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을 주는 스캐너-96화 (96/188)

# 96

“태범 씨, 예상이 맞았어요. 저도 제 손으로 투자했지만 아직도 못 믿겠네요.”

“사실 저도 그래요. 남들과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네요. 하하.”

금리 인상의 여파로 사람들은 다수의 주식의 주가가 떨어질 거라 예상했었다.

그리고 정말 사람들의 예상대로 주가는 하락을 면치 못했다. 미리 예측하고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대비를 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다.

낙관주의를 가진 투자자들은 예상을 무시하고 배팅을 했고 그 결과 많은 투자자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계좌를 보게 되었다.

증시를 비관적으로 본 사람들은 대부분 수익을 봤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개별 주식에 풋 옵션을 매수한 투자자 중, 금리 인상의 여파에 예상외로 견뎌내는 기업의 풋 옵션을 산 사람은 크게 손해를 보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태범과 왕첸의 먹잇감이었다.

그들은 미래를 확신하고 도박을 했겠지만 그 확신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 순간 돈은 이미 태범과 왕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많은 투자자들이 증시 하락으로 힘들어할 때 태범과 왕첸은 웃고 있자니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돈 좀 버셨는데 사업 확장을 하셔야죠?”

“네, 그래야 하긴 하는데 사람 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

“하하. 하긴, 태범 씨랑 같이 일 할 사람이면 보통 사람 가지고는 안 되죠.”

60억의 수익금 중 15%인 9억이 TB투자 자문으로 들어왔다.

태범이 100% 주주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수익은 태범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는 셈이었다.

지금껏 사회생활을 하며 번 돈에 비하면 엄청난 금액이었다.

게다가 왕첸을 제외한 다른 고객들로 얻는 기본 수수료까지 더하면 1인 법인치고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다음 타깃은 어떻게 됩니까?”

“다음이요?”

“여기서 멈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돈은 항상 굴러가야지 정체되면 안 됩니다.”

돈에 대한 왕첸의 욕구는 끝이 없었다. 돈이 또 다른 돈을 낳는 능력을 한 번 맛본 이상 이곳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태범은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태범 역시 자본주의에 사는 사람인지라 부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끓고 있었으니 말이다.

“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당연히 돈을 굴러가야죠.”

태범은 왕첸과 기쁨을 나누며 차후 투자에 관해 이야기를 오랫동안 나눴다.

사모펀드를 같이 설계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고 회사의 규모를 넓혀 자산 운용을 직접 해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모두 구미에 당기는 이야기지만 태범에게도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제가 조만간 서울에 갈 계획인데 그때 한번 보죠.”

“물론요. 언제든 환영입니다.”

“제 딸 왕밍밍도 태범 씨를 보고 싶어 합니다.”

“아…… 왕밍밍 씨가요?”

“네, 그때 되면 다 같이 만나서 식사라도 하죠.”

“알겠습니다. 언제든 연락주세요.”

왕첸과 기분 좋게 통화를 마쳤다. 그와의 첫 만남을 제외하고는 매 연락마다 좋은 일이 생기고 있었다.

태범은 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리모컨을 집어 TV를 켰다.

경제, 증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케이블 채널이 있는데 시간 날 때 이를 챙겨보곤 했다.

[증시 하락은 기업의 원래 가치로 조정된 것 일뿐, 경제 상황이 나빠졌다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역시 금리 이야기군.’

TV 속 경제 뉴스에서는 이번 금리 인상과 관련된 미 정부의 입장이 나오고 있었다.

태범은 몸을 소파에 눕다시피 늘어져 벽에 걸린 TV를 여유롭게 바라봤다.

[투자자들은 증시 상황에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증시 하락은 거품 낀 기업 가치가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지 경제가 위축됐다는 걸 보여주는 건 아닙니다.]

미국 정부에서는 주식 투자자들의 혼란을 잠재우려 하고 있었다.

모든 투자자가 태범에게 자문을 받았으면 미 정부에서 저럴 일도 없을 것이다.

지금쯤 태범에게 자문을 받은 투자자들은 발 뻗고 저 뉴스를 보고 있을 테니 말이다.

이미 예견된 사건은 일어나고 모든 건 순조롭게 지나갔다.

태범이 맡은 고객들은 모두 이번 증시 하락의 여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개인에 맞는 자문과 설계를 통해 최대한 금융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했었다.

이로 인해 태범의 금융 능력이 입증되고 있었다.

태범이 넘어야 할 산, 하나를 넘은 셈이었다.

산이 높고 위험할수록 성공의 대가는 커지는 편이고 태범은 오히려 그런 높은 곳을 원했다.

‘다음은 타깃은 뭐로 잡을까나…….’

왕첸과 통화할 때 받았던 질문을 태범은 한동안 고민했다.

등산가가 도전할 산을 찾아 헤매듯 태범도 도전할 만한 새로운 투자를 찾아야만 했다.

* * *

[개인 투자 자문 문의입니다.]

[투자 자문 문의입니다.]

[투자자문 문의합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자문과 관련해 다시 보냅니다.]

.

.

태범은 마우스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며 메일함을 확인하고 있었다.

고객을 일일이 대응하지 못해 전화를 자동 음성으로 돌려놨더니 이제는 메일로 문의가 쏟아졌다.

아무리 천재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어도 한 쌍 밖에 없는 손가지고는 모두를 감당하긴 힘들었다.

‘이걸 어쩌지.’

그렇다고 이 많은 고객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자문 회사에 있어서 고객이 곧 자산이자 돈이기 때문이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하나인 몸뚱어리를 대체하기 위해 새로운 직원을 뽑자니 문제가 있었다.

사실상 TB투자 자문으로 의뢰가 들어오는 건 태범의 능력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즉 고객에게는 회사의 능력보다는 대표인 태범의 개인 능력을 중요시했다.

그러다 보니 직원을 뽑아도 그들이 태범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손, 발을 좀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사실상 머릿속에 든 것은 오직 태범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을 공유할 수만 있다면 좋으려만…….’

손과 발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대신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일단 스캐너를 공유한다는 건 말이 안 되고 다음으로 생각 든 것이 교육이었다.

머릿속 능력을 공유하는 방법은 교육밖에 없었다.

태범의 머리를 완전히 따라잡지는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의 교육으로 고객을 맞이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으로 만드는 건 꼭 불가능은 아니었다.

‘그래, 이런 사람을 찾아야 해.’

배울 의지가 있고, 투자에 재능이 있는 사람. 이것이 곧 태범이 찾아야 할 사람이었다.

* * *

오늘은 경제 관련 언론사에서 인터뷰가 있을 예정이었다.

회계사 시절에는 인터뷰 같은 건 일절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제는 자신을 숨기기보다는 드러내야 할 때. 돈을 주고라도 광고를 하는 시대에 언론사의 인터뷰는 좋은 기회였다.

많은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지만 그중 태범이 평소 즐겨보던 인터넷 언론사를 선택했다.

“반갑습니다. 머니 경제의 안채영 기자입니다.”

“네, TB투자 자문 강태범 입니다.”

인터뷰 진행은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생각보다 좁은 사무실에 머니 경제의 관계자들은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혼자 일하시는 거예요?”

“네, 아직은 혼자네요. 사람을 구해야 할 텐데요.”

“그러면 이번에 모든 자문은 혼자 하신 건데 대단하시네요.”

“감사합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기자와 태범은 소파에 마주 앉았다.

기자는 인터뷰 질문이 적힌 대본을 손에 쥐고는 웃으며 물었다.

“영상 촬영은 아니고요. 사진하고 인터뷰 내용이 저희 인터넷 기사에 실릴 거예요. 너무 부담 가지지 마시고 편하게 답변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기자는 테이블 위에 녹음기를 올려놓고 질문을 시작했다.

“일단 간단한 본인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네, 현재 투자자문사인 TB투자 자문의 대표로 일하고 있는 강태범이라고 합니다.”

“원래 직업이 회계사이셨는데 창업하신 계기가 있나요?”

“제가 원래 투자나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실 회계사로 일한 건 몸풀기였죠. 애초에 사업은 하긴 할 생각이긴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빨리 일이 시작돼버렸네요. 저는 도전적이고 보상이 큰일을 좋아 하거든요.”

“본인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계신다는 거네요?”

“그렇긴 하죠. 애초에 사업 성공의 절반은 자신감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쟁터 같은 사회에서 홀로서기를 하려면 정말 독해지지 않고서야 힘들죠.”

“많은 사람이 대표님을 천재라고 부르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자의 질문에 태범은 깍지를 끼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감사하죠.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하고 알아야 할 게 많은데 그렇게 말해주시니 오히려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네요. 하하.”

태범은 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예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질문에 대답했다.

너무 자신에게 도취되어 자신감을 뽐내면 괜히 밉상으로 보일 수 있기에 살짝 본인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예의도 필요했다.

기자는 태범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본에 적힌 질문을 계속해서 건넸다.

“대표님은 이번 금리 인상을 올바르게 대처하셨는데 어떤 방법을 이용해 대처를 하셨나요?”

“아시다시피 금리 인상은 예견된 사항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알고 있었을 겁니다. 단지 그 상황에서 누구는 낙관을 할 것이고 누구는 불안에 떨며 갈팡질팡했을 겁니다. 저는 이 모든 걸 염두에 두고 인간 심리와 금융 공학을 이용해 투자에 알맞은 기업을 선정했습니다.”

“그 인간 심리와 금융 공학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실 수 있나요?”

“그건 말로 모두 담아내기 힘들지만 간략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수학 문제를 풀 때 식을 만드는 것처럼 저도 미래의 결과에 대한 식을 만들었습니다.”

“도대체 그런 공학적인 기술은 어디서 배우셨나요? 그 정도가 되려면 고도화된 수적인 계산이 필요하지 않나요?”

“수학은 제 취미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이과를 나온 건 아니지만 수학 문제 푸는 걸 좋아했거든요.”

“관심 있는 분야가 상당히 많으시네요. 사람들이 천재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었네요.”

“아직 천재라고 하기에는 좀 부담스럽네요.”

태범은 기자에 물음에 최선을 다해 답했다.

인터뷰는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됐고, 대부분 태범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가는 식이었다. 한 마디로 태범을 홍보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 * *

└ 저 사람 어떻게 된 게 하는 것마다 성공하는 거죠?

└ 어! 얼마 전에 세상에 신기한 일이에서 그림 그리던 사람 아닌가. 그 회계사…….

└ 그냥 천재네요. 보통 자신의 능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것저것 다 해보죠.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요.

아침 출근길, 태범은 스마트 폰으로 본인의 인터뷰 기사를 살펴봤다.

그리고 다행히도 인터뷰 기사의 반응은 좋았다.

대부분 네티즌은 태범을 만능에 가까운 천재라며 치켜세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태범의 행보는 누가 봐도 보통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오늘 하루 기분 좋은 시작으로 사무실로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오늘도 역시 윤희성이 사무실 앞에서 태범을 맞이했다.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몇몇 사람들은 이제 윤희성이 TB투자 자문의 직원인 줄 착각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평소처럼 고개만 끄덕이고 사무실로 들어가야 할 태범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저기에 희성 씨.”

“네?”

태범의 부름에 윤희성은 눈을 크게 뜨며 태범을 바라봤다.

“희성 씨, 정말 저랑 같이 일하고 싶은 목적이 정확히 뭐해요?”

항상 등을 돌려 사무실로 들어가던 태범이 희성에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희성은 손에 쥐던 빗자루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제 인생의 기회라고 생각해서요. 대표님한테 배울 것도 많고, 같이 일하면 분명 성공을 할 것 같거든요.”

“결국 본인의 성공을 위해서 절 이용하겠다는 거네요?”

“아니…… 그건 아니고…….”

태범의 직설적인 말에 희성은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말에 희성의 표정은 금세 환하게 바뀌었다.

“아니요. 본인 성공을 위해서 일하는 게 나쁜 건 아니죠. 근데 정말 성공할 수 있을 만큼 노력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일 뿐이죠. 결국 본인의 의지인데…….”

“전 의지는 충만합니다. 뭐든 배우고 시키는 것 다 할 수 있습니다.”

“좋아요. 그럼 같이 일하죠.”

“네? 정말요?”

태범의 갑작스런 제의에 윤희성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표정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네, 안 그래도 요즘 손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사실 처음에는 희성 씨가 불편하긴 했는데 자주 봐서 그런지 지금은 달라 보이더군요. 이번에는 희성 씨가 승리했네요.”

태범의 냉담한 모습에도 윤희성은 끈질기게 버텨왔다.

처음에는 무슨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간절함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 정도 끈기와 열정이면 충분히 같이 일해 볼만 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저 이 회사에 취업한 거네요?”

“네, 제 첫 번째 직원이네요. 잘 부탁드려요.”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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