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그건 그냥 기분 탓 아닐까?”
“물론 우연치 않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한데, 그래도 사람에게 촉이라는 게 있잖아? 뒤통수가 싸해서 뒤를 돌아보면 사람이 있는 것처럼, 지금 나한테 뭔가 일어나고 있는 기분이랄까?”
논의할 문제가 있어 대표실로 잠시 들어온 효준은, 태범과의 대화가 옆으로 새더니, 연이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 그래도 너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고, 높은 위치로 올라가셨으니 바라보는 눈이 많을 거야. 아마 그런 게 무의식적으로 신경 쓰인 것일 테고.”
“흠…… 그런가?”
“유명한 연예인들 봐봐. 괜히 연예인 병이라는 말이 있겠어? 바라보는 눈이 많아지면, 어쩔 수 없이 신경 쓰이는 건 당연하지. 그러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
효준은 태범의 걱정이 그저 인기로 생겨난 무의식적인 신경쇠약이라며 안심시켰다.
태범은 그런가 싶다가도, 찝찝한 기분은 여전히 떨칠 수가 없었다.
“아! 그러지 말고, 차라리 경호원이라도 고용하는 게 어때? 내가 안 그래도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효준은 손뼉을 마주 치며 말했다.
“경호원?”
“너도 이제 예전처럼 혼자 다닐 몸이 아닌 것 같아. 이제는 대부분 사람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데, 세상에 별의별 사람들이 있다 보니까,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래, 그렇긴 하지.”
태범이 역시 고려하고 있던 문제였다.
지금까지 경호원을 주변에 두는 건 너무 허례허식은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중견 기업의 CEO로써, 자산만 수천억인 태범이 언제든 강도에게 납치를 당해도 이상할 것 없었으니 말이다.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널 지켜줄 사람이랑 같이 다니면 지금보다는 마음이 좀 더 편해지겠지. 내가 알고 있는 경호 업체가 있는데 생각 있으면 소개 시켜줄게.”
“하긴 형은 어렸을 때부터 경호원들하고 같이 살아서 잘 알겠네.”
“에이, 그건 아니고. 무슨 우리 아버지가 태어날 때부터 대표였을까? 다른 사람들보다는 잘살았어도, 경호원을 쓰고 그럴 정도는 아니었어.”
“알았어. 일단 그러면 형이 안다는 그쪽에 연락해서 이야기되면 나한테 연락 줘.”
“그래. 이야기해 보고 말해줄 게.”
“오케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이제 유상증자 이야기 좀 해볼까?”
잠시 이야기가 샜지만, 재무이사인 효준이 대표실에 태범을 보러온 건, 회사의 유상증자와 관련된 문제 때문이었다.
유상증자는 기업의 주식을 돈을 받고 추가로 발행하는 걸 말했다.
보통 기업이 사업을 확장하거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자본 유입을 위해 하는 일이었다.
태범은 유상증자를 통해 주식을 발행하고, 이를 본인의 사적인 돈을 투입해 회사의 자본을 늘릴 생각이었다.
앞으로 태범에게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돈이 들어올 계획이었다.
딥멀티에 대한 기술적 권한이 TB금융 투자가 아닌, 태범의 개인적인 이름으로 돼 있어, 샘성에서 들어오는 추가적인 수익은 모두 태범 개인적인 호주머니로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전 세계에서 밀려들어 오는 예약 판매에 앞으로의 추가 주문까지 10시리즈는 예상할 수 없는 판매량을 도달할 것으로 보였다.
많은 IT전문가가 추측하는 바, 최소 1억 대 이상은 팔릴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샘성 스마트폰 10시리즈의 판매가의 1.5%가 딥멀티의 기술 특허료로 사용되는 데, 그걸 절반씩 런던대 측과 태범이 나눠 갖기로 돼 있었다.
결국 예상 판매 수와 특허료를 계산해 보자면, 앞으로 태범에게 떨어질 금액만 수천억에서 수조에 도달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야말로 잭팟이다.
사소한 불편함에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결국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 오니, 태범에게도 복권에 당첨된 꿈같은 일이었다.
앞으로 들어올 이 금액을 태범은 개인적인 호주머니에 담아만 두고 싶지는 않았다.
태범에게 돈은 금고에 묵혀두는 그런 존재가 아닌, 새로운 투자를 위한 기회의 도구인 셈이었으니 말이다.
“일단 규모가 크지만 않다면, 증자 청약은 100% 완료가 될 거야. 요즘 우리 회사 주식 없어서 못 살 지경인데, 주주우선공모로 가도 모든 물량은 충분히 흡수되겠지.”
“그래, 나쁘지 않아. 일단 무엇이 됐든 간에 투자 자본이 클수록 좋지. 돈을 쌓아두기만 하면 뭐 해? 삶아 먹을 것도 아닌데.”
태범은 투자에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능력을 주는 스캐너가 있는 한, 실패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설상 투자 기업이 무너지려 해도, 태범이 손을 걷고 나선다면 일으켜 세우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결과가 그래왔고, 전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증자 규모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는데?”
“유상증자 규모는 한 3000억쯤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 정도면 되잖아?”
태범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증자 금액을 불렀다.
이제는 말끝마다 기본 억 단위가 붙어도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정도 규모면, 청약은 크게 무리는 없을 거야. 지금 주주들도 다 큰손들이고 이 정도는 충분하지.”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이사회 소집해줘.”
“오케이! 3000억으로 가자!”
언제부터인가 태범의 말투를 닮아가는 효준이었다.
그렇게 3000억 유상증자로 결정했고, 이제 이사회의 결의를 통해 발행 주식 주와 청약일 등을 최종결정만 남았다.
* * *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알엔시큐리티의 장우석 이사입니다.”
“네, 반가워요. 다들 앉으시죠.”
효준이 소개시켜준 경호 업체에서 3명의 사람이 찾아왔다.
다들 덩치는 산만한 것이, 근육이 정장을 찢고 얼굴을 빼꼼히 내밀 것 같은 몸이었다.
다들 뭘 먹고 자란 건지 궁금할 정도다.
“이 두 분이 저랑 같이 일하실 분들인가요?”
“네, 맞습니다. 효준 씨 부탁으로 저희 업체에서 VIP만 담당하는 애들로 데려왔습니다.”
“흠, 딱 봐도 그래 보이네요.”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주고받고, 대표실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요즘 많이 바쁘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대표님 이름 석 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 말이에요.”
“그렇죠. 언론에서 하도 그렇게 제 이름을 떠들어대니 그럴 수밖에요. 근데 나쁜 건 없는데, 혹시나 저한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요. 이렇게 경호원들을 구하게 됐네요.”
“아우!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데요. 특히나 대표님 같이 이름 있으신 분은 더욱 조심해야 해요. 돈 때문에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거든요.”
경호 업체 이사답게 영업을 하는 건지, 태범에게 잔뜩 겁을 주더니 경호원 고용이 좋은 선택이라는 걸 다시 한번 일깨워 줬다.
“대표님. 이 친구 어디서 본적 없으신가요?”
장우석 이사는 엄지손가락으로 옆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네? 누구요?”
“이 친구가 2010년 올림픽 유도 은메달 리스트입니다.”
“아! 정말입니까? 어쩐지 낯이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원래 아시는 VIP가 있어서, 이쪽 업계에 발을 들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쪽에서 쭉 일하게 된 거예요. 아마 곁에 두시면 든든하실 겁니다.”
귀를 보면 완전히 짓눌려 부풀어 오른 만두 귀를 가진, 그는 2010 밴쿠버 올림픽 유도 은메달 리스트 임창순이었다.
그는 10대부터 유도계의 유망주로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전국체전부터 세계권 대회까지 상이란 상은 싹쓸이했고, 꿈에 그리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유명 대기업의 오너 2세의 추천으로 경호업계에 발을 내디뎠고, 그 후부터 경호원으로 일해왔다고 한다.
“열심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장우석 이사가 본인을 소개하자, 임창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허리를 90도 숙이며 태범에게 인사를 건넸다.
너무도 딱 부러진 인사에 태범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마치 중세시대 군주를 모시는 듯한 태도였다.
과한 친절에 태범은 어색한 미소를 보내며, 손을 끄덕거리며 자리에 앉을 것을 요청했다.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제가 좀 부담스럽거든요. 그냥 아끼는 동생 보호해 준다는 생각으로 옆에만 있어 주세요.”
“네! 대표님 근처에 바퀴벌레 한 마리조차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드리겠습니다.”
“하하, 재밌는 분이네요.”
“네. 이 친구가 말도 조리 있게 잘해서, 곁에 두시면 심심하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경호는 말할 것도 없이 확실할 거고요.”
“좋아요, 재밌는 분 좋죠.”
“그리고 또 다른 친구의 이름은 김문성이라고, 체대 경호학과 나와서 어릴 적부터 이쪽 일을 꿈꿔오던 친구입니다. 전문적으로 아는 것도 많고, 나름 머리 회전도 좋은 친구이니, 여러 도움이 되실 겁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문성이라고 합니다.”
장우석 이사의 소개에 김문성은 임창순과는 달리 앉아서 얌전히 고개만 살짝 숙였다.
얼굴이 기다랗고, 키는 장대같이 큰 것이 꽤 날렵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태권도 유단자에 검도, 유도, 합기도 등을 섭렵한 만능 무술인이었다.
그렇게 오늘부로 태범을 보호해 줄 경호원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인물들을 보니 곁에 데리고 있으면 든든할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혹시나 대형 경호가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언제든 모시러 오겠습니다.”
장우석 이사는 돌아가고, 나머지 두 명의 경호원은 태범에 대한 기본 교육과 함께, 회사 내 마련된 사무실에 상주하며 일을 시작하게 됐다.
* * *
“현재 투자 기업 기술 현황입니다.”
태범은 기술 사업 팀의 백석규 과장에게 기술 현황 보고서를 받았다.
그리고 태범은 특유의 속독으로 보고서를 빠르게 넘기며 검토했다.
태범에 보고서를 읽는 동안 백석규 과장은 주요 사항을 말했다.
“어제부로 넷게임에서 가상현실 게임 제작에 착수한 상황입니다. 기본 베이스는 샘성 10시리즈의 인식 시스템을 차용해서 그와 연동시킬 수 있는 게임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딥멀티를 통해 제작은 하되, 샘성 측과 절대 트러블 나지 않도록, 계약 문제 같은 건 잘 조율시키세요. 1년간 딥멀티 개발 독점권은 샘성에 있다는 거 잊지 마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도롱뇽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죠?”
“네, 이제 연구와 관련된 모든 설비가 마무리됐다고 합니다.”
“연구 진척 속도 좀 높여주세요.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라는 건 아니고요. 이희현 회장이 세상에 언제까지 계실지 모르니까, 그걸 감안해서 하셔야 해요.”
“네. 삼에스 쪽에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배영그룹의 이희현 명예 회장이 TB금융 투자에 투자한 돈은 대부분이 혁신 기술을 목표로 하는 기업으로 투자되고 있었다.
정말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입이 벌어질 정도가 아니라면 투자를 하지 않았고, 이희현 명예 회장을 만족시키고, 혁신이라는 돌풍이 태범의 손에서 일어나게 하려는 생각 이었다.
* * *
[노래 기술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50% 진행되었습니다.]
……
[스캔이 51% 진행되었습니다.]
[마이클잭슨 능력]- 가창력(100%)-작곡, 작사 기술(100%)- 춤(100%)-노래 기술(51%)
[아인슈타인 능력]- 물리(100%)-상상력(100%)
[조지 소로스 능력]-공격적 투기(100%)
[레오나르도 다빈치 능력]-미술 감각(100%)-창의성(100%)
[워렌 버핏 능력]-시장 통찰력(100%)-기업 분석력(100%)-도전 정신(100%)
[폰 노이만 능력]-수리 이해력(100%)-언어 이해력(100%)-암기력(100%)
[이소룡 능력]-힘(100%)-유연성(100%)
태범은 이제 뛰어난 가창력을 보이는 목청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한 노래의 테크닉적인 활용이 가능해졌다.
기교라고 한다. 만능의 도구가 있다면, 이제는 그 도구를 사용 용도에 맞게 제대로 사용하는 셈이었다.
딸칵.
노래 기술을 스캔한 뒤, 목청껏 노래를 불러보다가 컴퓨터를 이용해 작곡에 들어갔다.
굳이 악기가 없더라도, 컴퓨터가 다양한 악기 소리를 낼 수 있기에, 오케스트라까지 구현할 정도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은 해외 유명 영상 사이트에 익명으로 올렸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꾸준히 영상 사이트에 올린 결과, 태범의 자작 음악은 네티즌들에게 인기를 떨치고 있었다.
어떤 곡은 자그마치 500만 뷰가 찍힐 만큼 많은 사람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상의 댓글창을 열어보면, 절반이 영어로 된 만큼, 서구권에서도 많은 인기를 보이고 있었다.
‘SN엔터테인먼트?’
영상사이트 계정으로 메시지가 눈에 띄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SN엔터테인먼트입니다.]
SN엔터테인먼트 A&R팀, 팀장 구상욱입니다.
저희가 평소에 귀하가 올리신 곡들을 즐겨 듣던 도중, SN의 가수와 어울릴 만한 곡이 몇 가지 있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혹시 따로 계약된 곡이 아니라면, 저희와 대화를 나눠볼 수 있을까 해서 메시지를 보냅니다. 연락처 010-9484-96XX 로 전화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