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62화 (162/188)

# 162

사람은 힘의 방향에 따라 이동하기 마련이다.

존 라쉬 역시 힘의 주도권이 태범에게로 향하는 걸 인지하고 생각을 고쳐먹은 것이었다.

“이제라도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깨달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태범은 존 라쉬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이 악수는 단지 인사의 의미가 아니었다. 기존의 이권 세력에 금을 갈라놓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태범은 존 라쉬와 악수를 하며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말했다.

“이제부터 저희의 기술이 의료, 제약 산업에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게 될 겁니다.”

태범은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

그 확신은 모두 경험과 스캐너가 준 능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래를 보는 눈이라면 태범을 따라올 자는 없었으니 수많은 투자를 경험하며 시장을 읽었기에 가능했다.

“저도 강태범 대표님이 일궈낸 작업 과정을 듣고는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세포 재생이라뇨. 설마 이 기술을 가지고도 세상을 못 바꾸면 말이 안 되죠. 단지 문제가 있다면…….”

“문제요?”

“그 세력이 수십 년 간 쌓아온 성을 무너트리기 위해서는 큰 각오를 하셔야 할 겁니다. 제가 아는 그 세력은 쉽게 자리를 내줄 인물들이 절대 아닙니다.”

존 라쉬는 이권 세력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 역시 얼마 전까지 그들과 한패였고 그들의 힘으로 움직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태범은 존 라쉬의 우려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태범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짓고는 한껏 여유를 부렸다.

“그들이 무엇이든 간에 저는 단지 제 할 일을 할 겁니다. 그러니 존 라쉬 씨.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걸 제게 말해주세요.”

태범의 여유 있는 모습에 존 라쉬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잠시 고민을 하던 존 라쉬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표님은 ‘마틴’라는 제약 회사를 아시는지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세계 1위 제약 회사 아닙니까?”

“세계의 여러 제약, 의료 회사는 독과점과 단합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특히 마틴을 중심으로 세계 정치권에 막대한 로비를 하여 유착 관계를 이루고 있죠. 우리가 알고 있는 거물급 정치 인사는 대부분 이 사람들과 엮여 있다고 보면 됩니다.”

“대부분이요?”

“네, 그렇습니다. 진짜 정치는 대중들의 눈앞이 아닌 은밀한 밀실에 이뤄지죠. 저는 일을 하면서 그걸 제대로 느꼈습니다.”

존 라쉬는 목소리를 높이고는 손짓을 하며 기업과 정치의 유착 관계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존 라쉬의 말에 따르면 이권 세력과 정치는 아주 밀접한 관계라고 한다.

정치인은 권력을 빌려주는 대가로 이권 세력에게 돈을 받아먹는 상호협력 관계라고 한다.

그렇게 검은돈을 받아먹은 정치인은 다시 자금을 가지고 권력을 획득하는 구조. 사실상 돈이 권력이고, 권력이 돈이었다.

“세상 참 더럽네요.”

태범은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운 현실에 아쉬워했다.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이라고 현실을 알아갈수록 보이는 어두운 면에 가슴이 시려 왔다.

“제약 회사뿐만 그런 건 아니겠죠. 미국에서는 로비가 합법일 정도로 정경 유착은 흔한 일이죠. 하지만 그중에도 가장 심한 것이 바로 제약 회사입니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장사는 그 무엇보다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죠. 알약 한 개를 수백, 수천만 원으로 변하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 곳이 바로 제약 회사의 힘입니다.”

존 라쉬는 현실의 어두운 민낯을 태범에게 계속해서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제약 회사의 이권 세력이 어떤 모습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대표님이 이긴 것 같지만 그들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이상 위협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제가 지금껏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아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무슨 일을 겪으셨는지?”

존 라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피식 콧방귀를 뀌고는 말을 이어갔다.

“총구가 관자놀이에 겨눠질 때, 그 기분 아십니까?”

“설마 그 정도까지라고요?”

“네, 그 정도까지입니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알게 모르게 죽어 나간 사람도 꽤 있을 겁니다.”

“허…….”

대충은 예상했으나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모습이 존 라쉬의 입에서 흘러나오니 태범도 적잖이 당황했다.

“뭐, 제가 한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리실 수도 있을 겁니다. 아무 증거와 흔적도 없으니 말이죠. 하지만 긴장은 절대 늦추시면 안 됩니다.”

“충고 잘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제가 다른 것 좀 물어봐도 될까요?”

“네, 물어보세요.”

“어떤 사람이 존 라쉬 씨에게 도롱뇽 프로젝트 연구 의뢰를 거절하라고 시켰더랍니까?”

잠시 턱을 만지작거리며 머뭇거리던 존 라쉬는 입을 열었다.

“제게 처음 접근했던 사람은 마크 필립스라는 사람입니다. 마틴에서 일하는 직원인데 사실상 로비스트에 가까운 일을 하는 사람이죠.”

“혹시 그 사람 사진은 구할 수는 없을까요?”

“사진이요? 왜 그러시죠?”

“사진 한 장만 있으면 그가 숨기고 있는 비밀을 알아낼 수 있거든요.”

“네?”

태범의 말에 존 라쉬는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흥신소도 아니고 갑자기 사진을 요구하다니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태범은 애써 아무것도 아닌 척 손가락을 저으며 말했다.

“그런 게 있습니다. 사진만 있으면 됩니다.”

“음…… 제가 따로 사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인터넷에 검색하시면 금방 나올 겁니다. 생각보다 대외 활동을 많이 하고 다닌 인물이라.”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찾아서 존 라쉬 씨에게 확인을 받겠습니다.”

적의 정체는 90% 이상 드러난 셈이었다.

이제 남은 10%는 스캐너의 힘을 빌릴 예정이었다.

“제가 좋은 호텔로 숙박을 잡아놨습니다. 한동안은 그쪽에 계시면 괜찮으실 겁니다.”

모든 대화를 마치고 태범과 존 라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존 라쉬의 얼굴은 피곤함이 역력했다.

태범은 그를 좋은 호텔로 안내하며 한국에 있을 때만큼은 모든 지원을 약속했다.

“저기…… 혹시 경호 같은 건 붙여 줄 수 없으신지.”

“아아. 걱정되시면 물론 붙여드릴 수 있죠. 걱정이 많이 되시나 보군요.”

“저도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그놈들이 어떤 짓을 할지 몰라서 말이죠.”

“알겠습니다. 말해 둘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고 편히 쉬다 가세요.”

* * *

스캐너의 능력을 활용하면서 얻은 자신감.

태범은 세상의 그 누구든 될 수 있었기에 미래에 대한 성공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자꾸만 존 라쉬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었다.

존 라쉬와 대표실에서 대화를 나눌 때는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여줬지만 홀로 있는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모르는 불안함이 느껴졌다.

“설마 날 찾아와서 죽이기라도 하는 거 아니야?”

태범은 최근 의문의 인기척에 대한 의식이 심해지고 있었다. 존 라쉬의 말에 더해지며 등 뒤에 오싹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말로 안 되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존 라쉬의 말처럼 그들이라고 다를까. 태범은 경호 문제에 더욱 신경을 쓸 필요가 있어 보였다.

‘집을 옮기든지 해야지. 아무래도 이 집에 귀신이 붙은 것 같아.’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주로 하던 태범이 초자연적 현상을 가지고 골똘히 생각했다.

태범이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초자연적 현상을 믿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스캐너의 능력을 사용함으로써 초자연 현상에 더욱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 하는 일은 논리의 이성적인 판단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애초에 마법과 같은 스캐너의 능력은 초자연 현상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방 안 구석에 있던 스캐너가 갑자기 어떻게 이런 기능을 하게 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뒤통수를 따갑게 만드는 인기척.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그저 하얀 벽만 있을 뿐이다.

모든 게 초자연현상으로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상황들이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태범은 스캐너를 작동시켰다.

[생물학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71%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72%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스캔만 마치고 그 자식들을 파헤쳐야겠어.’

존 라쉬가 말한 마크 필립스의 사진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에 그의 이름과 세계 1위 제약 회사인 마틴을 검색하면 곧장 그의 얼굴이 이미지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는 심장병 치료제를 중국 생명 공학 기업과 독점 권리를 약조하는 계약 장면에 떡 하니 있었다.

존 라쉬에게 마크 필립스의 이미지를 한 번 확인한 뒤, 그의 사진을 서랍 속에 모셔뒀다.

태범은 ‘생물학’ 스캔을 마친 뒤, 마크 필립스의 지식을 스캔할 계획이었다.

지식 속에는 정보가 있고, 정보 안에는 비밀이 들어있다.

스캐너는 능력을 주는 동시에 비밀까지 알아내는 일까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 * *

한 달이 지나고 태범에게 많은 변화가 시작 있었다.

일단 도롱뇽 프로젝트는 성공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영국 분자 생물학 연구소뿐만 아니라 심지어 중국에 있는 연구소까지 도롱뇽 프로젝트에 관한 연구 의뢰를 모두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변화를 열망하는 다수의 사람들의 힘에 못 이겨 패배를 선언한 것이었다.

그 결과 도롱뇽 프로젝트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필요로 하던 데이터인 염기서열까지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권 세력과 정치적 로비 관계로 단단히 엮여있어.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검은색 차량 석 대가 삼에스 생명 공학 연구소 앞에 섰다.

삼엄한 경호로 주변에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자리를 잡았고 연구소 입구는 잠시 출입이 불가능했다.

주변 상황이 모두 확인되고 나서야 차량에서 내렸다.

강태범.

주위를 살피며 차에서 내린 건 태범이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 태범은 세계적 인물로 성장해있었다.

“전임상 실험은 마무리됐습니까?”

“네, 완전 대박입니다.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태범을 안내하고 있는 홍동하 팀장은 그 어느 때보다 신난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연이어 발생한 문제로 항상 울상이었던 그가 지금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태범은 연구소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재생 세포의 임상 실험 장소에 섰다.

“여깁니다.”

“오오!”

시험실 안에 쥐를 본 태범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쥐의 잘린 꼬리에서 새하얗게 새살이 돋더니 새로운 꼬리가 자라나고 있었다.

마치 도롱뇽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표님, 옆에 있는 쥐도 한 번 보시죠.”

“옆에 있는 거요? 헉!”

이번에는 잘린 다리였다. 골조직부터 단백질의 일종인 손톱 그리고 지방층까지 모두 자라나고 있었다. 이건 과학계의 혁명이었다.

“보시다시피 신체의 전 부위에서 재생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생물 화학 공식을 통해 ERK의 세포 재생 기능을 동물 세포에 적용시킬 수 있었습니다. 아마 임상시험에서도 같은 결과를 나타낼 것으로 보입니다.”

“하하. 이제야 끝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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