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선시티 연구원들은 태범의 지시에 따라 연구를 실행하기 시작했다.
태범의 능력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는 연구원들은 태범의 지시 하에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실험의 핵심은 플렉시글라스를 젤 형태로 만들어 나노 와이어에 코팅을 한 뒤 충전과 방전을 반복시키는 데 있었다.
원래 와이어 형태의 리튬 이온 배터리라면 급격한 손상이 이뤄져야 하지만 실험이 시작된 이후 손상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충전과 방전이 계속 반복되며 배터리의 수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대로야?”
“네, 배터리 수명에 전혀 손상이 없습니다!”
“지금이 몇 회째이지?”
“현재 대략 1,500번 쯤 반복되고 있습니다.”
“1,500번이면 충분히 손상이 보이고도 남는 정도 아니야?”
“네, 그런데 아직까지 전혀 손상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어쩌면 저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정말 강태범 씨 말대로 이뤄지고 있잖아?”
실험과정을 즉각 보고받던 선시티의 양효철 대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태범을 믿긴 했으나 아직은 이론뿐이며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영구적인 배터리라는 신기술이라니 듣고도 믿을 수 없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지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기술이 정말 이뤄지고 있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양 대표는 박수를 치며 자리에 없는 태범과 새롭게 발견한 기술에 대해 경외심을 표현했다.
그리고 본인에게 보고한 직원을 와락 껴안으며 기쁨을 표출했다.
“이번 기술이 우리 회사가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기회야!”
“네…… 맞습니다.”
포옹을 당한 직원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양 대표의 기쁨에 대꾸를 해주고 있다.
“샹차이에게 한 방 먹어야 하지 않겠어?”
“샹차이요?”
“그래! 그 도둑놈들 혼쭐을 내줘야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네! 물론입니다.”
양 대표는 회사의 기술을 도둑질 한 샹차이에게 여전히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을 가도 지울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거의 정상에 올라왔던 선시티를 낭떠러지고 떨어트린 장본인이니 말이다.
“하하하. 다시 우리 시대가 돌아왔어!”
신기술을 개발하고도 도둑질을 당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신시티에게 또 다시 찾아온 기회였다.
시장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는 그런 기회에 양 대표는 웃음으로 기쁨을 만끽했다.
* * *
“특히 철강이나 미국의 보호 무역에 대해 잘 대처해야 해 그리고 한미 FTA 개정 요구도 있는 만큼 미 정권의 분위기도 잘 주시하고.”
태범은 친구인 현수와 희준에게 특별 교육을 하고 있었다.
사실 금융이나 경제와 관련 없는 상태에서 태범의 권유에 들어온 회사인 만큼 직접 현장에서 부딪치며 배워야만 했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시켜주기 위해 태범은 직접 나서 가끔 교육을 하곤 했다.
친구라는 특별한 관계로 가능했던 일종의 직원 서비스였다.
물론 이 친구들뿐 만 아니라 태범은 TB의 직원들에게 본인의 능력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에 교육을 하고 있었다.
“지금 미 대통령의 무역 정책이 변수가 너무 크니까. 내가 보내준 리스크 관리 계획서에서 미국과 관련된 게 있거든 거길 유심히 살펴봐.”
“알았어. 네가 시키는 대로 할게.”
희준이 대답하고 현수도 옆에서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한 양이 따로 없었다.
서로 장난치며 으르렁거리던 친구들이었지만 회사 내에서만큼은 아무리 친구라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으니 희준과 현수는 태범을 대표로서 따랐다.
“힘들지는 않지?”
혹시나 너무 굴리는 건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에 태범이 물었다.
지금껏 새로운 분야를 배운다고, 희준과 현수는 쉴 틈 없이 일했으니 말이다.
물론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둘 역시 같이 성장하며 많은 이득을 보고 있었다. 월급도 같은 또래에 직장인들에게 비하면 2배 이상이 됐으니 거의 대기업과 다름없었다.
어쩌면 두 친구가 쉴 틈 없이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러한 보상에 있었을 것이다.
“남한테 폐를 안 끼치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이게 낙하산으로써 최소한의 예의지.”
현수가 본인을 낙하산이라 빗대며 표현했다.
하지만 태범은 ‘낙하산’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아! 너희 낙하산 아니라니까. 차라리 창립 멤버라고 생각해. 원래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는 거야.”
“그렇긴 한데…….”
“다음부터 그런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열심히만 하면 돼. 오케이?”
“알았다, 알았어.”
태범의 말에 현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태범아. 우리 부모님이 너한테 고맙다고 전해달라더라.”
사적인 이야기가 나오면서 희준도 사적인 한마디를 꺼냈다.
“나한테? 왜?”
“왜긴 왜야. 우리 취직시켜줘서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만들어줬잖아. 사실 우리 부모님이 나 취업 문제 때문에 걱정이 많았거든.”
그 여느 부모처럼 희준이 부모 역시 자식 취업 걱정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이를 단박에 해결해준 것이 친구 태범이었으니 어쩌면 희준과 현수는 친구를 잘 만난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희준아, 너희 어머니 생각난다. 내가 만날 너희 집 앞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너희 어머니가 해주신 저녁 먹고 집에 갔잖아.”
“오. 그걸 기억해? 우리 초등학생 때인데.”
“당연히 기억하지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엄청나게 민폐였는데?”
“어린 꼬맹이 입이 하나 추가된다고 얼마나 차이 나겠어. 그냥 나 먹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되는 거였는데.”
희준과 어릴 적부터 불알친구였던 만큼 그의 가족과도 인연이 깊었다.
서로 같은 동네에 살아서 부모님끼리 같이 아는 사이에 집도 자주 놀러 가고 그랬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희준의 어머니와 가까워지는 것도 당연했고 동생 희민이와도 친하게 지냈다.
서로 집이 떨어지고 사춘기를 겪다 보니 사실 멀어진 면도 있었으나 지금 다시 그때를 생각해보면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그때 참 좋았는데.”
물론 지금도 스캐너 덕분에 충분히 행복하지만 그때의 행복은 지금과 다른 종류였다.
어린 시절 과거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함과 놀기 좋아하던 아이의 즐거움에서 나오는 행복이라면 이제는 능력과 성과에서 나오는 행복이었다.
따르릉.
“잠깐, 나 전화 좀.”
교육이 슬슬 잡담으로 바뀌던 타이밍에 태범의 스마트 폰이 벨을 울렸다.
태범은 손짓을 하며 잠시 대화를 멈춰 세웠다.
“네, 강태범입니다.”
“선시티 양효철 대표입니다. 이야기 좀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말씀하세요.”
“지금 실험 중에 있는 것 아무래도 대표님의 이론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요.”
태범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이 100%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연치 않게 떠올린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태범의 논리가 완벽히 구현되어 있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오차가 생길 수가 없었다.
“놀라지 않습니까? 잘만하면 영구적인 충전이 되는 배터리가 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양 대표는 잔뜩 흥분한 상황이었다.
그가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목소리로만 듣고서도 느껴졌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앞으로 잘 될 일만 남았네요.”
* * *
“오늘같이 기쁜 날 다들 마음껏 드세요!”
신기술 개발의 성공을 알리는 선시티 연구소 직원들의 회식 자리에서 양효철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들에게 외쳤다.
양 대표 얼굴은 미소로 만개해 있으며 평소 볼 수 없었던 격양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게 다 여기 계신 강태범 대표님 덕분 아닙니까? 다들 박수를 보내주시죠.”
양 대표의 호응에 연구원들은 태범을 향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태범은 고개를 숙이며 연구원들에게 감사함을 나타냈다.
역시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건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스캐너를 사용한 이후부터 줄곧 사람들의 관심과 환호를 받았지만 매번 받아도 좋은 감정이었다.
어쩌면 태범은 자기 스스로가 관심종자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좋았다.
“다들 수고들 많으셨고 이로써 제 투자도 성공했고! 선시티도 다시 살아났네요.”
오늘같이 기쁜 날 모두가 지금까지의 걱정, 근심을 바닥에 내려놓고 마음껏 식사를 즐기며 기쁨을 느꼈다.
태범은 선시티의 정식 직원이 아니지만 그래도 협업을 했다는 의미로 이곳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었다.
* * *
“하하.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저희가 자세한 사정을 몰라서 그랬습니다.”
“아니요. 분명 샹차이 쪽에서 저희 기술을 훔쳐갔다는 걸 알고 계셨을 텐데요.”
“그게 그 당시 저희도 어쩔 수 없던 게 주주들이 투자를 반대하는 바람에…….”
우림 자동차에서 나온 임원급 관계자가 선시티 양대표에게 굽실거리며 사과를 하고 있다.
단숨에 상황은 180도 역전.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투자를 취소하겠다는 우림 자동차 측을 설득하기 위해 양대표는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정도였으니 이제는 정반대가 되었다.
오히려 우림 자동차에서 이번 선시티의 신기술을 탐내고 어떻게 해서든 엮이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하지만 한번 등 돌린 양대표의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걸 모두 주주 탓으로 돌리십니까? 그리고 경영진은 주주가 아닙니까?”
“그땐 정말 죄송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주주들은 수익이 보이지 않으면 투자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그래요. 그건 그렇다 칩시다. 근데 샹차이와 기술 제휴는 왜 하신 겁니까? 훔친 기술을 값싸게 해먹으려고 했던 거 아닙니까?”
양 대표의 날카로운 질문에 우림자동차 측에서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싸늘한 기운만 주변을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네, 맞습니다. 양 대표님 생각이 모두 맞아요.”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던 도중, 우림자동차의 전무이사가 용기 있게 말을 꺼냈다.
“전무님!”
전무이사의 발언에 옆에 있던 다른 임원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는 발언을 멈추지 않고 이어갔다.
“대표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회사의 목적은 수익을 얻기 위함이라는 걸. 당연히 단가가 더 싼 방법으로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데 그걸 이용하지 굳이 큰돈을 쓸 필요가 있습니까? 저희는 기업의 당연한 원칙에 따라 움직였을 뿐입니다.”
우림 자동차 임원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너무도 솔직한 전무이사의 말에 혹시나 양 대표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아닌가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반대였다.
양 대표는 옅은 미소를 띠더니, 금세 방긋 웃으며 말했다.
“솔직해서 좋네요. 네! 다 이해합니다. 아마 저라도 그랬겠죠. 하지만 그건 알아두셔야 합니다. 원칙이든 뭐든 저뿐만 아니라 선시티의 많은 직원들이 우림 자동차에게 배신감을 느낀 건 사실입니다. 이성적으로 따지자면 당신들이 합리적인 행동을 한 거겠지만 어쨌든 사람이기에 감정을 배제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네, 그러시겠죠.”
“그래서 그런데 저희를 다시 관계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죠.”
“그게 어떤 거죠?”
“지금부터 샹차이랑 모든 관계 끊으시죠. 그래야만 저희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