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42화 (142/188)

# 142

샘성 전자 복합기 조립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에 제작 중인 복합기가 놓여 있고 공정마다 하얀색 근무복을 입은 공장 직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맡겨진 조립을 하고 있다.

그렇게 세계각지에서 생산된 원자재들이 이곳에 모여, 하나의 제품을 이뤄내고 있었다.

“저희 복합기는 400MHz CPU를 사용하여 빠른 출력을 돕고 있습니다.”

공장의 간부 한 명이 태범에게 생산 라인을 안내하고 있었다. 모든 게 샘성 그룹 이재호 부회장의 특별지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침 태범의 인생을 바꿔준 스캐너가 이곳 공장에서 최종 조립, 생산 되었다.

샘성 대부분 전자 제품은 베트남, 중국과 같은 저렴한 인건비를 갖춘 해외 공장에서 제작되지만 태범이 가진 스캐너만큼은 이곳 ‘MAID IN KOREA’였다.

혹시나 스캐너에 관해 얻을 정보가 있을 까 태범은 이재호 부회장에게 생산 공장 견학을 부탁해서 이곳에 오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내 스캐너가 제작됐단 말이지.’

처음에는 그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스캐너라 생각했지만 스캐너를 사용하면 할수록 근본적인 원리가 알고 싶어졌다.

태범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 세상을 뛰어넘은 스캐너에 대해서 지적 호기심이 생겼다.

천재적 인물들의 능력이 태범의 몸에 각인되면서 그에 따른 탐구적 호기심도 커진 상황이다.

다만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스캐너의 정체를 밝히고자 했지만 아무리 천재라 한들 도저히 정답을 알아낼 수 없었다. 마법이라도 사용한 것처럼 스캐너는 태범이 알고 있는 물리적 지식의 범주 밖에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스캐너를 분해에서 내부를 분석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차마 행동으로 실행하진 못했지만 태범이 스캐너에게 가진 커다란 물음은 여전히 마음속에 존재했다.

“이제 스캐너만 따로 제작해서 나오는 제품은 없나요?”

“네, 이제는 복합기로 프린트와 스캔이 모두 가능한 일체형 방식으로만 나오고 있습니다.”

태범은 혹시나 집에 있는 스캐너와 닮은 제품이 있을까 찾아봤지만 이 공장에서는 스캐너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는 스캐너 단독 제품은 생산을 중단했다고 한다. 그 자리를 프린트기가 대신에 생산되고 있었는데 딱히 눈에 띌만한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끝인 거죠?”

“네, 여기서 조립에서 마무리 테스트까지 마치고 제품이 출고됩니다. 여기서 생산된 제품은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중국까지 전 세계로 수출이 되고 있습니다.”

“아아…….”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어 아쉬웠다. 본인의 스캐너가 이곳에서 제작된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생산 공정은 너무도 단순했다.

‘하긴 애초에 능력을 갖춘 스캐너가 이런 곳에서 만들어졌으면 세상 사람들 누구나 알고 있겠지.’

아쉽지만 여기서 발을 돌려야만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작은 힌트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예상한 것처럼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 *

TB 금융 투자 대표실.

마치 일하는 티를 내듯 태범의 책상 위에는 서류 뭉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항상 그래왔듯 암기력 통해 서류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동시에 속독으로 빠르게 읽고 있었다.

지금껏 TB 금융 투자에서 수집한 투자 고려 대상의 기업 데이터였다. 기업의 재무정보부터 기술 현황, 임원들 성향까지 투자를 위해 필요한 정보가 모두 담겨 있었다.

이를 보고 이희현 명예 회장의 2천억을 어디에 투자하면 좋을지 한참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도저히 보이지 않아.’

세상의 변화를 줄 만큼 혁신적인 기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부분 세상에 존재하는 기존 지식을 가지고 약간의 변화만 있을 뿐 이희현 명예 회장을 만족시킬만한 놀라움을 지닌 기업은 없었다.

차라리 투자 수익을 목표로 했다면 손쉽게 선택할 수 있지만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잠재력을 지닌 기업을 찾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여기도 아니야.’

태범은 잠시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내 던지고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머리를 너무 회전 시킨 것 같아 잠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시야는 어둠으로 가려졌고 대표실 안은 개미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다. 태범에게 느껴지는 건 오직 머릿속 ‘생각’ 뿐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광활한 우주 안에 오직 생각의 대상과 본인, 단 둘만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생각은 무의식 속에서 꿈을 꾸듯 흘러가고 있었다.

‘나만 이렇게 손을 놓고 있어도 되는 걸까?’

딥 멀티에 관한 원천적인 기술은 태범과 런던대 측이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가지고 추가 개발에 나서고 있는 건 샘성과 런던대뿐이지 사실상 태범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부족한 본인의 손을 대신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고 이미 목표는 달성한 상황에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태범의 눈에는 딥 멀티에 대한 가능성이 보이고 있었다. 많은 기업이 눈독을 들이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태범은 갑자기 떠오른 새로운 생각에 눈을 번쩍 뜨고는 허리를 곧게 세웠다.

몸이 반응할 만큼 태범에게 확고한 의지를 심어주는 아이디어였다.

명상에 가까운 깊은 생각은 서로 분리된 생각을 하나로 조합시키곤 했다.

눈을 감기 이전의 생각과 그 후의 생각이 뒤섞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 * *

태범은 다음 날 바로 이희현 명예 회장을 찾아갔다.

이희현은 현재 모든 일에서 손을 놓고 사실상 무직의 상태였기에 그와의 약속을 잡는 건 어릴 적 옆집 친구 집 찾아가는 것만큼 쉬웠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셨군요.”

“네, 회사에 들어가서 많은 생각을 해봤는데 딱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이렇게 다시 찾아뵙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오니 놀란 듯 보였다.

물론 이희현에게는 단 며칠이었겠지만 태범은 일반 사람이 수년 동안 해낼 생각을 모두 마치고 온 자리였다.

“그래요. 생각 좀 해보셨나요?”

이희현은 태범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놀랄만한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게…….”

태범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회장님, 투자하시기로 했던 돈 차라리 모두 저희 회사에 투자하시죠.”

“허허. 대표님 회사에요?”

이희현이 껄끄러운 웃음소리를 내더니 태범의 말에 만족스럽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물론 예상은 했다. 태범은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자니 외람되지만 솔직히 말해서 가장 좋은 투자처는 저희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제 회사에 제 모든 능력이 집약돼있는 만큼 여기보다 가능성 있는 투자처는 아직 없다고 봅니다.

일부로 보이려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이희현 회장이 투자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은 태범 본인의 회사였다.

하지만 이희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근데 난 말이죠. 말했듯이 이제 돈에는 관심이 없어서 말이에요. TB 금융 투자는 증권사 아닙니까? 내가 거기에 투자해서 뭔 재미를 보겠습니까? 전 강태범 대표의 돈에 대한 안목이 아닌 세상을 보는 눈을 높게 사서 제 돈을 맡기려 했던 겁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세상을 보는 눈에 직접 투자를 하라는 겁니다. 저와 회사는 일심동체이며 TB 금융 투자에 투자하는 것이 곧 회장님이 원하는 세상을 보는 눈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태범의 말에 이희현은 잠시 고개를 푹 숙이더니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헛기침을 내며 목을 풀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그 돈을 가지고 뭐를 하실 계획입니까?”

“회장님의 돈은 단지 수익만을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겁니다. 회장님이 원하시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 그곳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전 하고 싶은 게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죠. 회장님의 투자가 그 시간을 단축시키고 저의 능력이 세상을 놀라게 하는데 도움을 줄 겁니다.”

“자신감 하나는 마음에 들어요. 아무리 봐도 정주인 형님이랑 똑 닮았다니까. 허허. 좋소.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대신 이것 하나만 약속해주시죠. 본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나를 놀라게 할 만 한 성과 하나라도 보여줬으면 합니다. 그게 내 마지막 제안입니다.”

“네, 약속하겠습니다.”

* * *

TB 금융 투자의 외부 감사를 맡을 안정회계법인의 회계사들이 회사로 찾아오는 날이었다.

자본금만 2천억이 넘는 TB 금융 투자는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로 인해 회계 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아야만 했다.

과거 감사를 하러 다니던 회계사에서 이제는 거꾸로 감사를 받는 입장이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삐.

“안정회계법인, 회계사분들 오셨습니다.”

“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약속 시각에 맞춰 회계사들이 대표실에 도착했다.

비서의 안내를 따라 문을 열고 들어온 4명의 회계사. 곱게 정장을 차려입은 그들을 보자니 본인이 회계사 시절 필드로 출장을 나갈 때가 떠올랐다. 추억을 살리며 회계사들의 얼굴을 한 명씩 둘러봤다.

“어! 현찬아?”

너무도 낯익은 얼굴,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고시반에서 같이 회계사 공부를 했던 김현찬이였다. 회계사 합격 통보를 받고 가장 먼저 연락하며 기쁨을 나눈 친구인 그가 이곳을 찾을지는 몰랐다.

“오랜만이다, 태범아.”

회계사 합격 이후 첫 만남이었다. 이렇게 만나다니 태범은 바로 악수를 건네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여기 온다면 미리 연락하지 그랬어.”

“에이, 그래도 일인데 사적으로 연락하긴 좀 그렇지.”

“그래, 요즘 잘 지냈어?”

“뭐, 못 지낼 거 있나. 나야 회계사하면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지.”

“하긴, 그래도 넌 뭐든 열심히 하는 얘였으니까. 잘 지내고 있겠지.”

현찬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항상 노력으로 승부를 봤던 친구, 태범이 유일하게 현찬보다 부족한 능력이 있다면 바로 ‘노력’이었다.

그만큼 목표가 있으면 죽기 살기로 하던 친구였는데 예상대로 잘 지내고 있었다.

“태범아 너 참 대단하더라.”

현찬은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접한 태범의 소식과 함께 칭찬을 건넸다.

“김현찬 씨, 말조심하세요.”

현찬의 가벼운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선임 회계사는 현찬을 째려보고는 경고를 줬다.

“아아! 괜찮아요. 제 친한 친구거든요. 이 친구가 저랑 회계사 공부도 같이하고 같은 해에 합격했거든요. 인연이 깊은 친구죠.”

태범은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며 말했다.

“그래도 대표님 앞인데 예의를 차리는 게…….”

“아우! 저는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서먹하게 지내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공적인 자리에 예의는 지키는 게 좋지만 이 자리에서 굳이 존댓말을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회계사로서 일을 하면서 깨달은 건데 감사를 담당하는 회계사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도 경영자로서 필요한 자세였다.

태범과 안정회계법인 회계사들은 한참동안 재무 정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태범이 회계사 출신이다 보니 서로 대화는 물 흐르듯 흘러갔다.

“아차! 그리고 회계사님들 시간 좀 지나면 많이 바빠지실 겁니다.”

“네, 무슨?”

“이번에 저희 회사에 많은 변화가 있을 예정이거든요.”

태범의 의미심장한 말에 회계사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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