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06화 (106/188)

# 106

한번 봤다고 캐서린의 가족은 너무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캐서린의 부모도 태범을 한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마치 명절에 오는 사위를 대하듯 했다.

“뭘 이렇게 많이 준비하셨어요!”

“한국에서 멀리 왔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밥상이 휘어진다는 게 한국에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여기는 밥상이 아니라 식탁이지만 영국의 산해진미로 음식이 가득 차 있었다.

이 모든 게 태범에 대한 달라진 인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 자네가 캐서린 회사에 투자를 해준다고?”

캐서린의 아버지는 미소를 띠며 태범에게 물었다.

첫 만남부터 팔씨름 대결을 신청하며 태범을 경계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이제 태범에게 빠진 듯 보였다.

“네, 캐서린이 투자 관련해서 힘들어하더라고요. 당연히 남자 친구로서 도와줘야죠.”

“아! 그래, 맞아. 남자 친구라면 그 정도는 돼야지!”

사실 투자 결정에 핵심 역할을 한 건 기업의 유망성이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만큼은 캐서린의 부모님에게 선의에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본인의 딸이 남자 친구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캐서린의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태범을 치켜세우니 입에 발린 멘트는 성공한 걸로 보인다.

태범은 캐서린의 부모님과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사실상 캐서린에 그냥 남자 친구보다는 남편의 자격으로 있었고 캐서린의 부모는 태범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했다.

식사동안 태범에 대한 이야기가 식탁 위를 오가더니 이제 캐서린의 부모는 스캐너에 대한 비밀을 빼고는 태범의 모든 걸 알게 되었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요. 바로 나가는 거예요?”

식사를 마친 태범과 캐서린은 외투를 챙겨 입으며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 당장 스낵 피쳐의 CEO 친구들과 투자와 관련된 미팅이 잡혀있었다.

* * *

스낵 피쳐의 사무실에는 캐서린과 마찬가지로 공동 CEO인 앤드류와 마크 하인버그 외에 또 다른 직원 3명이 있었다.

이제 나름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기업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오! 태범, 또 와주셨네요.”

앤드류와 마크 하인버그는 태범을 반갑게 맞이해줬다.

태범이 이곳에 온 이유를 모두 알고 있는 이들로서 태범의 방문은 무엇보다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수염을 멋지게 길렀네요?”

태범은 앤드류와 멋진 노란 수염을 보고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하. 요즘 수염 깎을 시간도 없이 일해서요.”

“안 깎는 게 더 멋있는 거 같은데요?”

“그래요? 캐서린은 볼 때마다 거지 같다며 깎으라는데..”

태범의 칭찬에 앤드류는 수염을 만지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정리되지 않은 머리, 피곤해 보이는 표정, 간편한 옷차림.

이렇게 다시 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모습에 지금까지의 고생이 보이고 있었다.

누가 보면 게으름의 상징으로 보이는 모습일 수도 있지만 태범이 보기에는 그들이 정말 일에 인생을 바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일에만 몰입하기 위해 매일 같은 옷인 검정색 터틀넥을 입고 수영의 황제 펠프스는 오늘 날짜와 요일을 모를 정도로 수영만 한다니 안 깎은 수염쯤이야 이들에 비하면 약과였다.

“자자. 이제 투자 이야기 좀 해볼까요?”

간단한 인사와 잡담이 끝나고 태범은 서류 가방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스낵 피쳐의 CEO들은 태범을 회의실로 안내하며 사각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기업 상황 좀 보여주실래요?”

“네!”

미리 태범에게 전달해 들은 스낵 피처 CEO들은 기업 평가서를 준비했었다.

투자하기 전 현재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건 필수적인 일이었다.

캐서린에게 들어 많은 정보를 알고는 있었지만 태범은 평가서를 통해 세세하고 확실한 자료를 요구했었다.

마크 하인버그가 두꺼운 서류철 여러 개를 꺼내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서류에는 현재 재무 상황, 서비스 진행 상황, 차후 계획 등 기업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었으며 태범이 요구한 자료가 준비돼있었다.

“보시다시피 이용자 수가 첫 달에는 2배 그 다음 달에는 약 4배가 되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확실히 SNS라 그런지 학생층 이용자가 많네요.”

서류에는 이용자 수에 대한 그래프가 나타나 있었다. 하늘을 찌르듯 그래프 위의 선은 위로 향하고 있었다.

SNS 사업은 무엇보다 중요한 게 이용자 수였다.

기본적으로 고객이 있어야만, 이를 토대로 수익을 창출하든 뭔가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SNS 서비스에 이용자가 없다면 그건 그대로 망한 거랑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니 스낵 피쳐가 보여주는 이용자 증가율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태범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이어나갔다.

“일단 SNS의 서비스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기업의 목표는 수익창출에 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 좀 듣고 싶네요.”

서비스 개시 이후 이용자가 계속 증가한다는 점에서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은 확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수익 창출 시스템에 있었다.

기업은 자선 단체가 아니다. 사용자가 많든 적든 수익이 창출되어야만 기업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었고 태범은 이에 대한 CEO의 계획을 알고 싶었다.

태범의 질문에 하인버그 옆에 있던 앤드류가 서류를 휘리릭 넘기더니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투자를 받게 된다면 이렇게 광고 삽입을 할 계획입니다. 사용자가 SNS를 이용하는 데 불편을 못 느끼게끔 자연스럽게 말이죠.”

SNS하면 대부분 수익은 광고에서 나왔다.

요즘은 많은 사용자를 장점으로 이용해 게임이나 스트리밍과 같은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SNS도 많긴 하나 핵심은 광고에 있을 만큼 비중이 컸다.

스낵 피처의 경영진들도 마찬가지로 광고를 수익의 핵심 카드로 꺼내 들은 것이다.

“맞춤 광고를 하려면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할 텐데 스낵 피처는 고객의 데이터를 남기지 않는 프라이버시를 중점으로 내세운 SNS 아닙니까? 그건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인지.”

“사용자가 공개하는 정보에 한해서 데이터를 취합해 이용할 생각입니다. 추가적인 기술적인 문제는 고려에 있습니다.”

투자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며 단 한마디의 농담도 없이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서로를 보던 때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였다.

태범은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고 스낵 피처의 CEO들은 이를 막아 내기 위해 대답을 해야만 했다.

특히 태범의 기술적인 질문에 있어서 CEO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태범이 스캐너의 능력으로 쌓아 올린 지식은 엄청났고 여기서 쏟아지는 질문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여자 친구인 캐서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만큼은 여자 친구가 아닌 투자 대상기업의 CEO로서 태범과 마주한 것이니 말이다.

태범의 난이도 있는 질문 폭격에 스낵 피처의 CEO들은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더니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답변하지 못하신 거는 다시 한 번 깊게 생각 좀 해주시고 나중에 답변을 주세요.”

“네…….”

완전 기가 죽었다. 아마 지금쯤 이들은 이번 투자는 글렀다며 자포자기 심정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태범의 생각은 달랐다.

질문은 이들을 비난하고자 한 게 아닌 스낵 피처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일들을 투자라는 명목 하에 넌지시 알려준 것이었다.

문제를 많이 인지할수록 본인의 뭘 고쳐야 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되는 것 법이었다.

한동안 질문 포격으로 스낵 피처의 CEO들을 기를 죽인 태범은 이 한마디로 분위기를 역전 시켰다.

“정말 이대로만 해주신다면 SNS 시장에서 대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태범은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오히려 스낵 피쳐의 CEO가 태범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기업의 미래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네? 아!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CEO들은 당황하면서도 어리둥절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처럼 CEO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태범이었다.

“그럼 투자 금액이랑 지분에 관해서 이야기 좀 나눠 볼까요?”

투자에 가까워지자 CEO들의 어두웠던 표정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건 투자 금액과 지분에 대한 협상이었다.

태범은 하인버그가 건넨 가치 평가서를 살펴봤다.

평가 금액 1,660만 파운드, 한화로 따지면 250억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기업에 들어간 순수 자본은 50억이었고, 나머지는 200억은 기업이 창출한 가치를 말했다.

태범은 잠시 아무말없이 평가서를 보며 머릿속으로 계산에 나섰다.

회계사와 투자자로써 기업의 가치를 수없이 평가해봤던 태범에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태범이 생각하는 동안 협상 테이블 위는 잠시 침묵에 휩싸였고, 보이지 않은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태범이 헛기침을 내는 소리마저 CEO들에게는 위압적으로 들릴 정도의 분위기, 생각을 마친 태범은 말을 뱉으며 정적을 깼다.

“그럼 지분 100% 기준 스낵 피쳐의 기업가치 1,660만 파운드(약 250억)로 평가해서, 그중 500만 파운드(74억) 투자해드리겠습니다 지분은 30%입니다.”

“오…… 오백만 파운드요?”

태범의 말에 3명의 CEO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예상 투자금액보다 많은 걸로 보였다.

“네, 500만 파운드 30%.”

지금까지 가장 큰 투자 금액이자 학교 외부에서 얻은 최초의 투자였다.

이것이야말로 스낵 피쳐 역사에 한 페이지를 남기는 순간이었다.

* * *

사무실에서 나온 캐서린은 다시 스낵 피쳐의 CEO에서 태범의 여자 친구로 돌아왔다.

둘은 캐서린의 학교인 런던 대학의 캠퍼스를 거닐며 이야기를 나눴다.

“어때? 마음에 들었어?”

해맑게 묻는 캐서린의 표정은 마치 마음속 모든 진실을 내놓으라는 듯 협박을 하는 것만 같았다. 태범은 모든 걸 말했다.

“굿. 아주 좋았어. 많이 준비했던데?”

“정말? 그랬어? 여자 친구 회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솔직히 말해봐.”

“수익 창출에 대해서 좀 더 획기적인 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어.”

태범의 투자 결정에 기분이 좋은지, 캐서린은 태범의 팔을 감싸며 찹쌀떡처럼 찰싹 붙었다.

평소 밖에서 애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캐서린의 모습과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는 기쁜 감정을 감출 수 없는지 입꼬리가 아주 귀에 걸려있었다.

“이 학교는 언제 봐도 멋지다.”

태범과 캐서린은 캠퍼스 잔디밭 위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태범이 앉아있는 벤치를 중심으로 현대식 건물과 중세시대의 성을 보는듯한 건물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캐서린, 혹시 존 스미스 교수님이랑 연락돼?”

“응? 갑자기 교수님은 왜?”

“연락되면 약속 좀 잡아줘. 뭐 좀 묻고 싶어서 그래.”

캠퍼스의 풍경을 감상하던 도중 태범은 한 가지 부탁을 요청했다.

태범과 존 스미스 교수와 만남이라 해봤자 우연히 두 번 스친 것뿐인데, 갑작스런 부탁에 캐서린은 의아해했다.

“연락을 할 수 있긴 한데, 뭐 때문인지는 알아야 교수님도 만나 줄 것 같은데.”

“내가 개발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거든 혹시 교수님과 협업이 가능한지 묻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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