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상상력를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27%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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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이 28% 진행되었습니다.]
스캐너를 마친 태범은 다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엄청난 몰입이었다. 레이저라도 나갈 듯한 눈빛. 그리고 책상 위에는 수많은 서적이 놓여 있었고 모니터에는 국제 학술지에 기재된 논문이 떠 있었다.
‘활성 물질과 안정성.’
‘리튬 이온의 반응 메커니즘.’
‘전해질 열화 메커니즘.’
태범은 이미 아인슈타인의 지식인 ‘물리’를 완전히 습득한 상황에 수학적 능력을 포함한 다양한 능력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데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굳이 스캐너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능력만으로 새로운 지식과 능력을 배우는데 있어서 태범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현재 보고 있는 리튬 이온과 관련된 지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떤 전문적인 지식이라 할지라도 태범은 마치 스펀지라도 된 마냥 모두 흡수해버렸다.
어쩌면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었을지도 모른다.
세기의 천재라고 불리던 인물들의 능력이 한 몸에 들어와 있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사람의 육체와 정신은 강인했다.
태범은 아무 탈 없이 이 모든 걸 견뎌내고 있었고 이들의 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그리라 한다면 눈을 감고도 그릴 정도였다.
‘역시! 이 정도면 할 만하잖아?’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하도 걱정하기에 얼마나 대단한 지식일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선시티의 리튬 이온과 관련된 지식을 접하면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물론 태범의 능력을 토대로 한 기준이긴 하지만, 어쨌든 태범은 이를 알아갈수록 좌절보다는 오히려 자신감에 차고 있었다.
* * *
“저희 회사의 첫 1,000억대 규모의 사모 펀드네요. 우리 기념으로 박수 한번 쳐볼까요?”
태범의 제안에 강한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회의장 안을 가득 메우며, 소리가 벽을 뚫고 밖으로 나올 기세로 울렸다.
태범과 펀드매니저 그리고 몇몇 임원들은 완판 된 TB 미래 펀드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TB 미래 펀드는 현재 엄청난 수익률로 사모 펀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TB 샛별 펀드에 이어 두 번째 사모 펀드였다.
총투자금액이 1,000억 원이 넘었다는 점에서 대단했지만 그보다도 빠른 기간에 펀드가 완판 됐다는 것이 더욱 대단한 일이었다.
이 모든 게 태범의 능력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투자자들은 TB 샛별 펀드를 통해 태범의 진가를 인정했다.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투자자는 이어서 나온 미래 펀드까지 싹쓸이 해버렸다.
이제 태범은 금융계의 샛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버렸다. 차라리 금융계의 거물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쥐똥만한 회사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수천억 이상의 투자금을 관리하는 회사가 됐습니다. 게다가 금융계에서 저희 회사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죠. 자! 이제 여러분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까?”
와!!!
태범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직원들의 강한 호응이 따라왔다.
대부분 직원이 회사 초창기의 사람들인 만큼 회사의 성장이 이들의 성장으로 직결됐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들은 훗날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마치 사원으로 시작해 사장이 되는 샐러리맨들의 신화와 같은 이야기가 본인들 눈앞에 보여 지고 있었을 것이다.
“TB 미래 펀드도 샛별 펀드와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투자를 이뤄 그 뒤를 이을 수 있는 새로운 펀드들이 생길 수 있도록 기대해봅니다. 모든 것이 여러분과 저의 노력 하에 달려있습니다. 앞으로도 다 같이 머리를 맞대어 파이팅 해봅시다.”
파이팅!
다시 한번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제 사회생활 중반을 달리는 직원도 있지만 마치 모두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사람들처럼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태범은 이들의 함성에 온몸에 전율이 올랐다.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게 팔에는 오돌토돌한 닭살이 올랐다.
그렇게 직원들의 기대에 찬 함성은 태범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어주고 있었다.
TB 미래 펀드에 대한 축하를 마치고 태범은 향후 본인의 일정에 대해 직원들에게 알렸다.
“제가 한동안은 선시티와 회사에 번갈아 출근할 계획입니다. 그렇다고 날을 정해서 출근하는 건 아니고요. 필요에 따라 있을 계획이니 그렇게들 알아두시고 요청할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은 주세요. 저는 언제든 열려있습니다.”
이미 계획해 두고 있었기에 이를 알고 있던 직원들도 있지만 모르는 직원들이 다수였고 태범의 갑작스런 선시티와의 협업 소식은 회의실이 술렁이게 만들었다.
괜히 좋았던 분위기가 깨지는 건 아닌지 태범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다행 아닙니까? 저 대신 딥멀티가 손을 대신 해주는 게 있어서 말이에요. 아마 그게 없었으면 전 아마 지금쯤 과로사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태범은 농담 삼아 이야기한 말에 직원들은 덩달아 웃음을 지었지만 윤희성과 이효준을 포함한 몇몇 직원들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들의 우려를 대변하듯 윤희성이 손을 들며 말을 꺼냈다.
“대표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물론 대표님이 원하셔서 하는 거긴 하겠지만 본인 건강도 신경 쓰시면서 해야죠.”
“제가 언제 쓰러진 적이 있습니까? 저도 여러분만큼이나 제 건강에 대해 신경을 쓰는 사람이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어차피 다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짓 아닌가요? 쓰러져 죽으면 지금까지 이뤄놓은 게 뭔 소용입니까? 저는 지독하게 번만큼 지독하게 쓰고 저승으로 갈 거니까. 여러분들도 지독하고 오래오래 살면서 열심히 일한 만큼 즐기고 가세요.”
태범은 다시 농담으로 직원들의 우려를 자연스레 넘겼다.
굳이 심각해질 필요는 없었다. 정말 진지하게 일에 임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으로 에너지만 소모될 뿐이니 이렇게 여유를 부릴 필요도 있었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이미 지나간 과거 혹은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한 우려와 걱정을 하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에만 집중해도 모자를 에너지인데 말이다.
결국 직원들의 에너지는 위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사용이 달라졌다.
태범은 기업을 책임지는 대표로서 가장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 * *
드디어 선시티의 연구원들과 만나는 날.
태범은 혼자 차를 몰고 구로동에 있는 선시티 연구소로 향했다.
“차가 많이 막히네.”
역시 회사와 사무실이 밀집돼있는 지역이라 그런가, 출근 시간은 아주 끔찍한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자동차 안에서 태범은 선시티의 기술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상상을 하고 있었다.
태범의 머릿속에는 작은 연구실이 들어있었고, 그 속에서 리튬 이온과 관련된 실험을 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의 가상 실험은 눈앞에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를 확실히 측정할 수는 없었다. 태범이 알고 있는 이론 하에 결과가 어떻게 될 건지 추측할 뿐이었다.
그렇게 상상과 함께 지겹게 운전을 한 결과 드디어 선시티 연구소에 도착했다.
경비원이 태범의 차량을 막는가 싶었지만 얼굴을 알아보고는 그대로 입장시켰다.
“안녕하세요.”
주차를 마치고 연구소 정문으로 건물에 들어가니 양효철 대표와 선시티의 이사진들이 태범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드디어 오늘부터 시작이네요.”
태범은 양 대표와 악수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실 투자가 되기 전까지도 긴가민가했거든요. 저희 회사에 투자를 해줄 사람이 있을지 말이죠. 허허.”
양효철은 허탈한 웃음으로 한시름 놓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얼마나 걱정했었을까, 사실 한편에서는 태범에게 ‘미친놈’ 이라고 할 정도로 선시티 투자에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모두가 걱정하는 투자였고, 하물며 선시티의 대표인 양효철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짐작이 갔다.
태범과 양 대표는 연구소 1층에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미 연구원으로 보이는 직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태범은 직원의 안내에 상석인 테이블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양옆으로 앉아 있는 직원들은 모두 태범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모두가 자리에 앉고, 양 대표는 홀로 자리에서 일어나, 태범을 가리키며 직원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자! 여기는 저희와 함께 일하게 된 TB 자산 운용의 강태범 대표님이십니다. 음…… 다들 아시다시피 유명하신 분입니다. 몇몇 분들은 TV나 기사에서 보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그만큼 충분히 능력을 갖추신 분이고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실 분입니다.”
그리고 양 대표의 소개에 이어 태범은 목을 한 번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잠깐이지만, 여러분과 같이 일하게 된 강태범이라고 합니다.”
짝짝짝
태범의 고개 숙인 인사에 선시티 연구원들은 모두 박수로 맞이해줬다. 하지만 박수는 그렇다 쳐도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태범을 의심하는 건지 아니면 똥이라도 씹은 건지 표정이 잔뜩 굳어있었다.
일단 예상했던 반응이었고, 태범을 하고자 하는 말을 이어나갔다.
“아시다시피 저는 이곳에 투자한 펀드사의 대표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 자리에 나타나니 당황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마 속으로는 어디서 굴러 들어온 놈인가 생각하시겠죠.”
이 말을 들은 연구원들은 뜨끔했는지 태범을 바라보던 시선이 흔들렸다.
“하지만 저도 여러분들의 생각을 잘 알고 있기에 거기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열심히 준비 했습니다. 저랑 같이 일하시면서 저를 차차 알게 되실 테니 그때까지만 저에 대한 오해를 접어두셨으면 합니다.”
태범은 이곳 선시티 직원들의 속마음까지 꿰뚫고 있었다. 투자를 하면서 사람 심리를 읽다보니 이제는 거의 무당을 해도 될 정도였다.
그렇게 잘못된 생각으로 생길 오해를 사전에 차단함으로 더욱 안정적인 협업의 시작을 알렸다.
“현재 선시티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기술만 빼앗겼을 뿐, 그 기술을 이뤄낸 여러분들은 여전히 이곳에 있습니다. 기업의 자산은 기술이 아닌 여러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저랑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짝짝짝.
다시 한번 박수가 울려 퍼지고 선시티 직원들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단 몇 마디였지만, 직원들의 마음을 꿰뚫고 이야기한 것이 효과가 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자기소개를 마치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연구, 개발에 나아갈지 이야기를 나눈 뒤 환영식을 끝냈다.
“그럼 실무진들과 대화를 나눠 보시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죠. 일이야 빨리 시작하면 좋죠.”
태범은 1층 회의실을 나와 양 대표의 안내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있는 연구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 연구실에는 태범과 양 대표 그리고 연구, 개발에 실무를 맡고 있는 전지개발팀의 팀장으로 있던 조문기와 몇몇 연구원이 들어갔다.
“반갑습니다. 오늘부로 여러분과 함께하게 됐네요. 다들 잘해보죠.”
태범은 다시 한번 실무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반갑습니다. 전지개발팀 팀장 조문기입니다.”
“서승훈 과장입니다.”
아직은 어색한 분위기에 서로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마치고 태범은 본격적인 작업에 나섰다.
이들 앞에 능력을 보여줄 때가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