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05화 (105/188)

# 105

“대표님이 저한테 준 그림에 오백을 부르던데요.”

“누가요?”

“사실 인터넷에 올렸거든요. 미술 수집하는 분 갔던데 한 번에 오백을 부르더라고요. 시작부터 그렇게 크게 부를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오백이라…….”

“죄송합니다, 대표님. 그림 정도면 충분히 그 이상의 가치가 있겠죠.”

태범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취하니 김태식은 화들짝 놀라며 사과를 하고 있다.

태범이 ‘겨우 그것 밖에 안 돼?’ 라고 생각하는 줄 아나 보다. 그게 아닌데 말이다.

그런 오해하는 태식에게 태범은 미소를 짓고 손바닥을 흔들며 잘못된 생각을 일러주었다.

“아니에요. 저도 놀라워서 그래요. 제 그림이 그 가격에 제시가 오다니.”

“대표님 그림 정도면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아뇨, 제 앞이라고 너무 안 그러셔도 돼요. 솔직히 놀랄만한 일인데요? 제가 그렸던 그 그림들 다 습작이었거든요.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붓질을 한 건데요.”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며 목적의식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 그저 몰입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낙서하듯 휘날린 것뿐이었다.

하지만 오백이라고? 낙서 하나에?

태범도 본인 그림의 가치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팔고 싶으면 파셔도 돼요.”

“에이 대표님이 선물 주신 걸 어떻게 팔아요. 그냥 궁금해서 올려본 거였어요.”

태식은 다시 한번 태범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판매할 생각이 있었으니 글을 올렸겠지 정말 가격이 궁금해서 올린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약속은 약속이고 이미 준 선물이니 태식이 그 그림을 가지고 팔아먹든 땔감으로 쓰든 전혀 상관없었다.

“눈치 보시지 마시고 정말 마음대로 하셔도 돼요. 저한테 너무 예의 차릴 필요는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아니다. 이참에 제 것도 가져가서 다 팔아줄 수 있어요? 수수료 두둑이 챙겨드릴게요.”

“네? 정말로 팔게요?”

“가지고 있어봤자 뭐해요. 자리 차지만 하는데.”

“아니, 그래도…….”

“이제부터 태식 씨가 제 작품 중개인이 된 거예요. 알겠죠?”

장난치듯 나온 말로 시작해 김태식은 얼떨떨하게 태범의 작품 중개인이 돼버렸다.

세상일은 그 누구도 모르는 거였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만드는 나비효과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게 얼마나 커질지 말이다.

항상 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 * *

다음 투자 회사는 태범의 여자 친구가 CEO로 있는 스낵 피쳐(snack picture)였다.

생각할수록 캐서린의 스낵 피쳐(snack picture)를 보고만 있기에는 아쉬운 기업이었다.

만약 누가 채가기라도 하면 배가 아파 잠을 못 이룰 것만 같았다.

태범의 눈에는 스낵 피쳐가 완전한 유망성을 갖춘 기업이었고 분명 성공할 게 눈에 보였다. 꼭 투자를 하고 싶었다.

지금 운용하고 있는 TB 샛별 펀드를 통해 투자를 한다면 딱 적합할 텐데 말이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태범과 캐서린은 연인 관계라는 이해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투자자로 하여금 오해를 받을 수가 있어 조심해야 했다.

게다가 해외 신생 기업이라니,

그러니 사모 펀드 투자자들에게 모든 이해관계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투자를 투명하게 해야만 했다.

태범은 투자자들에게 서한을 보내거나 연락을 통해 투자에 대한 진행상황을 알렸다.

다행이도 태범과 반대의견을 보이는 투자자는 없었다. 모두가 태범의 능력을 신뢰하고 투자하는 것이기에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애써 마음속에 접어두고 있는 걸로 보였다.

투자자들의 긍정적 반응은 태범에게 추진력을 더하고 있었다.

* * *

잠들기 직전 침대에 누워 캐서린과의 통화는 태범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물론 둘 다 애정 표현을 과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최근 관심사가 비슷해지면서 대화가 즐거워졌다.

태범과 캐서린 둘 모두 기업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 서 있고, 모두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때문에, 대화의 첫 시작은 항상 사업 이야기였다.

“캐서린! 좋은 소식이야.”

“왜 무슨 일인데?”

“맞춰봐.”

“뭔데 말해줘.”

“힌트, 사업적인 이야기야.”

“투자 대박이라도 난 거야?”

태범은 캐서린에게 기대감을 주기 위해 장난스럽게 뜸을 들이며 이야기했다.

캐서린이 좋아할 거 생각하니 태범이 역시 기분이 좋았다.

“아니, 그건 아니고 우리 둘 다 좋은 일이야.”

“우리 둘 다?”

“생각해봐. 우리 둘 다 좋은 일은 뭐가 있겠어?”

“설마…… 결혼하자고?”

캐서린의 엉뚱한 대답에 태범은 코를 킁킁거리며 웃음을 내뱉었다.

“설마 내가 전화로 프러포즈 하겠어? 그런 거 아니야.”

“아! 그럼 도대체 뭔데!”

더 이상 장난치다가 캐서린의 화를 돋을 것 같다. 태범은 사실대로 털어놨다.

“내가 스낵 피쳐에 투자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정말이야?”

“이번에 내가 운용하는 사모 펀드 자금으로 투자될 거야.”

“장난치는 거 아니지?”

혹시 장난이 아닐까 캐서린은 다시 한번 내게 물었다.

캐서린에게 있어서 믿기 힘든 갑작스러운 소식이니 말이다.

“진짜니까 다른 친구들한테도 말해 봐. 앤드류랑 마크 하인 버그는 잘 있지?”

“애들은 잘 있지. 모두 태범 씨 좋아할 거야. 게다가 투자까지 해준다는데. 아마 애들이 태범 씨보면 뽀뽀라도 해줄 것 같은데?”

“진짜 뽀뽀하면 투자 취소다. 그냥 일만 열심히 하라고 해. 내가 원하는 건 그게 다니까.”

“흐흐. 알았어.”

캐서린의 밝은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녀의 환한 미소가 여기까지 보이는 듯했다.

지금껏 투자처를 구하느라 고생을 하던 거로 알고 있었다.

아직 수익 구조가 설계되지 않은 스낵 피처에 투자를 하려는 인물은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조만간 영국에 갈 거야.”

“정말?”

“여기 일 마무리 되는 대로 갈 거야.”

“결국 이번에도 태범 씨가 오네. 내가 한국에 가야 하는데.”

“그건 일 잘될 때 오면 되는 거고, 아마 그때쯤 되면 세계적인 CEO가 돼서 오겠지.”

“세계적인 CEO? 태범 씨가 아니면 내가?”

“우리 둘 다.”

태범은 미래를 장밋빛으로 보고 있었다.

스캔한 인물의 능력대로 따라만 간다면, 그 어떤 장애물과 어두운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 * *

영국으로 떠나기 전, 태범이 직원들에게 할 일을 일러주었다.

직원들이 몇몇 있긴 하나, 여전히 회사는 태범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지시를 중심으로 움직였기에 태범의 빈자리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말 머리가 두 개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는 회사에 두고 하나는 밖으로 돌아다니고 말이다.

지금껏 이런 생각을 해본 게 몇 번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언젠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안은 구상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영국으로 가기 전날, 태범은 본집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오는 집이었다.

“이번에도 영국에 갔다 온다고? 너만 너무 자주 가는 거는 아니지 않니?”

“그게 아니라 일 때문에 가는 거야.”

어머니는 태범이 캐서린을 만나러 가는 줄만 아는가 보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지만, 사적인 일로 가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태범만 영국으로 가는 걸 어머니는 영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애들끼리 알아서 하겠지. 그런 거 너무 신경 쓰지 마. 요즘 신세대 애들은 시부모님이 간섭하는 거 싫어하잖아.”

그런 모습을 본 아버지는 소파에 누워 발을 꼼지락거리며 어머니의 말에 반박했다.

“당신이나 잘하세요.”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노려보며 한마디 툭 던지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아버지는 더 이상 어머니에게 아무 말 하지 못하고 태범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씨월드? 시월드? 그런 말 있던데. 요즘 젊은 여자들은 우리 때랑 달라서 네 엄마 같은 소리 했다가 큰코다치지…… 안 그러냐 태범아?”

“아빠가 그런 말은 어떻게 알아?”

“아빠도 컴퓨터하면서 이제 알 건 다 알아.”

태범이 투자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아버지 역시 투자에 관심이 많아진 상황이었다.

평소 안 봤던 경제, 금융 뉴스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까지 찾아보시고 실제 주식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기도 했다.

물론 태범의 힘이 컸지만 어쨌든 마지막 판단은 아버지가 하는 것이기에 지금은 거의 전업 투자자가 다 돼 있었다.

태범이 아버지의 직업을 바꾼 셈이었다.

“태범아, 아버지 친구들도 네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

“아직 사모 펀드밖에 없어서 투자하기가 힘들 거야. 아니면 회사에 연락한 번 해보라 해. 우리 직원이 답해줄 거니까.”

“조그마한 펀드는 아직 없는 거지?”

“응, 지금 일로도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서 회사 규모가 커지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아니야.”

아버지는 아들 자랑을 동네방네하고 다녔다.

아마 아버지 친구 중에 태범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태범은 아버지의 자랑거리였다.

“내일 일찍 가야하니까. 전 먼저 잘게요.”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에 태범은 옛 자신의 방에서 일찍 잠을 취했다.

* * *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 지금까지 두 번째 비행이었다.

벌써부터 한국에 놓인 회사가 걱정되는 게 확실히 이전과는 달랐다.

저번 영국행은 그저 머리를 비우고 여행의 느낌으로 왔다면, 지금은 머릿속에 풀어야 할 숙제로 가득했고 이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존 스미스 교수를 만났었지.’

이론 컴퓨터의 대가이자 천재 수학자 그리고 태범에게 수학적 가르침(?)을 받은 남자.

영국행 비행기를 타니 옆자리에 앉았었던 존 스미스 교수가 생각났다.

지금은 그 자리에 아리따운 여성 한 명이 앉아 있다. 향수인지 샴푸 냄새인지 꽃 향이 코를 자극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태범은 꽃 향을 맡으며 그 당시 재밌었던 에피소드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리고 한국에 두고 온 회사에 대한 생각 그리고 영국행 비행기에서 있었던 사건. 두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그러고 보니 나 대신 컴퓨터가 일을 해주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두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았다.

‘컴퓨터’와 ‘회사’ 라는 키워드가 머릿속에서 겹쳐진 것이다.

‘그때처럼 투자 알고리즘만 짤 수 있으면 되는 게 아닌가?’

과거 태범이 폰 노이만의 능력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ERP 프로그램 회사에 자산 관리에 대한 알고리즘을 3천만 원에 판매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고객들의 자산을 점검해주는 자동화의 일종이었는데 그렇게 수준 높은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태범이 현재 지닌 프로그래밍 실력은 그때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을 이뤄낸 상태였다.

그때 만들었던 알고리즘을 현재 다시 설계한다면 더욱 고난이도의 작업을 통해 완성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억과 생각들이 태범에게 새로운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생각하는 과정을 컴퓨터로 알고리즘화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태범의 부재를 대신 할 수 있는 그런 컴퓨터를 말이다.

‘자동화…… 인공 지능…….’

한 단계 더 수준을 높이자면 인공 지능 분야까지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곧 생각의 절차를 말하는데 고도화된 인공 지능이 탄생한다면 태범이 걱정하고 있는 능력의 배분이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태범은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가슴속에 하나씩 담아뒀다.

상상하는 그 어떤 것이든 행동으로 옮긴다면 실현 가능할 거라 믿었다.

그들의 능력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우리 비행기는 곧 런던 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착륙 안내 방송이 들려오고 태범은 붙이고 있던 눈꺼풀을 떼어냈다.

생각과 잠을 반복하며 비행만 12시간 드디어 영국에 도착했다.

입국장 저 멀리서 태범을 기다리던 캐서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곧 캐서린의 우렁찬 목소리가 공항을 전체를 울렸다.

“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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