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54화 (154/188)

# 154

“대표님, 도롱뇽 프로젝트가 언론에 세어나간 것 같습니다.”

“네, 미리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어쩌다 그런 일이 생긴 거죠?”

기술 사업팀의 백석규 과장이 도롱뇽 프로젝트와 관련된 진상을 보고하기 위해 대표실을 찾았다.

“삼에스 측, 연구원 한 명이 실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프로젝트 서류를 흘리는 바람에, 그걸 언론사에서 보고 기사화 냈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안 그래도 삼에스 쪽에 한번 혼쭐을 내줬습니다. 일 처리를 그 모양으로 해서 대표님만 난감한 상황 아닙니까?”

“아! 삼에스 측에 너무 부담은 주지 마세요. 이미 일어난 일인데 어쩌겠습니까. 그것보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네…… 어떤 게 말씀이시죠?”

“그 기사를 최초 보도한 곳이 와이TV였죠?”

“네, 맞습니다. 생물 과학과 관련한 다큐를 찍는다고. 삼에스 직원하고 인터뷰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 과정에서 와이TV쪽이 서류를 습득했고요. 일단 와이TV에 기사를 내리도록 요청은 해놨는데 이미 다른 언론사와 사람들에게 퍼진 바람에 이를 숨기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포커스는 그렇게 잡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태범은 고개를 흔들며 백석규 과장의 말을 부정했다.

“네?”

“저한테 와이TV가 어떤 곳인지 아시죠?”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대표님과 사이가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요 왜 하필 또, 이런 기사가 나온 곳이 와이 TV일까요?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아마 삼에스 측에서 와이TV와 대표님의 관계를 잘 몰랐던 모양입니다. 제가 알았더라면 인터뷰를 말렸을 텐데 아쉽습니다.”

“아니요. 자꾸 삼에스에 문제를 물을 게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와이TV쪽을 의심해야 할 것 같아요.”

“설마 와이TV가 계획적으로 일을 벌이기라도 생각하시는 겁니까?”

“삼에스의 실수가 아닌 와이TV의 모략일지도 모르죠.”

하필 그 수많은 언론사 중에도 와이TV라니 이건 도저히 우연으로 치부할 수가 없었다. 항상 태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 왔던 언론이다. 태범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백석규 과장도 납득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와이TV랑 한판 해야 할 것 같네요.”

* * *

태범의 지시 하에 법무팀과 이사진들은 와이TV와 관련된 정보를 습득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저 좀 유별난 언론사로 여겨왔지만,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그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낸 것이었다면 이해하겠으나 와이TV는 대놓고 태범을 향해 칼날을 들이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와이TV가 어떤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태범은 모든 힘을 총동원해 와이TV를 압박하기로 했다.

* * *

오늘은 태범의 본교인 우리 대학교에서 특강이 있는 날이었다.

회계학과 김영석 교수님과 총장님의 계속되는 부탁 끝에 이뤄진 특강이다.

특강은 태범 인생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와 TB 금융 투자와 관련한 설명이 있을 예정이었다.

“와! 강태범이다.”

“대표님!”

연예인 부럽지 않은 환대였다. 지나가는 길마다 학생들이 알아봐 주며, 호응을 해주었다. 우리 대학교의 최고 아웃풋[output]을 뽑자면 누가 뭐라 해도 태범이었다.

서울의 중하위 대학이라 할지라도 유명 연예인, 군 장성 출신, 국회의원, 중소 기업 CEO 등 나름 이름을 알리는 인물이 배출되곤 했다.

하지만 아직 20대의 어린 나이, 엄청난 속도로 이런 성공을 이룬 인물은 없었다. 이건 우리대학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아니, 세계가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모교의 최고 자랑은 태범이었다.

대강당이 사람으로 가득 메웠다. 심지어 자리가 없어 서 있는 사람까지 있는 지경. 어떻게 해서든 태범을 보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태범의 등장에 모두가 환호했다.

와!!

태범은 이런 환호에 익숙해졌다. 샘성 스마트 폰 10시리즈 공개 발표에서 온몸이 소름 돋는 환호를 받은 이후, 감각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이로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게다가 스캐너 덕분인지, 태범은 일반사람들보다 적응력이 매우 빨랐다.

“가장 먼저 저의 인생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이것이 여러분 인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이야기가 됐으면 합니다.”

태범은 지금까지의 인생 일대기를 이야기했다. 스캐너 이야기는 빼고 말이다.

스캐너는 그저 재능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교모하게 가려졌지만 학생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여러분들 안에 잠재된 재능이 분명 있을 겁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시고, 많은 걸 느끼세요. 그리고 잠자고 있는 그 재능을 깨우세요!”

사실 태범이 하는 말들은 뻔한 이야기에 그저 싸구려 자기계발서 나올만한 내용이었다.

어쩌겠나.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 뿐이었다. 진짜 이야기는 스캐너에 담겨 있는데 이걸 말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여러분은 나처럼 할 수 없어요.’ 라는 말은 하기 싫었다.

태범은 누구나 본인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고 싶었다. 물론 허황된 희망에 가까울 것이다. 스캐너 없이 오직 본인 힘만으로 태범만큼이나 성공을 이루는 건 불가능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희망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면 태범의 특강은 성공한 거라 생각했다.

관중들은 태범의 그런 속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큰 박수와 환호로 보답해줬다.

그렇게 특강을 마치고 태범은 학교관계자와 잠시 대화를 나눴다. 관계자라 하면 김영석 교수님과 총장님이었다. 그들은 학교의 자랑이니 뭐니 태범에 대한 칭찬일색이었다.

태범은 이참에 학교와 연계하여 학생들을 위한 교육 시스템을 설계하고 TB 금융 투자에 취업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아무리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해도 비슷한 또래라 그런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스캐너가 없었다면 태범 역시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쓸모없는 스펙 쌓기와 집안 가시방석 위에 앉아 취업 걱정이나 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스캐너로 얻은 이익을 조금이나마 나눠주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다.

학교와 모든 대화를 마치고 태범은 본관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총장과 학교 관계자들이 인사한다고 밖으로 나오려는 걸. 겨우 막고 나서야 나올 수 있었다. 무슨 기업 회장님이 행차하는 것도 아니고 유난을 떨 필요는 없었다.

“대표님!”

본관 정문을 통과할 때쯤이었다.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밖으로 나오는 태범을 향해 한 아주머니 무섭게 달려들었다. 옆에 있던 창순은 동물적 감각으로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더니 재빠르게 팔을 펼쳐 아주머니를 제지했다.

“멈추세요!”

역시 유도 선수 출신답게 창순의 미는 힘은 대단했다. 아주머니는 창순의 팔에 튕겨 그대로 바닥에 내뒹굴었다

“대표님! 우리 아들이 너무 아픕니다! 제발 꼭 살려주세요.”

아주머니는 바닥에 넘어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뭔가를 자꾸 외쳤다. 아주머니의 말을 유심히 듣던 태범은 악의가 없음을 알게 됐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다.

태범은 손을 내밀고는 아주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두 경호원은 여전히 긴장을 놓지 않고 방어 자세를 취하려 하지만 태범은 손을 까닥거리며 경호원을 한 발짝 물러나도록 했다.

“저희 아들이 심장이 많이 안 좋습니다. 대표님이라면 치료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아주머니의 얼굴은 마치 운명의 인연을 보고 사랑에 빠진 표정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구세주를 바라보는 느낌 태범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차에서 천천히 이야기하시죠.”

보는 눈이 너무 많다. 태범이 이동하는 곳이면 항상 시선이 따라왔다. 아주머니를 데리고 주차장에 놓인 태범의 차량에 들어갔다.

그리고 차 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저희 아들이 심부전에 걸려 심장 이식이 필요한데 맞는 심장이 없다고 하거든요. 이걸 어떻게 좀 해주시면 안 되나요?”

아주머니의 아들이 유전적 질환인 심근병증에 걸려 심부전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심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혈액 공급이 제대로 안 되는 상황, 심장 이식밖에는 길이 없지만 이와 맞는 심장을 찾기 어려운 것으로 보였다. 안타깝지만 생명이 위독한 상황으로 보였다.

“대표님이라면 분명히 저희 아들을 치료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누가 그런 말을 했죠?”

“인터넷 기사 보고 찾아왔어요. 대표님의 도롱뇽 프로젝트가 앞으로 신장이식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요.”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은 프로젝트를 이렇게 맹신할 정도니 이 아주머니에게 간절함이 느껴졌다. 하긴 자식이 아픈데 눈에 보이는 게 있을까. 눈물을 글썽거리는 아주머니를 보니 괜히 태범의 가슴도 찡했다.

“아…… 그게 근데, 아직 저희가 시작단계라 확답을 내려드릴 수가 없네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 꼭 부탁드립니다.”

아주머니는 두 손으로 태범의 손을 붙잡더니 눈물을 흘리며 부탁했다. 아주머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실낱같은 작은 희망조차 붙잡고 있던 것이다.

태범은 그런 실낱같은 희망마저 꺾고 싶지는 않았지만 차마 확신을 내려 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스캐너의 능력이라 할지라도 이번 프로젝트는 꽤나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했기에 어려움이 따를 거라 예상됐으니 말이다.

“저에 대한 관심은 감사드립니다. 아들분이 꼭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이 상황에 태범이 최대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 * *

[도롱뇽의 ERK유전자, 인류 의학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까?]

[도롱뇽 프로젝트, 중증 환자들의 희망.]

[유전자를 이용한 치료시대가 열릴다.]

와이TV에서 공개한 도롱뇽 프로젝트는 또 다른 기사를 양산해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많은 언론이 다리 역할을 하며 도롱뇽 프로젝트에 관한 정보를 나르기 시작했다.

특히 도롱뇽 프로젝트는 환자들이 많이 기대하고 있었다.

치료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것 같은 중증환자들에게는 큰 희망이었다.

사지가 절단됐거나 새로운 신체의 일부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도롱뇽의 세포 재생은 부러운 능력이었다. 이 능력이 현실화가 된다면 우리는 고장 난 로봇의 부품을 갈아 끼우듯 신체를 교환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생각보다 관심이 너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아직 시작도 제대로 성과도 없는 프로젝트인데 이렇게 김칫국을 마셔버리고 혹여나 아무것도 못 하면 우리 탓하는 거 아닙니까?”

도롱뇽 프로젝트 대책 회의.

쏟아지는 기사를 본 기술 사업팀 직원들을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기대감이 클수록 그 기대를 상실시켰을 때는 돌아오는 여파는 상당할 것이라 예상됐다.

“이번 프로젝트 취소하는 거로 하고 다시 비밀리 연구를 하는 게 어떻습니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김칫국은 자기들이 마셔놓고 일이 잘 안되면 나중에 저희 탓할 게 분명합니다.”

직원들은 태범에게 이번 프로젝트를 취소하길 권했다. 기대감이 더 커지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태범 역시 공감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특강이 있던 날, 아주머니의 간절함과 보이지는 않지만 환자들의 절박함은 그 입장을 거부하고 있었다.

상충되는 두 개의 감정에 잠시 고민을 하던 태범은 결심을 했다.

“좋아요. 그럼 방송에서 사람들에게 도롱뇽 프로젝트에 관련한 제 의견을 확실히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강 비서 좀 불러주시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