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63화 (163/188)

# 163

[전임상 실험, 쥐의 잘린 발을 재생하는데 성공.]

└드디어 이런 날도 오는군요. 생각도 못 했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올 때면 너무 기쁩니다. 정말 꿈으로만 꿔 온 일이 현실이 되다니 흥분되네요.

└빨리 치료 기술을 상용화됐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라도 진행속도에 힘을 실어 줬으면 하네요.

└감탄밖에 안 나온다. 딥멀티도 그렇고 이번에는 재생세포? 어떻게 한 사람이 세상을 이렇게 바꿀 수 있는 걸까. 말로 설명이 안 된다.

└이제 100세 시대가 넘어간 걸까? 한 150세 시대? ㅋㅋ

앞으로 남은 건 사람을 이용한 임상 실험뿐이었다.

인간과 유사한 DNA를 지닌 실험용 쥐로 성공을 했다는 건 앞으로 임상 실험도 희망이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용 쥐를 통한 시험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열광하고 있었다.

* * *

“여기가 오늘부터 대표님이 사실 집입니다.”

주택 관리인의 안내에 태범은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번에 태범이 새롭게 이사한 한남동 대저택이었다.

성벽이라도 되는 듯한 거대한 높이의 벽과 대지만 300평대인 커다란 단독 주택이었다.

주변 역시 이와 유사한 집들로 들어차 있었으며 다들 사회적으로 높은 지휘를 가진 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혼자 사는데 무슨 집이 이렇게 클 필요가 있을까. 어찌 보면 돈 지랄, 허영심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태범 역시 이 자리까지 오기 전에는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명성과 함께 재산이 쌓일수록 거물급 인사들이 왜 벽을 쌓아두고 은밀한 곳에 숨어 사는지 이해가 됐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건 곧 명예로운 일이면서도 위협으로 느껴졌으니 말이다.

세상 사람이 모두 천사와 같다면 애초에 위협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알아가고 깨달을수록 사람은 선하지 만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람은 본인의 이익 앞에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걸 태범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대표님이 요청하신 공간입니다. 건물에 폭탄이 터져도 이곳만큼은 무사할 겁니다.”

건물 지하 통로를 통해 들어간 조그마한 공간, 관리인의 안내에 따라 그곳을 조금 걷다가 두꺼운 강철 문 앞에 가로막혔다.

“여기가 제가 부탁한 그 공간이죠?”

“네, 맞습니다. 본인이 아니면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을 겁니다.”

모든 면이 두꺼운 강철 벽으로 이뤄진 공간이었다. 기존 이 주택에 없었던 공간으로 태범의 특별 주문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공간이었다.

명분은 공습을 대비한 방공호였지만 그건 사실 거짓된 명분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방공호를 만들 만큼 전쟁 걱정을 할까. 이 방공호는 사실 본인을 지키기보다는 스캐너를 지키기 위함에 가까웠다.

‘이 정도면 개미 한 마리도 얼씬하지 못하겠지.’

큰일을 할수록 관심은 깊어지기 마련 사람들은 태범의 사소한 것까지 알고자 하려 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잘했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친구들과의 관계는 원만한가, 어린 나이에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심지어 태범이 입었던 만 원짜리 가로 줄무늬 티셔츠 쪼가리가 이슈 되기도 했다. 파파라치 한 놈이 태범의 사진을 기가 막히게 찍었는데, 천재의 티셔츠라나 뭐라나.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이슈가 됐었다.

이런 과도한 관심 속에서 스캐너가 안전할 거란 보장은 없었고, 이를 지켜야만 했다.

“지문과 동공의 모양 그리고 넘버코드, 이 세 가지를 모두 입력해야만 들어가 실 수 있습니다.”

“어허. 멋지네요. 그럼 한 번 해볼까요?”

들어가는 게 조금 지랄 맞지만 이보다 확실한 보안은 없었다.

딥멀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식프로그램에 지문, 동공, 코드를 완벽하게 입력해야만 방공호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핵폭발뿐만 아니라 화학전이나 생물학전에도 대표님을 안전하게 보호해줄 겁니다. 그리고 최대 6개월 동안 물과 식량 그리고 의료 장비가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건물 관리인은 이곳의 진짜 사용 용도를 모른 채, 방공호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태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들었다.

‘이러면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기분 탓인지, 실제로 강철로 둘러싸인 방공호에 있으니 마음이 안정됐다.

주변에 느껴지는 의문의 시선도 사라진 것 같고 인기척이라 해봤자 옆에서 계속 조잘거리는 건물 관리인밖에 없었다.

진작에 이렇게 이사 올 걸 후회를 하며 태범과 관리인은 방공호 밖으로 나갔다.

‘어! 전화 왔었네.’

방공호의 강철 때문에 전화 신호를 못 받았다. 방공호를 나오니 부재중 전화가 띠링! 하면서 나타났다.

어머니였다. 태범은 바로 폰을 들어 전화 버튼을 눌렀다.

“어. 엄마. 전화했었네.”

“바쁘니? 오늘 이사 가는 날이라고 해서 전화해봤어. 잘 갔나 싶어서.”

“뭐, 별일 있겠어. 그냥 이사 가는 건데.”

“그래도 앞날은 모르는 거잖니. 물론 아들이 앞으로 잘해줄 거라 믿는데, 그래도 항상 확인해야 엄마 마음이 편하지.”

“나보다는 엄마 몸이나 걱정해. 생각보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 못된 사람이 참 많아. 그러니까 엄마도 항상 나갈 때 조심하고. 꼭 경호원은 대동해서 다녀. 절대 혼자 다니지 말고.”

“알았다. 알았어. 엄마 귀에 딱지 앉겠다.”

태범은 본인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 이상을 가족에 신경 썼다.

가족의 환경변화는 모두 태범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에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언제 한번 시간 나면 아빠랑 같이해서 갈게.”

“알았어. 올 때 미리 전화해줘. 그리고 올 때 아무것도 싸오지 말고, 빈손으로 와. 여기에 있을 거 다 있으니까.”

“그래, 알았다. 오늘은 푹 쉬고 쉬엄쉬엄 일해.”

“알았어. 푸욱~ 쉴게요.”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치고 태범은 나머지 집 안을 꼼꼼히 둘러봤다.

집 안내를 받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궁궐 같은 집에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을 만한 크기였으니 말이다.

“궁금하거나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저는 경비실에 항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안내를 끝낸 관리인은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태범은 넓은 거실 안에 홀로 남겨졌다.

달리기도 해도 될 만큼 거실 한 가운데 태범은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그러고는 온몸으로 집안의 기운을 느꼈다.

“후. 또 새로운 시작이네.”

* * *

새집의 첫 손님은 배영 그룹의 이희현 명예 회장이었다.

몸이 불편해 본인의 집에서 웬만하면 벗어나질 않는 그였지만 오늘만큼은 직접 몸을 이끌고 이곳에 왔다.

휠체어 투혼에 이곳까지 온 걸 보니 무언가 대단히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집 참 좋네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사실 너무 거창한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괜찮죠?”

“대표님 수준에 거창한 집이 있을까요? 난 이 집도 태범 대표에게 부족하다고 봅니다. 더 멋지고 으리으리한 집에 살아야 태범 대표의 수준에 맞는 거겠죠.”

“사실 전 아무것도 모를 때 무조건 큰집이 좋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또 아니더라고요. 집에 빈공간이 많을수록 마음도 허전해진다고 할까요?”

“집이 부의 상장 아닙니까? 내 젊을 땐 집 평수 넓어지는 걸 보면 나도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골방에서 시작한 방이 나중에 거대한 집이 됐을 때 돌아보면 감회가 참 새롭거든요.”

그렇다.

이희현 명예 회장 말대로 감회가 새롭긴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족과 같이 살며, 조그마한 방에 틀어박혀 있던 본인이 이런 거대한 저택의 주인이 되다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하. 맞습니다. 회장님 말대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나도 요즘 태범 대표처럼 감회가 참 새로워요. 이 몸이 다 죽어가는 마당에 어쩌다가 또 다른 전성기를 겪다니 난 그저 태범 대표에게 즐거움을 요청한 건데 이렇게 엄청난 돈을 가져다주고 말이죠.”

“뭐, 일석이조 아닙니까?”

“그래요. 일석이조.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죠. 허허. 태범 대표 말이 맞아요.”

이희현 명예 회장의 많은 자금이 대부분 삼에스 생명 공학에 투자됐다. 천문학적인 상승을 보인 주가 상승에 이희현은 또 다른 전성기를 겪게 된 셈이었다.

죽기 전까지 재물을 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모든 걸 내려놓고 마지막 불꽃을 피우다 죽기 바라는 사람도 있다.

이희현 명예 회장은 후자에 속했다.

그는 단지 죽기 전 가지고 있는 돈으로 인생을 즐길 속셈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또 다른 부를 축적하게 된 것이다.

“제 자랑 같아서 뭐하지만 제 손을 거친 돈은 절대 원상태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명색에 제 직업이 투자자 아닙니까?”

“허허. 암~ 그렇죠. 그 대단한 천재 투자자 아닙니까?”

태범과 이희현 명예 회장은 한참 동안 투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이희현 명예 회장은 본인이 투자한 돈이 뜻대로 이뤄져 기분이 좋았고, 태범 역시 도롱뇽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이뤄져 기뻤다.

두 사람의 깔깔대며 웃음소리가 거실 안을 오랫동안 채웠다.

“사실 내가 이 몸을 이끌고 이곳에 온 이유가 있습니다. 태범 대표에게 친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말이죠.”

대화가 깊어지고 앞으로 계획에 대해 이야기가 오고 갈 때쯤, 이희현 명예 회장은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러셨나요? 그냥 통화로 하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얼굴을 보고 말하고 싶었어요.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요.”

이희현 회장은 태범의 눈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강아지마냥 기대에 찬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혹시 태범 대표가 내가 한 말을 기억 할지는 모르겠는데…….”

잠시 뜸을 들이던 이희현 명예 회장은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말이 천천히 입 밖으로 뱉어지는 짧은 사이 태범은 이희현 명예 회장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모든 대화가 머릿속에 담겨 있기에 그와의 대화를 복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태범은 이희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나올 말을 예측할 수 있었다.

“휠체어에서 일어나고 싶다는 그 말씀 말이죠?”

태범이 이희현의 생각을 읽어내자 이희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허. 그 말을 기억해주다니 이 늙은이의 주책맞게 내뱉은 말이었는데.”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기억력이 조금 좋은 거.”

“사실은 이번에 삼에스에서 도롱뇽 프로젝트 임상 실험 단계에 돌입했다고 들었소. 그…… 혹시 나를 가지고 실험할 수는 없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건강과 삶에 대한 욕구가 있는 이희현 명예 회장이었다.

아무리 본인 입으로 죽어가는 늙은이라 표현하지만 그 역시 사람이기에 건강하게 오랫동안 살고 싶은 생존 욕구가 있었다.

“정원하시다면 해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무조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아직 임상 전이다 보니 많은 요구사항이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워요.”

이희현 명예 회장은 휠체어를 굴리며 태범 앞에 바짝 붙더니 손을 붙잡고는 몇 번이나 고마움을 표시했다.

* * *

“어머! 저 사람 강태범 아니야?”

“정말. 강태범이 여길 왜 왔대?”

예고 없이 병원에 등장한 태범에 사람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눈에 띄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태범은 건장한 경호원 두 명을 달고 다녔고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건 당연했다.

병실 복도를 거닐던 태범은 3001호 병실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인가요? 김미령 씨 아들분이 있다는 곳이.”

“네, 맞습니다. 제가 먼저 들어가서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아닙니다. 같이 들어가죠.”

태범은 비서인 강은미 실장과 함께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태범이 다시 발걸음을 멈춘 곳은 침대에 누워있는 심장병 환자 앞이었다.

“어? 강…… 강태범 대표님이 여길 어떻게.”

환자 옆에 놓인 간이침대에 앉아있는 아주머니 한 분, 그녀는 태범을 보자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 부탁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들 분을 살려달라고.”

“정말…… 제 아들 때문에 이곳까지 오신 겁니까?”

“네, 약속을 지키러 왔습니다..”

태범이 대학 특강을 마치고 나오던 길, 아들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애타게 외쳤던 그 아주머니였다. 태범의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진 아주머니는 태범의 손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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