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99화 (99/188)

# 99

윤희성이 인력을 모집하는 일을 담당했다.

사모 펀드를 운용할 전문 인력을 모집에 관한 공고를 올리고 주변 인물 중 증권사에서 경험이 있는 인물들을 찾아내 태범에게 소개해주는 역할이었다.

이 모든 일을 태범이 혼자 했다면 손발이 부족해 업무에 지장이 갔겠지만 다행히도 윤희성이 옆에 있었기에 두 가지 일이 모두 가능했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윤희성을 직원으로 맞이한 게 참 다행이었다.

“다들 경력이 높긴 한데 사모 펀드를 운용해본 사람은 찾기 힘드네요.”

“네, 아무래도 저희가 신생 기업이다 보니…….”

“사람들이 생각보다 겁이 많네요.”

“아무래도 큰돈을 움직이려다 보니 그렇죠.”

태범은 손에 이력서 뭉치를 살피며 안타깝게 바라봤다.

사모 펀드를 직접 운영할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태범의 운용사가 소규모이기 때문에 다가올 책임감에 부담을 느끼는 듯 보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책임을 지고 주도적으로 뭔가를 한다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나 소규모 운용사에서 거액의 사모 펀드를 다룬다는 건 분명 책임감에 대한 중압감이 많이 느껴질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물론 책임을 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태범은 도전 정신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느꼈다.

“조금만 자신감을 가지고 지원만 해주면 대박이 날 텐데 말이에요.”

자신감의 차이는 많은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태범도 이를 몸소 깨달았고 이제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을 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망설이면 버스는 지나간다.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

기회는 그 시간대에만 존재하고 인생에는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물론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과감하고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 왔으면 좋겠네요. 저랑 같이 일하려면 겁이 없어야 하거든요.”

“과감하고…… 추진력…….”

윤희성은 태범의 말을 자신의 수첩에 적어내고 있었다.

태범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일하기 전에 태범에게 배우러 온 입장이기도 한 희성은 열정만 내놓고 본다면 태범의 모든 지식을 흡수할 것 같은 기세였다.

“사람 구하는 게 쉬운 게 아니죠. 그래도 신경 좀 써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 * *

[공격적 투기를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50%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51% 진행되었습니다.]

‘이 기분! 너무 좋아.’

스캔을 마친 태범은 능력이 주는 강한 자극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번 능력은 다른 능력들과 다르게 스캔이 진행될 때마다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이 컸다.

공격적 투기는 투자 대상을 선택하는 데 과감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좀 더 위험한 곳에서 더 큰 돈을 원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할까. 원하는 보상과 성과를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힘이 느껴졌다.

‘자, 어디가 나한테 수익을 가져다주려나…….’

태범은 인터넷으로 얻은 정보를 통해 스타트 업 기업을 탐색했다.

머릿속에 스타트 업에 대한 명단이 쫘르륵 펼쳐지며 마치 기업 백과사전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이 정도 명단의 수로는 부족했다.

하루에만 수십 개의 스타트 업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대한민국에서 무한에 가까운 기업들을 탐색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모든 기업이 자발적으로 홍보를 하지 않는 이상, 어떤 기업이 생겨나고 사라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주어진 기업 정보에서 유망한 기업을 찾아야 했다.

마치 황금 알을 낳은 거위를 찾는 행위와 가까웠는데 이것이 가장 어려운 단계이자 핵심이었다.

기업의 미래 가치를 꿰뚫어 보는 눈.

이것이 태범의 능력이 최종적으로 도달해야할 능력이었다.

‘이 기업은 수익 구조만 잘 구축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개발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리네.’

‘하…… 여긴 경영진이 아쉬워.’

가장 중요한 기업의 기술과 아이디어부터 시작해서 재무 상황, 경영진의 성격, 정부와의 관계, 지원 여건 등 고려할 사항이 많았다.

태범은 이 여러 사항을 자신의 분석 능력으로 하나씩 풀어헤치고 있었다.

기업이 지닌 기술이 시장에 먹힐지 판단하는 데는 워렌버핏의 능력만 한 게 없었다.

그리고 폰 노이만의 수리 능력으로 이를 공학적으로 완벽히 계산했다.

이렇게 투자에 관한 판단 근거를 만든 후 조지 소로스의 능력으로 투자 타이밍을 쟀다.

각 능력이 투자에 제 역할을 해주며 하나의 하모니를 이뤘다.

능력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투자는 갈수록 완벽해졌고 통장에는 돈이 쌓여갔다.

모든 것이 스캐너가 준 능력에 비례했다.

앞으로 얼마나 스캔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이대로라면 죽을 때쯤 돼서는 상상도 못 할 성과를 이뤄냈지 않을까 상상을 하고 있었다.

‘가자! 태범아.’

* * *

윤희성의 추천으로 남자 한 명이 사무실에 면접을 보러왔다.

둘은 투자 관련 모임에서 알게 된 인연이었고 희성과 같은 나이인 36살의 남성이었다.

그의 이력서는 화려했다.

A4용지 한 장 크기로 부족할 만큼 각종 이력과 성과들이 종이를 채웠고 그의 투자 능력을 빛내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사실 명목상 면접이지 협상에 가까웠다.

정장을 쫙 빼입은 남자의 태도는 당당했고 사무실에 들어오며 주위를 대놓고 살피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사람을 많이 접하다 보니 태범은 사람들의 표정을 읽는 데 익숙해졌다.

남자는 아마도 ‘사무실이 왜 이렇게 작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입을 꾹 다물고 인중을 오므리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으니 말이다.

태범과 남자는 소파에 마주 보고 앉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승진 씨, 질문 좀 하겠습니다.”

태범의 손에는 이력서와 같은 종이 한 장조차 들려있지 않았다. 이미 그가 오기 전 이력서를 머리에 통째로 집어넣은 상황이었다.

“미래 증권에서 10년이나 일하셨다고요.”

“네. 헤지 펀드 운용만 10년 정도 했습니다.”

이력을 보면 태범이 원하는 완벽한 인물이었다.

명문대 경제학과에 졸업해서 거대 증권사에 속하는 미래 증권에서만 10년 동안 일한 사람이었다.

경력이나, 능력이나 살펴본다면 별 흠은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 경력이면 웬만한 건 다 아시겠네요.”

“네, 웬만한 경제 변화는 다 겪어봤으니 펀드 매니저로써 해볼 만한 경험은 다 해본 것 같습니다.”

남자의 말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지금까지는 좋았다.

“좋아요. 일단 펀드를 오랫동안 운용해 보셔서 잘 아실 텐데 저희가 운용하려는 건 일반적인 사모 펀드가 아닌 건 아시죠?”

“네, 신생 기업을 위주로 투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저희 회사에서 운용하려는 사모 펀드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실래요?”

태범의 질문에 남자는 잠깐의 고민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리스크가 커요. 지금 하시려는 일이 사실상 엔젤 투자 아닙니까? 창업 벤처기업에게 돈을 대주고 투자금을 회수하는 그런 식인데 이를 거대 자본으로 움직인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 리스크에 대한 대안은 있나요?”

“최대한 분산 투자를 하고, 일정 금액은 안전 자산에 투자해야겠죠.”

“너무 안전만 쫓다보면 사모 펀드의 본질이 퇴색 될 텐데요?”

“그래도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할 때도 퇴로를 열어 두는 것처럼 안전이라는 퇴로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쉽다. 그 역시 안전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태도나 어투에서 자신감이 보이기에 과감히 행동할 사람으로 보였지만 이 역시 일반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을 못 한다는 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할 만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태범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질문을 이어갔다.

“현재 쉬는 동안은 뭐하시고 계셨죠?”

“잠시 이직 준비에 있었다가 희성 씨가 추천해줘서 와봤습니다.”

“희성 씨랑은 같은 모임에서 만나셨다고요?”

“네, 투자 관련 인터넷 채팅방이 있는데 그곳에서 처음 만나서 지금은 꽤 친한 사이죠.”

“그럼 저희 회사에 들어오시면 조금은 편안하겠네요. 그래도 아는 사람과 같이 일하면 좋죠.”

“그렇긴 하죠.”

면접이 진행되는 도중에 한 번쯤 미소를 지을 만도 한데 표정이 굳어있다.

태범은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알아차리며 남자의 생각을 읽어 내고 있었다.

“이직 생각이라고 하셨는데 다시 증권 회사로 갈 생각이셨나요?”

“네, 잠시 개인 투자에 집중하려고 회사에서 나와서 집에서 전업 투자자로 일하고 있다가 이번에 다시 회사에 들어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우리 회사는 어떻습니까? 본인과 성격이 맞는 것 같나요?”

“솔직히 말해서 이곳에서 일해야 할지 확신이 안가는 상황입니다.”

“뭐가 문제라도 있나요?”

“대표님이 투자 능력으로 유명하신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성공한 투자만 여러 개죠. 하지만 소규모 사에서 사모 펀드를 운용하는데 좀 조심스럽습니다..”

남자는 면접을 보러 왔긴 했으나 아직 마음의 결정이 되지 않은 듯 보였다.

그저 희성의 부탁으로 간신히 발걸음만 옮긴 것처럼 보였다.

“아. 그렇군요.”

남자의 말에 태범은 씁쓸한 마음을 속으로 삼키며 안타까워했다.

* * *

남자에게 합격점을 내렸지만 그는 태범의 회사에 입사하지 않았다.

면접을 통해 그의 생각을 예상하는바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무식하게 리스크를 감수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 태범의 회사는 도박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문까지는 그렇다 쳐도 남의 돈을 가지고 직접 운용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한 번의 실패는 지금껏 쌓아 올린 모든 신뢰를 잃을 만큼 강력한 일이었다.

게다가 한 번 망하면 회생이 어려울 처지의 소규모 회사다 보니 결코 입사 결정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이는 제 3자의 시점의 이야기였다.

태범 본인은 무조건 성공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태범이 가진 능력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저 무식한 패기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태범은 최고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본인의 능력을 완벽히 믿고 있었다.

똑. 똑.

또 다시 사람은 사람을 어떻게 뽑을까 고민하던 찰나. 누군가 사무실 문을 열며 들어왔다.

“강태범 대표님! 면접 보러 왔습니다.”

태범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그는 상정회계법인 대표 아들 이효준이었다.

“형이 여긴 웬일이야?”

“사람을 구하신다면서요. 면접 보러 왔습니다.”

“면접?”

“네, 공고 보고 직접 찾아왔습니다.”

이효준은 존댓말을 하며 태범에게 정중히 대하고 있었다.

형과 동생으로 지내기로 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형, 회계 법인은 어쩌고?”

“퇴사했습니다. 대표님 같이 일하고 싶습니다.”

이효준이 장난을 치는 건지,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건지 구분이 잘 안 됐다.

평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이야기는 했으나 정말로 아버지가 대표로 있는 회사를 박차고 나오다니 믿기지 않았다.

“형, 진짜야?”

“저 이제 갈 곳도 없는데 저 좀 데려가 주시죠.”

효준은 광대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미소를 지으며 태범에게 부탁했다.

* * *

한 달 후, 태범은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TB 자산 운용’이라는 이름을 내건 새로운 집합 투자업 회사였다.

사모 펀드 운용에 필요한 전문 인력 3명을 포함해, 각종 사무업무를 도와줄 직원 4명을 회사에 입사시켰다.

이제야 나름 회사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지금까지 혼자였다면 이제는 팀을 이뤘다.

“다들 반갑습니다. 서로 얼굴을 처음 보시는 거죠?”

“네, 이렇게 모이는 건 처음이죠.”

한곳에 모인 TB 자산 운용의 직원들은 서로를 보며 인사를 나눴다.

각기 다른 사연으로 이곳에 모여 이제는 한마음을 이뤄야 할 사람들이었다.

“사무실은 마음에 드나요? 전 보다 확실히 넓어졌죠?”

“네, 오히려 사람에 비해 장소가 넓네요.”

“차후에 들어올 직원들을 위해 큰 곳으로 마련했습니다. 다들 불편함 없이 지내실 수 있을 겁니다.”

태범은 직원들에게 지정된 자리를 안내했고 각자 부여된 일들을 설명했다.

태범은 펀드 운용을 총괄하고 효준은 기업의 재무를 담당했다.

윤희성은 기존의 자문 회사의 고객들은 관리하는 역할을 하며 태범과 고객들의 연결 고리를 담당했다.

TB 자산 운용의 공식적인 첫 시작인 만큼 각오도 중요했다.

모두가 모인 자리 태범은 한마디로 일의 시작을 알렸다.

“자! 이제 돈을 쓸어 담으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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