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61화 (161/188)

# 161

태범과 연구원들은 기다란 사각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그리고 태범이 가장 먼저 입을 떼며 대화를 시작했다.

“다들 고생이 많으실 텐데, 지금까지 잘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계획과 달리 도롱뇽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모든 인원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태범은 이를 잘 알고 있었고 격려의 말 한마디 정도는 해줄 필요가 있었다.

“고생은요. 저희보다는 대표님이 더 신경을 쓰고 있을 텐데요.”

가운데 상석 자리 왼쪽에 앉아 있는 삼에스 생명 공학의 조세윤 사장이 손사래를 치며 태범을 가리켰다.

태범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저만큼이나 여러분들도 고생한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힘든 점 있으면 이 자리에서 한마디씩 해보세요.”

“…….”

태범의 말에 모두가 묵묵부답이었다. 상급자가 어려움을 털어놓으라고 해서 이를 쉽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태범은 좀 더 온화한 표정을 짓고는 연구원들에게 손짓을 하며 다시 한번 말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파악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연구에 있어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저한테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친구처럼 편하게 들어주겠습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려도 될까요?”

다들 말을 망설이고 있던 찰나, 테이블 끝자리에 앉아있던 여성 연구원이 용기 있게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태범의 손짓을 하자 여성은 말을 시작했다.

“저희가 정부에게 보낸 임상 시험 연구 계획서가 대부분 불허를 받고 돌아오고 있습니다. 줄기 세포와 관련한 규제가 너무 심해서 일의 진척이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머릿속에는 해야 할 연구 과제들이 산더미인데 출발조차 힘드니 너무 어렵습니다.”

“그렇죠. 과거 줄기 세포와 관련한 큰 사건 때문에 규제가 심한 건 사실이죠. 하지만 저희를 막고 있던 규제는 모두 사라질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그럼 다음 분?”

태범은 여성 연구원의 걱정을 단칼에 답해줬다.

너무도 간결하게 해답을 내놓으니 질문을 한 여성 연구원이 당황할 정도였다. 그녀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다음 말씀하실 분 없나요? 다음.”

또 다시 시작된 태범의 질문 요청에 연구원들은 시선을 옮기며 눈치를 봤다. 그리고 마지못해 홍동하 팀장이 손을 들었다.

“계속 문제를 전해드려 죄송했습니다. 저 또한 작업하면서 이런 난관을 겪는 건…….”

“워워, 아닙니다. 사과를 받고자 이 자리에 온 게 아닙니다. 제게 지금 겪고 있는 어려운 점을 말해주세요.”

어려운 점을 말하라고 했는데 홍동하 팀장은 사과를 하고 있다.

태범은 그의 말을 자르곤 다른 대화를 요청했다. 그러자 홍동하 팀장은 잠깐 망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염기 서열 분석 데이터가 꼭 필요한데 지금 그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직 영국 연구소 측에서는 아무 말이 안 나와서 말이죠.”

“아! 아마 여러분들이 가장 궁금한 게 그거겠죠. 그놈의 장비가 뭐라고…… 하지만 그것도 걱정하지 마세요. 곧 해결될 문제입니다. 오늘 이후로 말이죠.”

태범은 연구원들의 걱정을 너무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바라보는 연구원들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쉽게 이야기를 하니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하지만 태범이 한 말은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의 전초전을 예고한 것이었다.

“자! 다들 이야기 끝났죠? 그럼 제가 가져온 선물 보따리 좀 꺼내 봐도 될까요?”

서로 눈치 보기 바쁘고 더 이상 나올 말도 없어 보였다.

이쯤 됐다 싶어 태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여유 가득한 미소와 함께 두 손을 펴며 말했다.

“선물 보따리요?”

‘선물’ 이라는 단어에 연구원들은 본능적으로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리고 태범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더해져,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법입니다. 오늘부로 저희를 고생하게 만든 이 겨울에서 벗어나게 될 겁니다.”

태범은 허리를 숙여 테이블 밑에 놓인 서류가방에서 누런색의 서류봉투 하나를 꺼냈다.

신문사와 기사 인터뷰를 할 때 보여줬던 그 서류 봉투였다. 속 내용이 아무것도 없었던 그 서류.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태범은 봉투 안에서 서류를 꺼내곤 책상 위로 던졌다.

“제가 기자 인터뷰에서 도롱뇽 프로젝트와 관련한 핵심 기술이 있다고 했죠? 바로 이겁니다.”

“저…… 정말입니까?”

조세윤 사장이 손을 뻗어 책상 위 서류를 자기 앞에 가져다 놨다. 그리고는 옆 연구원과 함께 이를 살펴보고 시작했다.

이들 역시 처음 보는 서류의 내용이었다.

한 달 전에 태범이 기자들에게 호언장담했으나 그때는 단지 여론을 몰고 시간을 끌기 위한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연구원들조차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당연했다. 그때는 아무것도 없던 빈 종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 종이 위에는 새로운 공식과 기술이 나타나 있었다.

“아…… 암세포요?”

서류를 보던 조세윤 사장은 놀란 듯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다른 연구원들도 서류의 내용이 궁금한지 사장 앞에 놓인 서류를 뚫어지라 주시했다.

“암세포와 도롱뇽의 재생 세포는 어떤 세포냐 차이지, 세포의 증식이라는 개념에서는 똑같죠. 저는 이 포인트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해 세포분화에 관해 공식을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게 공식화가 가능한 겁니까? 아직 그 도롱뇽 세포 재생 유전자에 대한 모든 규명도 안 됐는데 말이죠.”

“합리적인 추측입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승부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기존의 공개된 세포의 메커니즘과 화학적인 반응식을 토대로 제가 상상력을 발휘해봤습니다.”

태범이 가진 능력을 모두 쏟아 부은 결과였다.

수리, 물리, 생물학 그리고 창의성, 상상력까지 스캐너를 통해 얻은 모든 지식과 능력을 통해 머릿속에 가상의 연구실 하나를 만들었다.

그곳은 다른 세계였다.

폰 노이만, 아인슈타인, 다빈치, 제프리 코너 홀 그리고 강태범. 그 세계에서는 태범이 스캔한 인물들이 둘러앉아 머리를 맞댔다.

현실의 데이터를 토대로 추론을 하지만 가상의 인과관계가 포함된 결과이기도 했다.

“저희도 봐도 되겠습니까?”

다른 연구원들도 참다못해 사장 앞에 놓인 서류를 옆으로 돌리며 살펴봤다.

“세포외 신호조절인산화효소(ERK)와 세포외 기질(ECM) 모두 악성 세포를 분화시켜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죠. 이를 오직 필요 신체의 분화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ERK활성 통로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한 공식입니다.”

태범의 설명이 곁들어지자,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난다 긴다 하는 생물학자인 연구원이지만 세포 분화를 자유자재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방식은 난생처음 듣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아실 겁니다. 포유류인 인간 또한 세포를 분화시키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걸요. 칼에 손을 베였을 때, 그 상처 사이로 세포가 다시 차오르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실제로 다양한 유전자가 세포 재생을 일으키고 있죠. 결국 이 재생 세포를 어떻게 통제할지가 관건이었어요.”

태범은 기존에 공개된 연구 자료와 삼에스 생명 공학에서 연구 중인 자료를 토대로 도롱뇽 재생 세포에 관한 조각을 맞추고 있었다.

아직 염기 서열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해 결과를 증명은 할 수 없으나 논리적인 추론과 예측으로 어느 정도 판단은 가능했다.

“이제는 정말 염기 서열 데이터만 손에 있으면 당장이라도 이 기술을 현실화시킬 수 있습니다. 코앞에 놓인 기술을 보고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죠?”

“그럼 이 기술을 공개할 생각하실 건가요?”

조세윤 사장이 말했다.

“역시 똑똑한 분들이라 저랑 통하는 게 있군요. 맞습니다. 저는 이 기술의 일부를 언론에 흘릴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기대심은 더욱 증폭되고 기존 이권 세력이 견디지 못할 만큼 공격이 시작될 겁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무기가 생기는 셈이죠.”

태범의 말에 모두가 넋 나간 표정이다.

이 정도의 연구 결과가 있다면 그 과정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비밀 연구라도 한 것처럼 결과가 본인들 앞에 뚝 떨어졌으니 놀랄 수밖에.

서류를 앞에 두고 있는 연구원들은 기술 내용을 재차 확인하지만 오류를 찾아볼 수 없는 논리적인 기술이었다.

“도대체 이 대단한 걸, 혼자 어떻게 하셨는지…….”

“저 혼자 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저에게 보내주신 연구 자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여기에는 여러분의 흘린 땀이 깃들어 있습니다.”

* * *

대한민국.

[대한민국 의료 산업 세계 최고로 우뚝 설 기회, 정치권 모두 도롱뇽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앞으로 국가적 지원을 나서기로 결정.]

영국.

[영국 의회, 영국 분자 생물학 연구소와 이권 세력 비리 관계 파헤치기로.]

미국.

[데론 머스크, 도롱뇽 프로젝트는 인류 사회 전체를 위한 프로젝트이다. 이를 거부하는 건 곧 인류 발전을 막아서는 행위.]

일본.

[일본 정부, 강태범 대표의 연구를 적극 도울 것, 의료계, 과학계 지지선언 이어져.]

독일.

[독일 기업 삭스마킬, 최첨단 염기 서열 분석기 지원키로.]

비밀에 싸여있었던 태범의 세포 재생 기술의 일부가 세상에 공개되자 세계 언론은 더욱 뜨겁게 타기 시작했다.

더 이상 태울 재도 없을 만큼, 맹렬한 기세로 도롱뇽 프로젝트를 지지하며 이를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언론뿐만이 아니다. 여론 역시 불타오르고 있었다.

인류의 의료 산업을 뒤집을 만한 기술이 코앞에 있는데 사람들이 이를 막으려는 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정경유착과 로비 관계를 모두 파헤쳐야 한다는 청원이 세계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었다.

세상의 환자는 어디든 있는 법이었다. 일반 서민들뿐만 아니라 특권층까지도 몸이 불편한 사람은 어디든 존재했다.

돈과 권력은 건강 앞에서 무너지기 무릎을 꿇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이들 또한 모두 태범의 기술을 기대하며 강한 서포터가 되어주고 있었다.

* * *

TB 금융 투자 대표실.

“대표님, 손님 오셨습니다.”

외국 손님이었다. 저 멀리 대한민국 반대편, 영국에서 온 손님.

땅딸막한 키에 폭탄 맞은 노란머리, 수더분한 인상을 가진 백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본인을 영국 분자생물학 연구소의 전 연구원 존 라쉬라고 소개했다.

“존 라쉬 씨! 환영합니다.”

태범은 그 누구보다 그를 반겨줬다.

영국 분자 생물학 연구소의 연구 의뢰 거절로 불거진 현재의 문제,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은 존 라쉬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할 가장 중심의 인물이었다.

얼마 전 통화를 할 때만해도 격렬히 태범을 거부했던 그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결국 강한 압박에 못 이겨, 이 자리에 나타난 것으로 보였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열어주셔서.”

적이었긴 하지만 오늘은 손님의 자격으로 온 것이다.

태범은 그가 가져다줄 선물을 기대하며 테이블에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제가 오늘 내뱉는 말은 사실상 목숨을 걸고 하는 말이니 신중하게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중요한 이야기겠죠.”

존 라쉬는 통화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잔뜩 굳은 표정이며 경직된 팔과 척추, 메마른 입술, 떨리는 목소리, 이렇게 직접 그의 모습을 보니 감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대표님이 짐작하고 있는 것 모두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세계 의료, 의약 시장은 이권 세력이 판을 치고 있죠. 그들은 이미 쌓아 올린 단단한 성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왔고 이익에 반하는 배척하기 바빴죠.”

“역시 그랬군요. 당신은 그들의 손을 잡았던 것이고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저희가 살기 위해서는 말이죠. 하지만 이제는 그 손의 위치를 옮길 때가 된 것 같더군요. 대표님에게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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