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
왕첸에게 보낸 서류의 투자 지침에는 몇 가지의 큰 틀로 나눠져 있었다.
금리 변동을 이용한 레버러지 투자와 스타트 업 기업 투자 그리고 변동성이 강한 테마주.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모두 위험성이 높고 도전적인 투자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불안정한 금융 상황을 기초로 삼기 때문에 변수가 너무 많았다.
변수를 고려하자니 끝이 보이지 않는 변수의 수에 이를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태범은 달랐다.
예측하기 어려운 그 변수가 태범에게는 시시각각 계산되어 예상되고 있었다.
태범의 몸속에는 4명의 천재들이 한 곳에 모여 투자를 위한 회의를 하고 있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왕첸은 태범이 보내준 서류를 검토하며 질문을 건네고 태범은 답변을 해주는 형식으로 통화를 계속해 나갔다.
“아마도 미국 금리는 추가적으로 인상되겠죠?”
“네, 제가 오래전부터 지켜봤습니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금리 인상이 세계 경제에 꽤나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증권 시장이 하락세를 보이겠죠.”
“일단 변수가 있지 않은 한 3, 6, 9, 12월 달에는 인상을 하겠군요.”
“네, 아마도.”
돈은 금리가 높은 쪽으로 가기 마련이다.
금리가 낮을 때는 주식 시장으로 자금이 흘러가지만 금리가 높으면 돈이 주식 시장에서 빠져나가며 은행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현재 미국이 금리 인상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미국의 새 행정부 등장 이후 완전고용과 경제 성장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에 따른 물가 상승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서 금리를 인상시켜 시중의 돈을 회수시키려는 것이었다.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와 고용이 꾸준히 상승할 거라는 미국의 자신감이기도 했다.
그로 인해 사실상 저금리 시대는 막을 내리는 시점이 된 것이다.
“금리 인상을 이런 식으로 이용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너무 리스크가 크네요.”
왕첸은 태범이 보내준 서류의 내용을 보며 우려 섞인 말을 했다.
태범이 설계한 포트폴리오의 내용은 보통 일반적인 상식과는 정반대로 이뤄져 있었기 때문이다.
금리가 내려가면 수혜주인 은행이나 보험 회사에 투자하기 마련인데 태범은 반대로 피해를 입을 거라고 예상되는 기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을 예상하는 건 태범 뿐만 아니라 뉴스를 보는 꼬맹이도 알정도로 이미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사실을 토대로 투자를 한다면 태범의 존재 이유는 없었다.
진짜 수익을 얻고 싶다면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 배팅을 해야만 했다.
물론 욕심만 가지고 역 배팅을 하는 건 도박에 가까웠으니 이는 태범의 방식이 아니었다.
태범은 역 배팅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안전 수단으로 논리적인 계산과 금융 분석을 통해 나름의 기업들을 선별했다.
남이 보면 그저 생각 없는 도박꾼, 투기꾼처럼 보겠지만 태범은 혼신을 다해 투자 목록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러니 태범은 본인의 예측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걸 원하신 게 아닙니까? 왕첸 씨 말대로 좀 공격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짜봤는데 맘에 안 드나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금리가 인상되는 시점에서 이건 좀 무리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요.”
“뻔한 곳에 투자하면 수익이 안 나죠. 그렇다고 도박은 하지 않습니다. 제가 드린 자문은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전해볼 만 합니다.”
공격적인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왕첸 조차 태범의 공격성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투자에서 역 배팅은 사실상 모 아니면 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죠. 태범 씨가 생각 없이 자문을 할 사람도 아니고 근거도 충분히 납득은 갑니다. 제가 잠깐 소심해졌나 봅니다. 허허.”
태범의 과감함에 잠시 움츠리던 본인이 황당했는지 어색을 웃음을 전화기 속으로 흘려보냈다.
“왕첸 씨가 제 첫 고객인 만큼 성공적인 투자가 됐으면 좋겠네요. 저도 그만큼 신경을 썼으니 분명 잘 될 거라 믿습니다.”
“그럼요. 잘 돼야죠.”
태범의 당당함에 왕첸의 염려는 금세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이제 남은 건 그의 선택이었다. 그가 태범을 얼마나 신뢰하고 믿는가에 따라 투자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번 태범의 투자 자문은 직접적인 투자를 지시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태범이 추천한 투자 방법 중 무엇을 사용하고 얼마를 넣을지는 그의 자유였다.
왕첸과의 통화를 마치고 태범은 새로운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에 나섰다.
태범은 지금까지 수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기록해놨고 금융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 그리고 다양한 학문에 대한 정보까지 모두 들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특별한 건 없었다. 보통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였고 대부분 인터넷과 책을 통해 얻은 정보였기에 누구나 알고 있는 정보였다.
정말 기업의 내부 정보를 알고 있다든가 정부의 기밀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특별한 정보는 없었다.
결국 일반적인 정보를 가지고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정보를 가지고 투자를 한다면 돈을 벌 수 없다.
제로섬 게임. 투자나 혹은 투기와 같은 돈을 버는 행위는 모두 제로섬 게임이었다.
결국 돈을 내 주머니 속에 채우기 위해서는 남의 주머니에 담긴 돈을 빼 와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정보를 이용한다면 그건 투자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없고 남의 호주머니 근처에 가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태범은 남이 모두 알고 있는 정보를 새롭게 가공했다.
시장과 기업을 바라보는 능력과 수적인 감각에 창의성이 더 해져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생각을 해내고 있었다.
* * *
“2,500원입니다.”
태범은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편의점에 들리곤 했다.
아침 대용으로 항상 빵과 우유를 사서 사무실에서 식사를 하는 동시에 태범의 오늘 업무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남이 보면 불쌍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태범은 불평 하나 없었다.
오히려 아침을 거하게 챙겨 먹으며 시간을 뺏기는 것보다 간단히 챙겨 먹고 업무에 빨리 들어가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사업 초기 아직은 겉치레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오직 능력을 발휘해 사업을 키울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태범은 편의점에서 산 빵과 우유가 담긴 봉투를 들고선 사무실로 올라갔다.
“어! 뭐야?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복도를 따라 사무실로 향할 때쯤 청소를 하고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빌딩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아닌 것 같고 머리가 짧고 골격이 커다란 걸 보니 분명 남자였다.
그리고 남자가 고개를 돌렸을 때 태범은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며칠 전 찾아 왔던 남자, 윤희성이었다. 그렇게 안 된다고 말했거늘 그가 또 다시 얼굴을 비추자 태범은 당황스러웠다.
“안녕하세요. 일찍 출근하셨네요.”
윤희성 역시 태범을 봤고 그는 태연하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이 상황에 어처구니가 없는 태범은 쏘아붙이듯 물었다.
“아니, 지금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요즘 중국에서 넘어온 미세 먼지가 참 많네요. 이거 먼지 좀 봐요!”
희성의 손에는 기다란 대걸레가 쥐어져 있었고 그는 닦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찍어 보였다.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하고 이상한 짓이나 하고 있으니 태범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여기서 뭐 하시는 거냐고요.”
태범의 불만 섞인 목소리에도 희성은 미소를 잃지 않고 대답했다.
“대표님, 밑에서 꼭 일하고 싶습니다. 손이 부족하시다고 하셨는데 심부름만이라도 시켜주시면 하겠습니다. 뭐든 시켜만 주시면 하겠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오히려 이러시면 전 희성 씨를 못 믿어요.”
태범은 윤희성의 이런 태도가 탐탁지 않았다. 댓글로 싸움을 했을 때도 그렇고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막무가내로 자기의 주장만 내비치는 성격이었기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지금이야 다 끝난 일로 악감정은 사라졌지만 그에 대한 편견만은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의 행동은 그 조그마한 편견조차 악감정으로 변화도록 하고 있었다.
“대표님의 능력을 보고 반했습니다. 대표님 같은 사람 밑에서 꼭 일해보고 싶습니다. 이게 저희 일생일대의 기회인 것 같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도대체 뭘 보고 그러시는 겁니까? 저 희성 씨가 아는 것만큼 대단한 사람 아닙니다.”
“아니요. 충분히 대단한 분이십니다. 제가 대표님의 이력을 모두 봐왔는데 그냥 천재이시더라고요. 천재.”
희성은 태범에게 칭찬을 뛰어넘어, 찬양을 하고 있었다.
“제가 분명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 때가 되면 사람을 구할 거라고…… 지금 이러지 마시고 그때 와주세요. 네?”
“그럼 그게 언제인지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어서요.”
“지금 당장 일정이 정해진 건 없습니다. 때가 되면 알려드릴게요.”
태범은 단호하게 그의 부탁을 뿌리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아우, 요즘도 저런 사람이 있네.”
사무실에 들어 온 태범은 끈질기게 달라붙는 진호에 대해 진절머리가 난 나머지 한숨을 크게 푹 쉬었다.
정말 끈질김으로 승패를 가르는 대회가 있다면 우승감이 될 사람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태범의 만류에도 윤희성은 매일 아침 사무실 앞에 찾아와 아침 인사를 건넸다.
낯짝이 두꺼운 건지 태범의 짜증스러운 말투에도 그는 웃으며 2주를 그렇게 지냈다.
* * *
태범은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오늘의 금융 뉴스를 살피곤 했다.
머릿속 기억 사전에 새로운 정보를 넣기 위해 실시간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흡수했다.
[미 금리 인상.]
오늘의 관심 키워드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관련된 세계 경제의 영향이었다.
‘역시 예상대로야…….’
태범은 당연한 일이 벌어졌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었다.
미국 금리 인상 우려에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외인과 기관들이 순 매도세를 보이며 지수가 급락하게 되었다.
코스닥는 3%나 하락해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가장 큰 하락 폭과 영국의 유럽 연합(EU) 탈퇴 이후의 최고치를 찍고 있었다.
코스닥과 마찬가지로 코스피 역시 하락했으며 대부분의 시가 총액 상위 주들은 주가 하락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몇몇 은행과 보험사마저 미국 금리 인상의 영향에 벗어나지 못하고 주가가 하락하고 말았다.
한국뿐만 아니라 여파의 시작점인 미국마저 뉴욕 증시가 큰 폭으로 떨어지며 패닉 장세가 연출되고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미 금리 인상이 증권시장에 커다란 여파를 가지고 왔다.
세계의 경제가 미국 경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만큼 파급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증권 시장이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태범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태범은 그 즉시 홍콩에 있는 왕첸에게 연락했다.
현 시장이 변화폭이 큰 만큼 고객과 자주 연락을 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중요했다.
“왕첸 씨, 일은 잘 돼가고 있습니까?”
“네, 태범 씨의 계획대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투자 내역은 바로 보내드리죠. 검토 부탁드립니다.”
미 금리 인상에 세계 증시가 휘청거릴 때 그 여파를 견디고 꿋꿋이 견딜 수 있는 기업을 태범은 발굴하고 있었다.
뻔한 은행, 보험업이 아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업을 말이다.
투자는 남들이 모르는 방향으로 가야만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법이었다.
왕첸은 태범이 자문한 투자 방향에 따라 투자에 임하고 있었으며 그의 개인 자산은 태범의 손에 달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