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6장 조지 소로스
왕첸의 요구에 맞게 태범은 공격적인 포토폴리오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대형주보다는 중소형주 혹은 경제나 정치 상황에 따라 큰 변화가 예상되는 테마주와 같은 곳을 중심으로 투자를 해야만 했다.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리스크가 크다고 해서 무조건 운에만 맡길 수는 없었다.
애초에 운에 맡길 거면 태범의 존재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이번에 다빈치의 창의성 100%를 끝으로 스캐너의 인물을 바꿀 때가 됐고, 다음 인물은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인물로 정하기로 결정했다.
사업의 첫 시작인만큼 왕첸의 투자 자문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누굴 선택할까나.”
태범의 자취방, 책상 오른쪽 벽에는 화이트보드가 걸려있었다.
화이트보드 위에는 태범이 미리 생각해둔 몇몇의 인물 사진들이 자석에 의해 붙어있었다.
모두 금융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세계 대형 은행장, 유명 경제학 박사, 펀드매니저, 정부 인사 등 일반인들이 알 만한 사람부터 시작해, 숨어있는 금융계 고수들까지 많은 사진이 있었다.
그들의 예상 능력을 사진 밑에 적어뒀고, 필요한 능력에 동그라미를 쳐놨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가, 사모펀드 매니저인 왕첸과 비슷한 류의 사람을 선택하게 되었다.
헤지펀드의 승부사라고 불리는 ‘조지 소로스.’
자산만 20조가 넘는 펀드 매니저계의 거물이다. 그는 레버러지 효과를 극대화 시키며 도전적인 투자와 투기를 즐겨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공격적인 투기가 얼마나 유명했는가 하면 그는 파운드화를 대규모 매도함으로써 영국의 중앙은행을 굴복시킨 남자였다.
그 당시 파운드의 가치를 유지시키기 위한 영국의 은행과 반대로 가치를 떨어트리기 위한 조지 소로스의 싸움이었고 결국 헤지펀드의 대규모 자금을 이용한 조지 소로스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 결과 그는 단 한 달 만에 10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환투기를 이용해 벌어들인 수익이었기에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꽤나 있었다.
이 때문에 그의 호칭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투자의 귀재, 악덕 투기꾼.
하지만 그가 무엇으로 불리던 태범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능력을 이용하는 사람은 본인이니 말이다.
‘그래, 이 정도 사람이면 충분하겠지.’
스캔의 진행률은 하루 1%에서 더 이상 오르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스캔 진행률의 시너지 효과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제는 인물의 능력 중에 정말 필요한 부분은 흡수하고 빠르게 인물을 대체할 생각이었다.
[스캔할 능력을 선택해주세요]
[조지 소로스 능력]
-공격적 투기(0%)
-도전 정신(0%)
-시장 통찰력(0%)
-초연함(0%)
‘역시 워렌버핏과 겹치는 게 많네.’
워렌버핏과 조지 소로스의 투자 방법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워렌버핏은 기다리는 사람이고 조지 소로스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같은 투자자라 그런가 능력의 종류는 비슷한 성향을 띄고 있었다.
물론 같은 이름을 가진 능력이라 할지라도 인물에 따른 특성이 약간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굳이 겹치는 능력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
‘음…… 일단은.’
태범은 펜을 돌리며 모니터 속 능력 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항상 첫 선택을 할 때는 고민이 많은 편이었다. 한 번 선택을 하면 진행률이 아까워서라도 바꿀 수 없었기에 신중해야만 했다.
태범이 얻고 싶은 것은 위험성 있는 투자에서 성공하는 방법이었다.
[공격적 투기를 스캔하겠습니다.]
[스캔이 0% 진행되었습니다.]
.
.
[스캔이 5% 진행되었습니다.]
* * *
태범은 스캐너로부터 새로 얻은 능력을 더해 왕첸이 요구한 투자 자문과 관련하여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안에서 혼자 사투를 벌였다. 직원이라 해봤자 태범 하나였고 손발이 부족할 정도로 움직이며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누구야, 도대체!”
아까부터 누군가가 잠긴 사무실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태범은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고객을 받아주는 시간을 정해놓고 사무실을 열어두곤 했다.
문 앞에는 영업 시간표가 걸려 있었고, 사무실에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고객만 셀 수 없이 많았다.
아무래도 혼자 일하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고객을 상대하다가는 업무를 보는 것조차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쿵. 쿵. 쿵.
꽤 오랜 시간 동안 문을 쿵쿵거리다가 이제야 조용해졌다.
기다리다 지쳐 돌아간 걸로 보였다.
시간이 지나고 오후 5시가 돼서 사무실 문을 개방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아니, 여긴 왜.”
사무실 문을 열자 보이는 건 한 남자였다. 계단에 쪼그려 앉아 문이 열리길 기다렸던 모양이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태범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태범과 가치투자클럽 카페에서 대결을 벌이던 그 남자였다.
아직은 남자의 신상정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에 그저 ‘악플러’라고 알고 있을 뿐이었다.
흉흉한 세상에 혹시나 보복을 하러 온 건 아닐까 잠시 상상은 했지만 남자의 왼손 손에는 음료수 선물 세트, 오른손에는 조그마한 화분이 담긴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일이라도 하고 온 건지 옷차림은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고 악의적인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충 보아하니 통화 때 했던 말을 이어서 하려는 모양이었다.
일단 손님으로 왔으니 남자를 맞이하긴 했으나, 태범의 기분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남자의 태도는 깍듯하다 못해, 자대에 간 전입한 이등병을 보는 줄 알았다.
태범의 한 마디에 반듯하게 자세를 갖춰 소파에 앉았다.
“사업 시작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남자는 테이블 위에 음료 세트와 화분을 올려놓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뭘 이런 걸 다…….”
“아닙니다. 제가 사과할 일도 많고 죄송한 짓도 많이 했는데 이 정도는 소소한 거죠.”
“그래요. 무슨 일로 여기까지 찾아오신 건지?”
“자꾸 신경 쓰게 해서 죄송하지만, 제가 여기 고객이 될 수는 없을지 여쭤보고 싶어서…….”
“아. 그것 때문에 오셨다면 죄송합니다. 정말 지금 누굴 받아줄 처지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사무실을 보세요. 저 혼자밖에 없지 않습니까?”
역시 예상대로 남자는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태범은 ‘그럼 그렇지’ 라는 생각을 하고는 남자의 부탁을 거절했다. 남자에게 딱히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보다는 정말로 손발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대표님에게 못된 짓을 해서 안 된다는 건가요? 그건 정말 뉘우치고 있습니다.”
“아우, 정말 그런 것 때문에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할 일이 얼마나 밀렸는데요. 저기를 보세요.”
태범이 가리킨 건 책상 위였다. 크기가 얼마 되지 않는 책상 위에는 서류들로 산을 이루고 있었다. 책상에 앉으면 얼굴이 종이에 가려 안 보일 지경이었다.
남자도 그걸 보더니 아쉬운 표정을 잔뜩 짓고서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안타까워하는 남자는 엉덩이를 일으켜 세우기에 드디어 나가나 싶었다. 하지만 잠깐 자세를 고쳐 잡은 것뿐이었고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손발이 부족하시다 그러셨는데 그럼 제가 대표님 밑에서 같이 일 할 수 없을까요? 제가 그 부족한 손발을 채워 드릴 수 있습니다.”
갑작스런 제안이었지만 태범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한눈에 봐도 남자는 단지 고객으로서 이곳에 찾아 온 게 아니라 태범의 투자 능력에 눈독을 들이며 찾아온 사람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그런 남자에게 태범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직은 사람을 구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제가 그쪽을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같이 일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잘 할 자신 있습니다. 이래봬도 제가 투자를 전업으로 먹고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표님 밑에서 꼭 일해보고 싶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양복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더니 태범에게 건넸다.
명함에 적혀 있는 직업은 투자 전문가였고 그의 이름은 윤희성이었다.
“투자 전문가라…….”
전업으로 집에서 투자 일을 하는 그는 본인 입으로 투자 전문가를 자처하고 있었다.
전문적인 이력보다는 개인 투자자에 가까웠다.
“아무리 이래도 좀 힘들 것 같습니다. 같이 일할 사람을 이렇게 쉽게 정할 수는 없죠.”
“제가 오죽하면 이러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저도 자존심 강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대표님 게시물에 댓글로 그 짓을 했겠죠. 물론 그게 잘못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태범은 다시 한 번 거절을 했지만, 남자는 간절한 목소리로 자신의 속마음을 호소했다.
“그러면 왜 이러시는 거죠?”
“제가 자존심을 버릴 수 있던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대표님 때문입니다. 대표님 정도면 제가 자존심이든 뭐든 다 내려놓고 밑에서 배우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아니…… 제가 누굴 가리킬 정도는…….”
태범이 말을 끝까지 하기도 전에 남자는 태범에 대한 관심을 쏟아내며, 마치 암컷에게 구애하는 수컷을 보는 것 같았다.
“요 며칠 동안 강태범 대표님이 어떤 사람인지 하루 종일 찾아보고 분석해봤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대표님을 제 인생에서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자신의 광팬으로 보였지만, 또 다른 면으로 본다면 소름 끼치는 스토커처럼 느껴졌다.
남자는 태범의 정체를 알고 난 후 태범에 대한 정보를 모두 찾아본 듯 보였다.
이미 한 번 방송을 탔기에 태범의 정보는 인터넷상에 많이 뿌려진 상태라 정보를 찾는 데는 크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희성 씨가 저를 좋게 봐주신 건 고맙게 생각하는데, 아직은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사람이 필요할 때 공고를 올리도록 할 테니 그때 찾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태범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는 간절히 빌었다.
남자는 본인의 심정을 말해주듯 손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마치 손보다는 물에 젖은 고무장갑과 악수하는 기분이었다.
“이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저도 이제 일을 해야 하니 이만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단 1초라도 태범에게는 금 같은 시간이었다. 더 이상 이런 막무가내의 투정은 계속 들어 줄 수 없었다.
태범이 전혀 흔들리지 않고 완고한 태도를 보이자 남자는 포기한 듯 아쉬운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마디를 건네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 * *
태범은 본인이 작성한 투자 자문에 대한 내용이 담긴 서류를 왕첸에게 보냈다.
투자 종목을 찍어주는 것보다는 어떤 식으로 투자할지 공략방법이 담겨 있었다. 즉 밥을 떠먹여 주기보다는 먹는 법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복잡한 금융공학이 접목되어 있었으며 워렌버핏, 조지 소로스의 투자 혜안과 함께 두뇌 천재 폰 노이만의 수리 능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그러한 능력을 뽐내고 있던 것이었다.
“태범 씨, 서류는 잘 받아봤습니다.”
“어떠십니까? 왕첸 씨가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을 제가 추천해준 방식으로 전환한다면 추가적인 수익을 기대하실 수 있을 겁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계산된 거죠? 제가 확인해봤는데 서류에 나온 투자 기법 말고도 더 있는 것 같은데요?”
“네, 그곳에는 수많은 공식이 집합 돼 있습니다. 사실 서류에 담기에는 너무 방대해서 어쩔 수 없이 축약해서 보내드린 겁니다.”
태범이 왕첸에게 보낸 서류에는 대략적인 투자 지침이 있을 뿐, 그 지침이 어떻게 설계되었는가에 대한 정확한 공식은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이는 태범이 지금껏 연구하며 공부해왔고 모든 투자 방법에 대한 집합체에 가까웠고 이는 오직 태범의 머릿속에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시고 이런 결과를 나타냈는지 궁금하네요.”
왕첸은 태범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눈치였다.