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17화 (117/188)

# 117

“도대체 그 직원이 어쨌기에 중국 기업에 기술을 팔아먹은 거죠?”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으나 저희 회사에 원한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 연구원이 퇴사할 때 분위기가 좀 안 좋았거든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시는 건지.”

“사실 직급 문제로 회사 내에서 다툼이 있었습니다. 전지 개발팀 팀장 자리로 두 명의 연구원이 후보에 있었는데 이번에 중국으로 간 그 연구원이 그때 인사에서 물을 마셨거든요. 제가 달랜다고 달래주긴 해줬지만 이 사람들이 개와 고양이 마냥 서로를 물고 뜯더라고요. 그리고 결국 그 연구원은 여길 나갔고요. 아마 거기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그런 것 같은데 대표님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이야기죠?”

양 대표는 허심탄회하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평소 양 대표는 본인의 기업에 투자한 태범에게 강한 신뢰를 가지고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의 정보를 이야기하는데 별 거리낌이 없었다.

이번 사건의 배경을 들은 태범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자리 싸움이 이 사건을 만든 거네요?”

“아쉽지만 그런 셈이죠. 저도 생각할수록 답답하네요.”

양 대표는 손으로 본인의 가슴을 툭툭 치며 답답한 심정을 나타냈다.

태범 역시 양 대표와 같은 마음에 사건 개요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 그 직원이 기술을 유출했다는 건 추측이라는 거죠? 합리적 추측.”

“네, 분명 그렇긴 하나 이걸 밝혀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일단 샹차이 측에서 기술의 원리를 공개한 게 아니기 때문에 저희 기술을 가져갔다고는 확신할 수 없거든요.”

“결국 이거 아닙니까?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니 결과적으로 선시티를 위협할 기술을 저쪽에서 가지고 있다는 거죠.”

“네, 맞아요. 중국 애들이 한 번 따라 하기 시작하면 기가 막히게 베끼는 애들 아닙니까? 안 그래도 신기술 얻는다면 중국 정부는 무조건 팍팍 밀어주는데 그 자본을 저희가 견뎌낼 수가 없어요.”

양 대표는 벌써부터 중국 기업인 샹차이에게 모든 걸 뺏긴 것처럼 자포자기 심정으로 이야기했다.

그렇게 추진력 강하고 매번 자신감 있어 보이던 남자가 이 꼴이 된 걸 보니 꽤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기술이 어느 정도 비슷하기에 그런 거죠? 그 유출된 기술 저한테 자세히 좀 설명해주시면 안 됩니까?”

“그게…… 회사 기밀이라 자세히 알려드리긴 그렇고 대략적으로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양 대표는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태범에게 열심히 설명에 나섰다.

그가 말한 유출된 기술은 이러했다.

선시티는 태양광 에너지를 저장시키기 위해 리튬 이온 전지라는 전기 저장 장치를 개발하고 있었다.

노트북, 휴대폰, 전기 자동차 등에 쓰이며 2차 전지라 불려 여러 번 충전해 사용할 수 있는 전지였다.

물론 문제는 있었다. 아무리 여러 번 충전 사용이 가능하나 생물 마냥 수명이 존재했다. 그러다보니 이를 늘리기 위한 고효율의 전극 물질이 필요했다.

그런 요구에 따라 선시티는 리튬 이온 전지의 수명 주기를 늘리기 위해 연구, 개발에 나섰고 결국 선시티만의 독창적인 물질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 기술이 시장에도 나오기 전에 중국 기업으로 유출돼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준 꼴이 돼버렸다.

태범은 어이가 없어 쓴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던 태범은 잠시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며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은 저도 사람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죠. 어쨌든 저희 고객의 돈이 이곳에 투자됐으니 저도 책임은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시티를 좋게 봐주시고 흔쾌히 투자까지 해주셨는데 큰 실망을 안겨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사과는 됐습니다. 사과보다는 빨리 이 일이 좋게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이 나왔으면 하네요.”

“네, 저희도 열심히 방안을 마련해보겠습니다.”

사과를 듣자고 이 자리에 온 건 아니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우선이니 빨리 해결책을 떠올려야만 했다.

* * *

태범이 중국하면 떠오르는 사람 하면 오직 ‘왕첸’밖에는 없었다.

게다가 왕첸도 중국이 아닌 대만 사람이었으니 어찌 보면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직접적인 키를 갖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태범은 왕첸에게 연락을 하며 방법을 강구해봤다. 혹시나 중국 쪽에 연이 있어 방법이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결국 예상처럼 아무런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저 안타까운 위로의 말만 전달받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중국 기업을 상대로 특허권 소송을 거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

일단 샹차이가 선시티의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그저 선시티가 보유한 기술을 유사하게 따라하고 있다는 심증밖에는 없었다.

안 그래도 자국 기업을 우선시하는 중국에게 심증 가지고 소송을 걸었다간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아쉽지만 특별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왕첸과의 통화를 마치고 태범은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스마트 폰을 강하게 쥐었다.

답답한 마음과 본인의 능력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곧 분노는 자기합리화로 바뀌었다.

‘이건 차마 내 능력으로도 예측할 수 없었어.’

이번 실패한 선시티의 투자에 태범은 나름의 자기합리화를 했다.

지금까지 태범은 모든 상황을 고려야 투자를 하려 했다. 그 결과 성공을 이뤄 냈다.

변수가 큰 스타트 업 기업 투자에 당당히 뛰어들어 성공한다는 건 누가 봐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격이었으니 분명 대단한 일은 해낸 거다.

하지만 이러한 변수까지는 차마 읽어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미래를 보는 통찰력이 뛰어난들 개인적인 일탈로 인한 사건은 예측할 수 없으니 말이다.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그의 얼굴을 스캔하고 싶을 심정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의 마음 또한 예측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 * *

이번 선시티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주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주주는 크게 3명의 인물로 구성되어있었다.

대주주는 선시티의 대표 측과 TB 샛별 펀드 그리고 기업 창립 시 투자를 했던 픽엔젤스 이었고 나머지는 선시티의 이사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선시티 연구소에 있는 한 회의장에 모여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대화를 준비했다.

주주들 중 가장 먼저 입을 떼며 말을 꺼낸 건 양효철 대표였다.

“우림 자동차에서 투자를 중단한다면 다른 기업들의 투자도 연이어 중단된 걸로 보입니다. 이미 저희는 사업 확장 계획까지 다 세워 놓은 마당에 이렇게 된다면 큰 타격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게 망했다는 듯 양 대표는 머리를 감싸 쥐면서 말했다.

주주들 앞에서 할 말인가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저럴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같은 직원의 배신으로 인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으니 말이다.

차라리 본인이 훔치거나 잘못한 일이라면 덜 억울했을 텐데 회사에 있는 도둑놈 하나 때문에 기업을 말아 먹게 생겼으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억울함이 치밀어 오를 것이다.

“그럼 이번에 들어오는 투자가 무산되면 이번년도에 만기가 되어 돌아오는 부채는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픽엔젤스에서 나온 관계자는 양 대표에게 나무라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꼴이었다. 잘못이 있으면 묻겠지만 사실상 양 대표는 아무 잘못이 없다.

물론 어떻게 해서라도 따진다 하면 직원 관리 못 한 대표의 책임이 있긴 하겠다. 하지만 이를 가지고 책임을 묻기에는 모호한 상황이었다.

태범은 조용히 있었고 눈치 없는 픽엔젤스 사람만 분을 못 이겨 화를 내고 있다.

양 대표는 눈을 강하기 찡그렸다 펴며 대답했다.

“일단 투자자를 예정했던 기업들을 설득해보겠습니다. 현재 우림 자동차에서만 투자 중단 소식이 전해졌을 뿐이지 다른 기업들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으니 일단 할 수 있는 만큼은 노력하겠습니다.”

“아니, 우림 자동차에서 투자 포기를 선언하면. 누가 여기에 투자를 하겠습니까? 일단 우림 자동차의 선택을 다시 돌려놓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픽엔젤스 측은 양 대표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지, 화를 부르는 높은 톤의 어조를 계속 유지하며 질문을 건넸다.

그래서 그런지 양 대표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픽엔젤스 측에선 눈치 채지 못한 건지 자꾸 공격적인 말투로 나섰다. 태범은 양 대표의 현재 심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흔들거나 코로 한숨을 쉰다든지 혀를 자꾸 날름거리는 양 대표의 비언어적 행동이 태범의 눈에는 보였기 때문이다.

양 대표는 다시 코로 한숨을 얕게 내쉬더니 픽엔젤스 측의 질문에 입을 열었다.

“저희도 그러고 싶죠. 근데 그쪽에서 이미 투자를 중단하겠다는 통보를 내렸는데 이걸 어떻게 설득할까요? 애초에 우림 자동차는 본인들의 전기 자동차에 사용할 배터리 기술을 보고 우리 기업에 투자 한 건데 이걸 중국 자본으로 만들어진다면 투자를 하겠습니까?”

양 대표도 답답한 나머지 목소리를 높이며 하소연 식으로 답했다. 태범은 그저 회의장의 분위기를 살피며 경청을 하고 있다.

픽엔젤스 측에서 다시 물었다.

“그럼 투자 문제는 그렇다 치고 현 샹차이 측에 법적인 대응을 할 방법은 없는 겁니까?”

“일단 중국 내에 변호사를 고용할 계획입니다. 특허권 침해로 걸고 넘어져 봐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주범인 강오경 전 연구원도 국내에서 법적인 조치를 취할 생각입니다.”

“결국 해결책 모두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네요?”

“네…… 아직은…….”

“답답하군요.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드셨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다니요? 이게 말입니까?”

픽엔젤스 측은 호통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조용히 이를 바라보고 있던 태범은 놀란 나머지 몸을 움찔거렸다.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에서 왜 저리 쓸모없는 감정 소모를 하는 걸까. 전혀 이성적이지 못했다. 태범은 한마디 둘 사이의 대화에 껴들며 한마디를 건넸다.

“너무 감정적으로 그러시지 마시죠. 어쨌든 일이 일어났으니 소리친다고 해결된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점점 과격해지는 분위기에 태범은 중재에 나섰다.

투자자가 경영진을 나무라는 건 당연하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이 상황에서 삿대질하며 비난을 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저희가 투자한 금액만 자그마치 50억입니다. 화가 안 나겠습니까?”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건가. TB 샛별 펀드는 200인데 말이다.

태범은 감정을 다스리며 대답했다.

“픽엔젤스 쪽에서 초창기에 투자하셔서 지분도 많이 확보하셨고 수익을 크게 내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좋은 날 중 단 한 번의 위기일 뿐입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죠.”

태범의 말에 픽엔젤스 측의 사람은 잠시 입술을 내밀며 뾰로통한 표정을 짓더니 이어서 표정을 풀고는 말을 했다.

“그래요. 그럼 강태범 대표님 생각 좀 들어봅시다. 이 상황에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습니까?”

“일단 연구나 개발은 계속해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선시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건 기술보다 이를 개발해낸 창조적인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할 수 있는 조치는 취하되 일은 계속 진행하시죠. 아직 선시티는 할 수 있는 게 많이 있습니다. 애초에 제가 투자를 위해 본건 기술보다는 사람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여전히 선시티에 있지 않습니까?”

“돈이 있어야 사업을 진행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추가 투자를 받을 거라 예상하고 좀 무리 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 제가 직접 나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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