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그냥 마음 편한 대로 대표님 본인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투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돈의 액수가 너무 큰데요.”
“허허. 괜찮습니다. 버리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투자해주세요.”
이희현의 말에 태범은 당황스러운 나머지, 앞으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한두 푼도 아니고 2천억을 버리는 돈이라 생각하라니 저런 금액을 저리 쉽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희현은 더 이상 돈에 욕심이 없는 속세에서 벗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어차피 돈을 무덤까지 가져갈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남은 인생 재밌는 구경하고 가는 게 내 꿈입니다.”
소매 밖으로 드러난 이희현의 팔은 거의 가죽만이 남아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였다. 그런 그가 죽음과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태범은 엄숙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회장님이 말하는 걸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데 어떤 쪽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세상을 놀라게 할 뭔가를 만들어 낸다든지 내 돈이 좀 세상에 큰 변화를 주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2천억이면 할 만한 게임 아닙니까?”
이희현은 공기가 절반인 탁한 목소리로 힘겹게 긴 설명을 해냈다.
태범은 미간을 찌푸리곤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난생처음 받은 투자 조건이었다. 아니, 이 회장은 이를 투자라기보다는 게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컴퓨터 속 게임머니처럼 돈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설마 치매라도 걸리신 건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은 투자를 요구하니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됐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말이 너무도 또렷하고 대화는 논리정연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저한테 이런 투자를 맡기시는 이유라도?”
태범은 이희현 명예회장이 본인을 거쳐 투자하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만약 수익이 목적이 아니라면 본인이 원하는 데로 사용하면 될 텐데 말이다.
태범의 질문에 이희현은 한 치의 뜸들임도 없이 바로 답했다.
“사실 난 시대를 잘 타고나고, 운이 좋아서 이 자리에 온 거지 똑똑한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은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떠오르는 천재 아니오? 그러니 이 돈으로 세상을 좀 놀라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내 돈이 이 세상에 멋진 흔적을 남기도록 말이죠.”
“아……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만 이런 식의 투자는 저도 처음이라.”
인생 말년에는 돈보다는 본인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기 걸 중요시 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 이희현 명예 회장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돈이 아닌 본인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냥 나한테 재미있는 구경거리 하나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고 돈을 사용해주시죠.”
이희현의 간신히 입꼬리를 들어 올리는 것 같더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왠지 모르게 그의 미소는 노인의 점잖은 미소보다는 호기심 어린 순수한 미소가 느껴지고 있었다.
한낮에 시작했던 대화는 붉은 노을이 내려앉을 때까지 이어졌다.
이희현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현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아! 그리고 회장님, 제가 여기 온다고 선물 하나 준비해 가지고 왔습니다.”
아까부터 거실 한구석에 놓여있던, 천제 감싸진 네모난 무언가. 태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 물건을 집어 들고는, 이희현 앞에 다시 앉았다.
“허허. 무슨 선물을 가져옵니까, 마음만 받을 테니 가져가세요.”
“아닙니다. 이건 회장님을 위한 선물이라 받으셔야 합니다.”
“어허. 이건?”
“이재호 부회장님한테 회장님이 제 작품을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샘성 미술관에서 제 작품을 그렇게 칭찬해주셨다 하는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작품 하나 만들어 와봤습니다. 편하게 받아주세요”
태범이 이희현에게 건넨 건 풍경화 하나였다.
밤하늘 달빛이 비치고 있는 안개꽃의 모습. 오로지 태범의 상상으로만 그려진 가상의 풍경이었다.
이를 본 이희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한마디를 뱉었다.
“정말 아름답네요.”
곧이어 이희현의 눈가가 붉게 충혈되더니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그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한 건가, 건설업계를 호령하던 사업가의 모습보다는 왠지 모르게 처량하게 느껴지는 게 기분이 묘했다.
* * *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이라…….’
책상 의자에 앉아 있는 태범은 꺼진 모니터를 보며 한참 동안 생각에 빠져있었다.
투자의 목적은 어떠한 이익을 얻기 위함에 있다.
돈이든 사람이든 결국 투입 대비 보다 더 큰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 바로 투자이다. 그런데 구경거리를 보여 달라니 이건 투자라고 말하기에는 예매한 조건이었다.
2,000억 원치 구경거리면 서울 전체에 폭죽이라도 터트려야 하는 건가. 태범은 이리저리 머리를 돌렸다.
오랫동안 생각을 하던 태범은 컴퓨터를 켜며 이희현 명예 회장에 대해 검색을 시작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인생을 통해 알아야 할 것만 같았다.
[주영 그룹 창업자 이희현]
포털 사이트에 검색창에 ‘이희현’ 이름 석 자만 적어도 그의 모든 이력이 나타났다.
이희현은 무일푼으로 시작해 대한민국 거대 건설사를 만들어낸 인물이었다.
고향인 포항에서 고기잡이로 시작해서 번 돈으로 서울에 내려와 조그마한 건설사를 시작으로 6,70년대 대한민국 경제 발전과 함께 정부의 힘을 업고 성장한 기업이었다.
그는 사업적인 수단도 뛰어났지만 뭐니 해도 그는 사람을 잘 이용할 줄 알았다. 그 덕분에 정치적인 인간 관계를 잘 구축했고 이를 가지고 사업과 연계시켜 큰 성공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또한 이희현은 무대포 정신으로 유명할 만큼 추진력만큼은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아마 한다 그룹 정주인 회장의 영향을 받은 듯했다.
아무래도 건설이라는 업종 특성상 엄한 현장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생긴 성격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둘은 같은 건설업을 운영하며 경쟁자였기도 했지만 깊은 인연으로 형님, 아우 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기업 발전과 혁신을 위해 직접 발로 뛰어온 사람이자 대한민국 발전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희현 명예 회장은 그때 그 감정을 한 번 더 느끼고 싶었던 것 일지도 모른다.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의 발전처럼 그가 가진 돈을 통해 세상에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삐.
생각을 마친 태범은 수화기를 들어 비서진을 호출했다.
“강 비서, 펀드팀에 연락해서 기업 목록 좀 가져와 봐요.”
* * *
[스캔할 능력을 선택해주세요]
[마이클잭슨 능력]
-가창력(100%)
-춤(0%)
[지식 능력]
-노래 기술(0%)
-춤 기술(0%)
-작곡, 작사 기술(19%)
[작곡, 작사 기술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19%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20% 진행되었습니다.]
스캐너의 지식은 학습이 아닌 주입을 통해 태범에게로 들어왔다. 가지고 있지 않던 기억과 생각들이 비어있던 뇌 한쪽에 새로 쓰이는 기분이었다.
스캔을 마친 태범은 컴퓨터가 켜있는 김에 포털 사이트에 본인 이름을 입력하고 새로운 뉴스 거리가 있는지 살펴봤다.
[강태범 대표, 글로벌 SNS기업, 스낵 피쳐의 주주로 알려져.]
[강태범 대표, 스낵 피쳐의 CEO중 한 명인 캐서린과 연인 관계.]
다름이 아니라 오늘 역시 본인에 대한 새 뉴스가 금융계에서 들썩이고 있었다.
미국의 비시지북 이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분야에서 또 다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게, 캐서린이 CEO로 있는 스낵 피쳐였다.
비시지북은 대한민국 시가총액 1위인 샘성 전자보다도 높은 시가총액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비시지북을 스낵 피쳐가 똑같은 행보로 따라가고 있으니 말을 다 했다.
태범의 투자의 정점은 스낵 피쳐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본인과 스낵 피쳐의 기사를 본 태범은 바로 캐서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캐서린이 사업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연락 횟수도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다. 오히려 태범보다 바쁜 게 캐서린일 정도로 그녀의 사업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캐서린, 우리 둘 관계를 언론에서도 슬슬 냄새 맡고 있는데?”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이번에 기사 하나를 봤는데 내가 스낵 피쳐에 투자한 사실이 공개됐더라고.”
“어차피 곧 상장되면 다들 알게 될 텐데 상관없지 않아?”
“상관은 없는데 혹시나 언론 쪽에 너무 정보를 흘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 조심하라고.”
곧 시작될 스낵 피쳐의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태범은 캐서린에게 주의를 줬다.
* * *
샘성전자 스마트폰 사업부 내, 소프트웨어 연구소.
샘성 스마트 폰뿐만 아니라 각종 가전기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연구, 개발하는 연구소로 샘성의 기술이 집약된 곳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많은 연구원들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딥 멀티 정보, 암호화 해체 완료했습니다.”
“그래? 그럼 확인해보자고!”
TB와 런던대 측에서 전달된 딥 멀티와 관련된 정보, 여기에 걸려있던 보안을 푼 뒤, 연구원들은 정보에 접근했다.
딥 멀티는 딥 러닝(deep learning)이라는 기술의 일종이었다.
딥 러닝은 심층 학습이라는 의미로 수많은 데이터와 정보 사이에서 컴퓨터 스스로가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는 걸 말했다.
예를 들자면 사람은 이름 모르는 과일을 보더라도 대충 그것이 과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일반 컴퓨터는 직접 일대일로 정보를 대응 시켜주지 않는 이상 어떤 게 과일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딥 러닝을 적용하면 달라진다.
몇 가지 과일을 본 뒤, 컴퓨터는 스스로 과일에 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며 과일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용자가 입력시키지 않은 새로운 과일을 보더라도 컴퓨터는 알아서 과일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게 된다.
즉, 컴퓨터에게 인간의 학습 기능의 일부분을 넣어주는 것이었다.
굳이 인간이 데이터에 정보를 일대일 대응 시켜주지 않아도 컴퓨터는 많은 데이터를 통해 익힌 패턴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이는 사람의 신경 시스템과 유사했다.
많은 연구원들이 대형 모니터 주위를 둘러싸며 서 있었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모니터 속 알고리즘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한 눈에 직관적으로 보기에는 복잡한 수식으로 이뤄져 한참 동안을 살펴봐야만 했다.
연구원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딥 러닝의 심층 신경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딥 멀티만의 특별한 알고리즘이 포함되어 있었다.
“행렬 연산을 이렇게 분산시키다니…….”
수석 연구원은 안경을 고쳐 쓰며 모니터 속에 나타난 딥 멀티의 알고리즘을 뚫어지라 보더니 감탄을 했다.
알고리즘을 분석을 하면 할수록 입에서는 감탄이 저절로 내뱉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런 식이면 연산 처리량을 많이 줄일 수 있겠는데.”
딥 러닝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고성능의 컴퓨터 하드웨어가 필요한데 여기서 생기는 문제를 태범은 특별한 알고리즘을 통해 해결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대박일 것 같습니다. 이 기술, 무조건 우리 10시리즈에 넣어야 합니다!”
알고리즘을 살펴본 수석 연구원의 심장은 빠르게 뛰더니 온몸에 닭살이 오를 정도로 소름이 끼쳤다. 엄청난 발견을 한 사람처럼 그의 머리에는 앞으로의 대단한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