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태범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대표실의 분위기는 잔뜩 무거워졌다.
기업의 암투와 전쟁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들 전쟁 영화라도 보는 것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태범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앞으로 저는 기업 간 전쟁을 감수하더라도 저의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앞으로 계속 전진할 겁니다. 절 방해하는 그 어떤 세력이 나타나더라도 말이죠.”
태범은 주먹을 쥐고 단호하게 자기주장을 했다.
이는 대군이 몰려 와도 이길 수 없는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 기자들은 그런 모습에 당황하기 바빴다.
편하게 과학 이야기나 들으러 왔는데 얼떨결에 전쟁 선포를 듣게 된 꼴이었다.
“그럼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대표님도 예기치 못한 난관을 경험하시는 것 같은데 기존 사람들에게 알렸던 계획이 틀어지는 건 아닙니까?”
장정우 편집 국장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물론 생각했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저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저한테도 적이 있다는 걸 간과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태범은 말을 하던 도중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책상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기자들 눈에는 이 상황이 무엇보다 흥미로워 보였다. 태범의 입과 행동 모든 게 특종으로 보였고 기자들은 조용히 태범의 행동을 지켜봤다.
서랍 속에서 가져온 건 누런 서류봉투였다.
“그게 뭐죠?”
“여기에 이번 도롱뇽 프로젝트에 핵심 기술이 담겨있습니다.”
“핵심 기술이라면 뭘 의미하는 건지?”
“제가 밤낮을 연구하고 생각한 끝에 발견한 공식입니다. DNA 융합과 인간이 도롱뇽과 같은 세포 재생 프로세서를 작동시킬 수 있는 기술입니다.”
“……!”
하늘에 UFO라도 본 것 같은 반응이었다. 기자들의 검은 동공이 모두 보일 정도로 눈이 커지더니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모든 밑바탕은 설계가 마무리 됐습니다. 단지 이 설계를 완성시킬 부품이 없을 뿐이죠. 저희는 도롱뇽에 대한 DNA 데이터가 꼭 필요합니다. 그것만 있으면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는 데는 식은 죽 먹기가 될 것입니다.”
“오!”
“정말 데이터만 있으면 된다는 말씀입니까?”
“네, 그런 셈이죠.”
태범은 전혀 흔들림 없이 눈을 부릅뜨며 대답했다.
사실은 거짓말이었는데 말이다.
서류 봉투 속에 들어있는 건 빈 A4용지 뭉텅이였다. 태범이 말한 설계 공식 따위는 이 속에 없었다.
물론 연구를 계속 진행하곤 있으나 지금 말하는 것처럼 완벽히 설계된 공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태범은 대중을 상대로 도박을 한 셈이었다.
만약 기존 이권 세력이 항복을 하고 모든 연구소가 태범에게 협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사기꾼으로 몰릴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태범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사람들에게 확신과 기대심을 가져다주는 건 스캐너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과정에 거짓이 들어있을 뿐이지 프로젝트 성공이라는 결과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혹시 그 내용 좀 볼 수 있을까요?”
조상 일보 기자가 태범이 쥔 서류봉투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하. 아직 마무리도 안 된 프로젝트의 중요 공식을 어떻게 보여드립니까. 세상에 도둑놈이 얼마나 많은데요.”
태범은 순간 뜨끔 했지만 웃음과 함께 태연하게 그의 질문을 무마시켰다. 다른 기자들은 조상 일보의 어처구니없는 물음에 ‘물어볼 걸 물어봐야지.’라는 시선을 보냈다.
“대신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이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그때 알게 되실 겁니다. 기자님들이 호기심이 많은 건 아는데 이건 좀 참아주셨으면 합니다.”
“허허. 당연하죠. 저희도 염치가 있죠.”
동이 일보 장정우 편집 국장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기술과 관련한 질문을 건넸던 조상 일보 기자는 괜히 코를 만지작거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나중에 또 이야깃거리가 생기면 기자님들을 부르겠습니다.”
태범이 손뼉을 치며 자리를 끝마쳤다.
“그럼 오늘 대화는 바로 기사화해도 괜찮겠습니까? 가볍게 생각하고 이 자리에 왔는데 생각보다 큰일이라서 말이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서던 도중 중심 일보 기자가 물었다.
“네, 언제든 상관없습니다. 지금 당장 기사화하셔도 됩니다.”
“그럼 고생 많으셨습니다. 또 뵙죠.”
서로 악수를 하며 인사를 건네고는, 기자들은 대표실 문을 나섰다.
“야! 빨리! 특종이다! 특종!”
“이거 빨리 기사화 시켜!”
기자들은 대표실을 나가는 동시에 황금이 뛰며 움직였다. 그러고는 하나같이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걸고는 외쳤다.
역시 기자들 아니랄까, 4명의 기자들은 서로 기사를 먼저 내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대표실 안에서는 점잖아 보이던 사람들이 문밖을 나가자 180도 돌변했다.
그 모습을 본 태범은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 * *
[도롱뇽 프로젝트 난관에 봉착하다.]
[변화를 거부하는 이권 세력.]
[강태범 대표, DNA 데이터만 있으면 프로젝트의 완성은 식은 죽 먹기.]
[이기적인 기업, 전 세계가 분노하다.]
[이권 세력에 대한 보이콧 조짐. 하지만 어떤 세력인지는 정확히 파악은 되지 않아.]
└ 사람들 너무 이기적이다. 아니면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보던가! 뒤에 숨어 힘자랑하는 건 아니지.
└ 아니, 도롱뇽 프로젝트는 어떻게 보면 전인류적인 프로젝트 아닌가요, 지들만 잘 먹고 살겠다고 그걸 방해하면 우짜자는 겁니까! 저건 살인자랑 다름없는 놈들입니다.
└ 내 그럴 줄 알았다. 저놈들이 가만히 있을 이가 있나.
└ 이미 사업에 자리 잡고 있는 이권 세력의 영향력은 무시 못 하죠. 실제로 미국에서도 총기 규제가 쉽게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가 무기 산업의 이권 기업이 정치적으로 많은 개입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것도 마찬가지로 쉽지는 않을 겁니다.
└ 까고 있네. 그냥 다 조져버려야지.
“이거, 이거, 난리도 아니네.”
뜻대로 되고 있었다.
대중들의 기대심에 불을 지피는 동시에 적을 만들어주니 여론은 그야말로 난리법석이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도 마찬가지이다.
도롱뇽 프로젝트는 사실상 전 인류의 의료 문제와 직결 돼 있다 보니 이를 방해하는 세력에 대한 엄청난 분노가 쏟아졌다.
기사를 보던 태범은 계획대로 진행되는 상황이 만족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누군가의 피를 봐가면서 까지 일을 해야 하니 말이다.
“아마 걔네들 가시방식에 올라간 기분이겠죠. 지금 글로벌 민심이 저런데,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을 겁니다.”
같이 모니터를 보고 있던 기술 사업팀 임호진 팀장이 태범의 말을 거들었다.
“그렇긴 한데, 아직 부족합니다. 이미 땅속에 강하게 박힌 돌을 굴러온 돌이 빼내기란 쉬운 게 아니죠. 이 정도 가지고는 저 돌을 빼내기가 힘들 겁니다.”
“하긴 그렇겠네요. 미국의 총기 규제 이야기도 수십 년 전부터 나온 말이었는데, 여전히 그대로인 것 보면 보이지 않는 힘이 그만큼 강하다는 거겠죠.”
“그래도 언젠가는 무너지겠죠. 단지 이놈의 시간이 문제죠. 시간!”
“아…….”
“그건 그렇고 영국 갈 준비는 다 하셨습니까? 이제 거기서 몇 달간은 사셔야 하는데 챙겨갈 게 많을 텐데요.”
“하하. 준비할 게 뭐 있나요. 그냥 몸만 가면 되죠.”
“하긴 수천억대 자산가 앞에서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죠?”
내일 임호진 팀장은 영국으로 떠날 계획이었다.
딥 멀티와 관련해 새로운 기술 사업을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앞으로 한국에 있는 태범과 런던대의 가교 역할을 하며 기술적인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그래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북한이나 소말리아에 가는 것도 아니고 영국 가는 건데, 뭐 큰일이라도 있겠습니까? 대표님이 지시한 대로만 잘 하고 오겠습니다.”
“호진 씨는 충분히 가능성을 열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영국에 가서 딥 멀티의 가능성을 열어주세요.”
* * *
영국 분자 생물학 연구소.
“아하. 이거 어떻게 하지.”
분자 생물학 연구소 연구 의뢰 담당 직원은 이도 저도 못하는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질 판이었다. 일단 기존 세력과 손을 잡고 있긴 했지만 태범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이라고 해봤자 감히 기어오를 수도 없는 조그마한 기업들을 밟아주는 것 정도였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낼 수 없도록 기존 세력을 견고하게 만드는 역할이 이 직원이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인물로 떠오르는 강태범은 그저 굴러온 돌 수준이 아니었다.
‘굴러온 바위.’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커다란 바위가 되어 굴러오고 있었다.
연구원은 더 이상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하루 종일 걱정으로 가득했다.
인터넷만 켜면 도롱뇽 프로젝트와 관련한 뉴스로 가득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욕을 쏟아내는 것만 같았다.
이럴 바에 그냥 평범하게 살 걸 후회했다. 심지어 본인의 팔목에 쇠고랑을 찬 최악의 모습까지 상상하고 있었다.
마음이 여린 연구원이 감당하기에는 일이 너무 커진 것이다. 눈앞에 이익만을 보고 혹해서 잡은 어둠의 손에 이제는 구렁텅이로 끌려갈 판이었다.
그는 그렇게 걱정에 잠을 못 이루며 이권 세력과 손을 놓기 위해 몇 번이나 본인의 뜻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 그대로 모든 걸 유지하세요. 아시겠죠?”
“하지만 이러다가.”
“뭐? 그래서요? 자수해서 감옥이라도 가고 싶다는 거예요? 당신 같은 공붓벌레가 그 험악한 곳에 가서 견딜 수나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괜히 감옥 가서 후장 망가질 생각하지 말고, 조용히 입이나 다물고 있어요.”
* * *
영국에 있는 임호진 팀장과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런던대에 있는 연구원들과 함께 새로운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영국의 소식통이 되어 태범에게 많은 소식을 전달해줬다.
“분자 생물학 연구소의 의뢰 연구 담당 직원이 교체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아무래도 대표님 말대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거야 뻔할 뻔 자죠. 저희 문제로 내부에서 갈등이 생겼나 봅니다. 그리고 반기를 들고 진 사람이 굴러 떨어지게 된 것이고요.”
“일단 그 교체된 직원하고 접촉해보세요. 분명 많은 걸 알고 있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 * *
[생물학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50%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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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이 51% 진행되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태범의 연구는 많은 진척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면, 여전히 염기서열 데이터를 습득하는 데는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
영국의 분자 생물학 연구소나 중국의 유전체 연구소에 있는 염기서열 분석기를 사용해야만 데이터를 빠르게 얻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임시방편으로 국내에 있는 염기서열 분석기를 통해 연구에 나서곤 있으나 현저히 떨어지는 기능 때문에 커다란 진척은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여론의 압박에도 꿈쩍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이권 세력의 영향은 무시 못 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할 때 영국에 있는 임호진 팀장이 좋은 소식을 물어다 왔다.
“대표님! 찾았습니다. 그 연구원.”
“영국 연구소에서 퇴사한 그 직원 말입니까?”
“네, 맞습니다. 과학계는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 아닙니까. 런던 대에 생물학 교수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 연락처까지 받아냈고요.”
“정말입니까? 잘하셨습니다. 이쪽으로 바로 연락처 넘겨주세요. 제가 연락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