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13화 (113/188)

# 113

드디어 설계된 알고리즘의 모든 테스트가 마무리되고 존 스미스 교수는 이를 알리기 위해 해가 뜨기 전 새벽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태범에게 화상 통화를 걸어왔다.

한국은 지금 해가 머리 위에 뜬 대낮이었다.

태범은 컴퓨터에 있는 화상 카메라를 통해 교수를 바라봤다.

“좀 쉬다가 연락 주시지 그랬어요.”

“아니요. 이런 건 빨리 알려드려야죠.”

조그마한 모니터 화면인데도 존 스미스 교수는 지친 기색이 뚜렷하게 보였다. 평소 노신사다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교수였지만 지금은 눈동자가 퀭한 게 머리도 살짝 헝클어져 있었다.

그에 그런 모습이 열정을 나타내고 있긴 하나 힘들어 보이는 것이 왠지 건강이 걱정될 정도였다.

“결과…… 나왔나요?”

“방금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제가 연락을 드렸죠.”

“하하. 이 시간까지 계속 일하셨던 거예요?”

“저도 궁금해서 말이죠.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다른 분들은요?”

“제가 쉬라고 보냈습니다. 나야 뭐, 이런 일 흔하게 겪어봐서 괜찮지만 젊었을 때는 푹 자야죠.”

존 스미스 교수는 열정만큼이나 배려가 있어 보였다. 오히려 기력이 쇠한 노인이 쉬어도 모자랄 판인데. 거꾸로 나이 많은 본인이 저렇게 말하니 열정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어떻습니까? 프로그램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나요?”

태범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꺼냈다. 오늘 대화의 핵심이다.

“네, 재무 정보를 분석하고 계산하는 데는 일단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학습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것도 확인했고요. 고객이 요구하는 리스크에 따른 자동 투자도 가능합니다.”

“잘 됐다니 다행이네요.”

“이게 다 태범 씨가 건네준 알고리즘 덕이죠. 지금까지 알고리즘을 한 묶음으로 처리, 계산했다간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겁니다. 근데 이걸 분산시킬 방법을 가져오셨으니 안 그래도 다행입니다. 근데 다만…….”

모든 게 잘 된 것처럼 이야기하던 교수는 말을 늘어트리며 고민하는 듯 입술을 한번 꾹 다물었다 폈다.

“아직 확신할 수 없는 거겠죠.”

태범은 교수의 답을 듣지 않고도 문제를 예측하며 말했다. 테스트에 직접 참가는 하지 않고 있지만 대략적인 과정이 머릿속에 들어있는 상황에 나올 문제는 뻔했기 때문이다.

태범은 이미 한 수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맞아요. 무한에 가까운 투자 상황에 모두 적합하게 적응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이를 확인하는 건 사실 시간문제이기 때문에 말이죠.”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차차 데이터를 쌓아 올리면서 확인하면 됩니다.”

“그럼 프로그램을 바로 실무에 투입하실 건가요?”

“네, 바로 투입해야죠.”

“그전에 모의로 추가 테스트를 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바로 실무에 투입하기에는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일단 부딪쳐 보는 거죠.”

모든 업무를 컴퓨터에 맡긴다면 확실한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지금 이 프로그램은 어쨌든 사람을 보조하는 정도였다.

일반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정도의 결과물을 컴퓨터가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 뿐. 최종 결정은 사람이 한다.

그렇기 때문에 큰 오류가 있다면 사전에 사람의 판단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흠…… 알겠습니다. 그건 알아서 하시겠죠.”

태범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존 스미스 교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항상 본인의 생각보다 태범의 생각이 옳았으니 말이다.

“태범 씨,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여기서 개발을 마치실 건가요?”

“더 개발이 필요한가요?”

“그건 아니지만 대표님의 그 능력으로 여기서 마무리하는 게 참 아쉽다고 생각이 드네요. 내가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어도 이런 식으로 머리를 사용하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마무리는 아니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업데이트는 해야 하니까요.”

태범의 말에 교수는 입을 꾹 다물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는 뭔가를 생각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태범 씨에게 마치 폰 노이만을 보는 듯했습니다.”

“폰…… 노이만이요?”

교수의 입에서 폰 노이만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혹시 스캐너의 정체를 알고 있기라도 한 건가?

상상치도 못한 말에 태범은 당황스러웠다.

“폰 노이만, 그분을 아시나요?"

“당연히 알죠.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이 그분을 몰라서 되겠습니까?”

“아…… 근데 폰 노이만을 보는 것 같다는 게 무슨 말이죠?”

“제가 젊었을 때부터 그분의 논문을 많이 읽어봤거든요. 근데 뭐랄까. 답을 도출하는 데 있어서 과정과 사고방식이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아. 그런 건가요.”

다행이다. 혹시나 스캐너의 비밀을 알고 있는 줄만 알고 심장이 멈추는 줄만 알았다.

어쩌면 나이 많은 컴퓨터 공학 박사라니 폰 노이만을 알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인데 괜히 혼자 뜨끔하고 말았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 늙은이의 촉으로 보자면 분명 태범 씨는 뭔가를 크게 해낼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런 조그마한 프로그램에 만족하시는 건 아닌 거로 보이는데요.”

존 스미스 교수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태범을 꼬시려 들었다.

그 말은 즉, 같이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태범은 교수의 말에 바로 대답했다.

“제가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온 신경을 그쪽에 쓰는 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대신에 좋은 프로젝트가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도와 드릴일 있으면 참가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정말 그래 줄 수 있어요?”

“네, 재미있는 프로젝트 있으면 말해주세요. 저도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거든요.”

태범의 승낙에 교수는 피로가 확 사라지듯 얼굴이 생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축 처져있던 주름이 함박웃음으로 인해 활짝 펴졌다.

“고맙습니다. 죽기 전에 또 한 번 대단한 일을 보게 될 것 같네요. 허허.”

* * *

“오늘부터는 딥 러닝 프로그램이 여러분들의 업무를 도와줄 겁니다.”

런던 대에 있는 데이터 센터에서 TB투자자산이 미리 구축해둔 서버로 딥 러닝 자산 관리 프로그램이 전달됐다.

그리고 태범은 프로그램을 실제 사용할 TB 투자 자문 직원들을 한곳에 모아서 이에 대한 설명에 나섰다.

프로그램의 이름은 딥 멀티(Deepmulti), 딥 러닝을 이용해 인간의 멀티 플레이를 돕는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태범의 약자인 TB를 붙여 이름을 지을까 생각도 했지만 모든 것에 본인의 이름을 붙이는 건 조금 구시대적 사고인 것 같아 생각을 접었다.

“드디어 나온 건가요?”

직원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컸다. 다들 컴퓨터 기술과 큰 관련이 없는 사람이지만 신문물을 접하는 원시 부족의 원주민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쉽게 설명하자면 여러분이 흔히 알고 있는 알파고와 비슷한 성격의 프로그램입니다.”

“그럼 프로그램이 스스로 생각하고 그러나요?”

앞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 한 명이 물었다.

“네, 뭐…… 그렇긴 한데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죠. 그럴 거면 우리가 투자회사를 할 게 아니라 인공 지능 개발회사로 업종을 바꿨겠죠?”

질문을 했던 직원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범은 목소리를 더욱 높여 설명을 이어나갔다.

“여러분들이 하지 못한 생각을 이 프로그램이 더해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은 저의 생각 구조와 비슷하게 설계되었습니다. 제가 자산을 관리하면서 생각하는 방식이 이 프로그램에 담겼다는 뜻이죠.”

“엄밀히 말하자면 이제부터 여러분들 옆에는 항상 제가 앉아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게 여러분들의 부족했던 부분을 도와줄 겁니다.”

오…… 오!

직원들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세어 나왔다.

이제 태범은 저 감탄이 성과를 통해 끝까지 이어가길 바랐다.

* * *

“대표님이 생각하시기에 오늘 IQ가 얼마 정도 나올 것 같으세요?”

“일단 해봐야 알겠지만 평균 이상은 나올 것 같습니다.“

“평균이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건 해봐야 아는 거죠.”

서울 종로구에 있는 멘사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태범과 기자는 IQ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태범은 인터넷 신문사인 ‘우리 경제’에 본인의 IQ 테스트 과정을 취재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즉 본인을 이용한 회사의 무료 광고를 할 셈이었다.

최근 미디어의 영향력을 제대로 느낀 태범에게 회사를 홍보할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다행히도 신문사에서도 태범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했다. 아직 태범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었고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태범의 모든 건 관심거리였다.

심지어 자식 교육으로 극성맞은 몇 명 어머니들이 태범을 찾아와 본인 자식 교육 좀 시켜 달라고 할 정도로 태범의 능력은 동경과 동시에 호기심인 대상이었다.

그런 태범이 직접 언론사를 찾아갔으니 우리 경제 입장에서는 땡잡은 셈이었다.

“IQ 테스트 받으러 왔습니다.”

태범은 멘사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천재들이 모인 곳이라 하지만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일반 협회 사무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아…… 미리 연락 주신 강태범 대표님?”

“네.”

“여기로 들어오세요.”

태범은 멘사 직원의 안내를 받고 사무실 끝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태범 외에 여러 사람이 책상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IQ 테스트를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나이도 천차만별에 막대 사탕이나 빨아먹을 것 같은 꼬꼬마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

IQ는 나이, 성별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측정이 된다.

“상위 2%면 멘사 회원이 될 수 있는 거죠?”

태범은 칠판 앞에 서 있는 직원에게 멘사 가입 요건을 물었다.

‘멘사’ 라는 단체는 이미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고 천재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집단이었다.

그러니 멘사 회원이 되는 것도 천재 이미지를 한층 더 높여주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멘사에 가입하시려고요?”

“이왕 하는 김에 그런 타이틀 하나 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네, 상위 2%, IQ 148 정도가 기준이 됩니다.”

태범은 ‘그 정도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테스트 시작 시간이 다가오고 태범을 취재하던 기자는 테스트 실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태범을 기다렸다.

사실 별 긴장은 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IQ 테스트는 시험이라기보다는 그저 재미로 본인의 지능을 알아보려는 것에 가까웠다.

“IQ 테스트는 FRT라고 도형을 가지고 추론하는 테스트가 되겠습니다.”

테스트 시작에 앞서 멘사 직원의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IQ를 정확히 공평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FRT(Figure Reasoning Test)유형을 사용하는데 이는 도형 추론 테스트였다.

언어나 수리 문제가 개입돼 있으면, 환경이나 교육에 따라 차이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이는 완벽한 지능 테스트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20분에 총 45문제.

시험지를 받아든 태범은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모든 시험이 그렇듯 초반 문제는 너무 쉬웠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한 문제 푸는데 1초도 안 걸린 듯하다.

그저 도형에 숨겨진 패턴을 읽어내기만 하면 됐다.

패턴 읽기는 폰 노이만의 능력인 언어 이해력만 한 게 없다.

언어도 몇 개의 단어로 패턴을 바꿔가며 구성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말만 다를 뿐 사실상 지금 테스트와 다를 바 없었다.

또한 게임에 가까웠다.

어릴 적 학습지 위에 스티커를 붙이며 도형 맞추기를 하듯, 스티커는 없지만 이 또한 재밌는 도형 맞추기 게임에 가까웠다.

그렇게 즐기며 문제를 푼 시간은 단 8분. 태범은 45문제를 모두 풀었다.

“아저씨, 저랑 같이 정답 맞춰 봐요.”

시험이 끝나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가 태범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본인이 찍은 번호와 같이 맞춰 보잔다.

태범의 머릿속은 정답에 대한 궁금증 보다는 ‘내가 이제 아저씨로 보이나.’ 생각하며 지나간 세월에 회상으로 채워졌다.

어차피 정답은 100%였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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