 하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아마도 날 의미하는 거겠지?’
태범은 마크 필립스가 공격 대상으로 삼는 사람이 본인일 거라 생각했다. 최근 그와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한 것이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웃긴 놈들.’
만약 정말 태범을 공격대상으로 삼은 거라면 상대를 골라도 잘못 골랐다.
하긴 적들이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을 거라 생각은 했을까.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상대와 싸우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