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번뜩 뛰는 아이디어는 주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타났다.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뜨거나, 샤워하는 도중, 웨이트를 할 때 등 전혀 아이디어와 관계없는 행동을 할 때 뇌에서 반응이 일어났다.
마치 신이 깜짝 선물을 주는 것처럼, 머릿속에 펑! 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었다.
요즘 태범에게는 이런 신기한 경험을 많이 겪었다.
애초에 스캐너부터 불가사의한 일이긴 하지만 연이은 신기한 경험에 태범은 간혹 본인이 현실에 있는 건가 의심할 정도였다.
어쩌면 긴 꿈을 꾸는 건 아닌지 아니면 가상의 세계 있는 건 아닐까 하며 말이다.
태범은 이런 잡념을 자주 떠올리긴 했으나 결론은 단 하나였다.
어쨌든 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본인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고 태범에게 이것은 현실이었다.
잡념을 버려두고 태범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새로 얻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빛이라…….’
오늘 고물상에서 있었던 아이디어를 토대로 새로운 알고리즘을 찾아 나섰다.
아인슈타인의 지식인 물리에서 파생된 생각이었다.
빛이라는 물질을 밝혀내기 위해 수많은 생각을 했던 아인슈타인. 그리고 태범은 그 빛의 속성에서 알고리즘의 힌트를 얻었다.
* * *
일주일 후, 태범이 작성한 알고리즘에 대한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모니터를 두고 런던 대학 연구진과 태범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믿을 수 없더군요. 저희가 테스트를 하나 마나였네요.”
“결과가 안 좋나요?”
존 스미스 교수가 미간을 모으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의 행동을 본 태범은 혹시 본인의 코딩이 잘못된 게 아닌가 싶어 걱정됐다.
“아니요. 결과가 안 좋다기보다는…… 믿을 수가 없어서요.”
“그게 무슨 말이죠?”
애간장을 피우려는 것도 아니고 교수가 뜸을 들인다.
태범은 모니터 속 존 스미스 교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빨리 결과를 내놓으라며 눈빛을 보냈다.
“문제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문제가 너무 없다 보니 이상할 정도네요.”
교수의 미간 주름은 걱정으로 인한 게 아니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과장되어 미간에 강한 주름을 남긴 것이었다.
“정말이요? 단 하나도요?”
태범도 놀라긴 마찬가지. 확인이라곤 일반 가정용 수준의 컴퓨터 한 대로 이뤄진 것뿐이었다.
결국 런던대에 있는 엄청난 성능의 컴퓨터가 무색한 꼴이 돼버렸다.
“네, 이게 어떻게 된 겁니다. 이쪽에 넘기기 전에 다른 곳에서 테스트 된 적 있나요?”
“아뇨, 테스트 없이 작성된 그대로 보낸 겁니다.”
“어쩜 이럴 수가 있지.”
몇 번을 생각해도 믿기지 않은 지 교수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감탄을 이어갔다.
태범은 잠깐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그도 잠시 본인의 능력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잘 돼서 다행이네요. 테스트가 한 번도 되지 않던 거라 사실 걱정 좀 했거든요.”
“허허. 태범 씨 머리에는 무슨 컴퓨터가 있는가 보죠?”
아직 놀라긴 일렀다. 태범에게는 아직 아이디어가 남아 있었다.
“교수님, 제게 또 다른 생각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혹시 나이 많은 존 스미스 교수가 놀라서 심장을 부여잡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하며 태범은 본인이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말했다.
그러자 모니터 속 교수는 얼굴을 더욱 가까이 가져다 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모두 말해주세요. 뭐 어떤 거죠?”
“제가 잠시 빛의 원리에 대해 생각하다 깨달은 건데…… 프로그램을 실행시킬 때 알고리즘을 모두 실행시키지 말고 필요한 알고리즘만 사용하게 만드는 겁니다. 진동 에너지로 인해 빛이 반짝이는 것처럼 말이죠.”
“필요 알고리즘만 사용하자는 건가요?”
“네, 그럼 굳이 알고리즘이 작동할 때 모든 걸 실행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근데 그게 가능할까요? 머리로는 이해는 되는데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짐작이 되질 않네요.”
“사실 여기서 말로 표현하기는 좀 예매한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짜낸 알고리즘을 보내드리도록 하죠.”
말로 안 되면 눈으로 보여줘야 한다. 빛의 원리를 통해 얻어낸 딥 러닝의 알고리즘. 태범은 존 스미스 교수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정리에 나섰다.
컴퓨터 화면에는 코딩 프로그램이 켜있고 책상 위에는 노트가 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제 머릿속에 있는 걸 컴퓨터 언어와 숫자로 옮기면 됐다.
태범이 항상 이런 과정을 겪을 때면 생각하는 게 있었다. ‘컴퓨터가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프로그래밍 언어가 아닌 그저 사람의 언어로 말이다.
죽기 전까지는 그런 날이 오겠지 생각하며 태범은 작업을 시작했다.
* * *
똑똑똑.
대표실 책상에 앉아 열심히 서류를 머릿속으로 흡수하고 있던 중 노크 소리로 인해 몰입이 깨져버렸다. 태범은 서류를 덮어두고는 문 밖 사람을 불렀다.
“들어와요.”
“대표님, 손님 오셨습니다.”
“누구죠?”
“박금동 의원님이라고…… 이 지역구 국회의원이랍니다.”
“국회의원이 저를 왜?”
뜬금없었다. 갑자기 국회의원이라니 은밀한 협상이라도 하러 온 건가. 하도 정치인들에 대한 편견이 있다 보니 별의별 상상을 하게 된다.
그래도 투자 회사에 왔으니 투자를 원해서 왔겠지 싶어 그를 받아들였다.
“반갑습니다. 박금동 의원입니다.”
“안녕하세요. 강태범 대표입니다.”
직원이 밖으로 나가고, 곧이어 들어온 인물은 송파구(갑)의 국회의원 박금동이었다. 송파구는 회사가 위치한 지역구이기도 했다.
2선 의원인 박금동은 현재 여당의 국회의원이자, 기획 재정 위원회 소속에 있으며 과거 변호사로 일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태범을 만나고 싶다 하니 의아했다.
원래는 미리 약속이 잡히지 않는 이상 고객과 직접 대면을 잘 안 하는 편이지만 이 사람만큼은 만남을 단호히 거절할 수 없었다.
아무리 모든 고객을 동등하게 생각한다고 한들 그 잘나신 국회의원님 아닌가!
태범은 그를 친절히 맞이했다.
태범에게 자리를 안내받고 소파에 앉은 박금동은 먼저 입을 떼며 말했다.
“여기에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있다고 들어서 와봤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우리 지역에 대표님 같은 분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젊은 나이에 이렇게 성공을 하시니 대단합니다.”
정치인에 대한 편견일까 칭찬부터 건네는 그의 말에는 숨겨진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먼저 밑밥을 깔 듯 말이다.
정치인의 말은 항상 곱씹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박금동 의원의 칭찬에 태범은 미소로 화답했지만 속으로는 여러 생각을 했다.
“의원님이 여긴 어쩐 일로…… 혹시 투자 자문 때문에 오신 건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대표님을 지역을 대표해서 추천 좀 하고 싶어서 찾아 왔습니다.”
“추천이요?”
“네, 이번에 청와대에서 청년 창업자들을 데리고 경제 대책 회의를 가질 계획에 있거든요. 제가 지역구에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마침 대표님이 보이더군요.”
청와대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태범의 귀가 번쩍 뜨였다.
“아…… 청와대요”
“네, 최근 창업한 청년들을 데리고 대통령님께서 대화의 자리를 열었거든요. 뭐 창업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시고 편하게 있다 오면 될 겁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스럽네요. 그것도 의원님이 직접 찾아오시니…….”
“여기 강…….”
“강태범입니다.”
“맞다! 제가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가끔 깜빡하네요. 어쨌든 강태범 대표님 정도면 제가 직접 찾아와서 대화를 나눠야죠.”
국회의원에게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됐구나. 태범에게 자긍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국민과의 소통. 그런 거랑 비슷한 거겠네요.”
“네, 대통령님께 질문하고 답변을 받고 그런 정도입니다. 어차피 많은 청년 창업자들이 오기 때문에 많은 대화는 나누기 힘들 겁니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그냥 TV에서 보면 가끔 대통령님이 사람들 데리고 대화하지 않습니까? 그런 거라고 보면 됩니다. 일하는 데 있어서 생기는 고충 같은 거 들어주고 서로 좋은 말해주고…… 아마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게 될 겁니다.”
“아!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네요.”
태범은 박금동 의원이 말하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뻔한 질문과 대답 그리고 서로에 대한 칭찬. 아마도 보여주기에 가까운 대화가 이뤄질 거로 보였다.
그렇다고 대통령 앞에서 솔직한 말을 꺼낼 용자도 없을 것이고 그냥 형식적으로 오고가는 대화가 될 것이 분명했다.
태범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 의원은 또 다른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조언하나 해드리자면 이런 행사가 있으면 얼굴이라도 비추는 게 회사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아무리 경제와 정치를 별개로 논다고 생각해도 결국은 연결되기 마련이거든요.”
그의 말이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결국 사업이 커지면 똥파리들이 붙기 마련이다. 이를 알아둬서 손해 볼 건 없다. 태범은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럼 약속은 언제 잡으면 되는 건가요?”
“승낙하시는 건가요?”
“네, 물론입니다. 그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잘 생각하셨어요. 아직 청와대에서 들어온 정확히 날짜가 없어서 그런데 그쪽에서 연락 오면 바로 연락을 드리죠.”
“아, 네. 그렇게 해주세요.”
첫 만남에서 모든 게 신속하게 이뤄졌다. 태범은 유능한 투자자답게 기회가 오면 지체하지 않았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여기가 그렇게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TV에도 자주 나오지 않았나요? 재정위에서 일하면서 이쪽 이야기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디어에 얼굴을 비췄던 게 효과가 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정치인답게 돈 냄새를 잘 맡던가.
태범은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감사하게도 사람들이 관심을 주더라고요.”
“대표님이 손만 대면 성공한다면서요. 미다스의 손이라 하던데요?”
“미다스의 손이요? 하하.”
“여기 명함입니다. 어쩌면 저랑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겁니다.”
박 의원은 명함을 칭찬에 포장하여 건넸다. 이게 정치인의 처세술이라는 것인가.
미소를 지으며 명함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태범도 명함을 건네며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을 주시죠. 분명 필요할 때가 올 겁니다.”
* * *
좋은 소식이 있으면 남에게 알리고 싶다. 자랑도 하고 말이다.
특히 가족이면 더. 태범은 두 가지 좋은 소식을 알리기 위해 본집에 찾아갔다.
“그래, 요즘 일은 잘 돼가지? 직원도 많이 늘렸다며.”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먹을 때면 아버지는 회사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부자간의 대화는 공통된 관심사인 사업 이야기로 통했다.
“잘 되니까 늘렸겠지? 그것보다 지금 대박 소식 두 가지 있는데 말해줄까?”
“대박 소식? 그게 뭔데.”
“첫 번째는 어떤 집에 들어가는 소식이고 두 번째는 내 돈 나가는 소식이야.”
과거 서먹서먹하던 부자 관계였다면 자신감을 얻은 태범 덕에 이제는 친구 같은 관계가 됐다. 아빠한테 장난치던 꼬꼬마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이제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건네고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집에 들어가다니 돈 나가는 건 뭐 나쁜 소식이야?”
“어떤 거부터 이야기해줘?”
“그래, 첫 번째 거부터 이야기해봐.”
“나 잘하면 푸른색 지붕의 집에 들어갈 것 같아.”
“푸른색 지붕? 혹시 청와대?”
“바로 맞춰버리네. 청와대 맞아.”
태범의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가족들은 입으로 들어가던 숟가락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하나같이 놀란 눈으로 태범을 바라봤다.
“별건 아니고 청년 창업인들 관련해서 뭐 대화 나누고 그러는 거야. 알잖아.”
“이야! 우리 아들 이거 완전히 출세했네. 이제 청와대도 들어가 보고…… 예전에는 정말 대통령하고 악수만 해도 집안의 영광이었는데.”
아버지는 당장이라도 태범을 껴안을 것 같았다. 자식의 출세는 곧 부모의 행복이었다. 이제 또 주변 사람들에게 실컷 자랑하고 다니겠지.
아버지는 감정을 추스르며 두 번째 소식에 대해 질문을 건넸다.
“그래, 그럼 두 번째는 뭔데? 돈이 나간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