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52화 (152/188)

# 152

SN엔터테인먼트의 청담 사옥.

“어……어! 저 사람!”

“저 사람이 여기 왜 온 거지?”

“그러게 우리 회사랑 무슨 관련이 있나?”

SN의 직원들이 강태범의 등장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수많은 인기 연예인이 제집 드나들 듯 들어오고 하는 곳이기 때문에, 웬만한 유명 인사가 아니고서야 눈 깜빡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그런 사람들이 마치 신이라도 영접하는 듯,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태범을 바라봤다.

“야…… 야. 저 사람 강태범 아니야?”

“헐! 진짜네.”

심지어 SN 사옥 내 있던 인기 아이돌마저, 강태범을 보고는 신기한 듯 바라보고는 자기들끼리 쑥덕이기 시작했다.

태범이 아이돌에게조차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건 모든 20대의 우상이었기 때문이다.

20대 젊은 나이에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재벌급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었기에, 연예인에게조차 연예인으로 느껴질 만큼 높은 존재였다.

태범은 약속한 장소인, 사옥 내 2층 회의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태범을 기다리던 한 남자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만나 뵙기로 했던 사람입니다.”

“어? 강태범 대표님 아니십니까?”

회의실에 등장한 강태범 대표에 약속을 잡았던 A&R팀의 구상욱 팀장은 깜짝 놀라워했다.

사내에 방문등록을 하기 위해 미리 이름을 물어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그 강태범이 TB금융투자의 강태범일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그 누가 강태범이 작곡을 했을지 생각했을까, 구상욱은 팀장은 그저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었다.

“맞습니다. TB금융투자의 강태범 대표입니다.”

“네? 아! 근데, 여길 왜 오셨는지.”

구상욱 팀장은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고는 횡설수설을 하고 있다. 미리 약속까지 하고 왔는데, 왜 왔냐고 물으니, 태범은 피식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제 곡을 사용하고 싶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는데요?”

“아! 네. 네, 그렇죠. 제가 좀 당황해서…….”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죠.”

“내 정신 좀 봐라, 일단 여기 앉으시죠.”

태범과 구상욱 팀장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팀장은 여전히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지, 입을 벌리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무 놀라실 건 없어요. 그냥 제가 취미로 작곡하던 곡인데, 우연히 그쪽이 컨택해 주셔서 이 자리에 온 거니까요.”

태범은 당황스러워하는 구상욱 팀장에게 전후 상황을 모두 설명했고, 그제야 태범이 이 자리에 나타난 게 조금 납득이 되는지 여유를 찾았다.

“어떻게 이런 곡을 작곡하셨습니까? 대단하십니다.”

“제가 평소 클래식, 팝송, 힙합 따질 거 없이 음악을 자주 듣곤 했거든요. 그러다가 악상이 떠올라서 취미로 곡을 만들어 올려봤는데, 댓글 호응이 좋더라고요?”

“전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운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저도 이쪽 계통에서 수십 년을 일했는데, 취미로 이 정도 퀄리티를 만들었다는 건 처음 보거든요”

“감사합니다. 그냥 열심히 한다고 만들어봤는데, 운이 좋게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은 것 같네요.”

구상욱 팀장은 태범의 곡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무튜브 영상사이트에 들어가 태범의 음악을 틀더니, 극찬에 가까운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대중성이니, 음악의 밸런스니 하면서 곡을 완전히 분석하며, 태범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그럼 계약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설명이 끝나고, 구상욱 팀장은 스테이플러로 묶여 있는 계약서 뭉치를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계약 조건은 음원 판매액에 4.5%가 작곡가인 태범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이뤄졌다. 이제 이 노래로 수익을 창출하는 건 SN엔터테인먼트의 전적인 몫.

아무리 큰 수익이라 할지라도 태범에게 발톱의 때 수준이지만, 이런 엔터에 참여한다는 건, 태범 본인과 회사를 홍보하는 동시에 여론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기에, 꽤나 괜찮은 작업이었다.

태범은 큰 고민 없이 그 자리서 바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태범이 사인이 된 계약서를 건네자, 구상욱 팀장은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한 채 환한 미소를 보이며, 태범에게 몇 번이나 감사함을 전했다.

* * *

“내가 대단한 곡 하나 가져왔거든. 한 번 들어봐.”

녹음실 스피커에서 태범이 작곡한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락이나 댄스 음악에 적합한 신나고 경쾌한 선율은 듣는 이로 하여금 춤을 추고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저 공장식으로 찍어 나온듯한 대중음악 아닌, 도전적인 선율이었다. 중간에는 오페라 느낌의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뒤섞여 예술성을 갖추고 있었다.

“와…… 너무 좋아요.”

A&R 팀장이 들려준 곡에 핑크레인의 메인보컬인 한지효는 감상에 빠져 있었다. 경쾌한 리듬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저절로 흔들리더니, 금세 온 정신을 음악에 집중하게 됐다.

가사는 없고 단지 멜로디만 있을 뿐이지만, 지효의 머릿속에는 이미 선율 속 가사가 채워지고 있었다.

감동에 푹 빠져 있던 지효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전해지는 웅장함에 다시 한번 전율을 온몸으로 느꼈다.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곡이 끝난 이후에 지효는 강한 여운에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음악이 끝나고, 정적이 흐르는 데도 여전히 감동에 빠져 있다.

“이게 정말 저희 앨범에 들어갈 곡이라고요?”

한지효는 눈을 크게 뜨며 팀장을 바라봤다.

“어때, 마음에 들지? 곡은 정말 최고거든, 이제 할 일은 여기에 핑크레인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야.”

“이게 정말 핑크레인 3집 곡이라고요?”

“그렇다니까! 왜 못 믿겠어?”

“이런 곡을 왜 저희한테…….”

어마어마한 곡이 본인 그룹에게 온다고 하니 못 믿겠는지, 지효는 팀장에게 몇 차례나 되물었다.

아이돌 걸그룹 ‘핑크레인‘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에서도 최고로 뽑히는 기업인 SN엔터테인먼트 사에서 작년에 야심 차게 내놨던 걸그룹이었다.

SN은 기업의 네임벨류와 큰 규모의 지원이 있다 보니, 이곳에서 배출되는 연예인은 성공을 보장받는다고 할 정도로, 대부분이 성공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핑크레인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무리 난다긴다하는 회사라 할지라도, 어두운 면이 존재하는 법, 걸그룹인 핑크레인이 SN엔터테인먼트의 어두운 부분을 맡고 있었다.

데뷔한 지 이제 2년 차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뜬 곡 하나 없이 존재감 하나 없는 걸그룹이었다.

TV에 나오면 항상 얼굴이 보일락 말락 하는 뒷자리에 서야 했고, 1+1으로 딸려 나오는 편의점 사은품처럼, 1군 가수들의 바람잡이나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SN엔터테인먼트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회사의 메인 가수로 띄우려 했지만, 사늘한 대중들의 외면에 회사에서도 거의 포기 상황에 온 지경이었다.

기업이라는 건 곧 수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손익분계를 넘지 못하는 그룹은 회사에서도 버려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번 연도를 마지막 기회로 삼고, 곧 나올 핑크레인의 3집에 모든 기대를 걸기로 했다.

“우와…… 이거 어떤 작곡가님이 작곡한 거예요?”

“누군지 알면 깜짝 놀랄걸?”

“왜요? 누군데요? 누구?”

“나도 작곡가가 누군지 알고 나서 아주 깜짝 놀랐다니까! 우리 회사 사람은 아니고, 외부 사람인데, 누구나 알 만한 사람이지.”

“그게 누군데요?”

“우리가 아는 작곡가는 아니야. 근데 분명 이름을 대면 알걸?”

“작곡가가 아닌데, 작곡을 한다고요?”

“힌트! 지효, 너랑 비슷한 나이야.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는 사람.”

“뉴스? 아! 정말! 누구예요. 그냥 말해줘요.”

궁금함을 참지 못한 지효는 대답을 뜸 들이는 장 팀장의 팔뚝을 툭 치며 징징거렸다.

“이것 봐라. 그렇다고 팀장을 팔을 이렇게 치냐!”

“그러니까, 빨리 알려줘요. 누군데요.”

“너 강태범 알지?”

“강…… 태범이요?”

작곡가의 이름을 듣자 지효의 표정이 잠시 아리송하더니, 곧이어 아! 하며 탄성을 내뱉었다.

“응, 강태범.”

“그…… 막…… 스마트폰 인공지능 만들고, 투자하고 그 사람 말하는 거죠?”

“맞아. TB금융투자의 강태범 대표 있잖아. 너랑 비슷한 나이 또래.”

“헐! 그 사람이 이걸 작곡했다고요? 어떡해요?”

“어떡하긴, 컴퓨터 시퀀서 프로그램으로 작곡했겠지.”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그 사람 이걸 어떻게 작곡해요.”

강태범이 작곡을 했다는 말에, 지효는 어리둥절했다. 지효뿐만 아니라 그 누가 와도 어리둥절했던 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샘성 스마트폰 공개 행사에서 기술 엔지니어로 나왔던 사람이, 이제는 작곡가라니 말이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믿기지 않지? 나도 처음에는 그랬어.”

“팀장님, 강태범 그 사람 수상해요. 이거 누가 대리로 써주고 그 사람은 이름만 대주는 거 아니에요?”

“천재라잖아, 천재. 그러니 뭐든 할 수 있겠지.”

“아니,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이건 아니죠. 어떻게 못 하는 것 없이 다 잘해요.”

“자자! 그건 더 이상 나한테 묻지마. 내가 그 사람 아빠냐? 지금 중요한 건 뭐다? 이번 앨범 기대해도 된다는 것! 지효야 어떨 것 같아?”

“솔직히 지금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이걸로 우리 노래 만들면 대박 날 것 같아요!”

* * *

“엄마, 나 왔어.”

“어! 왔니?”

갑자기 따뜻한 집밥이 입에 당겨, 퇴근 후 도곡동 부모님 집으로 갔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진수성찬이 차려진 식탁이라 할지라도, 집에서 홀로 쓸쓸하게 먹는 밥은 별로 구미에 당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혼자 산다는 게 즐거울 줄만 알았는데, 이게 하루 이틀 그리고 1년이 지나다 보니, 슬슬 마음이 허전한 게 공허함이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그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부모님 집을 찾은 것이다.

“어어. 안녕하세요. 이분들은 누구야?”

태범의 뒤를 따라온 덩치 큰 경호원 두 명에, 어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사모님. 저희는 강태범 대표님의 경호를 맡고 있는 경호원입니다.”

어머니의 물음에 태범을 대신에 임창순이 신분을 밝히며, 경호원들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경…… 경호원?”

“요즘 함부로 돌아다니기 어려워서, 경호원들을 고용했거든.”

“그러니? 난 또 직장 동료인 줄 알았잖니.”

“경호원들도 직장 동료지 뭐.”

“뭐, 그래. 태범이 네 말이 맞다. 그래도 듬직하니 보기 좋네. 진작에 경호원들을 이용하지 그랬어. 엄마가 봐도 마음이 편하네.”

어머니는 경호원의 첫인상에 잠깐 놀랐을 뿐, 계속 보니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앞치마를 두르더니 주방으로 들어가며 태범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같이 온다면 미리 좀 말하지. 그럼 밥상을 더 차리던가 했을 텐데.”

“괜찮습니다. 사모님. 저희는 따로 식사하니까, 불편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고, 그래도 집에 들어오면 다 손님이에요. 앉아 있어요. 내가 금방 밥상 차려 줄 테니까.”

“정말 안 그러셔도 됩니다.”

경호원들은 어머니의 호의가 부담되어, 한사코 거절하려 하지만, 그들은 어머니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태범은 어머니의 성격을 잘 알기에 경호원들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그냥 앉아 계세요. 그런다고 가만히 있을 어머니가 아니거든요. 하하.”

“아…… 그래도 불편을 끼치면 안 되는데…….”

“괜찮아요. 여기서 경호할 게 있습니까? 혹시나 집에 강도라도 들어오면 모를까.”

어머니의 등쌀에 못 이겨, 경호원들은 졸지에 태범 가족의, 손님이 돼버렸다. 그렇게 어머니가 요리를 하는 동안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누다가, 요리가 완성되고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경호원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차피 이제부터 옆에 항상 붙어 다닐 사람인데, 이참에 서로에 대해 많이 알고 가까워지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시덕거리며 이야기를 나눴고, 식사를 마치고는 경호원들은 혹여나 불편해할까, 조그마한 작은 방에 대기시켰다.

그리고 태범은 그대로 빵빵한 배를 통통 튀기며,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어? 이 음악은?’

소파에 누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데, 태인이의 방에서 익숙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분명 태범이 작곡해 인터넷에 올린 그 음악이었다. 태인이에게 알린 적이 전혀 없는데, 이게 왜 저 방에서 나는가 싶어 태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 형.”

태인이는 음악을 들으며, 웹툰 작업에 한창 중이었다.

“태인아, 지금 음악 어디서 듣는 거야?”

“뭔 음악?”

“지금 컴퓨터에서 나오는 음악.”

“아! 이거 무튜브에서 듣는 거지. 근데 왜?”

“너 그거 누가 작곡한 건 줄 알고 듣는 거야?”

“응? 누가 작곡한 건데?”

“그 음악 내가 작곡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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