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11화 (111/188)

# 111

“아빠 새 차 가지고 싶어 했잖아.”

“새 차?”

돈이 나간다는 말에 걱정스런 표정을 짓던 아버지의 표정이 단 한마디에 밝게 바뀌었다.

이쯤 돼서 아버지는 태범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눈치를 채고 있었다.

“아빠 차 사주려고?”

어머니는 눈치를 채고 태범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차를 새로 뽑고 싶다는 사인을 보낸 게 지금껏 3년째이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에 막혔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버지의 계획은 실천되지 못했다. 한때 차량 카탈로그를 집에 가져와 책처럼 읽을 정도였다.

태범은 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응, 돈 나간다는 게 이거야.”

“정말이냐? 태범아! 아빠 차 사주려고?”

아버지는 반찬을 집어 올리다가 다시 놓고는 물었다. 대화 이후 아버지의 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 내가 뽑아 줄게. 요즘에 일이 잘 되고 있어서 안 그래도 선물하나 해드릴까 했어.”

“에이 아빠는 됐어. 태범이 너, 나중에 장가도 가야 하는데 그냥 그때 보태 써라.”

잠깐 좋아하는 듯했으나 금세 생각이 바뀌었는지 고개를 흔들며 태범의 선물을 거부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말은 이렇게 해도, 내심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아니야. 내가 전에 약속했으니까. 무조건 사줄 거야.”

“안 그래도 되는데…….”

아버지는 손을 흔들며 거절을 하면서도 표정만큼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럼 아빠가 타고 싶은 차 골라서 말해줘. 그래도 아빠가 타는 차인데 직접 고르는 게 낫잖아.”

“아들이 정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허허.”

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 태범의 선물을 받기로 했다. 이제야 아버지의 밥공기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를 본 어머니와 태인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엄마는?”

“형! 나는?”

이럴 줄 알고 태범은 둘의 선물을 미리 준비해놨다.

기업의 미래를 예측하는 태범으로서 가족의 생각을 예측하는 것쯤이야.

태범은 식탁에서 일어나 잠시 거실로 간 뒤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손에 들고 온 건 하얀 봉투 2장. 이를 어머니와 태인에게 한 개씩 나눠줬다.

“자. 여기!”

봉투를 받아든 어머니와 태인이는 슬쩍 봉투를 열어보며 확인했다. 꽤 놀랐는지 눈동자가 커진 게 보였다.

“고맙다. 태범아. 아들이 엄마 마음을 이렇게 잘 아네.”

어머니는 그 어떤 선물보다 현금을 좋아하신다는 걸 태범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형한테 고맙다고 안 해?”

“고마워…… 형.”

수줍어 아무 말도 못 하던 동생은 어머니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동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날이 오다니. 태범은 스캐너의 능력을 발견했을 때만큼이나 커다란 충격이었다.

아마 ‘형아’ 라고 부르던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후 처음 듣는 소리였던 것 같다.

* * *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청와대로 향하는 길.

아버지가 굳이 데려다주겠다며 직접 차를 몰고는 태범을 태우고 청와대로 향했다.

청와대는 권위적이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곳이긴 하지만, 아버지 세대가 느끼는 인식은 그 이상이었다.

심지어 나이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대통령을 임금이라 칭하는 사람도 있었다. 연배가 있을수록 청와대에 대한 환상이 있나보다.

엄격했던 군사 정권 시대를 지나온 아버지로서 청와대는 여전히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높은 곳으로 생각했다.

“정말 옷 그렇게 입고 가도 돼? 그래도 대통령님을 만나는 데 정장 입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얀 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까지 태범은 친구 집 놀라 가는 것처럼 편안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를 보고 아버지는 옷차림에 대해 걱정스런 말을 꺼낸 것이다.

아버지의 말에 태범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무슨 면접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너무 쫙 빼입고 가면 괜히 애늙은이 소리 들을 수도 있어.”

“아니, 그래도 보통 자리도 아니고 말인데 깔끔한 게 좋지.”

“아빠, 오히려 청와대에서 편하게 입고 당부하더라. 요즘은 예전처럼 너무 권위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어.”

태범은 아버지의 걱정과는 정반대로 옷차림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애초에 청와대에서 편한 자유복을 입고 오길 권했으니 말이다. 상을 받으러 온 거면 모를까. 그저 대화를 위해 모이는 자리였다.

정권마다 청와대 분위기는 다르겠지만 이번만큼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대통령님 만나면 할 이야기 생각해 놨어? 무슨 말 할 건데?”

“음…… 그냥 뻔한 질문에 대답이나 할 것 같던데.”

“하긴 아무래도 그렇겠지. 청와대 같은 곳이면 대화도 미리 짜두고 할걸?”

부대에 방문한 사단장이 이등병에게 뭐 힘든 거 없냐? 물어보는 꼴.

마찬가지로 아무리 자유롭게 대화가 이뤄진다고 한들 청와대에서 본인의 마음을 솔직하게 발언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광화문 참 오랜만에 와보네.”

어느새 차는 청와대 근처 광화문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광화문을 보고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광화문 광장 끝에는 광화문을 지키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보였다.

이를 본 태범에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저분을 스캔하면 무슨 능력이 나올까?’였다.

이제는 인물들을 보고는 능력을 추측할 만큼 스캐너의 사용이 태범의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광화문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푸른 지붕의 청와대가 보였다. 북악산을 배경 삼아 나무와 풀을 배경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다른 나라처럼 웅장하거나 거대하지는 않지만 이 또한 청와대만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이쪽으로 들어가면 되지?”

“응, 주차장 쪽에 있다는데.”

태범이 찬 차량은 바로 청와대로 향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친구 집도 아니고 정문에 가서 ‘손님이니까, 문 좀 열어주세요.’ 하며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청와대 바로 아래 경복궁에 있는 대기실에서 일단 신분 조회를 받아야만 했다.

차량은 경복궁에 있는 주차장에 멈춰 섰고 아버지와 태범은 차에서 내렸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사람이 많네.”

주말이 아닌데도 경복궁은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이곳저곳에서 중국어 소리가 들렸다.

“거기 가서 말조심하고 잘 다녀와.”

차에서 내린 아버지는 태범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줬다. 혹시나 아들이 말실수라도 할까 걱정하고 있던 것이다.

태범은 괜찮다며 아버지를 진정시키고, 미리 통보받은 장소인 청와대 출입 대기실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조금만 걸으면 파란색 안내 표지판에 ‘청와대 방문 대기실’ 라고 적혀져 있었다.

“호명하시는 분들은 한 분씩 나와서 신분증 제시해주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대기실 안에서 청와대 직원은 한 명씩 호명하며 신원을 확인하고 있었다.

“강태범 씨?”

“네!”

“여기 성함이랑 주민등록번호 적으시고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청와대 직원의 안내에 신원을 조회하고는 주의사항을 들었다.

“입고 있는 옷 빼고는 모두 뺀다고 생각하시고 소지품을 꺼내주세요. 동전 하나조차 주머니에 있으면 안 됩니다.”

신원 조회 이후 소지품 검사를 받았다. 비행기 타기 전 공항에서 몸을 검사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혹시나 무기나 위험 물질을 가지고 있는지 체크를 하고 있었다.

보안대를 거친 사람들은 청와대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버스가 멈춰선 곳은 춘추관 앞. 이는 청와대 입구 중 한 곳으로 사람들은 또 다시 이곳에서 신원 확인과 소지품 검사를 받았다.

그렇게 두 번의 검사를 통과하고 사람들은 가슴에 명찰을 하나씩 달고 드디어 내부로 입장할 수 있었다.

꽤 복잡한 절차였지만 누구도 불만은 없었다. 명색이 대한민국 행정부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곳인데 오히려 허술했다면 속으로 욕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경호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청와대 영빈관으로 입장했다.

아직 대통령은 안 보였고 백여 명으로 보이는 전국 각지의 청년 창업자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어? 저 사람은…….’

사람들의 왼쪽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보고 어떤 회사의 창업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중 태범이 투자 대상으로 고려하던 기업의 경영자들도 다수 보였다.

그렇게 초대받은 사람들은 준비된 자리에 앉아 대통령을 기다렸다.

다들 긴장과 흥분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자리. 누구나 이런 자리에 올 수 있는 게 아닐 테니 말이다.

“대통령님 입장하십니다.”

모두가 자리에 착석하고 사회를 보는 아나운서가 대통령 입장을 알렸다.

저 멀리서 보좌진들과 함께 대통령이 걸어오고 있었다.

짝짝짝짝.

대통령이 입장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청년 창업가 여러분들.”

대통령은 허리를 굽히며 청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기가 좀 낯설긴 하죠? 편안하게들 있으세요. 여기가 집이라고 생각하시면 편안할 겁니다. 허허.”

다들 딱딱한 자세로 있어서 그런지, 대통령은 농담을 건네며 손님을 편안하게 대하려 했다.

역시 권위를 내려놓겠다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잘 살리고 있었다.

대통령의 농담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손님들은 대통령의 농담에 함박웃음으로 화답하며 시작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 산업을 이끌어나갈 주역들이 한 곳에 모이니 영광입니다.”

“대한민국은 여러분들과 같은 도전적인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 같은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시작은 미약할지 몰라도 여러분들의 땀이 들어간 노력은 분명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과 행동이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대통령은 온갖 미사어구와 좋은 말을 내뱉었다. 느릿느릿한 말투로 길어지는 연설은 마치 학창시절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듣는 것 같았다.

학교였으면 눈을 껌뻑이며 조는 사람이 나왔을 텐데 다들 긴장한 탓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렇게 긴 연설이 끝나고 문답 시간이 왔다.

“대통령님께 질문 있으신 분은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미리 말을 맞추고 질문과 답변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사회자는 바로 질문 타임에 들어갔고 청년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첫 질문은 아무래도 부담이 가는 모양이었다. 미리 입을 맞춰놨으면 지금쯤 질문을 하는 사람이 나왔을 텐데 그렇지도 않았다.

태범은 이때다 싶었다.

청와대에 왔는데 대통령의 눈에라도 한번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태범은 손을 번쩍 들었다.

“네, 저기 손을 드신 분이 있네요.”

질문자가 나오자 사회자는 안도를 하며, 태범을 지목했다.

태범은 청와대 직원이 가져다준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TB 투자 자산 과 TB 투자 자문을 운영하고 있는 강태범이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대통령과의 첫 대화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운만 좋으면 시장 바닥에서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청와대에서 이뤄진 대화는 품격이 달랐다

“대통령님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태범은 대통령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기업의 약 38%는 일 년 안에 사라지고 또한 28% 정도가 5년 안에 사라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실패가 있는 기업들 사이에서 정부는 어떤 가치를 보고 지원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투자자 강태범 다운 질문이었다.

정부의 기업 지원 역시 국민들을 위한 하나의 투자였으니 태범은 같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선 정부의 생각이 궁금했다.

대통령은 입을 다물며 잠시 고민을 하더니, 금세 밝은 미소와 함께 답변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는 정교한 지원 기준을 가지고 심사를 통해 청년들에게 지원을 하고 창업 기업의 실패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각 정부 부처는 항상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기에 혹시 대표님이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제안하셔도 됩니다.”

대통령의 대답은 원론적인 답변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해서 깊은 토론을 할 만큼의 대화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이대로는 본인을 알리기 위해 뭔가 아쉬웠다. 좀 더 센 질문을 건네 볼까 생각을 했지만 이런 분위기에 차마 입에 떨어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답변이 끝나고 그렇게 대화가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통령에게 또 다른 말을 건네며 대화는 이어졌다.

“대통령님, 저 청년 대표가 요즘에 사람들에게 천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오! 천재요?”

분위기 전환을 위해 건넨 홍보수석의 말에 대통령은 관심을 가지며 태범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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