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많은 사람들이 행사장을 채운 채 모두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다. 태범과 샘성 관계자들은 따로 마련된 바로 앞자리에서 행사를 지켜봤다.
불은 완전히 소등되고 대형 스크린에는 지금까지의 샘성 스마트 폰 역사가 영상으로 소개됐다.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흥미로운 영상에 사람들의 혼을 쏙 빼고 있었다.
샘성 스마트 폰의 역사가 끝나고 이어서 선사 시대의 인류가 현대 인류로 진화하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
도구라곤 손에 쥐고 있던 돌밖에 없는 인류가 나무와 쇠를 다루고 이윽고 기계로 넘어가서 마지막에는 스마트 폰을 쥐고 있는 현대의 인류로 바뀌었다.
영상의 마지막.
웅 하는 웅장한 소리와 함께 ‘인류는 진화한다.’ 라는 문구와 함께 샘성 스마트 폰 10시리즈의 모습이 나타났다.
인류의 진화에 샘성 스마트 폰 10시리즈가 새로운 점을 찍겠다는 뜻이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기계에 이렇게 열광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계에 대한 사랑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이런 환호라니 나중에 가면 사람들의 목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먼저 샘성 전자의 김필두 사장이 무대 위에 섰다.
넥타이 없는 정장 차림에 김필두 사장은 스크린이 비추고 있는 10시리즈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10시리즈는 디자인 키워드는 ‘융화‘입니다.”
가장 먼저 뽐낸 건 디자인이었다.
물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 디자인이 한계가 있다 보니 전 버전과는 큰 변화는 없었지만 여전히 아름답게 굴곡과 프레임이 거의 없이 투명한 액정만 있는 디자인이 주변 배경과 자연스런 융화를 이루고 있었다.
디자인에 대한 설명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스마트 폰 시장의 한계에 도달한 디자인으로는 고객들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이제는 가장 중요한 게 그 어떤 스마트 폰에서도 볼 수 없는 독자적인 기술이다.
그리고 이제 김필두 사장이 그 기술을 보여주고자 한다.
“10시리즈의 기술 키워드는 ‘인공 지능’입니다. 최근 몇 년간 많은 인공 지능 시스템이 스마트 폰에 담기고 있었죠. 하지만 허물만 인공 지능일 뿐, 속은 비어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정말 여러분들을 놀라게 할 만한 인공지능이 이곳에 담겨있습니다. 오늘부로 스마트 폰의 역사가 바뀔 것입니다.”
김필두 사장은 확신에 찬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자신감이 모두 전해졌는지 사람들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완벽한 음성, 언어 인식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친구는 이 스마트 폰 속에 들어있습니다.”
샘성 전자 소프트웨어 연구소에서 본 그대로였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기능이 현실화가 됐으니 기능을 소개할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연이어 소리를 질러대니 제품 공개행사가 아니라 유명 아이돌 공연장에 온 기분이었다. 그래도 환호성이 인기를 증명하는 것이니 발표에 조금 방해되더라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호였다.
“딥 멀티와의 모든 대화는 미리 입력된 정보가 아닌 오직 스스로 학습된 정보로만 가지고 이뤄집니다. 자 간단하게 대화한 번 나눠 보겠습니다.”
“딥 멀티. 사람들에게 인사해줘.”
[안녕하세요. 저를 만나기 위해 먼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드려요.]
딥 멀티를 이용한 언어, 음성, 안면 인식 기술 등이 소개되고 지금껏 보지 못했던 소프트웨어의 작동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을 선사시켰다.
“여러분들은 오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영광스런 자리였길 바랍니다.”
김필두 사장의 마지막 말과 함께 발표가 끝났다. 곧 많은 박수가 쏟아졌다. 이로써 10시리즈의 딥 멀티의 탑재는 스마트 폰 시장에서 혁신을 이룩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어서 스크린에 'DEEPMULTY' 라는 단어가 나타나고 태범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전혀 예고되지 않은 않았던 발표자의 등장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태범의 얼굴을 아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쑥덕거렸다.
스크린에 태범의 이력이 간단하게 표시가 되며 행사 사회자의 안내에 태범이 딥 멀티 개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태범의 등장을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TB 금융 투자의 대표 박태범입니다.”
증권사 대표가 이 자리에 서는 건 굉장히 낯선 광경이었다.
완전 다른 분야의 인물이 전자 제품을 소개하는 자리에 서니 말이다. 하지만 태범은 증권사 대표가 아닌 딥 멀티의 개발자로 이 자리에 섰다.
“딥 멀티는 딥 러닝 기술로 만들어진 알고리즘입니다. 이 알고리즘은 하드웨어적 한계를 극복하고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기에 여러분들에 손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샘성 스마트 폰 10시리즈에 대한 많은 관심에 힘입어 딥 멀티를 전 세계에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제야 인공 지능다운 인공 지능의 모습을 가졌다.
이전까지는 말만 인공 지능이지 사실 피부로 와닿을 만큼 컴퓨터의 지능을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딥 멀티는 사람과 유사한 학습 능력을 통해 컴퓨터의 인식, 처리 능력을 현저히 상승시켰다.
“앞으로 딥 멀티는 많은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즉 어플리케이션을 탄생 시킬 겁니다. 그게 무엇이 될지는 많은 개발자들의 상상 속에 있겠지만, 확실한 건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신세계를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태범은 딥 멀티 기술에 대한 이론을 설명한 뒤, 앞으로의 미래를 사람들의 상상 속에 그려 넣어 줬다.
인터넷의 탄생으로 엄청난 부가적 기술들이 세상에 만들어진 것처럼 딥 멀티 또한 신기술의 씨앗이 되어 혁신적 기술이라는 꽃을 필게 할 것이다.
“와!!”
박수와 환호성이 행사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주객전도가 된 건가 싶을 정도로, 스마트 폰을 소개할 때 이상의 환호였다.
무대 위에 서 있는 태범은 발바닥부터 머리끝 까지 온몸이 전율로 가득했고 눈물을 글썽일 정도의 벅찬 감격을 받았다.
이로써 태범은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을 열게 된 것이다.
* * *
행사를 마치고 샘성 관계자들과 IT관련 권위자들이 행사장 내 회의실에서 미팅을 가졌다. 성공적인 공개발표에 자축하는 분위기에 서로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익숙한 외모의 외국인도 있었다.
전기 자동차 테들라의 CEO 데론 머스크.
갈색 머리의 파란 눈, 기다란 얼굴. TV에서만 보던 그 데론 머스크가 분명했다.
그는 전기 자동차, 우주, 인터넷 등 다양한 분야의 손을 대고 남이 감히 도전하지 못한 혁신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천재적인 기업인이었다.
얼마 전에는 로켓을 재활용하는 데 성공시켜 전 세계에 놀라움을 안겨다 주면서 자신의 이름을 다시 한번 알렸다.
설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그를 볼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김필두 사장과 인사를 나눈 데론 머스크는 태범에게 다가와 악수를 요청하며 말을 걸었다.
“감사합니다. 데론 머스크 씨 아닙니까?”
“절 알아보시는군요.”
“당연하죠! 당신 같이 유명한 사람을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좀 잘생기긴 했죠.”
“네?”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그건 그렇고, 대단하십니다. 강태범 대표님? 고성능 리튬이온 배터리에 이어 인공지능이라뇨. 도대체 과학 역사에 얼마나 자취를 넘기시려 하는 겁니까?”
데론 머스크는 환한 웃음과 함께 태범의 성과를 높이 사고 있었다.
과학계에서 떠오르고 있는 두 인물이 서로를 모를 일은 없을 터. 데론 머스크는 태범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그 이야기는 제가 아니라 머스크 씨 인거 같은데요? 로켓이 아주 멋졌습니다.”
얼마 전 로켓을 재활용시키는 것을 보고 곧 우주 여행 시대가 오는가 생각했을 정도로 감탄했었다.
“한국은 언제 돌아가시는지? 혹시 시간이 되는지 여쭤보고 싶네요.”
“모레 출국 예정인데 무슨 일이라도?”
“저희 회사에 한 번 방문 해주셨으면 해서요. 바르셀로나에 제 드림에너지(DreamEnergy)라고 제 회사가 있거든요. 왠지 서로 할 말이 많을 것 같지 않습니까? 전 벌써 대표님 얼굴만 봐도 머릿속에 질문에 펑펑 터져 나오고 있는데요?”
데론 머스크의 말에는 태범에 대한 관심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이러한 과한 적극적인 관심에 태범은 감사할 뿐이었다.
“네, 그럼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방문하겠습니다. 시간은 자유로우니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오우!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시간 잡아서 연락드리죠.”
그렇게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 태범은 데런 머스크와 한 번 더 만남을 약속했다.
* * *
공개 행사가 끝나고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에서는 샘성 스마트 폰 10시리즈와 관련된 뉴스를 내보냈다.
[샘성 스마트 폰 10시리즈 드디어 베일이 벗겨지다.]
예상대로 샘성 스마트 폰 10시리즈의 핵심은 딥 멀티 기술과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기대를 뛰어넘는 딥 러닝 기술을 통해 혁신적인 신기술을 구현되었다. 특히 데이터와 정보를 인식하고 이를 분석하는 데 있어 기존의 딥 러닝보다 탁월한 성능을 보유했다. 이는 앞으로 또 다른 응용 소프트웨어를 낳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 10시리즈 발표 당일, 샘성 전자 주가 8% 상승. 하루 만에 시총 20조가 상승하다니 이게 말이 되냐?
└ 와 대박이다.
└ 저 모든 걸 강태범 대표가 혼자 했으면 저건 사람이 아니라 외계인일겁니다. 아니면 분명 뒤에 조력자들이 있고 강태범 이름만 가져다 쓰는 것일지도…….
* * *
태범과 데론 머스크와의 두 번째 만남은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드림에너지라는 회사에서 이뤄졌다.
드림에너지는 데론 머스크의 친환경 고효율 에너지 사업의 일환으로 전기 자동차의 배터리, 태양광 마을을 건설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기업이었다.
태양광 판넬, 화학 약품, 기계 장치 등 연구를 위한 각종 장비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많은 연구원이 에너지 개발을 위해 바삐 일하는 게 보였다.
데론 머스크와 복도를 거닐고 있는 태범은 칭찬을 건네며 기분 좋게 대화를 시작했다.
“정말 많은 걸 도전하시네요.”
“저는 항상 상상은 현실로 이뤄질 수 있다고 믿고 있죠. 용기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렇죠. 용기…… 중요하죠. 그럼 언제쯤 화성 여행이 가능할까요?”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 온 가족이 화성에서 살날이 있을 겁니다. 충분히 기대하셔도 됩니다.”
“오. 자신감 넘치시는 것 보다 뭔가 있군요. 역시 머스크 씨는 패기가 넘치시고 본받을 게 많아요.”
“감사합니다.”
태범의 칭찬에 데론 머스크는 한쪽 입가를 쓱 올라갔다. 그리고 어디론가 이동하며 복도 중간쯤을 왔을 때 데론 머스크는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선시티라는 회사에서 일하셨죠?”
“어? 선시티를 아시나요?”
“아우. 모를 일이 있겠습니까? 같은 에너지 개발 회사인데. 요즘 에너지 산업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회사 아닙니까?”
선시티 연구소와 흡사한 장소에 과거 선시티에서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마침 데론 머스크가 선시티에 대해 언급했다. 태범은 선시티와 일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가 투자하고 있던 회사였는데 하마터면 투자 실패로 돌아갈 수 있어서 잠깐 제가 돕기 위해 프로젝트 참여한 적은 있었죠.”
“아. 그러셨구나.”
“그때 우연치 않게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좋은 성과를 냈었죠.”
데론 머스크는 태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복도 휴게 공간에 있는 자판기에 다가가 캔 콜라를 두 개 뽑아서 하나를 태범에게 건넸다.
태범은 많은 회사를 방문해봤지만 이렇게 콜라 대접을 받은 건 난생 처음이었다. 이게 서양인들의 프리 마인드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목을 톡톡 쏘는 시원한 콜라를 마시며 연구실로 이동했다.
“다들 열심히 일하시는데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괜찮습니다.”
데론 머스크와 태범이 연구실에 들어왔어도 연구원들은 본인 할 일에 바빴다. 보통 CEO정도가 방문하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일반 기업과는 달랐다.
“이거 보시죠. 태범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데론 머스크는 태범에게 드림 에너지에서 진행 중인 연구물을 살펴보게 했다. 그리고 대형 모니터에 나타난 건 리튬 이온 배터리 관련 설계도였다.
“오…… 이건. 리튬 이온 배터리 설계도 아닙니까?”
선시티에서 개발했던 리튬 이온 배터리와 아주 흡사한 설계도였다. 직접 리튬 이온과 관련해 프로젝트를 참여했던 태범은 한 눈에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설계도가 왜 여기 있는지 의문이다. 분명 이 설계도는 태범이 초장기 떠올린 아이디어의 설계도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