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스낵 피쳐, 스마트 교육, 데이터 스파이더, 에어 빌딩, 선시티.
현재 태범이 운용하는 TB 샛별 펀드의 투자 목록이다.
대부분 IT와 관련된 지적 재산이 주를 이루는 기업으로 잘만 성장한다면 커다란 미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언제든 기업이 위험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TB 샛별 펀드는 단지 돈만 내는 관망하는 투자자가 아닌 이들 회사의 주주가 된 입장에서 경영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을 했다.
태범은 가진 모든 능력을 이용해 기술적 조언을 해주기까지 했으며 정말 손발이 부족할 정도로 회사를 위해 일했다.
“아무래도 직원들을 더 뽑아야 하겠죠?”
“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특히 많은 자문사 고객을 상대하려다보니.”
태범이 채용 이야기를 꺼낸 건 회의 도중 선시티가 확장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선시티는 자동차 배터리를 연구, 개발하는 기업이었고 TB 샛별 펀드뿐만 아니라 유망성을 알아본 여러 기업에서도 투자가 들어간 상황이었다.
투자가 이뤄지니 사업이 확장되는 건 당연한 일, 태범의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일감이 많아지는 이 상황에 앞으로 사업 확장해야 하기 때문에 직원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혹시 주변에 투자와 관련된 일하시는 분 있으면 우리 회사를 한번 권해주세요.”
“저야 증권사에서 일했으니 아는 사람이야 많죠.”
이곳에 오기 전부터 펀드 매니저로 일했던 강설희는 금융권 사람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 외에도 같이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직원들 역시 대부분 이 계통에 업무를 하던 사람이라 주변에 많은 사람을 알고 있었다.
“그럼 채용 공고를 올릴 테니 주변 사람들 좀 추천해주세요.”
“네, 연락해보겠습니다.”
태범의 투자 회사는 또 다른 확장을 맞이하고 있었다.
* * *
태범은 친구들과 약속한 게 있었다.
같이 높은 곳까지 올라가자는 것.
그 높은 곳이 어딘지는 정확히 확정짓지는 않았지만 이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부와 명예를 말했다.
물론 젊은 날의 우정으로 그저 스쳐가듯 한 말일 수도 있지만 태범에게는 꼭 지켜야할 약속이었다.
그 누가 성공하든 서로를 버리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말이다.
이제 태범에게는 주변과 친구를 살필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었고, 약속을 실행에 옮길 때가 되었다.
회의를 마친 태범은 본인의 사무실로 들어가 친구인 희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준아.”
“어. 태범아, 무슨 일이야? 먼저 전화를 다 하고.”
태범에게서 온 연락에 희준은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회사를 창업한 이후 딱 한번 희준에게 축하 전화를 받을 것 빼고는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뭐하나 싶어서. 아직도 취업 준비하고 있어?”
“나야 아직 취업 준비하고 있지. 갑자기 안 하던 전화를 하는 거 보니 뭔가 할 말이 있구나.”
역시 피붙이에 가까운 친구 희준은 태범을 꿰뚫고 있었다.
태범이 뭔가 목적을 가지고 전화했을 거라 단박에 파악하고는 물었다.
역시나 불알친구다웠다.
“너, 그러지 말고 내 회사에 들어올래?”
“너희 회사? 그 투자 회사 말하는 거야?”
“응, TB 투자 자문으로 들어와. 안 그래도 사람이 부족해서 그래.”
“나…… 그쪽 일은 잘 모르는데…… 알잖아 나 영문학과인 거.”
“야. 그건 걱정하지 마라. 사람은 다 쓸 때가 있는 거야. 일이야 배우면 되는 거고, 너 영어 잘하잖아. 그거 써먹으면 되지.”
“그래? 진짜 나 같은 애도 받아 주냐?”
“인마, 기억 안 나냐? 우리 예전에 약속했잖아. 같이 위로 가자고.”
“응?”
“와. 설마 기억 못 하는 거야? 만날 때마다 한 말인데.”
“아아…… 그랬지.”
희준이 그 말을 기억하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저런 손발이 오글거리는 말을 꺼낼 때는 이미 취한 상태였기에 기억에 남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알든 모르든 중요한 건 아니었다.
“말해봐. 생각해둔 곳 없으면 여기 오던가.”
“가고는 싶긴 한데. 그럼 나 낙하산 아니냐? 낙하산 타고 내려온다고 직원들이 싫어하는 거 아니냐?”
“에이! 낙하산은 무슨. 아직 코딱지만 한 회사인데…….”
“그래도. 요즘 그런 거에 사람들이 얼마나 민감한데!”
“짜식. 그런 건 걱정하지 마. 여기 직원들도 다 그렇게 들어왔으니까.”
“정식 채용으로 들어 간 건 아니고?”
“무슨 정식 채용 그런 게 따로 있냐. 여긴 아직 네가 생각하는 규모는 아니야. 그냥 필요할 때 뽑는 거지.”
“그러냐. 하긴…… 회사가 생긴 지도 얼마 안됐지.”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심지어 첫 직원인 윤희성은 한때 태범의 악플러였으니 말이다.
“야, 올 때 미리 연락하고 현수도 데려와라.”
“현수?”
“그래, 걔 비트 코인, 주식 이런 투자에 관심 많았던 얘니까. 우리 회사에도 관심이 있을 거야.”
태범은 또 다른 친구, 김현수도 잊지 않았다.
희준과 마찬가지로 현수도 학창 때 가장 어울려 다니던 친구였다.
대학에 오기 전까지 셋은 한 세트처럼 어울려 다닌 삼총사였다.
“알았어. 그럼 현수 물어보고 연락 줄게.”
“응, 꼭 연락 줘라.”
전화를 끊으며 태범은 본인 스스로가 의리의 사나이가 됐다는 것에 만족하며 친구들과 다시 한번 뭉치는 상상을 했다
* * *
희준과 현수는 약속 시각에 맞춰 태범의 회사에 나타났다.
정장을 차려입은 둘은 낯선 사무실 풍경에 쭈뼛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떻게 오셨어요?”
재무팀의 직원 한 명이 뻘쭘하게 문 앞에서 서 있는 둘을 보고는 물었다.
“저기…… 면접 때문에 대표님 만나러 왔는데요. 혹시 어디로 가야 하나요?”
“면접이요? 미리 연락하셨어요?”
“네.”
“잠시만요.”
직원은 대표실에 들어가 태범에게 확인을 받고 나서 희준과 현수를 들여보냈다.
대표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두 명의 친구는 태범의 얼굴을 보자 굳었던 얼굴에서 미소가 환하게 피어올랐다.
“태범아!”
희준이 태범의 이름을 반갑게 부르자 옆에서 안내를 해줬던 직원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순간 희준도 아차 했는지, 입을 꾹 다물고 어색한 미소를 날리고 있었다.
“여기 두 사람 제 친구들이에요.”
“아, 네!”
괜히 어색한 것 갈길래 태범은 두 친구를 직원에게 일러주었다. 그러자 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떴다.
“그래, 여기 앉아.”
“응…….”
태범은 두 친구를 소파에 앉혔다.
불알친구답게 평소였으면 장난으로 시작했을 친구들인데 마치 처음 만난 친구처럼 어색한 기운을 잔뜩 풍기고 있었다.
태범이란 존재를 친구와 회사 대표라는 인식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 때문이었다.
분명 친구들과 서로 욕하고 장난치고 했던 태범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만큼은 한 회사를 책임지는 CEO였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어? 내가 무슨 긴장을 한다고 그래.”
분위기를 돌려놓기 위해 태범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희준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마치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자기는 무서운 것 없다며 티를 내는 것 같았다. 다 보이는데 말이다.
“태범아, 너 완전 달라 보인다. 내가 알던 애가 아닌데…….”
아버지 정장을 빌려 입고 온 듯 현수는 정장 소매는 펄럭이며. 달라진 태범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PC방 옆자리, 술집 테이블에 같이 앉던 친구였지만 이제는 단독으로 나눠진 사무실에서 대표와 지원자의 관계로 앉아있다. 친구들에게는 낯선 모습이었다.
“이력서는 가져 왔지?”
“응.”
사실 이력서는 형식상 절차일 뿐, 태범은 이 두 친구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학창시절 그렇게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으니 가족을 제외한다면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력서는 안 봐도 니들 내가 뻔히 아니까. 회사 들어오면 뭐할지 설명만 할게.”
“알았어,”
태범은 회사에 대해 설명하며 친구들에게 해야 할 일들을 안내해줬다.
둘은 면접 당일 합격 통보를 받은 셈이었다.
* * *
태범의 친구들이 입사한 지 한 달, 친구들의 입사를 시작으로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직원 수도 급속도록 늘어나고 있었다.
TB 투자 자문과 TB 자산 운용 합해서 10명 정도 되던 직원이 이제는 두 배인 20명까지 늘어났다.
이는 기업의 성장을 의미하는 동시에 태범의 계획대로 기업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말했다.
[오늘은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TB 자산 운용 대표 강태범입니다.]
“나온다, 대표님.”
“오. 멋진데? 우리 회사 이름도 나오는데?”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직원들의 눈은 모두 한곳에 집중돼 있었다.
TV 속 인터뷰를 하고 있는 강태범 대표의 모습.
나름 지상파만큼이나 공신력 있는 종편 프로그램에서 태범을 인터뷰한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대표님을 천재라고 하는데요. 대표님 생각은 어떠세요?]
[저야 늘 감사하죠. 제가 천재 듣는 날도 오긴 오네요.]
MC의 질문에 태범은 항상 미소를 유지하며 답을 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닌 회사를 책임져야 할 사람, 본인의 이미지가 곧 회사의 이미지였다.
[지금 많은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계신데, 뭔가를 배울 때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는 건가요?]
[딱히 노하우라기보다는 일에 대한 집중과 몰입만 있다면 누구든 뛰어난 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로 답해줄 수 없는 질문이었다.
태범은 MC의 허를 찌르는 질문을 능구렁이처럼 넘어갔다.
[대표님, 혹시 IQ가 어떻게 되시나요?]
[제가 IQ는 측정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대표님 정도면 그래도 180은 나오지 않을까?”
“에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200이 넘는다며? 그럼 대표님도 200이 넘지 않을까?”
“그래도 IQ가 높다고 무조건 뭐든 잘한다는 건 아니라서 혹시 모르는 거지.”
태범의 IQ 이야기는 직원들의 또 다른 반찬거리였다.
태범의 IQ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했으니, 이는 지능을 수치화 시켜 보여주고 천재를 판가름하는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궁금해서 그런데 학벌에 대해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네, 질문하세요.]
[사실 대표님 정도의 천재성이면 명문대를 다녔을 거라 생각을 하는데 일반 수준의 대학교를 나오셨더라고요. 그래서 의아한 게 지금의 천재성은 언제부터 나타나게 된 건가요?]
[반에서 꼴찌 하던 아이가 서울대 가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대학에 들어오니 그때야 미래가 걱정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진실을 답할 수 없을 때는 또 다시 능구렁이가 되어야만 했다.
스캐너의 존재는 대통령이 물어봐도 비밀이었다.
[평소 방송에 제의는 많이 받으셨는데 대부분 거절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 방송 출연은 승낙하신 계기가 있나요?]
[사람들이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확실히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어떤 분은 화가라 알고 계시던데…… 하하. 전 투자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태범은 방송을 통해 본인을 어필했다.
마치 본인을 알리기 위해 방송에 출연한 신인 아이돌처럼 말이다.
사실 이번 방송 출연은 술자리에서 갖던 희준의 입으로 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회사 내에서는 부하직원이지만 사적으로 만날 때 희준이는 여전히 태범의 불알친구였다.
평소 직원들이 하지 못하던 말을 희준은 거리낌 없이 했는데 이는 태범에게 많은 영감을 가져다줬다.
그리고 술자리에서의 희준과의 대화는 이랬다.
“태범아, 그러지 말고 너의 천재성을 세상에 홍보해보는 게 어때?”
“홍보?”
“응, 기업에서 이미지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데 지금 미국 대통령도 CEO 시절에 예능 프로그램에 시트콤, 영화, 레슬링까지 했잖아. 그리고 요즘 국회의원들도 봐라. TV에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그게 다 이미지 만들려고 하는 거지.”
“그렇긴 하지. 근데 너무 알려지다 보면 그만큼 조심해야 하니까…….”
“넌 이미 유명해져 있어. 내 생각에는 태범이 넌 더 유명해져야해.”
이때부터 태범은 회사를 알리기 위해 본인을 미디어에 내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