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경기도 하남, 배영 그룹 이희현 명예 회장의 별장.
“뉴스 잘 봤습니다. 태범 대표는 참 예측 못 할 사람이더라고요. 설마 거기서 그런 말을 할 줄 생각도 못 했습니다. 어쨌든 아주 멋있었습니다. 허허.”
태범을 바라보는 이희현 명예 회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바짝 말라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활짝 폈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것이 당장이라도 휠체어에서 일어나 태범을 껴안을 기세였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덕분에 몸은 이래도, 정신은 본인 전성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허허. 요즘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찾는지 몰라요.”
최근 이희현 명예 회장의 이름이 사람들 입속에서 많이 거론되고 있었다. 태범과 엮기고 했고 도롱뇽 프로젝트의 많은 투자액에 이희현 명예 회장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배영 그룹의 주식이 영향을 받아 소폭 상승하기도 했다.
“괜히 쉬시는데 불편함을 겪는 건 아니신지.”
“안 그래도 온 종일 이 휠체어에 앉아, 방구석에 돌아다니는 것도 지겨울 참이었는데, 지금은 재미있고 좋습니다.”
“그럼 다행입니다. 앞으로 더 놀랍고 재밌는 걸 보여드릴 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태범의 말에 이희현은 허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허허허. 정말 보면 볼수록, 정주인 형님을 닮았단 말이죠. 그 강단이 있는 말투부터 사람들을 놀라 게 할 만한 그 배짱까지!”
“제가 정말 그렇게 닮았나요?”
“그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혼자서 우뚝이 앞서 나가는 것, 마치 멈추지 않은 폭주 기관차 같다 할까. 둘 다 그런 느낌의 인물이죠.”
한다 그룹의 창업주 정주인 전 회장이 도대체 얼마나 닮았기에 저러는 걸까. 태범은 언제 한번 정주인 회장을 스캔해볼까도 생각했다.
“혹시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겁니까? 어쩜 그렇게 자신감이 넘칩니까?”
“네?!”
태범은 당황스러웠다. 마치 스캐너의 비밀이라도 알고 있는 한 질문으로 들렸기 때문.
태범은 이 세상 무엇보다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지만 항상 이런 질문이 들어올 때면 심장이 뜨끔했다.
“자신감에 그 원천이 있을 거 아닙니까?”
“아…… 네, 저는 그냥 제 스스로를 믿을 뿐이거든요.”
태범은 대강 둘러댔다.
사실 믿는 건 스캐너의 능력이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믿는 것 또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스캐너 능력은 본인에게 각인되며 사용되니 말이다.
“내가 이 질문을 과거에 주인이 형님한테도 했었거든요. 그 형님이 70년대 대한민국에 세계 최고 조선소를 짓겠다고 할 때 모두가 그렇게 반대했습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본인 또한 마찬가지로 그렇게 말했었죠.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이루셨겠죠. 세계 최고의 조선소.”
“하하. 맞아요. 결국은 그 형님의 뜻대로 밀고 나가고, 성공을 이뤄냈죠. 모두가 틀린 것이었고, 정주인 형님이 옳았던 것이었어요. 그래서 훗날 내가 물었죠. 형님! 혹시 남모르는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겁니까? 근데 뭐라 하시는 줄 아십니까?”
“아니요. 모르겠습니다.”
이희현 명예 회장은 목을 가다듬더니, 정주인 회장의 특유의 목소리 톤을 흉내 내며 입을 열었다.
‘난 단지 하늘의 부름을 따를 뿐이었네.”
“하늘이요?”
“그래, 하늘이요.”
“그게 무슨 의미죠?”
“사실 나도 아직 까지는 뭘 의미하는 건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그 형님이 무슨 종교를 믿은 건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건지는 말이죠. 하지만 확실한 건, 그 형님의 마음속에는 단단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 그거 하나는 확신하죠.”
이희현 명예 회장은 잠시 과거 추억에 잠기며 본인과 정주인 전 회장과의 인연 그리고 사업 이야기까지 많은 말을 해줬다.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가 옛날 옛적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은 느낌, 같은 사업가라 그런지 이야기 또한 흥미 있는 내용이었다.
태범은 이희현 명예 회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같이 추억을 공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아들이 대범 대표의 반만 닮았으면 좋겠어요. 이놈이 하필 날 닮아서 술과 여자에 그렇게 집착을 하니 말이에요.”
“아..”
“태범 대표라 대라 솔직히 말하는 건데 나도 젊었을 때는 참 막무가내로 살았죠. 물론 사업이 최우선이긴 했지만 남자들이 조심해야 할 걸 모두 다 하고 있었으니 말이에요. 허허.”
대화가 깊어지다 보니, 솔직한 속내까지 입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태범에게 털어놓을 지경이니 태범이 꽤나 이희현의 말을 잘 들어 줬던 모양이다.
“혹시나 내가 어떻게라도 되면 남겨진 우리 아들 좀 잘 돌봐줘요. 아직은 좀 철이 없어도, 재능만큼은 있는 아이니 말이에요.”
이근휘 회장도 그렇고 이희현 명예 회장까지. 세월이 끝자락에 모두 자식 걱정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결같이 두 회장은 태범에게 자기 자식들을 잘 봐달라고 한다.
태범에게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회장들의 부탁하는 자식의 나이가 다들 최소 40이 넘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나이가 적어도 태범에게는 아저씨뻘이었다. 이 아저씨들이 한창 혈기왕성할 때 태범은 걸음마 연습을 하고 있었을 나이인데 지금 잘 돌봐 달라하니 느낌이 참 어색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근데 가장 좋은 건 회장님이 오래 사셔서 가족 곁에 계시는 겁니다. 저보다는 부모님 곁에 있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겁니다.”
태범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희현 명예 회장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지 고개를 숙이다가 질문을 건넸다.
“근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시죠.”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이죠. 도롱뇽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내가 이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겁니까?”
이희현 명예 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그 역시 사람이었다. 삶과 생존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
본인 스스로가 늙고 죽어가는 사람이라고 자주 표현은 했어도, 생존에 대한 본능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인가 보다.
“확실한 건 그때 가봐야 알 것 같지만 의료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은 확실합니다.”
“정말……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군요.”
* * *
“대표님은 잠을 자긴 잘까? 하루 종일 일만 하시는 것 같아.”
“12시쯤 저녁에만 잠깐 집에 들렀다가 다시 오신다잖아.”
“아후. 어쩌겠어. 도롱뇽 프로젝트를 꼭 성공시키겠다고 모두에게 그렇게 떠들었는데. 저러다가 쓰러지는 건 아니신지 걱정되네.”
대표실 앞, 비서실 직원 두 명이 태범의 업무량에 놀라워하며 쑥덕거리고 있다.
도롱뇽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겠다고 발표한 지 한 달, 그동안 태범은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만 할당하고 있었다.
정말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표실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니 가끔 비서실 직원들은 태범이 안에서 쓰러진 건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다.
정말 어마어마한 몰입이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서적과 논문, 보고서 등 각종 서류들이 대표실로 들어갔고 태범은 이 모두를 소화해 내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나요?”
“어! 차장님.”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비서들 앞에 이희준 차장이 나타났다.
“대표님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삐.
“대표님, 이희준 차장님 오셨습니다.”
“네, 들어오라고 하세요.”
태범의 허가가 떨어지고 희준은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다.
“오…….”
희준은 대표실 안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피난이라도 가려는 건지, 무슨 책들과 서류들이 대표실 내 한가득 쌓여있었다. 거의 종이 산을 이룬 듯한 광경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 희준아. 왔어?”
“이야…… 미쳤다. 미쳤어.”
“뭐가?”
“이게 뭐야. 애들 불러서 좀 치우고 하지.”
태범의 친구니 할 수 있는 소리였다. 둘이 있을 때면 친구 사이로 돌아가니 이 광경을 보고도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희준은 시어머니처럼 잔소리를 해댔다.
“에이, 됐어. 다 귀중한 자료들인데, 혹시 모르잖아. 또 필요할지도.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야?
“식사 같이하자고 왔어, 점심 거른다는 말이 있기에. 걱정되기도 하고.”
“뭐 하루에 한 끼 안 먹는다고 죽겠냐?”
“응, 안 죽겠지. 하지만 태범이 너는 달라. 가끔 보면 너는 정말 죽을 것처럼 일을 하니까, 그게 걱정인 거지.”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신경 쓸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태범은 의자에서 일어나 희준의 어깨를 끌어당기더니, 대표실 밖으로 움직였다.
“어! 저건 뭐야?”
“뭐?”
그렇게 식사를 하러 대표실을 나서려던 찰나, 희준의 눈에 들어온 건 이삿짐이나 옮길 때 쓸 만한 큰 박스였다. 그 속에는 형형색색의 편지봉투가 가득 담겨 있었다.
“팬레터. 사람들이 여기로 편지를 엄청 보내더라고.”
“이야…… 이게 정말 다 팬레터야?”
“말도 마.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남미 심지어 들어 보지도 못한 아프리카 섬에서까지 편지가 왔다니까.”
“설마 이게 다 도롱뇽 프로젝트 때문인가?”
“알게 모르게 세상에는 간절한 사람이 많이 있다는 거지.”
* * *
[노래기술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99%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100% 진행되었습니다.]
“으…….”
스캔 100%가 주는 강한 전율에 태범은 침대 위에서 몸부림을 쳤다.
몇 번이나 경험했지만 적응이 되지 않는다. 역시 고통은 적응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로써 마이클 잭슨으로부터 얻을 능력은 모두 뽑아냈다.
지금이라도 당장 무대 위에 올라가 콘서트를 열어도 될 만큼, 가수 못지않게 완벽한 모습을 갖춘 태범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음악으로 대중 앞에 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CEO라고 항상 넥타이나 매고, 책상 앞에 앉아 딱딱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대중과 가까운 모습은 21세기 CEO로써 필요한 자세이다.
결국 사업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고 모두와 가까워지는 것이, 그만큼 잠재고객을 늘린다는 걸 의미했다.
* * *
다음날.
[생물학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0%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10% 진행되었습니다.]
[제프리 코너 홀 능력]-생물학(10%)
[마이클 잭슨 능력]- 가창력(100%)-작곡, 작사 기술(100%)-츰(100%)-노래 기술(100%)
[아인슈타인 능력]- 물리(100%)-상상력(100%)
[조지 소로스 능력]-공격적 투기(100%)
[레오나르도 다빈치 능력]-미술 감각(100%)-창의성(100%)
[워렌버핏 능력]-시장 통찰력(100%)-기업 분석력(100%)-도전 정신(100%)
[폰 노이만 능력]-수리 이해력(100%)-언어 이해력(100%)-암기력(100%)
[이소룡 능력]-힘(100%)-유연성(100%)
“오! 이런 지식들이 있었군.”
태범은 방금 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지식을 스캔했다.
아무리 열심히 학습을 한다 한들, 지식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 그 빈틈을 새로운 인물의 지식으로 채워 넣고 있었다.
높게 쌓인 지식의 탑은 좀 더 견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태범은 도롱뇽 프로젝트를 해결하기 위해, 스캐너의 사용법을 지금까지와는 달리하기로 했다.
여태까지 과 같은 간접적인 능력을 위주로 습득 했다면, 이제는 직접적인 지식을 바로 습득할 예정이었다.
이미 간접적인 능력은 인간으로서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으니, 굳이 새로 넣은 능력은 없었다.
단지 지금 필요한 건 지식이었다. 도롱뇽 프로젝트를 성공 시킬 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