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101화 (101/188)

# 101

백 여사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청담동에 위치한 한 6층짜리 건물이었다.

청담역이 근접해 있고 청담 사거리로 이어진 명품 거리 한가운데 위치해있었다.

1층부터 5층까지는 의류 매장이 입점해 있었고 6층은 아무래도 백 여사의 사무실로 쓰는 모양이었다.

괜히 건물주를 갓물주라고 부를까 한눈에 보이는 인근 건물의 명품관을 보면 거액의 임대료가 눈앞에 보였다.

그런 대단한 건물의 중 하나가 백 여사의 건물이라니 그녀의 부가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대표님, 저런 건물은 한 200~300억 정도 하겠죠?”

“아마도 그러겠죠. 평당 2억 이상은 될 테니까요.”

운전대를 잡은 희성과 옆자리에 앉은 태범은 주변 건물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직업병의 일종으로 눈에 보이는 것마다 모두 돈으로 보이는 게 결론은 투자 이야기로 흘러갔다.

“저런 건물이 10년 전만 해도 100억대였습니다. 만약 그때 저 건물을 샀으면 100억 이상은 벌었겠죠?”

“참……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돈 벌기 쉬운 것 같은데 막상 그때는 왜 몰랐던 거죠?”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게 기회 포착하고 일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하는 거예요. 조금만 늦어도 버스는 떠나죠.”

희성은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부러운 눈으로 건물주들을 생각하는 듯 말했다.

하지만 태범은 전혀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태범에게 시작은 지금이고 앞으로 눈앞에 보이는 저 값비싼 건물들 보다 더 좋고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있다는 게 태범의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차가 건물의 지하 주차장 입구에 들어설 때쯤, 경비원이 태범의 차량을 가로막았다.

문이 열린 틈으로 희성을 대신에 옆자리에 있던 태범이 대답했다.

“백 여사님 만나러 왔습니다.”

“어디서 오신 거죠?”

“TB 자산 운용의 강태범입니다.”

“아! 들어가시죠.”

주차장에 들어가는 것도 꽤 까다로웠다. 태범은 신원을 밝히고 나서야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주차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로 들어서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이곳 관계자가 태범에게 다가왔다.

태범이 사무실에서 봤던 그 사람이었다. 우락부락 무섭게 생긴 그 남자. 윤우열이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사무실이 바로 옆인데요 뭐.”

“여사님께서 많이 기대하고 계십니다.”

일단 첫 시작은 좋아 보였다. 백 여사도 태범을 관심 있게 바라보는 것 같았고, 일은 무난히 진행될 거라 생각했다.

“여사님을 만나는 데 유의사항이 있습니다.”

“유의사항이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도중 윤우열이 심각한 표정으로 백 여사와의 만남에서 유의할 사항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까다로운지 태범은 혀를 차고 싶었지만 꾹 참으로 우열의 말을 들었다.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예의를 곱게 차려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여사님이 거들먹거리거나 예의 없는 말투를 싫어하거든요.”

“아…… 당연히 첫 만남인데 예의를 차려야죠.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사채업과 관련해서 이야기는 안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여사님이 아버지가 사채업을 했다는 것에 대해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네, 그건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저희 여사님이 좀 짓궂은 면이 계신데 웬만하면 그냥 넘어 가주시는 게 편하실 겁니다.”

“네, 그렇게 하죠.”

그때까지 태범은 우열이 마지막에 한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일단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우열의 말에 수긍할 뿐이었다.

“들어가시죠.”

엘리베이터가 6층에 도달하고 태범과 희성 그리고 우열은 복도를 따라 걸었다.

백 여사와 만남은 태범과 1 : 1 만남이었고 희성은 다른 방에서 대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게 백 여사의 지시였다.

지금까지 이곳에 오면서 윤우열에게 들었던 말을 종합해보면 백 여사는 보통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태범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백 여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복도와는 다르게 휘황찬란한 방이 나타났다.

화이트와 골드로 꾸며진 벽지와 한눈에 봐도 값 비싸 보이는 가구와 장식품들이 방 안에 전시돼있었고 샹들리에가 방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마치 TV에서 봤던 트럼프 대통령의 펜트하우스를 보는 듯했다.

“여사님. TB 자산 운용에서 사람 모셔왔습니다.”

커다란 창문 앞에는 놓여있는 책상 앞에는 백 여사가 앉아있었다.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새하얀 셔츠에 눈에 띄는 보석 귀걸이와 목걸이를 하고 있었고 머리는 고풍지게 올려져있었다.

마치 드라마 속에서 나올 법한 부잣집 사모님을 보는 듯했다.

‘매일 저 머리를 하면서 시간을 얼마나 소모할까?’

태범은 백 여사의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감탄이 아닌, 매일 저런 모습을 가꾸고 있다고 생각하니 헛된 고생에 대한 안타까움에 가까웠다.

“처음 뵙겠습니다. TB 자산 운용 대표 강태범입니다.”

태범은 우열이 말했던 유의사항을 기억하며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백 여사는 허리 굽혀 인사를 건네는 태범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바라봤다.

눈이 안 좋은지 눈을 지그시 감고 입술을 오므리며 묘한 표정으로 태범을 대놓고 스캔하고 있었다.

인사를 건넸으면 받아줄 생각을 해야지 저리 뚫어져라 온 몸을 살피니 태범의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다시 한번 우열의 말을 떠올리며, 백 여사의 눈빛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네, 반가워요. 저기 앞에 앉죠.”

드디어 백 여사가 입을 열었다. 태범이 인사를 건넨 이후 10초 정도가 걸렸다.

10초가 시간으로 치면 짧은 시간이지만 인사를 건넨 이후 10초라면 긴 시간이었다.

첫 만남에서 정적은 불편한 감정을 가져오니 말이다.

일단 태범은 백 여사에 말에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뒤따라 백 여사는 금테 안경을 쓰고는 책상 의자에서 일어나 태범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와 앉았다.

“강태범 씨라고 했죠?”

“네.”

“생각보다 젊네요? 20대라고 듣긴 했는데 그냥 학생 같은데요?”

“네, 나이로 치면 대학생이죠. 아직 25살입니다.”

“젊은 나이에 어쩜 대단하네요. 요즘 학생들 취업 안 된다고 그런 소리나 하고 자빠져 있는데 우리 태범 씨한테 좀 배워야겠네요.”

백 여사의 여유 있고 고상한 말투에서 저런 말이 나오니 이질감이 느껴졌다.

뭐가 됐든 칭찬은 해줬으니 감사함을 전하며 태범은 이곳에 온 목적을 드러냈다.

“감사합니다. 앨론 뮤직 임호진 대표한테 들었습니다. 여사님이 투자처를 찾고 계신다고요.”

“네, 맞아요. 요즘 돈을 굴릴 때가 필요했는데 마땅한 곳을 찾기 힘드네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왔습니다. 여사님께 좋은 투자처를 소개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태범의 자신감 있는 모습에 백 여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태범의 눈 뚫어져라 바라봤다.

너무 자신감을 보인 게 아닐까 태범은 혹시 실수를 했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백 여사는 쥐를 잡아먹은 것처럼 빨갛게 칠해진 입술을 씰룩거리며 입을 열었다

“태범 씨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요즘 금융권이나 경제계에서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백 여사는 태범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돈을 가진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네트워크를 구성했고 돈이 움직이는 것과 관련한 정보에 빠삭했다.

그러다 보니 투자시장의 떠오르는 샛별인 태범을 모를 수가 없었다.

태범이 어디에서 일했고 무슨 성과를 이뤄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근데 말이에요. 아무리 능력이 좋다고 한들 이번에 운용하는 사모펀드는 처음 아니에요?”

“네, 처음이긴 한데 제게 확신할 수 있는 되는 근거가 있거든요. 제가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우리 태범 씨, 설명 한번 들어보죠.”

백 여사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태범이 가져온 서류와 태범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태범은 열성을 다해 백 여사에게 이번 사모 펀드 계획에 대해 설명에 나섰다.

큰 손인 만큼 그 어떤 누구보다 열성을 다해 설명했다. 혹시나 모르는 게 있을까 이해하고 있는지 몇 번을 묻고 모든 걸 세세하게 설명해주려 노력했다.

그 결과 백 여사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설명은 잘 들었어요.”

일단 백 여사의 반응은 괜찮았다. 하지만 정말 설명을 알아듣고 저러는 건지 아니면 그냥 말만 저러는 건지 의심이 갔다.

태범이 투자에 접근하는 방식이 나름 고도화된 지식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기에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움이 따랐다.

보통은 한 번쯤은 대화 도중 질문을 하지만 백 여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의 질문도 없이 설명을 들었다.

“태범 씨, 운동하시나 봐요?”

“네?”

“손이 아주 크네요. 호호”

“아…… 네…….”

“일단 나도 생각을 해봐야 하니까. 다음에 또 만나죠. 곧 연락할게요.”

백 여사의 말투에 있어서 뭔가 꺼림칙했지만 일단 반응은 나쁘지 않았으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태범은 백 여사와 다시 만남을 약속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한쪽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윤희성은 태범을 차에 태우고 다시 회사로 향했다.

* * *

태범의 사무실.

태범과 효준은 앞으로 사모 펀드 투자자들을 어떻게 유치할지 의논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당 최소 3억 이상은 투자해야만 했기에 선뜻 투자에 나서는 사람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일단 희성이 기존 자문 고객들과 접촉을 통해 새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었으며 태범과 효준은 큰 손들을 만나고 있었다.

특히 효준 같은 경우는 기존의 인맥이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지울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그림자. 아버지가 대한민국 회계법인에 제일가는 대표다 보니 효준은 자연스레 사회적으로 높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겠다는 효준은 아이러니하게도 간접적으로 아버지의 힘을 다시 빌린 셈이었다.

“형, 단둘이 있을 때는 말 편하게 해.”

“그래도 회사 대표님인데 제가 어떻게 그럽니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해. 형이 그러니까 오히려 내가 불편해.”

“쩝…… 알았어. 불편하다면 그렇게 해야지.”

태범의 회사에 합류한 이후 줄곧 존댓말을 쓰던 이효준이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계속 들어도 효준의 존댓말은 익숙해질 수 없었다.

1년 동안 서로 반말한 사이에 갑자기 존댓말이라니 태범은 효준과 거리가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조직의 규범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는 편하게 대했으면 하는 게 태범의 마음이었다.

결국 태범의 요청에 효준은 다시 과거형이었던 시절로 돌아왔다.

“사람을 만나보니까 일단 우리 회사에 대한 평과 신뢰는 좋아. 근데 단지 사모 펀드에 거액을 투자할만한 확신이 안 서는 것 같은데.”

“그게 바로 우리가 풀어야 할 포인트지. 자신의 모든 걸 우리에게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강력한 확신을 줘야만 해.”

“그래도 다행인 게 앨론 뮤직 대표가 신뢰에 물꼬를 틀어줬으니까. 그나마 사람들이 우리 펀드를 보는 눈이 달라지긴 한 것 같아. 지금 이곳에 발을 거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던데.”

지금 태범의 회사는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었다.

기존의 신뢰를 등에 업고 앨론 뮤직 임호진 대표가 사모 펀드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이번 사모 펀드가 사람들로 하여금 주목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최소 수억은 투자해야만 하는 사모펀드에 심적인 갈등을 하며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갈팡질팡 투자에 대한 확신을 못 내릴 때 태범은 확실히 뭔가를 보여줘야만 했다.

마지막 확신을 말이다.

“백 여사라는 사람은 잘 만나고 왔어?”

효준은 태범이 만나고 온 백 여사에 대해 물었다.

“백 여사라는 사람 뭔가 소름 끼쳐.”

“왜? 잘 안 됐어?”

“아니, 그건 아니고 약속을 또 잡았긴 했는데 뭐랄까 보는 눈빛이 영 마음에 안 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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