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이제부터 여기가 엄마, 아빠가 살 집이야.”
“여…… 여기야?”
“응, 들어가 봐.”
부모님의 새집 방문. 문 앞에 서 있는 부모님의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전에 살았던 집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으니 말이다.
이전 살던 곳은 오래된 주택가가 즐비해 있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놀 것 같은 허름한 골목길이 있었다면 이제는 모든 게 최신으로 설비돼있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건물 안이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낯선 공간에서는 경계하긴 마찬가지다. 부모님은 조심스럽게 집 문을 열었다.
“와…….”
눈앞에 펼쳐진 건, 집 안에 있는 복도와 넓은 거실이었다.
이를 본 아버지와 어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온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놀라워했다.
“어머나! 여기가 정말 우리 집이야?”
“이야! 이런 데서 내가 살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그 유명하다는 로얄팰리스에 살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부모님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현실이 됐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피부로 와 닿는 때가 온 것이다.
“아들 덕에 이런 집에도 살아보네. 뭐야? 바닥 이거 대리석이지?”
“응.”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부잣집 바닥이 이렇잖아. 꼭 그거 보는 거 같네.”
어머니는 대리석 바닥이 신기한지 무릎을 굽히곤 바닥을 만져보고 있다.
지금껏 바닥이라면 노란색 장판뿐이었는데 이제는 거실 대리석 바닥이 반짝이고 있었다.
부모님은 보물찾기라도 하듯 집안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곳곳을 살폈다.
어머니는 싱크대에서 수압을 살피기도 하고 가스는 잘 나오는지 불을 한편 켜보기도 했다.
설마 이 고급 아파트에서 물이 안 나올까? 어머니의 모습에 태범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여기 단지에 헬스장, 수영장, 그런 시설 있으니까. 편하게 이용하면 돼.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경비실에 연락하고 여기는 따로 보수 관리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만 하면 도와줄 거야.”
아직 낯선 공간에서 모르는 게 있을까? 태범은 친절하게 집에 대해 모든 걸 설명했다.
부모님은 그저 이곳이 신기하면서도 낯선지 집안 살피는데 바빴다.
“어! 태범아, 이것도 직접 산 거야? 아니면 원래 집에 있는 거야?”
“아빠 요즘 오십견 때문에 어깨 아프다며 몸 피로해질 때 사용하라고 놨지.”
“오십견은 2년이면 다 낫는다던데 뭘 이런 거까지…….”
말은 이렇게 해도 아버지의 표정에는 미소가 띠었다.
거실 한구석에 있는 안마의자, 아버지는 안마의자에 몸을 맡겨 본다.
“시원하지? 나도 써봤는데 정말 사람이 안마해주는 것 같더라고.”
“어이구, 시원하다. 역시 좋은 거는 다르네.”
태범은 안마 의자에 앉아 안마를 즐기던 아버지를 보다가 어머니의 표정을 슬쩍 바라봤다.
사실 과거였다면 이런 걸 돈 아깝게 왜 샀냐며 잔소리를 하셨을 어머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의 입에서는 그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 돈을 걱정할 때를 지났다는 걸 어머니도 잘 알고 계셨다.
돈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요즘 안 그래도 광고도 나오고 많이 바쁠 텐데, 이렇게 아빠, 엄마도 챙겨주고 고맙다.”
“에이, 뭘 그런 말을 해. 일보다는 가족을 먼저 챙겨야지.”
“아니야. 혹시나 일 문제 생기면 일에만 집중해. 엄마, 아빠는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자식에게 피해를 주기 싫은 건 부모님들의 공통된 마음인지 어머니는 아들의 호의에 애써 손을 흔들면서까지 거절을 하고는 본인 일에만 집중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저 예전에는 철없이 지냈지만 요즘은 가면 갈수록 부모님의 속뜻이 느껴지곤 했다.
어머니의 저런 말이 오히려 마음이 찡하게 하는 것이 앞으로 더 잘해드려야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태범아, 으어. 이렇게 계속 잘 나가다가 앞으로 재벌 되는 거 아니냐? 윽, 시원하다.”
안마를 받는 아버지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안마 효과가 대단한지 괴상한 신음소리까지 더했다.
“재벌? 안될 거 뭐 있어?”
“뭐? 하하하. 그래, 네 말이 맞다. 이제 뭐든 할 수 있겠지. 그 재벌 되는 거 그까짓 것 우리 아들이 어려워하겠어?”
아버지는 아주 신이 나신 듯 보였다.
아들이 사준 좋은 집에서 안마의자에 누워 받는 안마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이셨다.
“태범이한테 왜 부담주고 그래.”
재벌 이야기를 꺼내며 혹시나 아들에게 부담을 주는 건 아닌지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한소리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기에 전혀 눌리지 않고 오히려 반박을 한다.
“부담이라니 우리 아들은 이제 뭐든 잘 할 수 있다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버지는 다시 안마의 시원함을 느끼며 다시 한번 태범에게 말했다.
“아빠는 이제 태범이 너만 믿는다. 무조건 잘 될 거야. 으우, 시원해. 어우.”
* * *
[가창력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65%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66% 진행되었습니다.]
“음…… 음~ 음.”
스캔을 마친 태범은 잠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가지고 웹툰을 감상했다.
집 밖에서는 기업의 CEO라면 집 안에서는 예술가가 따로 없었다.
태범에게 깃든 능력을 모두 사용하라 해도 시간이 없어 사용을 못 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이런 식으로나마 능력을 사용하며 모든 능력을 골고루 즐기고 있다.
노래를 부르는 동시에 미술 활동은 물론 웹툰 보는 게 미술 활동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는 연관이 있었다.
태범의 머리와 손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와 그림이 지금 대중들 앞에 보여 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하하, 이제 제법 잘 그리네.”
매주 2번 동생이 올린 웹툰을 확인하는 건도 태범의 일상이 되었다.
최근 유명 포털사이트에 정식 연재를 시작했고 웹툰 순위가 파죽지세로 치솟고 있었다.
현재 화요일 웹툰을 클릭하면 가장 맨 위에 제목이 나올 정도였다.
모든 게 대만족이다. 태범이 보기에도 부족할 것 하나 없는 웹툰이었다.
“짜식, 그래도 하라는 대로 잘하네.”
물론 재미있기도 했지만 가장 기분이 좋은 건, 조언 한 대로 동생이 잘 따라 와줬다는 데 있었다.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형의 가르침에 순순히 따라온 결과 좋은 성적이 만들어졌다.
단기간인데도 불구하고 태범의 힘을 빌린 태인이는 모든 게 바뀌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웹툰 작가 지망생에서 이제는 베스트에 이름을 올린 웹툰 작가로.
그런 태인이의 모습을 보자니 형이라기보다는 선생님에 가까운 심정으로 보람차고 뿌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 * *
윤희성으로부터 TB 투자 자문과 관련해 보고를 받던 중이었다.
태범이 요청한 보고서들을 가지고 와 책상 위에 가득 올려놓고는 설명을 하고 있다.
“여기 이번에 새로 들어온 직원들 명단입니다. 그리고 대표님이 지시한데로 딥 멀티를 통해 고객의 자산 성격을 분류해봤습니다.”
“네, 고생 많으셨어요. 안 그래도 요즘 가장 바쁜 곳이 자문 쪽 아니겠어요?”
“그래도 잘 되니까 좋죠. 조금 바쁘더라도 일이 잘되니 직원들 모두 만족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럼 다행이고요.”
광고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TB 투자 자문이었다.
아무래도 고객의 접근하기 가장 쉽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표님, 혹시 샘성 그룹 측이랑 연락하고 계시나요?”
보고를 모두 마친 윤희성이 조용히 입을 벌리며 말했다.
“네? 그건 왜요?”
“아, 사실 대표실에 들어오다가 우연히 들은 건데 이재호 부회장이랑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요.”
“네, 맞아요. 그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샘성 그룹 부회장이요?”
“네, 이재호 부회장.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여기에 직접 찾아왔거든요.”
“네?”
윤희성은 눈을 크게 뜨고는 놀라워했다.
“아니, 그분이 왜 여길…….”
“그때 사무실에 손님이 있어서 이야기는 못 나눴는데 아마도 딥 멀티 관련해서 할 말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 외에는 별 연관성이 없잖아요?”
“와…… 그래도 얼마나 저희 기술을 원했으면 부회장이 직접 찾아 온데요? 말이 안 되는데요?”
“뭐, 급한 게 있으니까 그렇겠죠. 그래도 일단 주도권은 저희한테 있는 거 같으니 편하게 대화를 나누면 될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부회장 측과 대화에서 주도권은 태범이 쥐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곤 있지만 기대감에서 나오는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지곤 있었다.
윤희성이 보고를 마치고 대표실을 나간 뒤 바로 이어서 강은미가 들어오더니 이재호 부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하루 주요 이슈는 아마 이재호 부회장인 듯 보였다.
“대표님, 이재호 부회장 측에서 이번 주에 만남이 가능한지 연락이 왔습니다.”
“아! 그래요?”
“네, 가능하면 빨리 만나고 싶다 하더라고요.”
“스케줄이야 맞추면 되는 거니까. 먼저 약속 시간이랑 장소 말씀해 달라 하세요. 이번에는 제가 직접 찾아간다 하고요.”
“네,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샘성 그룹 이재호 부회장 측에서 계속 연락이 오고 가는 상황이었다.
추측해보면 딥 멀티와 관련된 기술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부회장이 접근하기 이전부터 샘성그룹에서 많은 접촉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회사가 증권사로 자리 잡기 전까지는 기술을 외부와 공유할 생각은 없었고 모든 접촉을 거부했었다.
다만 선시티 때는 어쩔 수 없이 한정적으로 사용했던 것이지, TB의 핵심 경쟁력인 딥 멀티를 다른 기업과 공유한다는 건 시기상조였다.
원래라면 이번 만남도 거부해야 했지만 태범도 사람인지라 샘성 그룹 부회장의 만남 제안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뭔가 대단한 이야기가 오고 갈 것 같은 느낌이 아닌가.
대한민국 재벌 중 재벌이라는 샘성 그룹에서 부회장이 직접 움직였다는 건 심상치 않다는 걸 의미했다.
* * *
“후. 역시 대한민국 최고 기업답게 건물하나는 예술이네요.”
마치 미래의 건물을 연상케 하는 유리로 둘러싸인 빌딩이 강남역 근처에 3동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은 샘성 그룹의 본사 앞이었다.
오늘은 부회장과의 만나는 날, 이번에는 태범이 직접 샘성 그룹을 찾아 왔다.
본사 빌딩 안으로 들어갔을 때, 태범을 안내하기 위해 미리 사람이 나와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비서실장 임대안입니다.”
본인을 이재호 부회장의 비서실장이라고 소개하며 그와 함께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한 눈에 봐도 한 자리 하는 사람들. 태범과 비서 강은미는 출입 게이트를 아무런 출입증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직원들이 줄을 서 있는 엘리베이터 외에 눈에 안 띄는 구석 한 곳에 위치한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의 꼭대기 층수인 35층으로 향했다.
긴장하지 않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빠른 속도로 올라간 엘리베이터는 35층에 도착했다.
이곳에 사람이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이 들 정도로 복도는 아주 조용했다.
샘성측의 안내를 따라 복도를 거닐다가 도착한 한 곳. 그곳에는 이재호 부회장의 집무실이 있었다.
“부회장 님, 손님 모셔왔습니다.”
2개의 유리문을 더 통과해서야 진짜 집무실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샘성 그룹의 이재호 부회장 모습이 보였다.
“반갑습니다, 강태범 대표님. 이재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