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태범아. 요즘 엄마 친구들도 네 이야기로 난리다. 아주.”
본집에 놀러 온 태범을 향해 어머니는 지금껏 보고, 듣고 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얼마나 할 말이 많았는지 소파에 앉은 태범의 옆에 착 달라붙고는 쉴 틈 없이 입을 움직이셨다.
“예진이 엄마 알지? 우리 여기에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 옆집 아줌마.”
“응, 알지.”
“그 아줌마가 있잖니 태범이 너를 자기 딸한테 소개 시켜달라고 그렇게 매달리지 뭐니.”
“예진이를?”
“그래! 그렇게 자기 딸 명문대에 갔다고 자랑하더니 이제는 너 소개해달라고 아주 그냥 난리야 난리.”
어머니는 이야기하는 내내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자식 자랑 만큼 좋은 게 없다고 요즘 밖에서 아들의 인기를 체감하고 있으니 기분이 좋으셨나 보다.
“그래서 내가 태범이 너 여자 친구 있다고 하니까 그렇게 아쉬워하던데?”
“내 여자 친구 이야기도 했어?”
“그래, 여자 친구 이야기 안 하면 그렇게 자기 딸하고 어떻게 좀 해보자고, 매달리고 또 매달리는데 어쩌겠니.”
어머니의 말을 종합해보니 이미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태범은 새로 떠오르는 수다거리가 된 것 같았다.
당연히 그렇겠지. 어릴 적부터 동네에서 자주 봐왔을 테니 말이다.
태범을 어릴 적부터 보던 사람들은 지금 이 상황을 누구보다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본래 천재라 하면 어릴 적부터 재능을 보이기 마련인데 태범은 전혀 그런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동네에서 뛰어놀기 좋아하던 아이였을 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천재라고 턱! 하고 나타나니 태범을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던 것이다.
간혹 태범 본인도 스스로의 능력에 깜짝 놀랄 때가 있으니 충분히 이해는 갔다.
“과일 먹을래?”
어머니는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에서 사과 접시를 가져오더니 옆에서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영주 사과인데 달고 맛있어.”
태범은 어머니가 깎아주신 사과를 포크로 집어 입에 넣고는 말을 이어갔다.
“아 맞다! 그리고 나 그리고 이번에 또 방송국에 촬영가거든? 채널Q에서 하는 천재시대라고 있어. 문제 풀고 그런 예능인데 내일 방송국에 촬영하러가. 방송 날짜 나오면 알려줄 게.”
“또 TV에 나오는 거니? 어쩜 좋니. 아들 완전 연예인이 다 됐구나?”
“연예인은 무슨…… 그냥 잠깐 이슈 돼서 TV에 나오는 거지.”
태범은 연예인이라는 어머니의 말에 부인했다.
연예인은 방송이 목적이라면 태범에게는 방송은 그저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방송은 회사의 홍보와 본인을 알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엄마, 요즘도 방송사에서 집 찾아오고 그래?”
“응, 아직도 가끔씩은 찾아오긴 하는데 내가 단호하게 거절하니까 이제 많이 오지는 않더라. 아! 그리고 와인TV인가? 와이TV인가, 거기는 절대 나가지 마. 그쪽 사람들 인성이 안 좋아 보이더라.”
와이TV의 이야기가 나오자, 태범은 포크로 사과를 푹 찔러 넣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거기서 섭외가 들어왔는데 내가 안가기로 했어. 뒤에서 내 욕을 하는 데 내가 어떻게 거기서 웃으며 방송할 수 있겠어?”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런데는 절대 나가지마.”
“어차피 그런데는 나갈 생각 없어. 돈이라도 무지하게 많이 주면 모를까.”
오래간만에 어머니와 긴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혼자 살다 보니 가족과의 지속적인 소통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소통이 단절되면 어느 순간부터 깊은 구덩이 빠지듯 관계 회복이 어려울 경우가 있다. 그러니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렇게 태범은 어머니와 이야기를 마치고 동생 태인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놈이 형이 왔는데도 방에 틀어박혀 있네.”
방에 들어가자마자 태인이 에게 장난스러운 말투로 잔소리를 내뱉었다.
태인이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려 태범을 쳐다봤다.
“어! 형.”
태인이의 책상 위의 모니터를 보니 그림을 그리고 있던 모양이다.
줄이 쳐진 칸 속에 만화를 그려 넣는 웹툰을 그리고 있었다.
“웹툰?”
“어…… 어.”
“어디에 그리는 건데?”
“정식 연재는 아니고 그냥 도전 만화에 올리는 거야.”
정식 연재는 포털 사이트와 직접 계약을 통해 올리는 만화를 말하며 도전 만화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올릴 수 있는 자유 연재 공간이었다.
연재가 자유인만큼 다양한 만화가 존재했다. 정말 실력 좋은 그림부터 시작해 초등학생이 장난치는 듯한 그림까지 특별한 제한 없이 무작위로 존재했다.
“야, 제목 뭔데?”
태인이는 자신의 작품이 쑥스러운지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고 있다.
태범은 직접 얼굴을 모니터에 가까이 들이대며 제목을 확인했다.
‘운동의 신, 강동운?’
뭔가 유치한 이름의 웹툰 제목. 태범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냥 연습 삼아 그리는 거야.”
태인 본인도 민망한지 연습 핑계를 대고 있다.
원래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남에게 보이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도 한 번 보면 안 되냐?”
“형이 찾아봐.”
태인이 무심하게 내뱉은 말에 태범은 침대에 앉아 스마트폰을 켜고는 동생의 웹툰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운동의 신, 강동운]
검색 결과 찾기도 힘든 웹툰 리스트의 아주 끝에 존재하고 있었다.
아마 이 만화를 보는 사람이라곤 태인이 본인밖에 없을 듯하다 싶다.
뭐 이제는 태범을 포함하면 독자가 2명인 셈인가?
태범은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며 동생의 만화를 읽어가기 시작했다.
“풋.”
가끔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의 재미는 있었지만 딱히 다음 편을 보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았다.
스토리의 짜임새부터 시작해 그림체까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무의미한 스토리가 널려져 있고 스토리의 연속성도 없었다. 그렇다고 뭔가를 얻어갈 만한 내용이 담긴 것도 아니고 유머도 한참 유행이 지난 걸 넣고 있었다.
미대를 다니니 그림의 기본은 돼 있었지만 만화라는 특성상 사람의 눈에 확 띄도록 뭔가 개성이 느껴져야만 하지만 그냥 무미건조한 잘 그린 그림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태범은 태인의 만화를 한참 보다가 말을 꺼냈다.
“그러지 말고 형이 스토리 짜는 거랑 그림 그리는 거 좀 도와줄까?”
“형이?”
“이거 내가 정식 연재 할 수 있도록 해줄게.”
태범이 도와준다 하자, 태인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태범을 바라봤다.
“형, 진짜?”
처음 보는 동생의 격렬한 반응이었다.
* * *
“이렇게 출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도 재밌게 봤던 프로그램이라 오히려 출연하는데 영광입니다.”
윤예범 메인 PD가 태범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고는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태범은 오늘 종편인 채널Q에서 방영하는 ‘천재시대’라는 프로그램을 녹화하기 위해 방송국에 와있었다.
방송출연은 몇 번 있지만 이렇게 방송국에 직접 와서 연예인들과 함께하는 녹화 촬영은 처음이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많은 방송국 관계자들이 태범을 알아보고는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다들 태범이 능력을 익히 알고 있기에 녹화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기대를 반영하듯 방송국 관계자들은 대기 중에 있는 태범을 사소한 것 하나까지 신경 써주며 손님으로서 지극정성으로 대접을 해주고 있었다.
‘엄마 말대로 나도 연예인이 된 건가?’
이러다 괜히 연예인 병이라도 걸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남들이 알아 봐주니 어깨가 으쓱거리더니, 시선을 신경 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 전현민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몇몇 연예인들은 촬영장에 도착해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전현민이 있었다.
천재시대의 메인 MC이자 아나운서 출신, 전현민. 프리선언 이후 예능계에 진출해 성공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태범의 눈앞에 나타났다.
확실히 연예인을 실물로 보니 뭔지 모를 신비감과 아우라가 느껴졌다. 사실 연예인이라는 타이틀이 없다면 그저 동네 아저씨에 불과하지만 역시 사람이 가진 선입견은 대단했다.
먼저 말이라도 걸까 하고 태범은 그에게 다가가려고 발을 움직였다.
그런데 웬걸 전현민도 태범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혹시 날 알고 있는 건가?’
태범의 인지도 정도면 연예인들도 충분히 알만했다.
물론 태범의 얼굴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름값 하나 만큼은 그 어떤 연예인 보다 많이 거론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전현민이라고 합니다. 강태범 대표님 맞으시죠?”
“네, 반갑습니다. 강태범입니다.”
전현민의 악수 요청에 태범은 재빨리 손을 내밀며 악수를 받았다.
“아이고! 대한민국의 천재를 이렇게 실제로 뵈니 영광이네요.”
서로가 서로를 보며 놀라워하는 상황이었다.
태범은 연예인의 아우라에 전현민은 천재의 아우라로 말이다.
“아닙니다. 이렇게 직접 뵈니 신기하네요. 실물이 더 잘 생기셨는데요?”
“하하. 감사합니다. 제가 그런 소리는 자주 듣긴 하죠. 제 얼굴이 실제로 보면 잘 생긴 얼굴입니다.”
보통 이런 말 하면 예의를 차린다고 아니라고 말할 텐데 전현민은 오히려 자신감 있는 태도로 유머러스하게 대답했다.
괜히 아나운서에서 예능인으로 바뀐 게 아니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능력을 잘 인지하고 깨닫는 사람이 성공을 하는 법이었다.
“그럼 오늘 기대하겠습니다!”
전현민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용기를 불어다 주며 자리를 비켰다.
간혹 전현민에 대해 안 좋은 루머도 있었는데 지금 보니 오해가 아니었다 싶었다.
“여기 대본이요.”
하나윤 작가가 태범 옆으로 오더니 대본을 건네주며 방송에 앞서 간략한 설명에 나섰다.
“첫인사만 대본대로 해주시면 되고요. 나머지는 그냥 참고용으로 생각하세요. 편하게 대화 나누시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혹시 긴장되거나 그러시지는 않으시죠?”
“긴장되긴요. 그것보다 연예인 얼굴 본다는 게 신기한데요?”
여유 있게 방송 시작을 기다리던 태범은 곧 녹화가 시작된다는 말에 무대 뒤로 이동했다.
그리고 곧 게스트를 소개하는 MC의 멘트가 나왔다.
“오늘 특별 손님을 모셨습니다. 대한민국의 떠오르는 젊은 천재! 만능꾼! 강태범 씨를 소개를 하겠습니다.”
메인MC 전현민의 소개에 태범은 무대 뒤에서 문을 열고 등장했다.
연예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태범의 등장을 맞이해줬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TB 투자 자문, TB 자산 운용의 대표를 맡고 있는 강태범이라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문제를 재미있게 풀어 보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범의 인사가 끝나고, 전현민이 깐족대는 말투로 질문을 건넸다.
“대한민국 넘버원 천재라면서요, 인터넷에서 봤습니다. 오늘 어떨 것 같으세요?”
“제가 학생 때 이 프로그램을 즐겨봤거든요. 그때 같이 문제도 풀어보고 했는데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살짝 긴장이 되기도 하고 재미있게 풀다 갈 수 있을 것 같네요.”
태범의 답변이 끝나고, 이어서 우측 끝에 있던 조각 미남의 배우 하진석이 물었다.
“태범 씨, 요즘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던데 느끼시죠?”
“물론이죠. 제가 심지어 외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요?”
“아! 정말요?”
“네, 처음에는 그냥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는 걸 보고 놀랐다니까요.”
“태범 씨가 워낙 뭐든 잘하니까. 외계인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 되나 보죠.”
전현민은 그런 소문에 대해 충분히 납득이 간다고 했다.
“저도 소원 중 하나가 외계인을 만나는 거였거든요. 그럼 전 거울을 보면 소원을 이루는 거겠네요?”
태범은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한 오해를 방송을 통해 풀어나갔다.
반농담식으로 웃어가며 인간다운 면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사는 것도 중요했다.
“그럼 태범 씨가 얼마나 문제를 잘 풀어나갈지 기대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