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38화 (138/188)

# 138

“너 그거 알아? TB에서 투자하는 주식만 따라다니면 돈 번다는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하냐.”

“아니, 진짜야. 그렇게 해서 돈 번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야. 무슨 비트코인 전성기 때 보는 것 같다니까. 사기만 하면 오르니.”

여의도 빌딩 숲, 두 명의 직장인 남성이 점심시간을 틈타 흡연 구역으로 나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두 남자는 담배 한 모금과 함께 증권가 소식을 대화로 삼았다.

“그러면 TB 쪽은 무조건 떼돈 버는 거 아니야? 기업의 성과가 어찌 됐든 개미가 저렇게 달라붙어서 가격을 쌓아주는데.”

“그래서 지금 돈 무지하게 벌고 있잖아. 운용하는 펀드마다 지금 수익률이 엄청나던데 심지어 외국계 자본들도 TB 펀드에 많이 들어왔다더라.”

주식은 가치는 기업의 성과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가장 중요하게 반영되는 건 사람의 심리였고 그 작용이 TB에서 소유하고 있는 주식에게도 이어졌다.

사람들은 투자 기업이 아닌 태범의 명성과 능력만 보고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럼 우리도 거기에 투자해볼까?”

“이미 우리 귀에 들릴 때쯤이면 주가 다 쌓이고 흘러내릴 때쯤이야. 차라리 자문을 받는 게 낫지.”

“맞아. 거기 자문도 해준다며?”

“사실 나도 투자 자문 받아보고 싶어서 연락을 했거든. 근데 뭐라는 줄 아냐? 상담 대기만 한 달이란다.”

“정말? 이야…… 그럼 거의 돈을 쓸어 담고 있겠네.”

다시 들어가면 퇴근 때까지 담배 필 시간이 없다. 남자는 다 핀 담배를 내던지고, 한 개비를 더 꺼내 입에 물며 말했다.

“그 강태범이라는 사람 있잖아? 회계사 합격하고 대학도 바로 조기 졸업했다더라. 그리고 얼마 있다가 바로 창업해서 지금은 완전히 성공했고 자세히 보면 참 신기한 게 많은 사람이야.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이걸 다 해 먹냐?”

남자는 태범의 이력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거의 태범 팬클럽 수준, 언론과 여론이 태범의 이야기를 자주 다루다 보니 보기 싫은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볼 정도였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우린 언제까지 회사의 톱니바퀴로 살아야 하냐?”

남자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신세 한탄을 했다.

실제로 얼굴 한번 보지 못한 태범이지만 부러움과 동시에 질투가 느껴지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성공한 태범과 본인의 처지를 비교하며 말이다.

“짜식, 또 암울한 소리한다. 그러지 말고 들어가자. 또 늦게 왔다고 한소리 듣겠다.”

남자의 직장 동료가 어깨를 치자, 남자는 담배 연기를 깊게 한번 빤 뒤 절반 정도 탄 꽁초를 바닥에 버리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 * *

샘성 계열사 호텔에 있는 조그마한 회의장이었다.

거의 밀담을 나눌 것만 같은 공간. 복도에 CCTV는 보이지 않았고 대신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샘성의 전략실에서 나온 임원과 동행을 했고 금속탐지기만 3번을 통과하며 도착할 수 있었던 회의장이었다. 괜히 청와대 갔을 때를 떠오르게 했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에는 이재호 부회장, 존 스미스 교수가 이미 자리를 잡고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렇다. 오늘은 딥 멀티와 관련해 최종 대화를 나누기 위해 각 대표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저희 기술진과 몇 번의 논의를 해봐도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세상에 딥 멀티만한 게 없다는 걸 말이죠. 이것만 있으면 내년에 출시할 10시리즈는 물론 이와 연동시켜 수많은 전자기기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된다면야 저희도 바랄 게 없죠.”

이재호 부회장의 확신에 태범과 존 스미스 교수는 앞으로가 기대됐다.

딥 멀티를 조그마한 스마트 폰 속으로 집어넣기 위한 기술. 이는 이미 샘성 측에 존재했고 단지 필요한 건 딥 멀티에 대한 알고리즘과 데이터라고 한다.

“저희가 설명한 기술은 어떻습니까?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습니까?”

“네, 잘 받아봤습니다. 전 샘성이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을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마지막 논의를 하기 전, 샘성 측에서 딥멀티를 스마트폰에 담을 수 있는 기술에 대한 보고서를 태범과 존 스미스 교수에게 제공했었다.

아무래도 딥 멀티는 사용자의 입력을 인식하며 학습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소모하다 보니 조그마한 스마트 폰 자체에 넣기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다고 서버 전송을 통해 이용함에 있어서도 제한이 있었기에 과연 내년 샘성 스마트 폰 10시리즈에 계획대로 진행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이미 샘성은 이에 대한 준비를 마쳐둔 상황. 심지어 태범이 놀랄 정도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괜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아니었다.

“흔히들 이런 말 하는 사람까지 있죠. 혹시 외계인을 고문해서 기술을 개발하는 건 아니냐며 말이죠. 사실 저희는 아직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상상 이상의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시기를 기다릴 뿐이죠.”

“그럼 정말 외계인이라도 붙잡고 있는 거예요? 하하.”

“그거야 상상에 맡기죠.”

부회장은 농담으로 말하는 뉘앙스였지만 웬일인지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샘성의 성장을 보자면 농담이 사실이라고 믿을 만큼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그럼 계약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걸로 하고, 공식적 마무리는 기술진과 함께 미팅을 가지고 하시죠.”

“네, 그렇게 하죠.”

일단 구두로 모든 계약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아직 실무진들끼리 만나서 계약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오가야겠지만 사실상 계약은 체결된 거랑 다름없었다.

이제 샘성의 새 스마트 폰이 팔릴 때마다 일정 비율이 태범과 런던대 측에 기술사용료가 지급된다.

최근 샘성의 스마트 폰 사업에서 나오는 매출액만 한해 20조가 넘었다. 이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어마어마한 돈이었고 여기서 얻는 기술사용료는 상상 이상일 것으로 예상했다.

태범에게는 본업과 부업이 바뀔 정도의 결과였다.

* * *

“내일 뵙겠습니다, 대표님.”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태범의 차를 운전했던 기사는 태범이 사는 빌라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퇴근했다.

몸은 좀 지쳤지만 그래도 샘성과의 좋은 계약을 맺었다는데 만족스러웠다.

새롭게 들어올 자금으로 또 다른 앞날을 생각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불 꺼진 복도는 태범이 지나가면 센서 등은 자동으로 불을 비췄다.

그리고 집 앞에 도착. 하지만 이상하게도 닫혀있어야 할 집 문이 열려있다.

‘뭐야. 왜 문이…….’

분명 혼자 사는 집이고 아무도 올 사람이 없는데 문이 열려있다는 건 단 한 가지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도둑.’

설마 이곳에 도둑이 들었을까 생각을 해봤지만 도저히 그것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뭐야, 도대체.’

혹시 안에 도둑이 아직도 있다면 위험해질 수 있다.

태범은 손에 쥔 서류가방을 방패삼아 몸 앞으로 가로막고는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불은 꺼져있었다. 혹시나 어둠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기라도 할까 긴장이 됐다.

탈칵.

조심스레 전등 버튼을 누르고 거실 불을 켰다.

불이 밝게 켜지자 태범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

정말 도둑이 맞았다. 집안이 온통 난장판이었다.

선반 위에 있어야 할 물건들이 모두 땅에 내 뒹굴고 있고 서랍은 하나도 남김없이 열려있었다.

난생처음 겪는 일에 당황스러웠지만 가장 걱정된 건 단 하나, 스캐너뿐이었다.

“어떤 개놈이!“

태범은 욕을 내뱉으며 신발도 채 벗지 못하고 방으로 뛰어갔다.

정말 혹시나 스캐너가 사라졌거나 파손이라도 됐다면 그땐 끝장이다.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겼다.

“제발…… 제발…….”

방안 역시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고,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바로 책상 위에 있는 스캐너를 살폈다.

다행히 스캐너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잘못된 건 아닐까, 스캐너를 자세히 살펴봤다.

다행히도 스캐너는 흠집 하나 없이 그대로였다. 단지 그 옆 책상 위가 책꽂이에서 떨어진 책들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래도 일단 스캐너가 안전하게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했다. 다른 건 없어져도 복구할 수 있지만 스캐너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다.

일단 긴장을 놓은 태범은 탐정에 빙의라도 한 듯 범인을 잡기 위해 하나씩 조사를 해나갔다.

가장 먼저 112에 전화에 경찰을 불렀고 이 빌라의 보안을 담당하는 경비원을 호출했다.

그다음은 집 안에 있는 CCTV 영상기록을 살피고자 했다.

육안으로는 찾기 힘들지만 태범은 혹시 모를 상황에 이 집안에 CCTV를 숨겨놓고 있었다.

마치 이번 사태를 예상이라도 한 듯 말이다.

태범은 영상을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려고 본체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몇 번을 눌러도 응답이 없다. 잘못 눌렀나 싶어 책상 밑으로 고개를 숙여 살펴보니 바닥에 웬 나사가 굴러다니고 있다.

‘설마…… 컴퓨터를?’

바닥에 굴러다니는 나사는 컴퓨터 본체 케이스를 고정시키는 나사였다.

검은색 플라스틱으로 된 조그마한 나사.

태범은 아차 싶어 바로 쭈그려 앉은 채 본체 확인에 들어갔다.

‘그냥 도둑이 아니군.’

확인 결과 컴퓨터 저장장치인 하드디스크가 사라졌다.

일반 도둑이었다면 금품을 찾아 훔쳐갔을 텐데, 이 도둑은 달랐다.

차라리 값비싼 그래픽카드나 CPU를 훔쳐갔으면 모를까, 하드디스크를 훔쳐갔다는 건 금품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졌다는 걸 의미했다.

“아니! 도둑이 들었다고요?”

경비 아저씨가 헐레벌떡 뛰어 올라왔다.

“아저씨,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럴 수가 없는데.“

경비 아저씨도 이 상황이 어이없는지 당황한 눈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곳은 외부출입이 엄격한 데다 보안이 철저한 건물이었다.

애초에 이런 사태를 대비해 이사 온 집이었는데 이런 집조차 털리니 말이 안 나올 정도이다.

“아저씨, 뭐 이상한 거 없었나요? 어떻게 출입증도 없이 도둑이 이곳까지 올라오죠?”

“아…… 이상한 건 없었는데 여기 사는 주민밖에 올라오지 않았거든요.”

“그러지 마시고 바로 CCTV 확인하시죠.”

태범은 본인 집 내부에 있는 CCTV 영상 저장장치인 SD메모리 카드를 CCTV에서 뽑아 들고는 경비실로 내려갔다.

그곳은 수많은 모니터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빌라 모든 공간이 담겨있었다.

3명이 항상 상주하기 때문에 항상 어떤 공간이든 감시가 되는 곳이었다.

철저한 보안만큼이나 사각지대는 역시 거의 없었다.

일단 오늘 태범이 출근을 한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살펴봤다.

“빨리 감기로 넘겨보시죠.”

태범의 집, 복도가 찍힌 CCTV 영상을 빠르게 돌려봤다.

출입이 많이 제한돼 있고 하다 보니 경비원들은 척 보면 누가 주민인지 알 수 있었다.

“없는데요?”

창밖을 통해 아침 햇살이 비추던 복도는 어느새 빛 하나 없는 깜깜한 곳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도둑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입니다. 신고하셨죠?”

이제야 도착한 경찰은 사건 경위를 듣는 동시에 같이 CCTV 영상을 살펴봤다.

“어! 저놈이다. 저놈!”

경비원이 녹화 화면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화면 속 사람을 가리켰다.

검은 복면을 쓴 한 남자. 키는 대략 170㎝ 정도로 보였고 보통 체형을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그 남자는 마술처럼 뿅하고 복도에 나타나더니 태범의 집으로 들어갔다.

복도 CCTV 영상은 여기까지였다. 범인이 어떻게 이 건물에 들어왔는지는 잡히지 않았다.

마치 귀신을 본 듯 이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여기! 저희 집 내부 CCTV 영상 기록인데 이것도 좀 봐주시죠.”

복도 영상으로 만으로는 제대로 된 확인이 안 됐고 태범은 연이어 손톱만한 SD카드를 내밀며 영상 확인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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