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98화 (98/188)

# 98

태범은 진주를 품은 조개를 찾기로 했다.

아직 가치를 전혀 드러내지 않은 신생기업(스타트업)을 발굴하여 그 속에 있는 진주를 찾아내는 것이다.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주식이 수천억, 수조에 가치를 지닌 주식이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애초에 대부분 기업의 시작은 미약했으니 말이다.

태범은 그 미약한 시점 바로 시작점에서 기업을 잡을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완성된 기업에 투자했다면, 이제는 좀 더 도전적인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단 스낵 피쳐부터 잡아야겠어.’

태범은 가장 먼저 할 일은 캐서린의 스낵 피쳐(snack picture)에 투자를 하는 것이었다.

멀리서 찾을 거 없이 여자 친구인 캐서린의 기업이 운영하는 기업에서 미래를 봤다.

서비스 시작 후 한 달 5천 명으로 시작해 사용자 수가 매월 증가하는 추세였다.

게다가 어린 층부터 시작하는 유행의 선도는 스낵 피쳐의 유망성을 나타내 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눈앞에 진주를 품은 조개가 보이는데 차마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여자 친구의 기업이라는 개인적 감정을 완전 배제 시켜도 스낵 피쳐는 충분히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단지 사람들이 이 숨겨진 가치를 못 알아 봐주는 것뿐이었다.

분명 투자만 잘 이뤄진다면 미래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지니고 있었다.

‘자금을 조달할 방법은 없을까?’

태범이 돈만 있다면 캐서린에게 아낌없이 투자를 했을 텐데 아직은 그럴 여력이 되지 않았다.

‘사모 펀드!’

사모 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를 비공개로 모집한 뒤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하여 다시 되파는 형식을 말했다.

다른 펀드보다는 액수가 크고 투자 대상에 대한 제한이 없다 보니 고위험, 고수익을 지닌 펀드였다.

하지만 태범의 능력으로 위험을 낮춘다면, 사실상 사모펀드는 태범의 엄청난 돈벌이가 될 수 있는 수단이었다.

태범의 기업을 보는 통찰력과 혜안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태범의 능력으로 종이쪼가리가 금덩이가 되는 마법을 보여줄 때가 온 것이다.

* * *

왕첸과 왕밍밍이 한국에 방문했다.

여행차 방문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태범이었다.

태범은 둘의 한국 방문을 친절이 맞아줬다.

“와. 여기가 태범 씨 사무실이에요?”

“네, 조금 작죠?”

왕밍밍은 조그마한 사무실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역시나 사무실에 입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쥐꼬리만 한 크기의 방에서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사무실 크기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방이 조금 하더라도, 수많은 정보와 능력이 가득 찬 태범의 머릿속은 그 어떤 곳보다 넓었다.

“태범 씨, 여기요. 이거 걸어 놓으세요.”

“이게 뭐예요?”

“제가 그린 건데 이 그림 걸어 놓으시면 앞으로 사업 잘 되실 거예요.”

왕밍밍이 건넨 그림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빨간색과 황금색으로 이뤄진 그림이었다.

용의 머리, 말의 몸, 기린의 다리를 지닌 동물, 마치 사자와도 비슷하다.

중국에서는 재물 운을 가져다준다는 비휴라는 전설 속 동물이었다.

역시 미술을 하는 사람답게 상황에 맞는 적절한 작품을 선물로 건네줬다.

태범은 건네받은 그림을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놓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왕밍밍 씨 덕분에 일 잘 풀리겠네요.”

“그러게요. 일이 잘 되실 때마다 항상 절 기억해주세요.”

왕밍밍은 수줍게 눈웃음과 함께 입을 가리며 미소를 지었다.

“근데 이분은 누구세요?”

왕밍밍과 태범의 대화가 끝나고, 왕첸이 태범의 옆에 서 있는 윤희성을 손으로 가리키더니 물었다.

윤희성이 TB투자 자문에 들어 온 지 며칠 안 됐으니 왕첸이 희성을 모르는 건 당연했다.

1인 기업으로 일하고 있던 줄만 알았던 태범 옆에 낯선 남자가 서 있으니 말이다.

“아. 소개가 늦었네요. 이쪽은 저랑 같이 일하는 분이에요. 윤희성 씨라고 TB투자 자문의 첫 번째 직원이네요.”

“직원이 있었군요.”

“안녕하세요. 이번에 TB투자 자문에서 일하게 된 윤희성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왕첸입니다.”

윤희성은 한국인 특유의 영어 발음으로 본인을 소개했다. 언어야 알아만 들으면 되는 법, 발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왕첸 역시 본인을 소개하며 둘은 악수를 나눴다.

왕첸과 윤희성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윤희성을 제외한 나머지는 소파에 착석했다.

희성은 눈치껏 준비한 차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손님맞이를 했다.

시키지도 않는 일은 알아서 하고 있으니 태범은 희성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날려주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은 태범은 사업 이야기로 입을 떼며 대화를 시작했다.

“왕첸 씨, 다음 투자 건을 생각해 봤는데요.”

“드디어 다음 행보를 결정한 겁니까? 전 태범 씨가 어떤 결정을 할지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태범의 말에 왕첸은 옅은 미소와 함께 눈을 크게 뜨며 태범을 바라봤다.

왕첸은 태범의 능력에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금리와 관련된 투자 자문 이후 또 다른 투자 자문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제가 사모 펀드를 운용해볼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모펀드요?!”

태범의 입에서 펀드 이야기가 나오자, 역시 펀드 매니저답게 왕첸은 흥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태범의 투자 기업 선정 능력을 높게 샀고, 이에 따라 펀드 운용을 권유하곤 했었다.

“네, 신생 기업에 투자할 만한 사모 펀드를 직접 운용해볼까 생각 중에 있거든요.”

“태범 씨가 사모 펀드라…… 나쁘지는 않죠.”

“안 그래도 투자할만한 기업들이 하나둘 제 눈에 띄기 시작했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그러지 말고 저희 사모 펀드 어빌리티(ability)를 같이 운용하는 게 어떻습니까? 긴 준비 없이 태범 씨 머리만 오면 되는 데 말이죠.”

과거 태범에게 제의했다가 거절당했지만 혹시나 사모 펀드 이야기가 나온 오늘, 생각이 달라졌을까 하는 마음에 다시 제의를 한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달라진 게 없었다.

“죄송합니다.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일은 제 품 안에서 이뤄졌으면 합니다.”

“아, 아! 알겠습니다. 그냥 혹시나 해서 해본 말이에요.”

왕첸은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안 그래도 저희 회사에 고객 유입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를 다 받지 못하는 실정이거든요.”

“흠…… 그래도 자문과는 좀 다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신생기업이라니 고객들이 쉽게 참여할 까요?”

“저도 그게 고민이긴 한데, 가치만 잘 평가해서 설득만 한다면 가능할 거라 봅니다. 제가 예전 회계사로 일할 때 왕첸 씨에게 했던 것처럼 요.”

“아! 앨론 뮤직 때처럼 말이죠?”

“네, 그때처럼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근거를 만들어 낸다면, 투자자들을 충분히 모을 수 있을 겁니다.”

태범과 왕첸은 서로 간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태범과 왕첸의 인연을 잇게 해준 앨론 뮤직.

왕첸은 그때 태범의 기업 가치 평가서를 보고는 감탄을 했고, 태범을 믿은 채 앨론 뮤직에 투자를 했다.

그 결과 현재 앨론 뮤직은 기업 가치만 2배 이상으로 상승했고, 지금은 포털 서비스 업체인 ‘키키오’에 매각 예정에 있었다.

태범 덕에 왕첸의 사모 펀드가 약 300억대의 수익을 낼 상황이니, 만약 왕첸이 태범을 무시하고 그냥 자리를 떴다면 그 300억은 허공에 사라진 꼴이 됐을 것이다.

“그때 저한테 보여줬던 그 정도면 사람을 모으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겠죠. 근데 신생 기업이라 쉽지만은 않겠네요.”

“대신 투자만 성공하면 엄청난 수익이 떨어지겠죠. 리스크 관리는 제가 충분히 조정해서 최대한 안정적인 투자가 되도록 할 겁니다.”

“그래요. 그래.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태범 씨가 그런 말 하니 신뢰는 가네요.”

왕첸의 우려에도 태범은 확고한 의지를 보여줬다.

그런 의지에 무한에 가까운 신뢰를 가지고 있는 왕첸으로서 더 이상 태범의 생각을 부정할 수 없었다.

“사모 펀드를 운용하려면 조건이 꽤 까다로울 텐데 준비는 되셨습니까? 혹시 도와드릴 거라도 있으면 말해줘요.”

“다행히도 사모 펀드 운용하는데 요건이 많이 완화됐거든요. 별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요. 그건 그렇고, 요즘 눈에 띈다는 기업이 어딘지 설명해줄 수 있어요?”

“그럼 하나만 말씀드려도 될까요?”

“어우! 그럼요. 말씀해주세요.”

왕첸은 태범의 비밀 보따리를 풀길 원했다. 그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태범을 바라봤다.

“영국에 스낵 피쳐라고 SNS 서비스업의 기업이 하나 있습니다.”

“스낵 피쳐요?”

“네, 런던 대학 학생들이 설립한 스타트 업인데 대부분 자본금이 학교에서 지원된 돈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 회사는 어떻게 아셨대요?”

“이건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하는데 사실 그 회사의 창업자 중 한 명이 제 여자 친구거든요.”

“여자 친구요?”

태범이 여자 친구 이야기를 꺼내자 왕첸은 목소리 톤을 높이며 놀라워했다.

더욱이 이 사실을 왕첸보다 더 놀라워하는 사람은 그의 딸 왕밍밍이었다.

얼마나 놀랐으면 몸을 쭈뼛 세운 채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태범 씨, 여자 친구 있었어요?”

“네…… 영국 사람인데, 저희 학교에 교환 학생으로 왔을 때 만났거든요.”

“아…… 그래요.”

왕밍밍의 어깨가 쪼그라들더니 표정이 잔뜩 굳어버렸다.

태범은 왕밍밍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단지 여자 친구 이야기를 늦게 해서 괜한 감정을 심어 준 게 아닐까 미안할 뿐이었다.

살짝 분위기가 묘해진 상황에 왕첸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투자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말 확실합니까? 그 스낵 피쳐라는 곳 말이에요.”

“개인적으로 유망성이 큰 기업입니다. 저도 그쪽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실제로 가서 기술력이라던가, 소프트웨어를 직접 눈으로 보고 왔습니다.”

태범은 확신 있게 말하고 있지만 혹시나 오해를 살까 조심했다.

여자 친구 소유에다가 태범 본인이 주식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면 안 좋은 의심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소유한 주식의 기업에 투자 참여를 권하는 것은 주식 사기꾼들의 흔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자칫 사기꾼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럼 기업 가치 평가서 좀 저한테 보여줄 수 있나요? 제가 검토 한번 해보도록 하죠.”

“네, 원하시면 제가 스낵 피쳐에 연락해서 드릴게요. 그리고 저와의 관계를 신경 쓰지 마시고 꼭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세요. 잘못하면 오해 받을 까봐 걱정이 돼서요.”

“그럼 태범 씨 걱정 안 하게 아주 냉정하게 평가해드리도록 하죠. 하하.”

왕첸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태범의 말을 받아쳤다.

이로써 태범은 사모 펀드의 큰 손 왕첸을 서포터로 삼아 새로운 투자를 이뤄내 가고 있었다.

* * *

태범은 사모 펀드를 운용하기 위한 준비로 한창 바쁜 시기를 보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전문 인력이었다.

사모 펀드를 운용하기 위해 법적인 최소 요건을 충족해야만 했기 때문에 허수아비라 할지라도 사람을 세워놔야만 했다.

“희성 씨, 혹시 전문 투자자 좀 아는 사람 있어요?”

“네! 제 주변에 몇몇 중에 증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혹시 지금 쉬고 있는 사람은요?”

“아…… 대부분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저도 연락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연락 좀 부탁해요.”

“하…… 그런데 그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올지는 모르겠네요. 아무리 대표님이 운영하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소규모 펀드 운용사에 들어오는 건 좀 꺼리거든요.”

“그래요? 그럼 그 사람들한테 말하세요. 이번 기회가 일생일대의 기회라고요. 제 이름을 팔아도 되니까 확실하게 전달해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