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43화 (143/188)

# 143

또 다시 방송 출현, 태범은 회사와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매체에 자주 얼굴을 비추곤 했다. 사람들이 잊지 않고 알아주는 것으로도 기업에게 큰 이익이었으니 말이다.

“미국과 중국, EU의 무역 다툼으로 생기는 여파를 예측하시면서 많은 투자 수익을 내고 계시는데 대표님만의 세계 경제 흐름 분석법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TV 프로그램 ‘경제톡톡’의 MC가 질문 건넸다.

“고정된 분석법이 있는 건 아니고요. 흐름을 분석할 때는 수많은 사항을 고려하기 때문에 매번 분석 방식이 달라지 게 됩니다.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목표에 맞게 사용하는 지가 가장 중요하죠.”

최근 미국 정부가 유럽 연합(EU)과 중국에 대한 관세 폭탄을 암시하며 EU와 중국이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무역 전쟁이 일어날 정도로 무역 시장이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그래왔듯 유능한 투자자에게는 혼란과 불확실한 시장은 오히려 기회였다.

불확실한 시장은 커다란 변동 폭을 가져왔고 유능한 투자자는 이 변동을 예측하고는 엄청난 이익을 거둬들인다.

이건 시장의 흐름을 읽는 안목을 가진 투자자들만의 힘이었다.

“그러면 혹시 예측이 어려운 정치적 상황이나 경제적인 상황에서 일반 투자자들이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해야 할 지 조언해줄 수 있는 신가요?”

TV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을 위한 한마디 정도는 필요했다.

“솔직히 제가 말하고 싶은 건 한가지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유능한 전문가에게 돈을 맡기는 것입니다. 꼭 저희 회사가 아니더라도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다면 전문가를 찾아가세요.”

투자는 냉정한 판단이 요구하는 만큼 본인의 능력이 안 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 전문가는 바로 TV 속 이곳에 있었다.

태범이 직접적으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본인 회사를 홍보한 셈이었다.

정말 꿈같아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본인 회사의 고객으로 만들고 싶었다.

모든 녹화가 끝났다.

이제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익숙해질 만큼 태범은 방송국과 친해졌다. 제작진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뜨려던 참이었다.

인사를 마친 MC가 눈치를 보더니 슬쩍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대표님, 정말 없는 건가요?”

“네? 뭐가요?”

“방송에서 말 못할 만한 특별한 것이요. 혹시 그런 게 있으면 저한테만 조용히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저 이래 봬도 입 무거운 국민 MC입니다.”

경제 프로그램을 맡고 있지만 수수한 이미지와 돈이라곤 밝히지 않을 것 같은 바른 이미지를 지닌 MC였지만 그 역시 사람이었다.

“하하. 여기서 모두 말씀 드리려면 저 여기서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지 마시고 저희 회사로 한 번 오셔서 상담 받아보시죠.”

* * *

TB 금융 투자 대표실.

“아니, 2,000억이라니. 어떻게 이 돈을 아무런 언질도 없이 투자를 받아낸 거야?”

재무이사인 효준은 이희현 회장의 투자 소식에 대표실로 한걸음에 달려와 놀라움을 표하고 있었다.

보통 수천억 대의 투자라 하면 물밑으로 이야기가 수없이 오가겠지만 어떤 흔적도 없이 대화가 마무리되고 2천억이 들어온다는 게 효준의 입장에서는 귀신이 곡할 노릇일 테니 말이다.

“이희현 회장에게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된 거야. 자세하게 말하기 힘든데 그가 원하는 뜻이 있거든.”

“그래도 2천억을 애들 돈 맡기듯이 맡기는 사람이 어딨어? 이 자금 정상적인 거 맞지?”

“내가 설마 비정상적인 검은돈이라도 사용하겠어? 우리가 뭐, 급할 것도 없는데?”

효준은 갑작스러운 전개에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태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쌓인 서류를 뒤적거리더니 노란 봉투 속에 담긴 뭔가를 들어 보였다.

“근데 이 돈은 금융 사업에 쓰일 게 아니야.”

노란 봉투에서 A4용지 크기의 서류를 꺼낸 뒤, 효준에게 건넸다.

“뭔데 이게? 투자 계획서?”

“읽어봐.”

효준은 태범이 건넨 서류를 받아들고는 집중하며 읽기 시작했다.

태범이 건넨 서류에는 새로 유입된 자본금 2천억이 사용될 계획이 나열돼있었다. 고심 끝에 설계한 계획이었다. 생명 공학, 신재생 에너지, 나노 기술, 빅 데이터 등 많은 사업 분야가 있었다.

“이걸 다 하겠다고?”

서류를 대충 훑던 효준은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난 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일단 최종 목표는 그래. 그래도 시간이 필요하니까 천천히 진행해야지.”

효준은 입술을 깨물더니 미간이 좁히며 잠시 말을 멈추고는 불만을 가진 표정을 지었다.

태범은 상대방 안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해 심리를 파악할 수 있었으니 효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계산했다.

효준의 미간이 좀처럼 펴질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너무 사업을 벌여 놓으면, 일에 집중하는 데 힘들지 않을까? 아직 우리가 금융 투자 회사로 합친지도 얼마 안 됐는데 괜히 일만 벌였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골치 아플 것 같다. 게다가 이 사업 분야만 해도 그래. 이건 금융과 전혀 관계없는 사업 분야이잖아. 대부분 과학 산업인데 이걸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어?”

사실 효준이 하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기업이 시장의 안정권에 도달했으면 모를까, 막 새롭게 시작한 기업을 제쳐두고 다른 사업을 벌인다는 건 걱정이 될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태범은 더 이상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뭐가 문제야? 사람이야, 투자 회사에 있는 기존의 인력을 사용하면 되고 우리는 추가적인 자금과 브레인만 제공하면 되는 거야. 내가 딥 멀티를 만든 것처럼 말이지.”

“성공이 계속될 거란 보장이 있을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고 그리고 애초에 이러한 투자가 이희현 명예 회장이 바라는 일이었어. 그저 돈놀이하라고 맡긴 자본금이 아니야.”

태범은 딥 멀티의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뤄냈고 그로 인해 투자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까지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더해줬다.

모든 게 스캐너의 힘에 달려있다.

필요하면 능력을 가져다 쓰면 되는 거고 단지 시간만 필요할 뿐 능력의 한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기능을 가진 스캐너가 있다는 걸 효준이 알고 있다면 그도 분명 흔쾌히 태범의 계획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 누가 태범에게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을지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가끔 이럴 때면 속 시원하게 말을 해주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것이 답답한 노릇이었다.

단지 스캐너로 얻은 능력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를 본보기 삼아 설득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다 잘 될 거야. 형도 날 믿었으니 회계사를 그만두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겠어?”

태범은 미소와 함께 효준의 어깨를 토닥이며 안심시켰다.

* * *

[작곡, 작사 기술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29%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30% 진행되었습니다.]

모니터 위에 그려진 악보 위에는 음표가 흩뿌려져 있었다. 저녁마다 스캔을 마치고 약간의 시간을 빌려 작곡을 하고 있었다.

태범에게 악보라면 고등학교 음악 시간 때 봤던 게 마지막이었는데 설마 이렇게 다시 볼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때는 음표가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악보 위에 낙서 하듯 따라 그렸을 뿐이었는데 지금은 광대한 작곡 지식이 머릿속으로 들어온 상황이었다.

‘이렇게 하면…….’

음표에 맞춰 악기를 쳐보지 않아도 머릿속 상상만으로 어떤 음악이 나올지 예상이 가능했다. 이에 대한 능력을 따로 가진 건 아니었지만 아마도 인물들의 능력이 복합 작용하며 공감각적인 능력이 발현된 것으로 보였다.

‘아직 까지는 락 음악이 최고지.’

음악에서는 가장 중요한 건, 시대와 트렌드에 맞는 음악을 뽑아내는 데 있었다. 기술만 있다고 해서 다가 아니란 말이었다.

과거의 뽕짝을 지금에서 작곡했으면 성공했을까. 아니면 지금의 유명 랩을 30년 전 대한민국에서 작곡했으면 성공했을까. 작곡 기술 자체로는 우수하지만 시대와 맞지 않으면 모두 말짱 꽝이었다.

태범은 팝 음악에 가까운 락 장르를 선호했다.

예전부터 평소 팝송을 즐겨 들었고 스캐너로부터 받은 언어 이해력을 통해 영어가 완벽해졌을 때는 가사의 내용까지 귀담아들을 수 있기에 관심은 더욱 커진 상황이었다.

인스턴트 라면 끓이듯 금세 한 곡이 뚝딱 만들어졌다.

태범의 학습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만큼 빨랐다. 그 덕분에 이제는 눈을 감고 작곡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편집프로그램을 이용해 간단한 영상으로 제작됐다. 그리고 그 영상은 해외 유명 영상사이트에 익명 아이디를 통해 게시됐다.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준다는 말이 있듯이 괜히 ‘강태범‘이라는 이름하에 영상을 올린다면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익명으로 한 것이었다.

음악 영상이 올라갔다. 이제 남은 건 네티즌들의 반응뿐.

└ 잘 듣고 갑니다.^^

└ 정말 좋은 음악이네요.

└ 와. 작곡가이신가요? 바로 앨범에 넣어도 될 만큼 수준 높은 음악이네요.

많은 반응은 아니었지만 댓글은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음. 나쁘진 않네.”

그렇게 반응까지 확인한 태범은 작곡프로그램을 끈 후, 그대로 유명 과학지를 살피며 신사업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우주, 환경, 생물, 제약, 항공, 에너지 등 사업적인 가능성이 있는 지식이라면, 가릴 것 없이 모두 집어 삼켰다.

태범의 능력은 전혀 한계를 보이고 있지 않았다.

* * *

TB 금융 투자 소회의실.

“여러분들은 회사의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내는 물꼬를 틀 사람들입니다.”

태범은 이번에 새로 신설된 기술 사업팀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회의실에 모인 15명의 직원들, 여러 과학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이들은 앞으로 TB 금융 투자가 껴안을 추가 사업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됐다.

태범에게 새로운 손과 발이 생긴 셈이었다.

“회사 이름은 TB 금융 투자이지만 기업이 가진 원대한 꿈만큼은 업종의 한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뤄내는 꿈만큼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업이 되고 그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게 앞으로 저희가 할 일입니다.”

태범의 연설이 끝나고 직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 * *

[대한민국의 혁신가, 강태범 대표.]

[대한민국의 데론 머스크.]

“참, 이제는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겠네.”

스마트 폰 액정을 손가락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며 태범 본인의 기사를 살피고 있었다. 매번 볼 때마다 감탄하지만 언론의 정보 습득력은 대단했다.

이미 태범이 다른 사업에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에 빠르게 퍼졌고 이는 동시에 또 다른 소문과 기사거리를 낳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데론 머스크? 참 나…….”

기사를 보고 있는 태범은 혼자 구시렁거렸다.

데론 마스크, 그는 미국인 기업가로 수많은 혁신적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4차 산업 혁명의 아이콘이 된 그는 인터넷, 친환경 에너지, 우주 산업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최근에는 발사한 우주로 발사한 로켓을 재활용하는 데 성공한 그는 앞으로 화성에 식민지를 구상할 정도로 대담한 도전을 이어가는 사업가였다.

분명 그를 빗대어 이야기해준다는 건 칭찬이었지만 태범은 그의 이름이 본인의 호칭에 따라오는 걸 별로 탐탁지 않아 했다.

오히려 데론 머스크에게 ‘미국의 강태범’이라는 호칭을 붙여주면 모를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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