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30화 (130/188)

# 130

“준희야, 이거 엄청 잘 그리는 거 맞지? 디자이너로서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해?”

“이건 엄청 수준이 아니에요. 사진을 보고 그려도 실제처럼 그리기 힘든데 안 보고 이렇게 그리는 건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지? 미술 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신기한 거지?”

“그럼요. TV에서 그림 좀 잘 그린다고 나오는 사람 있죠? 그런 사람들은 다 보고 그리는데 이 사람은 다르잖아요.”

오늘 촬영이 끝나고 태범과 촬영팀이 철수한 상황, 강당에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광고 대행사 와라콤의 몇몇 직원들이었다.

태범의 그림이 인상 깊었던 것일까. 그들은 촬영장을 정리하며 그림을 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모작이나 트레이싱이면 모를까, 어떻게 안 보고 실사처럼 그려요.”

와라콤의 광고 디자이너 양준희는 그림 앞에 서성이며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림의 디테일부터 어떻게 색감을 냈고 어떤 표현을 통해 실사처럼 나타냈는지 같은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궁금한 게 많았다.

“이거 괜히 조작이라는 소리 듣는 건지는 아닐까 몰라.”

백남준 이사가 걱정하며 말했다.

너무 잘 그려도 문제일까? 마치 보고 그린 그림처럼 잘못된 티끌 하나 없이 완벽했으니 오히려 사람들이 의심을 하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요즘 네티즌들이 뭐만 하면 의심을 하니까요. 솔직히 저 같아도 믿기 힘들 것 같아요. 어떻게 아무것도 안 보고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겠어요? 무슨 인간 사진기도 아닌데 말이죠.”

양준희도 앞으로 일어날 네티즌들의 반응을 짐작했다.

같은 직원조차 그런 생각이니 백남준 이사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의견을 냈다.

“그럼 이건 어때? 촬영장을 언론에 공개하는 거야.”

“언론이요?”

“그래! 그럼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잖아?”

“네,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럼 바로 강태범 대표랑 이야기해 보고 언론사에 연락해야겠다.”

* * *

“휴…… 오늘은 좀 힘들었네.”

하루 종일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끄집어내려 애쓴 탓에 꽤 피곤한 하루였다.

일에 집중하는 몰입도는 그 어느 때보다 강했던 것 같고 마치 딴 세상에 있다 온 기분이었다.

“으샤!”

태범은 그렇게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바로 소파로 다이빙하며 몸을 던졌다.

‘오늘은 새 인물을 스캔하는 날이군…….’

어제 아인슈타인의 상상력을 100%를 끝으로 오늘은 새 인물을 스캔하는 날이었다.

일만큼이나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이 스캔을 위한 새로운 인물을 선정하는 것이었다.

태범은 이미 많은 능력을 갖췄다.

지금 당장 스캐너가 사라진다 한들 성공하는데 전혀 문제없을 정도로 완벽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스캔이 끝나면 무조건 다음 인물을 선택해야만 했다.

만족한다고 여기서 끝낼 수는 없었다.

가능하다면 죽을 때까지 스캔을 하고 죽고 싶은 게 태범의 마음이었다.

12시가 되고 태범은 다시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사진 한 장을 서랍에서 꺼냈다.

중절모를 쓰고 화려한 금색 무늬의 정장을 입은 한 남자의 사진이었다.

태범이 평소 존경했던 인물이기도 하며 전 세계가 열광했던 그런 인물이기도 했다.

[스캔할 능력을 선택해주세요]

[마이클잭슨 능력]

-가창력(0%)

-춤(0%)

[지식 능력]

-노래 기술(0%)

-춤 기술(0%)

-작곡, 작사 기술(0%)

[가창력을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0%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10% 진행되었습니다.]

[마이클잭슨 능력]- 가창력(10%)

[아인슈타인 능력]- 물리(100%)-상상력(100%)

[조지 소로스 능력]-공격적 투기(100%)

[레오나르도 다빈치 능력]-미술 감각(100%)-창의성(100%)

[워렌버핏 능력]-시장 통찰력(100%)-기업 분석력(100%)-도전 정신(100%)

[폰 노이만 능력]-수리 이해력(100%)-언어 이해력(100%)-암기력(100%)

[이소룡 능력]-힘(100%)-유연성(100%)

이로서 위대한 인물의 능력이 또 한 명 추가되었다.

미술에 이은 또 다른 예술적 능력이었다.

물리나 수리, 언어와 같은 지식은 물론 예체능까지 모두 섭렵하고 있는 태범이었다.

“아…… 아~”

스마트 폰의 음악 어플을 이용해 자주 듣는 팝송을 켰다.

“beautiful girl, oh, my girl…….”

태범은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 폰에서 흘러나오는 팝송 한 소절을 따라 불러 봤다.

가창력은 태범의 가진 목소리에 맞춰 음색을 내게 만들었다.

원래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태범이지만 오묘한 미성과 가성이 섞여 아름다운 음색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음색이 본인의 입에서 나오고 있지만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이제는 너무 익숙한 스캐너에 태범은 아주 자연스럽게 능력을 받아드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능력을 짧게 확인하고는 태범은 바로 침대에 몸을 던지며 잠을 취했다.

* * *

“다들 대표님이 작업하실 때는 조용히 해주세요. 그리고 카메라 감독님 제외하고는 모두 밖에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촬영 시작 일주일 후, 많은 언론사에서 태범의 광고 촬영을 취재하기 위해 모였다.

강당의 뒤쪽 벽에는 이미 카메라 진이 쳐있고 언론 관계자들이 앉아서 태범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태범의 현재 열기를 말해 주듯 광고 촬영조차 광고가 되는 신기한 상황이었다.

“대표님, 오셨으니 말했듯이 꼭 조용히 해주세요!”

드디어 태범의 등장, 평범한 캐주얼 차림으로 나타난 태범은 취재진들에게 목례를 하며 강당으로 들어왔다.

“와, 많이 왔네요.”

“네, 대표님 다들 대표님 작업이 기대됐나 봅니다. 언론사에 취재 부탁하니 한 곳도 거절 없이 모두 오네요?”

“하하. 그런가요?”

많은 카메라가 본인을 비추고 있으니, 괜히 연예인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참 사건 사고로 카메라에 비치는 것보다 이렇게 능력을 보여주고자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얼마나 영광이고 기쁜지 모른다.

태범은 지금까지의 피로를 날려버리고 다시 붓을 잡았다.

순간 웅성거렸던 강당 안이 개미 지나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이제는 붓이 캔버스 위를 스치는 마찰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와…… 저걸 어떻게.’

작업 모습을 처음 보는 취재진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감탄사를 겨우 참아내고 있다.

정말 아무것도 보는 것 없이 오직 머리에서 나온 정보로 도시를 그려내고 있었다.

취재진이 이를 실시간으로 담아내고 있으니 속이려 해도 속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태범은 한 번 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둑이 들어도 모를 정도의 몰입과 집중력 태범은 식사도 거른 채 작업을 이어갔다.

현재는 그 누구도 태범의 작업을 방해할 수 없었다. 미리 태범과 약속한 것이 있었는데 작업 도중에는 천재지변이 아닌 이상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태범은 그저 기억 속 여의도 풍경을 떠올리며 이를 곧이곧대로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길게 늘어진 캔버스에는 점점 금융 도시 여의도의 풍경이 채워지고 있었다.

현재 시간 저녁 9시.

보통이라면 6시에 모두 철수하고 다음 날을 바라봤지만 오늘은 늦은 시간까지 작업이 이어졌다.

오늘은 마지막 날로 생각하고 태범은 작업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이제 캔버스의 끝부분만 그려 넣으면 된다.

63빌딩이 있는 부분이었다.

초등학생 때 소풍으로 놀러 갔던 적 외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63빌딩이다.

하지만 이를 설계라도 한 사람처럼 캔버스 속에 완벽히 구현해내고 있었다.

황금빛의 빌딩이 캔버스 속에서 빛을 내며 금방 완성됐다.

‘이제 마지막이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태범의 마지막 도로 부분의 붓질만이 남았다.

시작과 끝이 중요하다고 붓을 든 채 한참을 고민하던 태범은 마지막으로 붓을 움직였다.

쓱쓱.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육안으로 붓이 움직이고 있는지 모를 정도 온갖 신경을 집중한 마지막 작업이었다.

그리고 태범이 캔버스 위 마지막 점을 찍고는 붓을 내려놓자 일제히 많은 박수갈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광고 대행사, 언론사, TB 모든 직원이 하나 된 마음으로 태범의 작품에 환호를 보냈다.

오랜 기다린 끝에 완성된 작품이니, 감격이 더해졌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표님.”

백남준 이사가 작업을 마친 태범에게 다가와 고생했다며 말을 건넸다.

태범은 그런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말이 입 밖으로 뱉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몰입을 했는지 태범은 여전히 여의도 하늘을 날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태범은 기억 속에 있었다.

이를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태범은 하루 종일 다른 세계에 있었던 기분이었다.

일주일간의 대장정이었다.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힘들기도 했다.

“와, 엄청 난데?”

“사진 아니야? 이거?”

강당에 펼쳐진 캔버스에는 여의도의 모습이 똑같이 담겨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몇몇은 스마트폰의 위성사진을 켜고는 지도와 동일한지 확인까지 해보고 있다.

정말 그림이 아니라 사진을 인쇄한 거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지금 까지 천재적인 기억력을 통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있어도 이런 식으로 색까지 맞춰 사실적인 그림을 그린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세계적으로 유일한 작품이라는 걸 인증하는 셈이었다.

“대표님, 가시죠.”

지금까지 작업을 같이 봐준 윤희성 역시 태범의 고생을 알고 있었다.

단지 작업을 지켜봤을 뿐이지만 본인 역시 많이 피곤한데 태범은 오죽하겠나 싶었다.

작업이 마치자마자 윤희성은 피곤해 보이는 태범을 이끌고 차로 향했다.

그렇게 차로 향하던 희성과 태범 하지만 태범은 곧 가던 길을 멈췄다.

“그림을 완성한 소감 한마디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저희 대표님이 지금 많이 피로한 상황이라…….”

희성은 취재진들의 부탁에 손을 저으며 거절하려 했지만 태범은 그런 희성의 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짧게 말씀이라도 드리죠.”

태범이 한 마디를 하려 하자. 그림을 구경하던 취재진까지 금세 태범에게 몰려들었다.

카메라 셔터가 터지고 태범은 이들 앞에서 짧게 이야기했다.

“이번 작품은 제가 회사를 알리기 위해 제가 혼신을 다한 일 중 하나입니다. 그 만큼 미래의 고객들이 저와 회사의 능력을 알아 봐줄 거라 믿습니다.”

정말 짧은 한마디였다.

그렇게 말을 마친 태범은 희성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 어떤 취재진도 더 이상 태범을 붙잡지 않았다. 단 오늘 하루였지만 태범의 작업과정을 보며 얼마나 고생했을지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대로 저희가 광고 나가기 전까지는 작품 전체는 내보내시면 안 되고요. 영상을 제외한 사진만 내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백남준 이사는 언론사 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약속을 일러주었다.

광고가 나가기 전까지 예고편 수준의 기사는 가능하나 작품 모두를 공개하는 건 금지가 돼 있었다.

미리 전체를 공개해버리면 광고가 나오기도 전에 기대감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태범이 그린 완성된 그림은 오직 광고에서만 볼 수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TV에서 광고가 나오는 날 모두가 태범의 능력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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