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36화 (136/188)

# 136

‘샘성 그룹 부회장 이재호!’

그의 얼굴을 처음 보는 순간 아우라가 느껴졌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이재호는 남자치고는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영락없는 재벌 도련님 느낌과 더불어 스마트한 CEO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대통령의 실물까지 본 태범이었지만 재벌가라는 또 다른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뭔가가 있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랄까. 아무리 평등한 사회라 할지라도 자본주의에는 보이지 않는 돈의 계급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자본주의 계급 하에 최고점에 서 있는 분이니 위화감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다른 세계의 사는 사람처럼 말이다.

“이쪽으로 오시죠.”

비서실 측 직원의 안내에 강은미는 대기실 같은 곳으로 이동했고 태범은 이재호 부회장과 같이 집무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앉으시죠.”

이재호는 미소를 유지한 채, 테이블 자리로 태범을 안내했다.

차를 가지고온 비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정말 단둘이만 이뤄지는 자리였다. 그래서 그런지 어색함과 함께 미묘한 긴장의 기류가 느껴졌다.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번에 직접 저희 회사에 찾아오셨던데요. 그때는 손님이 있어서 반겨드리지 못했네요. 죄송했습니다.”

“죄송하긴요. 제가 말없이 찾아간 게 잘못이죠.”

서로의 예의범절을 뽐내기라도 하는 듯, 태범과 이재호는 정중한 예의와 함께 대화를 시작했다.

“일단 전화로 미리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딥 멀티랑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네, 맞습니다. 그쪽에서 사용하고 있는 딥 러닝 기술, 딥 멀티에 대해 이야기 좀 나누고 싶었습니다.”

“사실 전부터 그 문제로 샘성 전자 쪽에서 연락이 있었거든요. 그건 아시고 계시는지?”

“네, 당연히 알고 있죠. 이번에 딥 멀티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것도 모두 샘성 전자 김필두 사장 때문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 혁신적인 기술이 있다며 입이 닳도록 칭찬하던데요?”

“아! 그랬습니까?”

“요즘 대한민국이 강태범 대표님 이름으로 떠들썩하지 않습니까? 충분히 칭찬할 만하던 데요.”

“높으신 분들이 이렇게 칭찬까지 해주시고 영광입니다.”

길을 지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보며 사인을 요구하고 집 앞은 허구한 날 취재진들이 찾아올 정도였으니 태범은 본인 능력에 대해 이미 실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재호 부회장에게 직접 전해 듣는 칭찬은 또 다른 감회였다.

일반 대중을 넘어 사회 깊은 곳까지 본인의 능력을 잘 알고 있다니, 거의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다.

“제가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그때 샘성 전자의 제안을 거절했던 이유가 뭔지 알고 싶거든요. TB측에서도 분명 좋은 기회였을 텐데 말이죠.”

“아직 때가 이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상 저희 회사가 아직은 완전히 자리 잡은 건 아니라 그 이전까지는 기술을 외부에 노출시킬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셨군요. 근데 선시티에서 이번에 고 재생 리튬이온 배터리를 만들 때 딥 멀티가 사용됐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러셨는지?”

지금까지 미소를 유지했던 이재호 부회장은 이제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고 태범은 성실히 답해주고 있었다.

“그건 저희가 운용하는 펀드의 투자 대상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실 선시티에 개인적인 마음이 있어 도와줬다기보다는 회사의 투자 성공을 위한 것이었죠.”

대답이 납득이 가는지 이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차를 한 모금 훌짝이고는 본격적인 의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샘성 전자에서는 매년 스마트 폰의 새 시리즈를 발매하죠. 그리고 내년이 샘성 스마트 폰 10시리즈가 나오는 해이고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샘성 꺼 쓰거든요.”

태범은 양복 안주머니에 있던 샘성 스마트 폰을 꺼내 보였다. 이재호 부회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이를 바라봤다.

“최근에 나온 9시리즈를 쓰시군요. 내년에는 제가 10시리즈를 직접 선물해드리죠. 허허.”

이재호는 선물 약속과 함께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10은 아주 의미 있는 숫자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저 숫자에 불과하지만 고객들의 생각은 또 그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이번 10시리즈에 혁신적인 기술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그럼 설마…… 스마트 폰에 저희 딥 멀티를 탑재라도 시키려고 하는 건지?”

“역시 똑똑하시네요. 맞습니다. 그게 제가 대표님을 지금 이 자리서 만나는 목적입니다.”

드디어 샘성 그룹의 접촉 의도가 모두 파악되었다.

샘성 스마트 폰 10과 딥 멀티의 합작. 이재호 부회장은 지금 이걸 원하고 있었다.

“근데 굳이 저희 딥 멀티를 선택하신 이유라도? 딥 러닝 시스템은 기존 샘성이 계약을 맺고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에도 존재하지 않나요?”

“네, 그렇긴 한데 딥 멀티만큼 뛰어난 딥 러닝 시스템은 아닙니다. 그래 봤자 대부분이 현재 상용화가 불가능한 기능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딥 멀티는 실제로 쓰이고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결과를 내어 입증까지 됐고요.”

이재호는 딥멀티에 대해 칭찬 일색이었다.

몸을 태범에게 가까이 기울여, 본인이 아는 딥멀티에 대한 긍정적 부분을 모두 털어놨다.

듣고 보니 생정 그룹이 왜 그렇게 딥 멀티를 찾았는지 이해는 갔다.

하지만 기술적인 의문이 하나 있었고, 태범은 이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딥멀티를 그 많은 스마트폰 고객들이 모두 사용하려면 수많은 데이터 서버와 메인 컴퓨터가 필요할 겁니다. 그걸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요.”

“그건 저희 샘성 전자 측에서 이미 파악해둔 상황입니다. 저희에게 오직 필요한 건 딥 멀티 뿐입니다. 저희가 딥 멀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재호가 손을 내밀며 제안했다.

태범은 잠시 테이블 위를 바라보며, 머리를 굴렸다.

과연 이 제안이 회사에게 유리한지 득과 실을 계산하는 것이다.

이 계약을 하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은 것인지. 샘성과는 시너지 효과는 존재 할지.

잠깐의 고민 끝에 태범은 결정을 내렸다.

“네, 좋습니다. 저는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자세한 계약 조건은 시간을 두고 서로 조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입니까? 어이구! 감사합니다.“

이재호는 두 손으로 태범의 손을 잡으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그가 평소 딥 멀티를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는지 느껴졌다.

물론 비즈니스를 위한 재스쳐 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게 본격적인 대화는 마무리되고, 태범은 여전히 가득 찬 찻잔을 들고선 한 모금 들이마셨다.

“어! 저거!”

차를 마시기 위해 고개를 적시는데 익숙한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왼쪽 대리석 벽에 걸려있는 작품 하나.

자세히 바라보니 저건 태범이 집에서 그렸던 미술 작품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계속 눈앞에 있었는데 대화의 본론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저 그림이 눈에 보였다.

“아, 저거요. 대표님 작품이죠?”

“네, 제가 그린 건데…… 저게 어떻게 여기 있죠?”

생각치도 못 했다.

본인이 이곳에 오기 전부터 본인의 미술작품이 샘성 그룹 본사 그것도 부회장실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니 말이다.

“저희 어머니께 선물 받은 그림입니다.”

“아! 그러세요?”

“요즘 미술계에서 강태범 대표님 작품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안 그래도 저희 어머니 미술관에서 대표님 작품을 수집하고 있다 하더라고요.”

이재호 부회장의 어머니, 홍여정.

샘성 그룹 회장의 부인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말 가치가 있는 예술 작품만 모으는 곳인데 설마 본인의 그림이 저곳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요즘에는 미술 작업 안 하시나 보죠?”

“가끔 하곤 있긴 하는데 예전보다는 덜하죠.”

“제가 사실 대표님을 좀 알아봤는데 어쩜 그리 재능이 많으신 거죠? 사람들이 요즘 생각하는 것처럼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저렇게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 말이에요. 혹시 숨겨둔 조력자라도 있는 건가요?”

“네? 조력자요?”

“네, 몰래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요.”

“제가 그런 게 어디 있겠습니까, 저랑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곤, 제 회사 직원들밖에 없습니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그만큼 대단하시다는 겁니다.”

* * *

강태범의 아버지.

컴퓨터 앞에서 한참 주식에 빠져있었다.

초창기 태범이 주식을 관리해 준 덕에 재미를 봤고 이를 잊지 못해 요즘도 주식 투자를 즐겨하고 있었다.

투자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나름 전문가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딸칵.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없는 건가 주식 관련 커뮤니티에 들어가 정보를 탐색했다.

많은 글이 존재했지만 그중에도 요즘 이슈인 아들과 관련된 정보들도 많이 있었다.

아들 회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태범의 이름이 들어가면 눈에 띄는 건 당연. 꼭 한 번씩은 클릭해보곤 했다.

그렇게 글을 확인하던 중 흥미로운 글 하나.

‘뭐? 우리 아들 회사가 샘성이랑?’

샘성 그룹과 강태범 대표가 만남을 가졌다는 증권가 찌라시 중 하나였다.

[강태범 대표, 샘성 그룹 측과 은밀한 접촉 중]

TB 자산 운용의 강태범 대표와 샘성그룹이 부회장이 접촉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샘성전자와 기술적 제휴 때문에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아마 내년에 출시할 스마트폰 10 시리즈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아니면 샘성증권과 투자 관련한 기술적 공유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찌됐든 샘성쪽과 TB쪽이 연결되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 정말 TB, 뒤에서 봐주는 곳 있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단기간이 이렇게 승승장구를 할 수 있는 거지?

└ 결국 샘성이 먼저 TB를 잡았군요.

└ 혹시 TB쪽에 투자할 방법은 없는 건가요? 아니면 샘성에 간접투자라도 해야 하는 건가.

└ 대박이네. 샘성 전자 주식 오르겠네.

글을 읽은 태범의 아버지는 기대감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들에게 재벌 이야기를 꺼낸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실제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 축에 꼽히는 사람을 만났으니 말이다.

물론 아들이 재벌이 됐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앞으로 그렇게 되겠다는 하나의 암시 글이기도 했다.

태범 아버지의 상상은 점점 현실로 이뤄지고 있었다.

이 나이 때 자식이면 취업한다고 여기저기 원서 넣고 할 나이인데 태범은 사업적으로 이재호 부회장이나 만나고 있다니 아버지로써 굉장히 뿌듯했다.

간혹 본인이 알던 아들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

‘우리 아들 정말…… 성공했구나!’

* * *

“여기가 한국이군요.”

존 스모스 교수와 런던 대의 연구원 3명이 한국을 찾았다.

딥 멀티를 태범과 공동 개발한 사람들로써 그들은 딥 멀티에 대한 기술적 권리를 50% 가지고 있었다.

현재 강태범과 샘성 그룹 측에서 기술사용과 관련해 논의가 시작되면서, 이들 역시 그 논의에 빠질 수 없었다.

인친 공항에 도착한 이들은 바로 태범의 사무실이 있는 TB 자산 운용으로 이동했다.

TB 자산 운용에 등장한 4명의 외국인들.

이들이 회사에 나타나자 회사내 모두의 시선이 그들을 향해 이동했다.

국내 투자자만을 상대하다 보니 회사 내에서 외국인을 볼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의 등장은 제법 낯선 풍경이었다.

“교수님,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태범은 회사 로비까지 직접 나와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줬다.

어찌된 게 존 스미스 교수는 갈수록 젊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태범 씨, 이거 완전 대성공 아닙니까?”

존 스미스가 태범을 만나자마자 인사보다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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