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얼마 전에는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투자 자문사까지 나왔다면서요.]
[네, 한 기업의 대표가 직접 개발한 프로그램인데 요즘 장안의 화제라고 하죠. 그뿐만 아니라 예술적 감각까지 있어서 그림 작품도 몇 개 냈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인재라는 게, 꼭 먼 외국에서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도 천재라 나올 수 있죠. 위대한 인물이 탄생할 수 있거든요.]
차 안 라디오에서 대한민국의 한 천재에 대한 이야기를 나오고 있었다.
실명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간첩이 아닌 이상 누굴 지칭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운전을 하고 있는 윤희성도 마찬가지였다.
“저거 대표님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게요. 차라리 이름이라도 밝히지 ‘한 기업의 대표’가 도대체 뭡니까? 하하.”
“요즘 실명 함부로 거론하면 말 많아지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
“저건 누가 봐도 제 이야기잖아요. 저럴 거면 그냥 이름을 밝히지 말이에요. 저 방송국에 전화라도 해야겠네요.”
태범은 라디오를 들으며 장난스럽게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본인의 이야기를 연예인들이 나와서 라디오로 들려준다는 게 태범에게는 아직 신기하게 느껴졌다.
최근 매체에 계속 노출되고는 있지만 이 상황이 쉽게 적응이 되지만은 않았다.
남들은 이제 태범에게 연예인 다 됐다며 했지만 태범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전히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매체에 나올 때마다 신기한 것이 소름 돋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아직 본인의 인기에 무감각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듯 보였다.
“대표님!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윤희성을 질문을 했다.
“네, 물어보세요.”
“한 번 보고 기억한다는 게 무슨 느낌이에요?”
희성의 질문에 태범을 턱을 괴며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답했다.
“뭐랄까, 말로 참 설명하기 어려운데, 뭔가 강한 자극이 머릿속에 펑하고 터지는 기분이에요. 우리가 놀랄만한 경험을 하면 기억에 남는 것처럼 말이죠.”
“그냥 좋든 싫든 다 머릿속에 남는 건가요? 잊고 싶은 기억까지도요?”
“저 같은 경우는 기억하려고 의도를 해야만 기억에 잘 남는 편인데 그래도 어찌 됐건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나쁜 기억도 잘 남긴 하죠.”
“아…… 네.”
희성이 이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답을 하는 걸 보면 대충은 알아들은 모양이다.
“이해했죠? 말로 답하기가 좀 예매하네요.”
“사실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으면 묻고 싶었거든요.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같은 꿈 아니겠어요?”
희성은 항상 태범에게 뭔가를 배우고 싶어 했다.
애초에 처음 태범 밑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모든 자존심을 내려놨기에, 그에게 배움의 열정은 누구보다 강하게 느껴졌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스캐너로부터 얻은 능력을 남에게 가르쳐 준다는 게 쉬운 게 아니었다.
“헬기 촬영 끝나고 바로 강당으로 가는 거죠?”
“네, 거기에서 작품 그리는 걸 찍는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회사 첫 TV 광고인데 잘 그려야겠네요.”
희성과 잡담을 나누는 사이 차는 목적지인 여의도 헬기장에 도착했다.
창밖을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카메라도 몇 대 보였다.
“안녕하세요. 다들 일찍 나와 계셨네요.”
촬영장에는 많은 광고 대행사 와라콤 관계자들과 촬영 관계자들이 모여 있었다.
“일찍 오긴요. 당연히 주인공보다 일찍 와서 준비를 해야죠.”
오늘 광고 촬영의 책임을 맡은 와라콤의 백남준 이사가 말했다.
오늘의 광고 주인공은 태범이었다.
단 한 명의 보조 출연조차 없는 오직 태범의 얼굴만 나오는 광고. 물론 태범의 외모가 아닌 능력을 찍기 위한 촬영이었다.
“준비되셨나요? 혹시 몸이 안 좋거나 그런 건 없으시죠?”
“컨디션 아주 좋습니다.”
오늘 촬영의 주인공만큼 태범의 몸 상태까지 체크하며 만전을 기했다.
“제가 이번에 대표님 광고 맡으면서 대표님이 출연했던 ‘세상에 신기한 일이’를 다시 한번 봤거든요. 정말 대단하시던데요.”
“감사합니다. 사실 그때 많은 사람이 놀라긴 했죠.”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분명 좋은 관심을 받을 겁니다.”
“안 그래도 이번에는 그때보다는 퀼리티가 좋을 거라, 사람들의 반응이 기대되긴 하네요.”
“사실 대표님의 작업을 처음 보는 거라 그런지 지금 저 조차 지금 기대가 되는 데요.”
“그래요? 그럼.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보여드리죠.”
태범은 백남준 이사에게 확신에 가까운 말을 건네며 성공적인 촬영을 기대하게 했다.
회사를 알리는 촬영인 만큼 기존의 방송에서 보여준 능력보다 한층 더 높여 사용할 계획이었다.
광고를 본 누구나 입을 떡 벌어지게 할 수 있는 그런 광고를 원했다.
“조심히 올라오세요.”
태범은 한 번 더 속으로 성공을 다짐하며 촬영 감독과 함께 헬기에 올라탔다.
태범에게 준미물이라곤 그저 몸뚱어리 하나만 있으면 됐다.
귀마개를 하고 헬기는 그렇게 굉음을 내며 상공으로 뜨기 시작했다.
암기력, 즉 기억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온 신경을 한 곳으로 집중한다.
절대 본인이 원하는 기억 이외에는 다른 생각이 침범할 수 없도록 벽을 쌓는 일이었다.
촬영감독도 조심스럽게 태범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태범은 기억에 집중하고는 헬기의 창밖을 바라봤다.
한 번 더 느끼지만 서울은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이뤄진 거대한 도시였다.
마치 성냥갑 마냥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닭장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닭장 같은 집을 사기 위해 노력을 하는지 태범은 잘 알고 있었다.
잠시 머릿속에 잡념이 들어왔다.
태범은 본인의 머리를 툭툭 치며 다시 정신을 차리더니 기억에 힘쓰기 시작했다.
발밑에는 여의도가 보였다.
대한민국 금융의 도시 여의도. 태범이 담아야 할 대상이기도 했다.
발밑에 보이는 모든 걸 머릿속으로 모두 담아 넣고 있었다.
단 한 번의 눈 깜빡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하는 상황에 온 신경은 서울에 있는 저 조그마한 섬인 여의도에 집중되었다.
눈은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보고 있는 이미지를 모두 머리에 저장시켰다.
폰 노이만의 천재적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 * *
더욱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커다란 강당을 하나 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기다랗게 늘어진 대형 캔버스가 놓여있었다.
캔버스로 기차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강당의 끝에서 끝까지 아주 길게 놓여있었다.
“이거 다 이어 붙이신 거예요?”
“네, 시중에는 이런 게 없으니까요. 일일이 손수 작업했죠.”
“고생 많으셨네요. 그럼 멋지게 그려보도록 하죠.”
이제 남은 건 태범의 작업뿐이다.
이 정도 크기의 캔버스면 그리는데 아마 일주일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태범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광고인만큼 임펙트 있는 걸 준비해야 했으니 태범에게도 도전적이고 고난도의 능력을 선보여야만 했다.
모든 능력을 쏟아 부을 생각이다.
“대표님,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촬영 시작을 알리는 프로젝트 팀장의 말에 태범은 캔버스 앞에 다가갔다.
“팔짱을 끼고 서 계시며 고심에 빠진 표정으로 하나 찍겠습니다.”
“네? 고심에 빠진 표정이요?”
“네, 콘티 보시면 깊은 생각에 빠진 듯 캔버스 앞에 서 있는 장면이 있거든요.”
태범은 광고 콘티의 그림을 보며 그와 똑같이 캔버스 앞에 섰다.
그저 서 있는 것이지만 괜히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이 민망했다.
태범이 만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확실히 연기는 아직 태범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미간을 살짝 좁히며 세상의 온갖 문제와 걱정을 모두 껴안은 듯한 고심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하얀 캔버스가 눈에서 나온 레이저에 뚫릴 것 같은 느낌으로 태범은 뚫어져라 캔버스를 바라봤다.
“OK. 됐습니다.”
“괜찮았나요?”
한 번의 OK라니 잘된 게 맞나 의심이 가서 태범은 본인이 찍힌 영상을 확인했다.
“확실히 카메라 빨이 잘 맞으시네요. 요즘 카메라 마사지를 받으셔서 그런가 봐요?”
백남준 이사가 영상 속 태범을 보더니 칭찬을 건넸다.
“메이크업 빨이죠 뭐 원래 있던 피부 트러블이 싹 감춰졌네요. 완전 마술인데요?”
“그래도 기본 얼굴이 되시니 메이크업 빨이 되는 거죠. 저 같은 사람이 저 자세로 서 있으면 꼴뚜기가 쇼한다고 생각할걸요? 하하.”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영상을 확인하고 있을 때, 촬영감독이 다음 작업을 알렸다.
“이제 작업 들어가겠습니다. 대표님, 준비해주세요.”
“네!”
촬영 감독의 안내에 태범은 캔버스에 걸쳐진 붓과 연필을 한 손으로 잡으며 작업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잡는 붓이었다.
최근 선시티를 다시 살리기 위한 일에 집중하느라 잠시 붓을 놨었다.
하지만 붓을 쥔 손은 이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기에 잠깐 쉰다고 해서 잊힐 미술 능력이 아니었다.
태범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다양한 천재들의 능력이 한 몸에 있으니 이론상 따지고 들자면 세기의 천재 다빈치를 능가하는 작품도 충분히 나올 수 있었다.
‘아예 사진을 만들어 주지.’
태범은 아예 실사 버전의 그림을 그리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림을 똑같이 그린다는 건 좋은 게 아니지만 지금 태범이 강조하고자 하는 건 천재적 능력이었다.
본 걸 완전 똑같이 그림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실사에 가깝게 그려야만 했다.
‘세상에 신기한 일이‘에서 보여줬던 건 붓이 아닌 펜을 이용해 색이 없는 그림을 그렸었지만 오늘은 좀 더 디테일하게 색까지 넣어볼 생각이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촬영 시작을 알리는 소리에 태범은 지체 없이 캔버스 위에서 붓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히려 예술성을 담아내는 작품보다 작업이 쉬웠다.
이번에는 그저 기억에 있는 그대로 캔버스에 똑같이 나타내기만 하면 된다.
예술을 담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고민을 해야 하지만 이건 본 이미지 그대로 그리는 상황이었다.
태범은 그냥 그 이미지에 따라 붓을 움직이면 됐다.
물감의 색을 만드는 것조차 최소한의 조합으로 움직이며 효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쓱. 쓱.
그림을 그리는 이 순간만큼은 태범은 강당이 아닌 아직 헬리콥터 안에 있었다.
손은 그저 움직일 뿐. 머릿속은 헬기 위에서 바라본 여의도의 모습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완전히 인간 프린터랑 다름없었다.
원하는 이미지를 입력하고 출력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와…….”
“스케치 없이 바로 붓을 칠하네?”
“저게 가능해?”
뒤에서 구경하던 광고 대행사 직원부터 TB 직원들까지 그들끼리 속삭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예정된 작업이라 태범의 어떤 작업을 할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듣는 거랑 실제 눈으로 보는 거랑은 확실히 달랐다.
마치 마술이라도 부리듯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태범의 마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말 가느다란 붓촉이 달린 붓을 집더니 놀라운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중에서 볼 수 없는 그런 붓이었다. 그리고 그 붓은 그림을 사진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마치 실제로 보는 듯 명암이 살아나고 눈으로 보기 힘든 세심한 부분까지 표현해 내고 있었다.
“이사님, 저 저런 거 처음 봐요.”
미술만 20년 넘게 해온 광고 대행사의 한 직원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 하이라이트는 오직 태범만이 사용하는 기법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