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02화 (102/188)

# 102

[공격적 투기를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90%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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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이 91% 진행되었습니다.]

공격적 투기가 진행될수록 강한 배팅 욕구가 온몸에 솟구쳤다.

결과를 원하기보다는 투자 그리고 투기 그 자체의 행위가 좋아지고 있었다.

태범에게는 돈을 버는 행위는 보드 게임 중 하나인 브루마블을 하는 것처럼 재밌는 놀이와도 같았다.

돈을 버는 상상을 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기분이 고양됐다.

이런 능력 탓에 하루라도 빨리 사모 펀드를 운용하고 싶지만 아쉽지만 아직 투자자가 모이지 않았다.

투자, 투기 욕구를 잠재우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고 태범은 그 욕구를 잠재우기 위해 그림을 그리곤 했다.

각 능력이 너무도 강력하다 보니 한쪽만 사용하다 보면 그쪽으로 몰입되는 경우가 강했다.

몰입의 균형을 위해 각 능력도 나름 균형 있게 사용하려 노력했다.

‘이걸 어디에 쓸까…….’

어느새 자취방에도 태범의 수많은 그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워낙 작품을 만들어내는 시간이 빠르다 보니 작품을 둘 곳이 없을 정도로 방을 가득 채운 것이다.

어디 가서 전시회를 열어도 무색할 정도로 많은 양의 작품이 있었다.

태범은 이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을 하다가 생각이 떠올랐다.

* * *

“어때요? 가운데 맞아요?”

“좀만 왼쪽으로 더 가야 할 것 같아요.”

태범은 의자를 밟고는 회사에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로비 벽에 본인의 미술 작품을 걸고 있었다.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은 보물섬 탐험에 나서는 배 위의 선원들 모습이었다.

이는 태범의 회사를 빗댄 그림이었고 보물을 찾아 나서는 선원들처럼 태범과 TB 직원들은 투자를 해 나간다는 걸 의미했다.

“네! 딱 맞습니다.”

“와. 그럼 멋집니다. 분위기가 확 사는 데요?”

재무팀 직원인 김윤주와 펀드 매니저 김태식이 태범의 그림을 보며 극찬을 했다.

아부 반, 진심 반이 섞인 멘트였다.

“맘에 드시면 그림 하나씩 드릴게요. 안 그래도 어떻게 직원들 나눠 주려고 사무실에 가져다 놨거든요.”

“정말? 저런 그림을요?”

“시간 날 때 가끔 그리곤 했는데 어느새 집안을 가득 채워버렸네요. 그래서 그냥 버릴까도 생각했거든요. 하하.”

태범은 본인의 작품을 직원들에게 나눠 줄 작정으로 회사에 가져왔다.

게다가 회사 사무실 내 벽면은 미술 전시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태범의 그림으로 차 있었다.

굳이 사무실 인테리어가 필요 없을 정도였으니 방구석에서 썩는 것보다는 효율적인 모습이었다.

“어우! 대표님 그림을 어떻게 버려요. 당장 경매에 내놔도 될 것 같은데요!”

김윤주는 탄식을 내뱉으며 태범의 말에 말도 안 된다며 아부를 떨었다. 김태식도 이에 질세라 한마디를 거드니 태범은 흡족한 표정으로 둘의 반응을 바라봤다.

“대표님, 그림으로 유명하시잖아요. 사람들도 대표님 그림들 보면 분명 좋아라 할 걸요? 진짜 잘만하면 팔릴 것 같은데요?”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실제로 다빈치의 그림 가격이 수천억 원에 경매로 팔리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역사성이나 이름에 대한 프리미엄이 붙어서 비싼 금액을 나타내는 것이겠지만 다빈치의 능력을 가진 태범의 작품 역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한 번 팔아 봐요. 팔아서 돈으로 가져오면 내가 절반 드릴 테니까요.”

태범은 직원들의 아부를 반 장난으로 받아줬다.

어차피 그림이야 넘쳐 쌓일 지경이었고 대부분 습작으로 그린 그림이라 어찌 돼 든 상관은 없었다.

그저 장난으로 말한 말이었지만 직원들의 표정은 진지한 게 비장에 치 있었다.

‘설마 진짜 팔러 다니는 건 아니겠지’

* * *

“정말 혼자 가셔도 돼요?”

“같이 가서 이야기하면 좋을 텐데 또 가봤자 심심하게 대기만 할 것 같아서요. 그때도 아무것도 못 하고 괜히 저 때문에 운전기사 역할만 했잖아요.”

“운전기사면 어때요. 혹시 아나요? 나쁜 놈들이 대표님을 노릴지도…….”

“하하. 누가 절 노린다고 그래요. 그런 사람 있으면 오라고 하세요. 제가 때려눕힐까.”

태범을 충복처럼 따르려는 윤희성은 백 여사와의 두 번째 만남 약속에 운전기사를 자처하고 있었다.

하지만 데리고 가봤자 저번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대기만 하다 올 게 분명했다.

태범은 투자 이론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미팅 자리가 있으면 희성과 함께 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백 여사는 일대일로 대화하는 걸 선호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태범은 홀로 회사 차량을 몰고 백 여사와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는 잠실에 위치한 태범의 사무실에서 약간 떨어진 강남역 근처였다.

“여기가 맞나?”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도착한 장소에서 태범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단 백 여사 측에서 알려준 주소로 왔긴 했는데, 그 주소의 건물에는 모두 바, 술집 등의 가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불타는 금요일답게 많은 사람들로 골목은 북적거리고 있었다. 특히 창밖에 보이는 커플들을 보자니 캐서린이 그리워지는 밤이었다.

“네, 알려주신 주소로 왔는데요. 어디로 가면 되는 거죠?”

태범은 다시 한번 약속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백 여사 밑에서 일하는 윤우열에게 연락을 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올라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윤우열이 건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앞에 서 있는 우열은 마치 클럽 입구를 지키는 가드를 보는 듯했다.

그의 험악한 인상과 듬직한 체격은 여전했다.

“여기요!”

태범은 차량 창문을 열고는 얼굴을 내밀며 손을 흔들었다.

태범의 소리를 듣고선 윤우열이 다가왔다.

“차 여기에 두시고 나오세요. 여기 경비원이 파킹 해줄 겁니다.”

우열은 집게손가락을 까닥이며 건물 앞에 있던 건물 경비원을 불러냈다. 그러더니 말없이 턱으로 태범의 차 방향을 가리켰다.

우열의 지시에 경비원은 익숙한 듯 태범의 차를 주차하기 위해 차량에 올라탔다.

“여기도 백 여사님 건물인가 봐요?”

“원래 이 예전에는 이 일대가 백 여사님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이것 밖에 안 남았네요.”

차에서 내린 태범은 윤우열의 뒤를 따라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간판을 보니 바(BAR) 같은데 도대체 왜 여기서 만나자고 하는 건이 이해할 수 없었다.

술이라도 한잔하자는 건가, 백 여사는 도통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단 한명의 손님도 눈에 띄지 않았다.

밖에는 저리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데 어쩐 일인지 이곳은 손님 하나 없으니 의아한 상황이었다.

윤우열이 이끈 곳은 바의 정 중앙쯤에 있는 테이블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익숙한 실루엣이 앉아있었다.

특유의 올린 머리에 멀리서 봐도 부티 나는 액세서리로 치장하고 있는 여성, 누가 봐도 백 여사가 분명했다.

‘설마 오늘 이곳을 전세 낸 건가?’

그러고 보니 손님이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백 여사 재력 정도면 이 정도 술집 하나 통째로 빌리는 건 일도 아닐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 건물의 주인, 갓물주 아니겠는가.

“백 여사님, 안녕하세요. 또 뵙습니다.”

“왔어요? 앉아요.”

태범은 백 여사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백 여사는 천천히 태범을 올려다보며, 지그시 눈을 쳐다봤다.

이미 테이블 위에는 와인이 묻어 있는 잔이 올라와 있었고 아마 태범이 오기 전 술을 마신 듯 보였다.

영업을 위해서 술을 마시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이상한 눈빛을 보내는 이 아줌마와 단둘이 술을 마신다는 게 영 껄끄러웠다.

태범은 서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가볍게 최근 근황을 이야기하면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런 자리에서 서류를 펼쳐놓고 대화를 하기에는 분위기에 맞지는 않아 서류는 그냥 가방 속에 넣어 두고 오직 말로써 백 여사를 설득에 나섰다.

“대한민국에도 투자만 받으면 빛을 볼 기업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멀리 미국의 페이스북이나 중국의 알리바바 이런 기업 부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죠.”

“투자 이야기는 그만하고, 우리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 좀 나누죠.”

투자 이야기가 길어졌는지, 백 여사는 태범의 말을 자르더니 술을 권했다.

본인이 술 따라주겠다며 잔에 든 와인을 비우라며 고개를 까닥였다.

이쯤 돼서 태범은 백 여사가 내뿜는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챘다.

백 여사의 관심은 투자가 아닌 태범에게 있어 보였다.

벌써 노망이 난 걸까 아무리 그래도 아들뻘인데 설마 그러겠나 하는 생각에 태범은 애써 ‘아닐 거야’를 속으로 외쳤다.

태범은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자는 생각으로 권해준 와인을 원 샷으로 들이마셨다.

확실히 비싼 와인이라 목 넘김이 깔끔한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뭐 어떤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궁금한 거 있으신가요?”

“좋아하는 게 뭔지 그리고 평소 뭐 하고 지내는 지 그런 거 있잖아. 호호.”

“아…… 네, 저는 뭐 평소에도 일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딱히 할 말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럼…… 우리 태범 씨는 무슨 음식 좋아해요?”

“저는 고기면 뭐든 좋아합니다. 가리는 건 딱히 없거든요.”

술잔이 기울어질수록 백 여사의 눈빛이 그윽해지더니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태범 씨 같은 사람은 나랑 잘 맞을 텐데. 내 힘에 태범 씨 능력이면 대한민국에서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물론입니다. 제가 백 여사님이 지금 가지신 그 힘, 저랑 같이 일하신다면 제가 더 키워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혹시 나랑 만나볼 생각 있어요?”

“웁!”

정말 그 순간 입에 든 와인을 내뱉을 뻔했다.

긴장을 늦추고 있었다면 태범의 입에서 분수 쇼를 보게 됐을 것이다.

“태범 씨가 마음에 들어서 그래요. 남자답게 생겼고 내 스타일이야.”

“그게…….”

“나 만나면 내가 태범 씨 투자 도와줄 수 있어요. 알다시피 나 아는 사람 많아요?”

태범이 예상한 대로 오늘은 그저 투자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백 여사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태범은 짧은 시간에 머리를 굴리며 고민했다.

“여사님, 죄송하지만 전 펀드 매니저와 고객으로서 만나는 거라 개인적으로 만남을 갖는 건 좀 그렇습니다.”

태범의 말에 백 여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얼굴에 맞은 보톡스 덕인지 팔자 주름과 눈주름은 잘 보이지 않으나, 미간의 선명한 주름만큼은 백 여사의 지금 감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당신이 알만한 이름의 재벌들 소개시켜 줄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여의도 정치권에 넣어 줄 수도 있는 사람이야. 그래도 싫어요?”

“죄송합니다. 전 펀드사의 한 사람으로서 여사님과 만나고 싶습니다.”

“태범 씨가 운영하는 사모 펀드 투자자 다 구해준다니까? 세상에 이보다 쉬운 게 있어?”

백 여사의 입에서 슬슬 반말이 나오며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술 때문에 그런 건지 백 여사는 점점 이성을 잃어가며 격양된 모습이었다.

“죄송합니다. 제안은 감사하나 못 받아드리겠습니다.”

“아니, 원하는 거 해주겠다니까? 세상 좀 쉽게 살아가자고.”

“여사님, 취하신 것 같습니다. 대화는 다음에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래도 싫어? 여기 있는 돈 태범 씨 펀드에 다 넣어줄게.”

백 여사는 자신의 스마트 폰을 켜더니 통장 내역을 태범에게 보여줬다.

대충 0을 세어보니 100억이 넘는 금액이었다.

놀랄만한 금액이긴 한데 태범의 마음에는 전혀 미동도 가지 않았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저는 고객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난 고객이 아니니 적으로 등진 거야? 감당할 자신 있어?”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일에 있어서는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좀 더 냉철하게 대화를 나누자는 말입니다.”

“그게 그 말 아니야? 응?”

“여사님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은 안 합니다. 근데 이것만 알아주시죠. 전 고객들의 돈을 대신 불려주는 투자자이지 술집에서 일하는 비위 마쳐주며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태범도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태범은 백 여사의 기세에 전혀 눌리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말에 일일이 받아 쳐내며 대응했다.

“당신 빽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면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래?”

“백 여사님 잘 알고 있습니다. 혜명 그룹 창업자 백규환 전 회장 따님분 아니십니까?”

사채 왕 이야기를 꺼내려다 말았다.

백 여사가 평소 아버지가 사채 왕이라는 이야기를 싫어한다니 괜한 감정싸움이 커질까 차마 이 말은 입 밖으로 뱉을 수가 없었다.

“아무런 빽 없이 지금 나한테 이러는 거면 당신 큰 코 다쳐.”

백 여사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태범에게 손가락질했다.

빽이라면 없는 건 아니다. 태범에게는 그 누구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스캐너가 있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었다.

원하는 인물은 선택하면 하면 그들이 본인의 능력으로 들어오는데 그 어떤 게 두렵고 무섭겠는가.

태범은 그 자리를 벅차며 일어났다.

“백 여사님. 일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생각이 바뀌시면 연락을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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