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03화 (103/188)

# 103

태범과 효준은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태범이 들려주는 백 여사와의 스토리는 효준의 흥미를 사는 데 충분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말도 마. 첫 만남부터 눈빛이 이상하더니…… 이거 나한테 몸을 팔라는 거랑 마찬가지 아니야?”

“와. 어떻게 아들뻘한테 그러냐? 미친 거 아니야? 그 아줌마 많이 외롭나 봐?”

태범과 백 여사의 나이 차이만 무려 20살이다. 아무리 사랑에 장벽이 없다고 한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들이대다니 황당한 일이었다.

게다가 대놓고 돈과 힘으로 유혹을 하니 어디 노예 시장에서 노예를 사려는 줄 알았다.

효준도 이 황당한 사건이 어이가 없는지 백 여사를 향해 욕을 날렸다.

“그래서 말인데 아쉽지만 이번 백 여사한테 투자는 물 건너간 것 같아. 형은 만나본다는 사람 어떻게 됐어?”

백 여사의 투자는 물 건너갔으니 다음으로 기대해볼 만한 것이 효준의 인맥이었다.

효준이 태어날 때부터 부르던 삼촌, 아빠 친구들이 지금은 굵직한 기업의 대표라던가 말 한마디에 나라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인들이니 말이다.

금수저의 인맥은 어떠할지 태범은 효준에게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한테 연락은 하고 있긴 한 데 아직 반응이 없네. 아무래도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아.”

아쉽게도 아직 효준 역시 좋은 소식은 없는 듯 보였다.

“흠……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데…….”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태범은 본인이 가진 능력을 고객들에게 최대한 어필을 하려 하지만 사모 펀드처럼 억 단위가 움직이는 투자에는 웬만한 믿음을 가지지 않는 이상 힘들어 보였다.

이대로 사모 펀드는 난항을 겪을 줄 알았다.

* * *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법.

백 여사와 사건이 있고 이틀이 지난날, 예상치도 못한 사람이 TB 자산 운용에 찾아왔다.

“대표님, 손님 왔습니다.”

“손님이요? 누군데요?”

태범은 대표실에서 윤희성에게 일대일 투자 과외를 해주고 있었다.

직원들의 교육은 모두 태범의 몫이었고 본인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직원들에게 분산시켜 일을 배당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선생질을 하던 도중, 재무팀의 김윤주가 손님의 방문을 알린 것이다.

“백 여사라고 하던데요.”

“백 여사요?”

김윤주의 입에서 나온 손님의 이름에 태범을 자동으로 자리에서 기립하게 만들었다.

이에 태범과 마주 보고 앉아있던 윤희성은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나며 테이블 위 책을 정리하며 자리를 뜨려하고 있다.

“네, 대표님을 꼭 봐야 한다면서 어떤 남자분하고 같이 오셨는데요.”

남자 분이라 하면 백 여사의 손발인 윤우열일 것이고…… 일단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말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설마 여기서 까지 와서 깽판을 치려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태범은 백 여사 일행을 불러들였고, 정말 백 여사가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전히 명품과 보석으로 치장된 모습에 직원들은 곁눈질로 대표실에 들어오는 그녀를 신기하듯 바라봤다.

대표실의 문이 닫히고 태범 그리고 백 여사와 우열이 서로 마주 보고 섰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대표실은 이미 사늘한 분위기로 당장 싸움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느낌이었다.

“여기 앉으시죠.”

인사를 나누기에는 껄끄러운 사이에 태범은 자리를 권했고, 백 여사와 우열은 태범을 마주 보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갑자기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거죠?”

“태범 씨, 아직도 같은 생각이에요?”

태범에게 기회를 다시 주려는 건지, 백 여사는 턱을 치켜세우며 도도한 말투로 다시 한번 물었다.

그녀의 뻔뻔함에 태범은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단지 그때는 술에 취해서 감정이 좀 솔직해진 게 아니었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평소 그대로였다.

태범은 백 여사 면전 앞에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백 여사님은 오직 투자자뿐입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이런 분위기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호호호.”

백 여사…… 정말 미친 것인지 태범의 진지한 대답에 갑자기 웃음을 내뱉었다.

그녀의 웃음에 태범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어서 나온 백 여사의 말에 재빨리 미간 주름을 폈다.

“그래요. 투자할게요.”

“펀드에 투자하신다고요?”

“태범 씨 정도면 마음 놓고 맡겨도 되겠네요. 호호.”

백 여사의 태도가 갑자기 360도 바뀌었다. 오늘 대화가 바(bar)에서 있었던 싸움의 연장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설마 백 여사가 사과라도 하려고 온 건가. 태범은 이제야 백 여사의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정말 투자하실 생각입니까?”

태범이 묻자 백 여사는 의미심장한 옅은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그럼요. 투자해야죠.”

다시 한 번 백 여사의 확답을 들은 태범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일이 도통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으나 중요한 건 투자자를 구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찾아 헤매던 사모 펀드 투자자 말이다.

“갑자기 생각이 바뀌신 이유가 뭔지 알고 싶습니다.”

“내가 좀 미안한 짓을 했네요. 사실은 말이죠.”

백 여사는 미소를 멈추지 않고, 답을 이어나갔다.

“태범 씨를 테스트해본 거였어요. 미안해요.”

백 여사의 대답에 태범은 눈이 번쩍 떠졌다. 테스트?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죠. 테스트라뇨?”

“사실 태범 씨에게 정말 돈을 맡길 수 있을까 제 나름의 테스트를 해본 거였어요. 지금까지 짓궂게 군건 미안해요.”

알고 보니 이 모든 게 백 여사에 의해 꾸며진 일들이었다. 그녀만의 투자를 위한 기술이었던 셈이었다.

“확인이 필요했거든요. 펀드를 운영하는 사람 중에는 사기꾼도 많고, 가장 중요한 투자자의 자질을 보고 싶어서 그랬던 거였어요.”

“어떤 자질을 말하는 거죠?”

“저희는 유혹과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냉철한 사람을 원했거든요. 태범 씨에게 그런 면이 보였고요.”

태범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뒤통수를 망치로 강하게 얻어맞은 기분. 아프기보다는 묘한 전율이 몸을 타고 흘렀다.

“거액을 투자하는데 이 정도는 이해해주실 거죠?”

백 여사는 정중한 말투로 태범에게 양해를 구했다. 지금까지 심술궂은 아줌마로 보였지만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매너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여사님도 참 대단하시네요.”

당황스러우면서 재밌는 이 상황에 태범은 실소를 하며 답했고 백 여사는 소파에 일어났다.

“모든 오해를 풀었으니 이제 투자 이야기를 해보죠. 저보다는 우열 실장이 투자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시죠.”

“가시려고요?”

“네, 전 이만 가볼게요. 저 대신 실장과 논의하세요.”

짧은 시간 동안 백 여사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자리를 떠났다.

태범도 예상하지 못한 대반전이었다. 정말 지금까지 테스트를 위한 연기였다면 백 여사는 연기자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백 여사가 떠나고 우열은 백 여사가 앉았던 자리로 옮겨 앉았다.

그렇게 마주 보고 앉은 우열을 바라보는 태범은 웃음에 가까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재밌네요, 백 여사님. 보통 분이 아니신데요?”

“지금까지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백 여사님은 확실한 투자를 원했던 겁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가 한 수 배운 것 같은데요. 뭐.”

“백 여사님이 평소 태범 대표님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어떻게 알고…….”

“이미 금융가에서는 유명하시지 않습니까? 웬만한 소식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표님을 알 텐데요.”

“그렇긴 하죠.”

백 여사는 앨론 뮤직의 임호진 대표의 연락을 받기 전부터 태범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정경계의 마당발답게 금융가에 퍼진 태범의 소문을 백 여사가 모를 일 없었고 태범의 능력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 사모 펀드와 관련하여 임호진의 소개가 있었고 투자를 위해 이번 일을 계획했다고 한다.

모든 설명을 마치고 윤우열을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그럼 투자 이야기를 시작해보죠.”

* * *

대박이다. 백 여사는 20억을 태범의 사모 펀드에 투자했다.

게다가 백 여사의 시작으로 금융계의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 여사가 움직이니 여러 법인과 개인이 관심을 가졌고 투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막혀있던 물꼬를 튼 셈이었다.

생각보다 백 여사의 영향력은 경제계에서 중요한 네트워크 역할을 하고 있었다.

80년대 까지만 해도 백 여사의 아버지 백규환의 손을 빌리지 않은 경영인이 없을 정도였고, 그로 인한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태범은 거물을 문 것이었다.

“이제 많이 바빠질 겁니다. 좀 힘들더라도 수고 좀 해주세요.”

“세 명이서 800억이라니…… 긴장되는데요.”

태범 일당이 운용할 펀드는 투자 인원 40명, 총 800억을 움직이는 사모 펀드였다.

같이 일하게 된 펀드매니저들은 시작하기도 전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태범은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줄 필요가 있었다.

“절대 실패할 일은 없을 겁니다. 저만 잘 따라와 주시면 분명 성공할 겁니다. 모든 건 제가 책임질 테니 긴장하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첫 펀드인 TB 샛별 펀드의 성공을 위해서 다들 파이팅 합시다!”

투자자들이 모이고 태범과 직원들은 사모 펀드의 시작을 알렸다.

사모 펀드의 이름은 ‘TB 샛별 펀드’였다.

샛별처럼 미래에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기업을 잡아내자는 의미로 TB 자산 운용의 펀드 매니저 3명이 논의하며 결정한 이름이었다.

* * *

[공격적 투기를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99%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100% 진행되었습니다.]

조지 소로스의 공격적 투기를 100% 스캔할 때였다.

항상 마찬가지로 100%를 스캔하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온몸을 감싸는 고통을 맞닥뜨렸다.

혈관 속을 뾰족한 가시가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감전에 가까운 고통은 언제 느껴도 적응되지 않았다.

항상 입에서는 신음이 내뱉어지고 몸을 주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능력을 얻으면서 이 정도 고통에 불만을 갖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오로지 노력으로 이 능력을 갖으려 한다면 얼마나 오랜 시간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태범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거쳐 하나의 능력도 얻기 힘든 데 이 정도 고통쯤이야 아프고 힘들지만 불만은 전혀 없었다.

[조지 소로스 능력]-공격적 투기(100%)

[레오나르도 다빈치 능력]-미술 감각(100%)-창의성(100%)

[워렌버핏 능력]-시장 통찰력(100%)-기업 분석력(100%)-도전 정신(100%)

[폰 노이만 능력]-수리 이해력(100%)-언어 이해력(100%)-암기력(100%)

[이소룡 능력]-힘(100%)-유연성(100%)

총 5인의 인물의 능력이 태범에게 스캔 된 상황, 스캐너를 얻은 지 2년쯤 돼가는 시간이었다.

분명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많은 일이 태범의 기억 속에 담겨 있었다.

침대에 엎드려 고통의 몸부림을 치며 서서히 통증이 가실 때쯤 태범은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컴퓨터를 끄려는데 평소와는 다른 창 하나가 모니터에 나타났다.

“뭐지?”

[일정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새로운 능력 창이 열렸습니다.]

[‘지식’ 이 생성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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