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존 스미스 교수와의 만남은 대학 내 있는 그의 연구소에서 이뤄졌다.
존 스미스는 정식 교수를 그만두고, 명예 교수로서 있음에도 학문에 대한 갈증으로 연구소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런던 공과대 건물 4층에 위치한 컴퓨터 연구소, 여기서 많은 프로그램이 탄생했으며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학생들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온통 흰 머리에 단연 눈에 띄는 존 스미스 교수를 태범은 단박에 알아봤다.
“안녕하세요. 강태범이라고 합니다. 저 기억하시죠?”
“당연히 기억하죠. 제가 어떻게 잊겠습니까?”
둘은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존 스미스 역시 태범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수학 천재인 본인에게 수학으로 훈수를 두고 스낵 피쳐에서 깜짝 놀랄만한 등장은 태범의 존재를 존 스미스의 기억 속에 각인시켰다.
온통 컴퓨터의 하드웨어가 자리를 차지고하고 있는 이곳에서 존 스미스 교수는 의자 두 개를 끌고 오더니 태범에게 자리를 권하며 마주보고 앉았다.
“그래요. 무슨 일로 절 뵙자고 한 거죠?”
“제가 프로그램을 하나 개발할까 생각 중인데 혹시 교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프로그램이요? 무슨…….”
“자산을 관리, 자문해주는 자동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자동 투자 프로그램과 흡사한 프로그램이죠.”
태범은 평소 머릿속에 담아 두고 있었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켜보고 싶었다.
그중 하나가 본인의 능력을 대신해줄 컴퓨터 프로그램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몸을 대신해 본인에게 수익을 가져다줄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분명 현실화 가능성은 보였지만 몸뚱어리라 하나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에서 일류 대학이라는 런던대학의 힘을 빌리고 싶었고, 분명 존 스미스 교수의 영향력 정도라면 학교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회계사라고 하셨죠? 회계 업무에서 사용할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가 보죠?”
“아뇨, 회계사는 그만뒀습니다. 지금은 투자 회사를 창업해서 CEO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네, 현재 투자 자문과 사모 펀드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업무에 사용할 프로그램을 제작 계획에 있는데 마침 영국에 온 김에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자산 관리 프로그램이나 주식 자동매매 시스템. 사실 이런 걸 제작하는 데는 그렇게 힘든 게 아닌데 굳이 저한테 부탁할 필요가 있을까요? 대한민국에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겁니다.”
존 스미스는 거절하는 뉘앙스로 답했다.
사실 그의 말이 틀린 건 없었다. 세상에는 이미 태범이 말한 프로그램이 많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자산들이 컴퓨터로 인해 관리되며 투자마저 자동매매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프로그램에는 특별함이 없었기 때문에 존 스미스에게는 전혀 흥미 없는 이야기였다.
“아니요. 제가 만들려는 건 그런 일반적인 게 아닙니다. 한 번 봐주시죠.”
태범은 메고 온 책가방에서 노트 한 권을 꺼냈다.
그리고 노트 위에 붙은 견출지는 별 관심 없어 하던 존 스미스의 눈을 번뜩 뜨게 만들었다.
“딥 러닝 기반 예측 투자?”
교수는 하얀색 견출지 위에 영어로 적혀 있는 제목을 읊었다.
그제야 관심을 보이는 교수에게 태범은 노트를 펼쳐 보이며 설명에 나섰다.
“네, 딥 러닝. 전 생각을 하는 투자, 자산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정된 알고리즘으로 이뤄진 투자가 아닌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말이죠.”
“어떤 수준을 말하는 건지요?”
“한계를 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단 개발 가능한 수준까지는 도전해보고 싶네요.”
딥 러닝은 마치 인간의 뇌의 신경 구조망처럼 데이터를 학습, 구분하여 정보를 구현하는 시스템을 말했다.
최근 바둑계를 평정한 인공 지능 알파고 역시 딥 러닝으로 설계된 작품이었다.
알파고의 선전 이후로 인공 지능과 딥 러닝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됐고 실제로 이를 이용한 여러 가지 시스템이 만들어 지곤 했다.
현재 많은 금융 기업이 딥 러닝 시스템을 이용해 주식 투자를 한다곤 하지만 이는 우리의 기대와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저 무늬만 딥 러닝일 뿐 사실 인공 지능이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
태범이 개발하고자 하는 건 그런 껍데기 딥 러닝이 아니었다.
정말 자신의 능력을 대체 할 수 있을 만큼의 기술을 가진 시스템이 필요했고, 현존하는 그 어떤 딥 러닝 시스템보다 뛰어난 게 있어야만 했다.
그런 태범은 본인이 가진 능력을 믿고 개발에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더 하고 있었다.
“제게 어정쩡한 시스템보다는 확실히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쉬운 일은 아니겠군요.”
존 스미스 교수는 태범이 제안한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물론 존 스미스의 그런 생각을 옳았다.
애초에 누구나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거라면 이곳에 찾아오지도 않았다.
세계의 저명한 교수와 개발팀이 필요한 만큼 태범의 계획은 장대했다.
“네, 쉬운 일은 아니겠죠. 그러니 제가 교수님께 이렇게 부탁하는 겁니다.”
“대충 뭘 말하는지는 알겠는데 당신이 그 정도 수준의 딥 러닝을 구현할 수 있을까요? 다들 돈 보고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가 접는 사람만 수없이 많았습니다.”
교수는 헛기침을 한번 내뱉더니 태범의 가능성에 대해 의심을 했다.
애초에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를 뒤흔들 4차 산업 혁명은의 핵심은 ‘인공 지능’에 있었다.
과연 누가 인공 지능을 선점할 것인지에 따라 미래의 중심은 개발자를 향해 바뀔 거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니 많은 기업이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인력은 엄청났고 완성될 때까지 이를 견뎌낼 수 있는 곳만이 연구를 유지할 뿐 대부분이 중도에 포기하곤 했다.
미래의 선구자가 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임을 존 스미스 교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온 일개 들어 보지도 못한 투자 회사의 CEO라는 사람이 확실한 딥 러닝 기술이 필요하다고 하니 교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전 충분히 개발 가능 하다고 생각합니다.”
“태범 씨가 저번에 스낵 피쳐에서 취약점을 수정하는 걸 보고는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근거 좀 알고 싶네요.”
교수는 태범이 단지 호기로 저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 확신에 대한 근거가 있어서 그러는 건지 알 필요가 있었다.
세상에 말로만 나불거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
그냥 설명해주면 되는 일 가지고, 더 이상 의심받을 필요는 없다.
태범은 노트에 적힌 내용을 보여주며, 어떻게 프로그램을 설계할 것인지 설명했다.
“이렇게 인간 신경망을 빗대어 모델링 하는 겁니다.”
두뇌와 비슷해 보이는 일종의 거미줄 모양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선의 접합 지점에 공식을 설명하며 태범이 만들고자 하는 시스템의 기초 원리를 일러줬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존 스미스 교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허허. 당신이 말한 대로 고도화된 딥 러닝은 정보를 처리하려면 엄청난 성능의 하드웨어가 필요합니다. 애초에 프로그래밍을 했다 한들 현 기술로 하드웨어가 받쳐주지 않으면 어려운 문제죠.”
여전히 태범의 목표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납득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태범은 그런 교수의 표정을 읽고는 설득에 나섰다.
“제가 당장 사람과 같은 인공 지능을 만들자는 게 아닙니다. 저도 그게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태범이 뇌 신경을 연구한 사람도 아니고 아직 현대 기술로도 뇌 활동의 메커니즘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상황에 완벽한 인공 지능을 개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태범 역시 잘 알고 있다.
스캐너가 준 능력 때문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지만 가능성을 무시하고 무작정 행동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태범은 노트의 장을 넘기며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두꺼운 노트 안에 가득 찬 추론과 비선형 연산을 설명하려면 몇 날 며칠이 걸려도 모자랄 지경, 태범은 최대한 핵심 부분만 간추려 설명했다.
“사람을 완전히 제외하고 컴퓨터 혼자 일하는 게 아닌 사람이 컴퓨터를 보조하며 비선형 연산과 추론에 개입해 정보를 처리하고자 합니다.”
현재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다 한들 기상청이 날씨를 틀리는 데는 여기에 있었다.
컴퓨터는 불규칙적인 방정식에 속하는 날씨를 계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혼돈 상태의 공식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 혼돈에 인간의 두뇌가 개입되게 되는데 이것이 태범이 말하고자 하는 거였다.
컴퓨터가 처리할 수 없는 기술적인 한계는 사람이 보완하고 일 처리를 하자는 것이었다.
이러면 완벽한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충분히 현실성 있는 일이였다.
태범은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걸 공학적인 설명을 통해 이뤄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고개를 저으며 긴가민가한 하던 존 스미스 교수는 설명에 따라 표정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흠…….”
입을 꾹 다물며 대답대신 코로 ‘음’ 소리를 내며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던 존 스미스 교수.
그는 태범의 생각에 놀라워했다.
마치 ‘이건 보통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 하나 같이 태범에게 설명을 듣는 사람마다 짓는 표정이었다.
이쯤이면 태범은 짐작할 수 있었다.
존 스미스 교수는 분명 본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걸 말이다.
여태 저런 표정을 짓고 자신의 제안을 거절 한 사람은 없었다.
“이걸 다 혼자 준비하신 겁니까?”
“네, 일하면서 틈틈이 생각하고 있는 걸 노트에 옮겨봤습니다. 제가 가장 필요로 하는 기술이기도 하고요.”
“믿기지 않네요. 어떻게 이 정도 수준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건지…….”
태범의 정체가 뭔지 궁금해 하는 표정이다. 회계사나 투자자가 아닌 사실상 수학자와 컴퓨터 공학자에 가까운 일을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태범의 능력을 의심하던 교수의 마음이 이제는 정반대로 돌아섰다.
오히려 감탄을 내뱉고 싶었지만 체면이 있기에 꾹 참고 있었다.
“교수님이 도와만 주시면 분명 해낼 수 있을 겁니다. 학교의 시설과 인력만 좀 보태주시죠.”
“일단 태범 씨 설명에 충분히 이해는 갔습니다. 요즘 인공 지능 분야가 뜬다니 준비 없이 너도나도 달려드는 사람이 많아서 제가 오해를 했군요.”
“그럼 어떻게?”
“네, 일단을 제안을 받는 거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의사가 있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일단 저 역시 학교 측에 프로젝트 권한을 받아야 하거든요.”
결국 예상했던 것처럼 존 스미스 교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태범은 노트를 닫고 감사함을 전달했다.
“네, 그렇게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추가적으로 보완을 해놓고 있겠습니다.”
“그럼 영국에 계속 있으실 건가요?”
“아니요. 일단은 한국에 돌아 가봐야 합니다. 필요한 대화는 연락을 통해 언제든 나눌 수 있도록 하죠.”
“하긴 사업하는 사람이 집을 떠날 수 있겠나. 그럼 그때 다시 연락하는 거로 하죠.”
태범과 존 스미스 교수는 서로의 명함을 주고받으며 약속했다.
아직 대학 측의 확답이 필요하지만 존 스미스 교수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니 계획대로 이뤄질 것 같았다.
그렇게 태범은 이번 영국행을 통해 두 가지의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현재는 시작 단계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태범의 눈에는 엄청난 미래가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