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TO. 강태범 대표님.
저는 작년 교통사고를 당해 척추 손상으로 후천적 하반신 마비라는 증상을 갖게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대표님이 도롱뇽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척추 신경 손상 환자의 문제를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매일, 매일이 우울증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벚꽃이 나무를 화려하게 수놓을 때, 하늘이 하얀 눈을 품을 때, 여름 햇살이 싱그럽게 내리쬘 때 모두 저는 골방에 처박혀 텁텁한 세상과 함께했죠.
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날 버린 것 같았고, 쓸모없는 두 다리로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죠. 하지만 집안 침대에 누워만 있던 저에게는 한 줄기 희망이 생겼습니다.
강태범 대표님이 도롱뇽 프로젝트를 발표했을 때 제게는 또 다른 인생의 기회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대표님을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이 간절함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할 텐데…….”
간절한 이가 태범에게 보낸 하나의 응원 편지였다.
손바닥만 한 편지지 한 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간절함과 기대감이 모두 담겨 있었다.
태범은 이런 편지를 읽어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한 것이 동정심을 느끼곤 했다.
여러 인물의 능력이 한 곳으로 들어와서 그런 건지, 스캐너를 사용할 때마다 감수성과 공감 능력도 점점 더해지고 있었다.
태범은 다 읽은 편지지를 고이 접고는 다시 편지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파란색 박스 안으로 던졌다.
파란색 박스는 태범이 읽은 편지를 모아둔 곳이었다. 사람들의 성의를 생각해 시간 날 때마다 가끔씩 읽기는 했는데 어느새 한가득 이었다.
이렇게 읽은 편지는 컴퓨터로 스캔되어 디지털 정보로 저장시켜 기록으로 남겼다. 종이 문서는 물리적으로 수명이 있지만 디지털 자료는 영원하니 말이다.
여전히 못 읽은 편지만 해도 한 트럭은 될 것이다.
1개를 읽으면 10개가 오니 태범의 인기가 식지 않는 이상 모든 편지를 읽는 건 영원히 불가능해 보였다.
어차피 편지를 읽어 보지 않더라도 내용은 같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속에 담긴 건 프로젝트 성공에 대한 열망이었다.
“대표님? 대표님!”
“아! 네.”
비서인 강은미가 대표실 문을 빼꼼히 열고는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요. 아무 일 없어요.”
“대답이 없으시기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서요.”
“언제 호출했어요?”
“네, 곧 있으면 기자들 올 시간이거든요. 스케줄 알려드리려고 노크했는데 반응이 없으셔서 인터폰으로 호출을 했는데도 아무 응답이 없으셔가지고요.”
“아. 그랬어요?”
“혹시 과로로 쓰러지신 건 아닌가 걱정했죠.”
“하하. 제가 정신이 없네요. 요즘 생각이 너무 많아서요.”
태범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어 이마를 붙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대표님은 마치 고3 제 조카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해야죠.”
“사람이 일만 하고 어떻게 살아요. 대표님 건강도 신경 쓰면서 하세요.”
강은미의 걱정 어린 말에 태범은 한 가지 비유를 들며 말했다
“은미 씨, 신발장에 아름다운 명품구두가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봐요. 근데 이걸 신지 말고 바라만 보라고 하면 견딜 수 있겠어요?”
“음…… 그럴 바에는 차라리 구두가 없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신지 못하는 아름다운 구두라. 그거 완전 고문일 것 같아요.”
상상만 해도 끔찍한지 강은미는 미간을 모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죠? 같은 거예요. 지금 제가 가만히 있는 건, 그 구두를 신지 않고 바라보는 것과 똑같은 이치죠.”
태범의 말에 강은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약간 아리송한 표정이다.
당연한 반응이다. 능력의 핵심인 스캐너 이야기가 빠졌으니 말이다. 태범은 강은미의 반응을 살피고는 미소로 답해줬다.
그러자 강은미 다시 대표실을 나가더니 길고 조그마한 황금빛의 무언가를 가져왔다.
“이거 하나 드세요? 홍삼 진액이에요.”
“홍삼?”
“네, 하나 쪽 빨아 드시면 피로가 싹 가실 거예요.”
강은미가 내민 건 요즘 TV 광고에서 나오는 홍삼 진액이었다. 광고에서 보면 피곤에 쪄든 직장인이 이 홍삼 진액을 입에 쪽 빨아 넣자 활기 가득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정말 그럴까.
평소 건강식품을 챙겨먹는 것과 거리가 먼 태범에게는 홍삼이란 부모님이 억지로 건네서야 한 번 먹을까 말까한 식품이었다.
“고마워요.”
강은미에게 받은 홍삼 진액 한 포를 주머니에 넣으려 하는데 그녀의 시선이 태범의 입과 홍삼을 번갈아가며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었다.
‘그래. 성의가 있는데.’
태범은 주머니에 넣으려던 걸 다시 꺼내 들어, 포장지를 까고 입으로 쪽 빨아먹었다.
‘으…… 쓰다.’
강한 쓴맛 때문에 정신이 확 든다.
아무리 쓴 게 보약이라고는 하지만 입맛에는 영 아니다. 이럴 바에 차라리 짧고 굵게 살고 싶다.
“그럼 손님맞이할 준비하죠.”
아직 입안에 맴도는 쓴맛 탓에 태범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 * *
태범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는 4대 신문사의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TV 방송이 아닌 간단하게 인터넷, 신문 기사에 내보내는 인터뷰였다.
마음 같아서는 많은 언론사를 부르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대형 기자 회견이 될 것만 같아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기사는 한곳에서 나면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건 시간 문제이니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이번 인터뷰의 명분은 도롱뇽 프로젝트에 관한 중간 보고였다. 하지만 태범이 가진 속내는 따로 있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나올 이야기였다.
“동이 일보에 장정우 편집 국장입니다.”
“국장님이 직접 취재도 하시나 봐요.”
“이렇게 유명하신 분을 인터뷰하는데 제가 직접 나와야죠. 하하.”
국장 둘에, 차장 둘. 태범과의 만남이 특별했는지, 신문사에서 보낸 기자들은 하나같이 직급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요즘 강태범 대표님 덕분에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옆에 있는 중심 일보의 기자가 말했다.
“네? 뭐 문제라도 있나요?”
“그게 아니라요. 요즘 쓸 기사가 넘쳐나다 보니, 기자들이 놀아나서 한 말입니다. 대표님을 중심으로 이슈 되는 이야기들이 아주 많다보니까, 취재할 기삿거리들이 다양해지더라고요. 요즘은 인공 지능인지 뭐니 해서 아주 재미보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런가요? 그거 잘됐네요.”
태범의 능력이 일으키는 세상의 변화는 많은 기삿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사람들도 변화하는 세상을 맞춰가기 위해서는 정보를 얻어야만 했다. 당연히 언론사가 내보내는 기사에 주목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앞으로도 대표님에 관한 좋은 이야기만 쓸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장담하는데 지금보다 앞으로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펼쳐질 테니 잘 주워만 담으시면 될 겁니다.”
찻잔을 기울이며 화기애애하게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다.
찻잔이 비어 갈 때쯤, 태범은 본격적으로 도롱뇽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제가 이 자리를 마련한 건, 많은 사람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기대하고, 궁금한 게 많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태범은 가장 먼저 인터뷰의 명분을 설명했다.
“저기 보세요. 저게 다 편지입니다. 아직 창고에 가면 저런 박스가 수없이 많이 있죠.”
“와. 저게 다 편지라고요?”
태범이 손으로 편지 박스를 가리켰다. 기자들은 고개를 돌려 테이블 뒤쪽에 있는 박스를 쳐다봤다.
“사람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얼마나 간절하고, 기대심이 있는지 보여주는 예죠.”
“역시 대단하네요.”
편지를 본 기자들은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압도적인 편지의 양에 한눈에 봐도 도롱뇽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연구도 기술의 일종이다 보니까.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으나 대략적인 연구 윤곽과 진척 상황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프로젝트에 관한 대중의 관심을 설명하고 다음으로는 좀 더 자세히 연구 과정에 대한 설명에 나섰다.
태범은 미리 준비한 자료를 기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며 말을 이어갔다.
“현재 연구는 도롱뇽 세포 DNA에 대한 염기 서열을 분석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태범이 프로젝트 과정에 대해 입을 열자 기자들은 하나같이 태범의 말에 푹 빠져 집중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녹음기가 올려 있고 각자 수첩에 뭔가를 끼적거렸다.
“그리고 도롱뇽 세포를 통해 인간 세포를 모방할 수 있도록 화학적 공식을 세우고 있는데.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염기 서열에 대한 데이터이기 때문에 이걸 알아내기 전까지는 연구 진행이 진척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염기 서열 분석은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나요?”
“음…… 자체적으로 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장비는 저희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해외 기관에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하지만 앞으로 차세대 염기 서열 분석 장비를 도입할 계획은 가지고 있습니다. 장비가 도입된다면 일의 진척 속도를 아주 빨라질 겁니다. 단지 최근 조그마한 문제가 생겨서 고생하고 있을 뿐이죠.”
“네? 어떤 문제 말씀이시죠?”
태범은 속내를 드러내기 위해 슬쩍 떡밥을 던졌다.
그리고 기자들은 떡밥을 물었다.
“추측일수도 있으나, 저희의 연구 개발을 막으려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 납득할만한 이유 없이 연구 의뢰가 거절되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습니다.”
“아! 그런가요? 어디서 그런…….”
기자의 눈이 커졌다. 특종이다! 라는 표정.
기자는 몸을 태범 쪽으로 기울이며 관심을 표현했다.
“아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명칭은 말해줄 수 없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분명 이건 방해 공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확실한 증거 없이 의심만으로 쉽게 떠벌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간접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것만으로도 압박이 갈 것이다.
죽더라도 한 번에 숨통이 끊어지는 것이 낫지, 천천히 고통을 느끼며 죽는 건 지옥이랑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방해세력에 천천히 다가오는 압박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기자는 침을 꼴깍 삼키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그 세력은 어디인지, 대략적으로는 말씀해줄 수 있나요?”
“그거야. 도롱뇽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피해를 입을 사람들이겠죠.”
“기존 이권 세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단정할 수는 없으나, 그와 관련된 기업일 가능성이 많겠죠. 물론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행동이라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의적인 행동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건 전 아니라고 봅니다.”
기자들의 표정이 완전히 굳었다. 그리고는 기자답게 눈치 하나는 빨라서 태범의 속내를 파악하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기존의 이권 세력이면 규모가 상당히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분명 대표님에 대한 압박도 심하게 있을 텐데, 이걸 어떻게 대응할 생각이신지?”
기자의 질문에 태범은 미간을 모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절 압박하는 건 곧, 세상의 변화를 원하는 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찢어 놓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보다는 그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다수가 원하는 커다란 변화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