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39화 (139/188)

# 139

경비원은 태범에게 건네받은 SD카드를 컴퓨터에 삽입했고 폴더를 확인했다.

범인이 복도에 등장한 저녁 8시 시간대, 폴더에서 그 시간대의 영상을 열었다.

그러자 화면에는 기다릴 것 없이 바로 도둑놈이 나타났다.

“와. 이 자식 봐라.”

영상을 보고 있던 경찰들도 상황이 어이없는지 뒤에서 구시렁거렸다.

영상에 잡힌 도둑은 들어오자마자 미리 집 구조라도 알고 있었다는 듯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단 한 명이었지만 빠른 이동과 현란한 손으로 금세 모든 공간을 다 살폈다.

집 전체를 살피는데 단 10분도 안 걸리는 시간이었다.

어릴 적 보물찾기를 했다면 매번 1등을 했을 사람이었다.

“어허. 내 문서까지 훔쳐갔네?”

이제야 알았지만 하드디스크뿐만 아니라 책상에 꽂혀있는 몇 가지 문서들까지 집어 들고 갔다.

그저 좀도둑이라면 저 종이가 뭔지 알고 훔쳐갔을까. 저건 사전에 계획이 된 도둑놈들이 분명했다.

“어? 그러고 보니 TV에 나오는 그 강태범 대표님 아니십니까?”

“네, 맞습니다.”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하던 경찰은 그제야 태범의 존재를 알고는 깜짝 놀라워 했다.

여태껏 CCTV 화면을 보고 있는 뒤통수만 봤기에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태범이라서 그런가 갑자기 경찰들의 행동이 적극적으로 바뀐 것 같았다.

“일단 도난품 먼저 확인하시고 족적이나 지문 채취 하겠습니다.”

도난품은 최종적으로 집에 있던 몇 가지 문서와 하드디스크뿐이었다.

물론 집에 금품이 없었기 때문에 훔쳐갈 게 없었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사라진 것들이 일반 도둑치고는 이상했다는 것이다.

* * *

한동안은 스캐너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방 안에 혹시 몰래 카메라나 도청기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스캐너를 함부로 이용할 수가 없었다.

도둑은 분명 그냥 도둑이 아니라 그 이상의 목적을 지닌 놈으로 보였다.

그런 놈에게 스캐너의 진실이 알려진다면 아마 죽일 기세로 스캐너를 훔치기 위해 달려들 게 분명했다.

일단 경찰뿐만 아니라 사설 보안업체에 의뢰해 집 전체 내부에 대한 보안 점검에 나섰다.

그리고 스캐너는 여전히 책상 위에 있었다.

금고를 구입해서 보관할까도 생각했지만 오히려 은밀한 곳에 있을수록 의심을 받을 것 같았다. 차라리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스캐너를 본다면 그 누구도 의심하지는 못할 것이다.

* * *

“도대체 어떤 놈이 대표님 집을 털었다는 겁니까?”

며칠 후 점심시간 태범의 집에 도둑이 든 이야기를 듣던 이효준은 본인이 도둑맞은 것처럼 열성을 다해 화를 내고 있었다.

“하…… 모르겠네요.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제 집처럼 쉽게 드나들다니 말이죠.”

“경찰에는 신고 하셨죠?”

“일단 경찰에게 조사는 맡겼는데 아마도 범인 잡는 건 힘들 것 같다고 하네요. 얼굴도 모두 가려져 있고 침입 경로도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장갑을 사용해서 지문도 남기지 않았고요. 남긴 거라곤 족적밖에 없어서 이걸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도둑의 칩임은 아주 치밀했다. 불이 꺼질 때만 지나다니는 바퀴벌레처럼 흔적을 담기지 않았다. 그나마 흔적이라곤 발자국뿐이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가 어떻게 빌라에 들어왔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건물에 들어왔다면 도둑이 모습이 입구에 나타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는 정상적인 경로로 들어온 게 아니라는 걸 이야기 했다.

아마도 영화처럼 벽을 타고 넘어왔든가 하늘에서 떨어졌든가 그 둘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대표님! 그럼 그 집에서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앞으로 또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옆에 있던 친구 희준은 태범의 안전을 걱정하며 말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 고민을 해봐야겠네요. 일단 당장은 CCTV나 보안을 추가시켰으니 전처럼 쉽게는 못 들어올 겁니다.”

“그래도 항상 조심하십쇼. 요즘 하도 영악한 사람들이 많아서 말이죠.”

이효준이 음식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하하. 잘 그렇게 하죠.”

* * *

“샘성 그룹에서 투자금이 들어왔습니다.“

“아! 벌써요? 역시 대기업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기업 재무 책임자인 이효준이 금융 투자 회사 통합을 위한 투자에 대해 보고를 하고 있다.

TB 투자 자문과 TB 자산 운용은 금융 투자 회사(증권사)로 통합하기 위한 자본 투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많은 투자가 이뤄진 곳은 샘성 그룹과 백 여사 측이었다.

샘성 그룹이 지원하는 자본은 이번 딥 멀티 계약과 관련하여 추가 계약 조건으로 TB에 투자를 하기로 결정된 결과였다. 전혀 지체되는 것 없이 당사자 간 바로 이뤄진 계약이었다.

그리고 백 여사 측은 이미 말이 된 만큼 펀드가 아닌 TB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지원했다.

둘 모두 큰손들답게 총 1,000억대 자본이 유입됐고, 기존 TB가 소유하고 있던 자본까지 합친다면 총 2,000억대 자본이었다.

이는 금융 투자 회사로 통합하기 충분한 자본금이었다.

“그리고 이건 각 부서에서 필요한 예산입니다. 그리고 기존 부서 외에 추가될 4개의 부서에서 사용될 예상 예산은 미리 저희가 측정해봤습니다.”

이제 이 자본금을 통해 금융 투자 회사 설립에 맞는 인적, 물적 요건을 설계해 나가야 했다.

효준은 각 부서의 들어갈 필요 예산을 취합한 뒤 이를 보고하고 있었다.

즉 금융 투자 회사의 전체적인 틀이 이 보고서 안에 담긴 셈이었다.

“그럼 확인해보고 수정 사항 있으면 전달해줄 테니 기다리세요.”

태범은 효준과 마찬가지로 전직 회계사답게 예산 보고서를 검토하는 데 능숙했다.

효준이 대표실을 나서자 태범은 손에 모터라도 달린 듯 보고서를 빠르게 넘기며 검토를 시작했다.

* * *

[샘성 그룹, TB의 금융 투자 회사 설립 지원이 사실로 밝혀져.]

[자회사의 상대 기업 투자는 비정상적 투자.]

[강태범 대표, 샘성 그룹 접촉이 사실상 사실로 밝혀져.]

“아니! 어떻게 부회장님은 자회사에 증권사를 두고도 TB에 투자를 할 수 있는 거야?”

쏟아지는 인터넷 기사를 보며 샘성 증권 사장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러고는 눈앞에 없는 그룹 부회장을 신랄하게 뒷담화하기 시작했다.

그룹 자회사의 증권사가 있음에도 다른 증권사에 투자했다는 게 영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증권사가 태범이 만들 증권사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많은 금융 고객이 TB로 몰리는 상황인데 증권사가 설립되면서 업종 부분이 늘어나면 자신들에게 돌아올 파이는 줄어들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TB에서 자문과 사모 펀드 운용 이 두 가지 업종만 활동하고 있지만 앞으로 금융 투자 회사가 설립된다면 투자자 매매업, 투자 중개업, 집합 투자업, 투자 일임업, 투자 자문업, 신탁업 이 모든 업무가 가능해진다.

만약 이 모든 업종이 기존 TB가 다루는 업종처럼 성공을 이뤄낸다면 당연히 기존 증권사 입장에서는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정된 고객을 가지고 서로 유치하는 금융사 간 제로섬 게임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저기에 투자를 한 거야? 미친 거 아니야?”

“아마도 전자 쪽과 모종의 계약이 있던 것 같습니다. 들려오는 바로는 딥 멀티와 관련된 계약 때문에 투자가 이뤄진 거라고 합니다.”

사장은 임원들과 대화를 하며 이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아무리 같은 계열사라 할지라도 샘성 증권 쪽에서는 그룹과 TB간의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모든 게 철저히 비밀로 부쳐져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건 경쟁사를 홍보해주는 거랑 마찬가지잖아. 자기 자회사를 내버려 두고 경쟁사에 투자하는데 이걸 보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어?”

“정말 이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살짝 도는 소문이 있는데 말씀드려도 될까요? 정말 아직은 소문으로 도는 이야기입니다.”

임원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다 보니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샘성 증권 사장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말 해봐. 뭔데?”

“샘성 전자 스마트 폰 사업부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인데 내년에 나올 스마트 폰 10시리즈 있지 않습니까? 지금 그걸 강태범 대표랑 준비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뭐? 스마트 폰을? 그게 강태범 대표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같이 준비하는데?”

“딥 멀티가 10시리즈의 비밀 무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TB에 투자된 건 계약상 문제이고요.”

“아니, 도대체 TB는 금융 회사야? 아니면 전자 회사야? 소프트웨어 회사야? 도대체 거긴 뭐 하는 놈들이야.”

이 소문을 들은 샘성 증권의 사장은 어이가 없어 말이 제대로 안 나올 지경이었다. 사실상 본업인 금융업을 넘어서 스마트 폰 개발에 개입하고 있다하니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업임은 분명했다.

“그래서 안 그래도 TB출신 사람들과 접촉 중에 있습니다. 일단 그쪽에 몸을 담갔던 사람들을 영업해서 상황 파악에 나서려 합니다.”

“그래, 최대한 조심스럽게 영입해봐. 그리고 이런 소문은 우리끼리만 이야기하고 어디 가서 함부로 떠벌리지 마, 확인도 안 된 거 괜히 잘못 입을 놀리다간 우리만 다칠 수 있다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 * *

증권사, 즉 금융 투자 회사 설립을 위해 몇 달 동안 회사는 바쁘게 움직였다.

감독 당국의 인가 요건을 맞추기 위해 회사는 거의 새로 태어나다시피 했다.

그리고 결국 TB의 모든 직원들의 노력 끝에 TB 투자 자문과 TB 자산 운용이 합쳐지고 증권사인 ‘TB 금융 투자’가 탄생했다.

2,000억대 자본에 종업원 300명가량이 있는 나름대로 규모 있는 증권사로써 첫 시작을 알렸다.

* * *

TB 금융 투자가 입주해 있는 여의도 15층 빌딩.

TB 금융 투자의 첫 시작을 알리는 축하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모두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에 온 사람들 모두 태범의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었다.

샘정 그룹 이재호 부회장, 상정회계법인의 이재진 대표이사, 선시티 대표, 회계학과 김영석 교수, 심지어 저 멀리 대만에 있는 왕첸까지 자리를 빛내주고 있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고 어쩌다 보니 사회 주요 인사들이 모이게 됐다.

“내 제자 태범아! 자랑스럽다.”

회계학과 김영석 교수는 태범의 얼굴을 보자 두 손으로 손을 붙잡고는 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제자가 이렇게 성공을 거두다니 얼마나 영광이었을까. 김영석 교수의 눈에는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교수님을 보니 몇 년 전 회계사 권유를 받을 때가 떠올랐다. 사실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변화는 너무도 컸다.

수많은 인물이 일생동안 쌓아 올린 능력을 단시간에 얻은 태범에게 시간의 흐름은 너무나도 빨랐다.

가장 많은 플래시가 터진 것은 이재호 부회장과 태범의 만남이었다.

소문만 무성했던 샘성과 TB 간의 스토리가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축하드립니다, 강태범 대표님.”

“감사합니다.”

둘의 만남은 같이 있던 TB의 직원들조차 신기해할 정도였다.

재벌 중의 재벌 샘성 그룹의 이재호 회장이 눈앞에 나타다니 말이다. 마치 어린애들 노는 경기장에 어른이 낀 것 같은 느낌. 모두가 놀랄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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